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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ㅣ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평점 :
어린 시절, 방울이라는 강아지를 키웠습니다. 엄마가 퇴근길에 구조해 온 아이였는데요.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걸 보고 엄마가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강아지를 아꼈고, 방울이도 저를 무척 따랐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정말 방울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독한 독감에 걸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열이 펄펄 끓었었죠. 이모의 남자친구가 놀러 와서 그런 저랑 남동생이랑 방울이랑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었었죠.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감기가 싹 나은 거예요. 몸이 무척 가벼웠어요. 일어나자마자 방울이를 찾았는데, 방울이는 부엌 문 뒤쪽에서 피와 이상한 것들을 토하고 죽어있었습니다. 놀라 울면서 외할머니를 불렀어요. 나는 가뿐해졌는데, 어제까지 멀쩡했던 방울이가 갑자기 죽어버리다니. 게다가 며칠 후 현상된 사진을 가지고 이모의 남자친구가 다시 놀러 왔는데요. 방울이와 함께 찍은 사진만은 현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일만으로도 기이하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15년쯤 흘러 엄마와 이모들께 방울이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외할머니 조차도요. 남동생과 저만 기억하고 있었어요. 잠깐 있다가 간 것도 아니고 그래도 몇 달은 같이 살았는데, 어째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걸까요? 시간이 지난다고 잊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닌데... 누군가가 방울이의 기억을 먹어버린 걸까요? 당시에 혹시 방울이가 나 대신 죽은 건 아닐까 하고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에 저만은 또렷이 기억하는 걸까요? <기억술사>의 작가 오리가미 교야도 혹시 저와 비슷한 기억이 있는 걸까요?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도시 전설 '기억술사'라는 걸 탄생시켰으니 말이에요.
<기억술사>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개인의 기억의 일부만을 지워버립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아무 기억이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의뢰받은 일을 신중하게 지웁니다. 그를 도시전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억이 지워진 사람은 자신이 기억술사를 만났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기에 누구의 누가 그러는데... 하는 형태로 전해질뿐이라 기억술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인공 '료'는 어릴 적 소꿉동무이자 여동생처럼 여기는 마키에게서 기억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도시전설 기억술사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게다가 반복되는 이상한 꿈. 대학생이 되어 마음을 주었던 선배도, 우연히 알게 된 변호사의 지인도 기억이 사라져버리자 기억술사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지는데요. 그를 꼭 만나서 자신의 기억을 지우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워진 기억에 포함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상실감이 생기기에 상처가 되지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여자가 오늘은 나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합니다. 슬프지 않나요.
기억을 지우길 원했던 사람은 어쩜 저렇게 이기적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아픈 것과 즐거운 것들이 층층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니, 모든 건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소설에 등장해 기억을 지우기 원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해서 기억을 지웠으니 그건 안타깝고 슬픈 사랑이라고 해야 좋을지,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정말이지 울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소설의 첫인상은 일본의 정적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는데요.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푹 빠져 읽게 됩니다. 2,3권도 챙겨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