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남자
박성신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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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는 반공반첩에 대한 교육이 무척 철저했습니다. 수상한 사람을 보면 반드시 신고하라며 상당히 구체적인 예시가 있었거든요. 오해를 받아 끌려가 고초를 겪은 분들도 계셨고, 실제로 체포된 간첩도 있었을 겁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해도 간첩으로 몰려 끌려가기도 했던 시절이니까요. 어휴, 지금 같으면 몽땅 잡혀갈 판이지요.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하면 빨갱이의 조종을 받았다, 사주를 받았다, 그들 중 누가 간첩일 거다 하며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학생들을 때려잡아 매캐한 화염병 연기와 최루탄 가스가 서울 시내에 깔리곤 했던 불안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께 북한은 자꾸만 간첩을 보내니 참 나쁘다고 말씀드리자,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북으로 간첩을 보낸다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북한의 나쁜 점 중 하나는 간첩을 남으로 보내서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었거든요.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고요. 그런데 남한에서도 북으로 보낸다니. 충격이었습니다. 게다가 좀 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스파이나 간첩이나 같은 말로, 제가 좋아하는 007이 영국산 간첩이라니! 어딘가에 몰래 숨어들어가 자기편의 일을 성공리에 해낸다는 걸로 보면 맥가이버도 비슷한 직업을 가진 아저씨라고 하니, 간첩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나라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에게는 싫지만, 자국 입장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단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습니다. 

007처럼 임무를 받으면 해당 지역으로 날아가 침투하고 멋진 액션으로 우리의 눈과 귀와 가슴을 즐겁게 해주는 타입의 스파이도 있겠지만, 한 지역에 오래도록 살면서 우리의 이웃으로 수십 년을 지내는 고정간첩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옆집에 살았던 아저씨가 간첩일 수도 있다는 거죠. 똘이 장군 같은 데서 봤던 늑대나 여우의 상이 아닌, 그냥 평범한 아저씨 말이에요. 만화책이나 오래된 소설책을 들고 가서 팔기도 하고, 때로는 사기도 했던 헌 책방의 말수 적은 주인아저씨가 사실은 간첩이라면 어떨까요? 박성신의 <제3의 남자>에는 그런 아저씨가 나와요. 그리고 그의 아들도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아들 최대국은 이혼하고 혼자서 17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폐인처럼 삽니다. 자신의 인생이 꼬여버린 건 아버지 탓이라고 원망하면서 매일을 찌질하게 보내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아버지인 최희도씨가 총에 맞았다면서요. 미국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총을 맞는 일은 흔한 게 아니죠. 그는 아버지의 수첩을 찾아달라며 수억 원의 보상금을 제시합니다. 선불로 1000만 원을 주면서요. 인생 역전! 지금까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아버지가 드디어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대국은 제의를 수락합니다. 헌책방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행적을 밟아가던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어쩌면 간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리고 어째서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대했는지도 말이지요.

소설은 아버지 최희도의 이야기와 아들 최대국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면서 진행됩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사실을 대국은 몰라요. 아버지의 과거를 조금씩 찾게 되면서 고정간첩이었던 아버지가 헌책방 주인으로 조용히 살았던 건 안기부의 눈을 피하고 간첩 활동을 하기 위한 것 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무척 괜찮은 소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과거 부분과 아들의 현재 부분이 교차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아들은 결코 정의의 사도가 아니었죠. 한국 순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찌질이에 가까웠습니다. 자신의 꼬인 인생을 남탓으로 돌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아버지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살아갈 용기가 없었을 테지요. 그런 주인공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한편, 아버지의 경우는 냉혈한 남파 간첩이되 실은 남한의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것 없는 부성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 여자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안고 있는 따뜻한 남자였습니다.

이 소설은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온 따뜻한 소설 같았습니다. 스릴러라고 하기엔 조금 약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옥죄일 것 같은 스릴은 부족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느낌이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인물 간의 갈등도 그렇고, 흐름도 그렇고요. 그리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것 같은, 그리고 존재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현실감을 주었습니다. 종장에 이르러 아들이 이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내고 이 소설과 동명인 <제3의 남자>라는 책이 매대에 있는 장면에서는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져 어쩌면 이런 일이 정말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짜임새 있게 진행되는 소설의 스토리는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좋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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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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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타리스트 후쿠다 신이치의 바흐 연주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마치 피아노의 굵은 현을 직접 쓰다듬어 연주하는 것 같은 음색이군요. 마키노 사토시가 연주하는 것도 이렇겠죠. 부드럽다가도 강인하다가 슬며시 다가와 감동을 주는 그런 연주일 거예요. 소설 속의 인물이니 실제의 인물을 통해 상상해봅니다. 마키노와 요코와 파리에서 바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둘은 사랑하고 있었어요.

