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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장난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합니다. 후에 그 사실을 알고 제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비극과 자신의 패륜으로 인해 테베에 내렸던 재앙의 원망을 안고서 괴로워하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여기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생겨났는데요. 아들은 아버지를 질투하고 자신이 어머니의 짝이 되길 원한다는 것인데, 실제로도 그러한 기간이 있는지 어떤지는 제가 아들인 적도 없고, 아들을 키워 본 적도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들을 때마다 오이디푸스가 억울해 할 것 같습니다. 신의 예언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내쳐졌고, 자라서는 아버지인 줄 모르고 죽게 했으며, 스핑크스를 퇴치한 공으로 부재중인 왕의 자리에 앉아달라는 국민들의 바람을 들어 왕이 되었으며, 그러니 당연히 왕비가 자신의 것이 되었을 뿐 어머니일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런데 나라에 재앙이 생기자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패륜 때문이라는 신탁을 내리다니. 애초에 '신' 네가 벌인 일이잖아.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질투한 적도 없고, 어머니를 성적으로 원한 적 없습니다. 죽인 사람이 아버지였고, 결혼했는데 어머니였을 뿐. 알았더라면 그랬을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알고도 그랬다면 부모를 못 알아봤다며 자기 손으로 눈을 뽑았을까요. 세상에 어떻게 알아봅니까.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한 것을.
<아버지 죽이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니 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이디푸스를 위해 잠시 변호를 해 봤는데요. 이 책의 주인공 '조'와 오이디푸스는 다르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었던 거예요. 조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엄마의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일 텐데, 엄마조차 그의 아버지가 누군지 잘 몰라 합니다. 안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죠. 조는 아버지가 필요했습니다. 엄마의 남자 중 하나가 아버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엄마에게 동거남이 생겨 그를 아버지로 여기고 싶었으나, 그는 조가 독학으로 익힌 마술 기술을 비웃고 비난합니다. 말대꾸를 하는 조의 따귀를 날린 엄마는 집에서 나가서 살라며 내쫓습니다. 한 달에 천 달러는 주겠다고 하는군요. 겨우 열다섯인 조는 바에서 카드 마술을 하다가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는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하고 조는 노먼이라는 마술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생활하며 마술을 배우지요.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가족이라는 걸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자 아버지 역할을 해주는 노먼과 다정하고 아름다운 그의 아내 곁에서 제자이자 아들로서 생활하던 조는 노먼의 아내 크리스티나를 사랑하고 마침내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 애는 당신을 굉장히 좋아해요! 」
「그래. 열다섯 살 먹은 아이가 아버지를 좋아하듯 나를 굉장히 좋아하지. 그래서 나를 죽이고 싶어 해.」
「그러는 당신은, 당신은 그 애를 아들처럼 여겨요?」
「그런 점도 있어. 나는 조에게 무척이나 감탄하고, 애정도 갖고 있어. 집을 떠나 있으면 그 애가 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면 그 애 때문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나.」
「당신, 그 애를 겁내는군요.」
「아니야. 그 애가 걱정돼서 겁이 나는 거야.」
「그렇다면 그 애는 당신 아들이에요.」
-p. 42-43
그 뒤로 조는 사사건건 노먼과 대립합니다. 사실 좀 울컥했어요. 이 녀석이 정말 말 그대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현하고 있잖아요. 어이없을 정도로 뻔뻔합니다. 사춘기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 가족 내에서 알파 수컷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요. 단 한가지 무척 대단한 점은 있습니다. 내면의 비뚤어짐은 둘째 치고라도, 무언가를 해내야겠다고 생각하면 끈질기게 노력해서 반드시 해낸다는 건데요. 시간이 아무리 들어도 꼭 해내고 맙니다. 머리도 좋고요. 그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건 아니라서 아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조의 행동에 황당했습니다. 멋진 척, 의연한 척, 조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노먼이 안쓰러웠습니다. 아니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으며 어떻게 저럴까요. 마지막의 반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소름 끼쳤어요. 지금까지 조의 행동이 그런 거였다니!
아멜리 노통브의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도 파격적이었는데 후속작들도 인상적입니다. <아버지 죽이기>는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