마티네란 프랑스어의 마르탱(낮)에서 온 단어로 보통 저녁에 공연하는 오페라나 뮤지컬, 음악회 등의 흥행을 위해 낮에 공연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간 흥행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마티네의 끝에서>의 주인공 마키노는 천재 기타리스트입니다. 스승님의 여러 제자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지요. 소설이 시작할 무렵, 그는 이미 무척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는데요. 이 소설에는 그가 연주하거나 언급하는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합니다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BGM이 떠오르는데, 대개 가장 마지막에 언급된 곡이 다음 음악 제목이 나올 때까지 뇌리에 떠돕니다. 어울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만일 영화였더라면 OST 공급을 위해 저작료를 많이 내야 할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수록된 음악들 모두를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알고 있는 곡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속에서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는데 - 아니 무엇보다도 그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건 아마 게이치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러니 그는 이 소설을 썼고 나는 읽었으니, 앞으로 그 음악들 중 몇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이라는 기억을 안고 가겠지요. 

얼마 전 또다시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IS에 의한 것이라는데, 남겨진 자,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는 너무나 커, 생존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는 죄책감이 더 크다고 합니다 <마티네의 끝에서>의 요코도 그렇습니다. 바그다드 취재 도중 경험한 테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기에 충분했죠.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마키노와 요코는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어떤 영혼의 이끌림 같은 것이라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으론 부족합니다. 그러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작별했습니다. 처음 만나 별로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에 사랑을 말하기엔 경솔하다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마키노는 자신의 마음을 전했죠. 하지만 요코에게는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있었기에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세 번째 만났을 때에, 마키노는 음악적 슬럼프에 빠져들고 있었고, 요코는 테러의 위험을 겪은 후였습니다. 불안정한 그들이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요코는 약혼자 리처드에게 이별을 고하고 마키노를 선택했습니다. 범 지구적인 원거리 연애를 하는 그들은 스카이프가 오작교였는데요. 21세기라 다행입니다. 휴대폰 로밍 서비스도 있고, 인터넷 메일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의 질투나 이기적인 마음은 세기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닌가 봅니다. 요코와 마키노가 일본에서 만나기로 한 날, 마키노의 비서 겸 매니저인 미타니 때문에 일이 크게 틀어지고, 그로 인해 둘은 헤어집니다.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심리 상태가 아니었기에, 게다가 구차하게 따져드는 성격들이 아니었기에 미타니때문에 생긴 오해를 스스로의 고민을 통해 마음을 정리합니다. 적어도 한 번쯤 직접 물어보지 않는 요코 때문에 답답했고, 미타니 때문에 울컥했습니다. 마음을 주고 있던 마키노가 요코와 사귄다는 사실에 그녀가 취한 행동은 깊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코와 미타니의 대화와 데이트는 뭔가 전문적이 대화가 오고 가서 제가 낄 자리가 없는 것 같다고 느꼈었거든요. 그들의 사이에서 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마키노도 그런 느낌이었나 봅니다. 뒷자리에서 마키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족했던 건 그의 옆에 누구도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누군가가 그 옆을 차지하려 한다면, 그건 자신이어야 한다는 순간적인 욕심이었을 겁니다. 더 이상의 조연은 싫다라는 감정이었겠죠. 하지만 그런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미타니의 행동에 화가 났습니다. 
미타니와 요코는 각자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아픈 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지금까지 단 세 번을 만났을 뿐이지만 그러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깊이 사랑했던 사람...... 음악이 앞으로 내달려갔다. 이 한때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그녀는 기도했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기를.
-p.480


히라노 게이치로는 사람의 심리를 심층 분석해서 드러내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인 저는 주인공이 되어, 조연이 되어 그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단순히 로맨스 소설로 생각해 스토리라인만을 찾는다면 진정한 맛을 느끼긴 어려울 것입니다. 읽다가 잠시 눈과 손을 멈추고 클래식 기타로 연주하는 곡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이 어떨까요? 마키노의 연주곡 중 하나인 킬링 미 소프틀리를 추천합니다. 더불어 아랑후에즈 협주곡도요. 저 역시 30여 년 전부터 좋아했던 곡이거든요. 그리고 진한 커피와 함께 읽는다면 이 소설을 맛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달콤하지는 않으니 부디 쓰디쓴 커피로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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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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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관해 혁명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을 쓰며 남성 중심의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겠지요.  딱히 페미니즘적인 것은 몰라도 여성 SF 작가들의 신비하고도 흥미로운 상상이 풍부히 들어간 단편 소설집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각양 각색의 작가들의 다채로운 소설들이 들어있는데, 어느 하나 무료하지 않고 독특하며 기이합니다. 가끔은 작가의 세계관이 뚜렷하여 미처 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매 단편 말에 주석처럼 붙어있는 작품 설명이 무척 도움이 되었습니다. 
판타지적인 SF 소설이므로 호불호가 갈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고 꿈에서나 가능한, 무척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종류의 소설을 싫어하는 분은 무지 싫어하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저는 이런 류의 소설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정말 기뻤습니다. 한편 한편마다 느낌을 새기며 읽었습니다. 

지금은 여성의 지위가 한 세대 전보다는 향상되었기에 과거의 소설들이 좀 과장된 것처럼 느낄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서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듯한 표현을 한다는 깨닫는 순간 페미니스트도 뭣도 아니면서 괜히 울컥하며 나라도 표현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자격지심에 오버해서는 안되겠지요. 

맨 첫 번에 수록된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는 인도인 SF 작가이자 과학자인 반다나 싱의 작품으로 결혼생활에 의문을 가진 한 여자가 스스로를 행성이라 생각하고 결국엔 '사리'에 꽁꽁 묶인 몸을 해방시켜 정말 밤하늘의 행성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이웃들이, 지인들이 아내 간수를 잘 못한 자신에게 손가락질할까 걱정합니다. 

수전 팰위크의 '늑대 여자'는 한 달 중 만월이 끼어있는 한 주간은 늑대로 살아야 하는 신비한 여인 스텔라가 인간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길들여져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남자에게 혹은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의 운명은 빠른 노화 탓에 어그러지고,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되돌리려는 순간 남편에게 배신당합니다. 수록된 단편들 중에 가장 화가 났던 이야기로, 사랑받기 위해 그에게 모든 것 맞추려는 스텔라의 행동은 알파 수컷에게 복종하려는 동물적인 감각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남편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으로, 스텔라가 늑대가 아니고 보통의 여자라고 생각해도 남편의 그런 식의 배신은 끔찍합니다. 늑대 여자로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들은 늘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났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의 주종 관계(같은) 이야기만 나온다면 SF 확장판 사랑과 전쟁 같은 것이겠지만, 남녀 성 평등에 관한 소설이나 여자들만의 의식 교류 같은 소재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히로미 고토의 '가슴 이야기'는 모유 수유를 했던 엄마라면, 대공감할만한 이야기입니다. 세세한 묘사는 그 당시의 고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했습니다. 모유 수유란 아름다운 일이면서도 고통의 연속이거든요. 남자들은 모를 겁니다. 모유 수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게다가 어떤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흥. 자기들이 한 번 해보라지. 전 괜찮습니다. 강요가 아닌 저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했으니까요. 고통스러우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렇지만 마조히스트는 아닙니다. 하핫.

모든 단편이 참으로 알찹니다. 페미니스트건 아니건 SF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합니다. 신비하고, 기이하고, 정치적으로 (거의) 올바른 소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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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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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곤란이 왔습니다. 책에 너무 집중한 탓에 숨 쉬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숨 쉬는 것을 수시로 잊어버려 가끔 심호흡을 해야 하지만 이렇게 오래, 얕게 숨을 쉬며 책을 읽다니.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핏기가 없었고 어지러웠습니다. 폐포는 많은 산소를 받아들이기는커녕 계속 이런 호흡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억지로 심호흡을 하며 공기를 받아들였지만 현기증만 더 할 뿐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오두막에 들어가기도 전에 하나님과 만날 뻔했지 뭔가요. 맥켄지의 고통과 회복, 이해와 용서 같은 것들이 모두 내 안으로 들어와 감당이 되지 않았던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걸려온 딸의 전화가 아니었으면 잠시 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만도 무척 많이 팔려 100쇄 기념 특별판으로 나온 이 책은 처음부터 기적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선물할 소설을 써서 가제본으로 제작하고 지인들에게 보냈던 것이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 가슴속에 파고들어 순식간에 번져나갔으니까요.
책은 다분히 기독교적입니다. 저자인 윌리엄 폴 영이 선교사 부모를 두고 있다는 점은 무관하지 않을 테지요. 그는 인생에서 큰 좌절을 겪었고 그 일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이 책 자체가 그에게는 오두막이었나 봅니다. 윌리엄이 지인인 맥캔지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처럼 쓴 이 소설 <오두막>은 현실과 동떨어져있고 환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실화인 것만 같은 이중적인 감각에 소설인 것을 중간중간 상기해야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캠프에 갔던 맥은 보트 사고로부터 두 아이를 구하려 물에 뛰어들었던 사이, 작은 딸 미시를 잃고 맙니다. 연쇄 아동 유괴 살해범에게 납치되어 시신도 찾지 못한 채 3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자책감과 분노로 괴로워했습니다.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를 떠난 후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었기에 더욱 회복하기 어려운 절망 속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얼음비 내리던 날, 미시의 피 묻은 옷을 발견했던 그 오두막에서 주말에 만나자는 '파파'의 쪽지를 받습니다. '파파'는 아내인 낸이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었는데요. 쪽지의 의도는 셋 중 하나겠지요. 범인의 도발, 이웃의 잔인한 농담, 어쩌면 진짜 하나님. 무엇이 되었든 간에 맥은 친구 윌리에게 총과 차를 빌려서 아내 몰래 오두막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을 할 것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상상하지 못한 채.

표지의 ["오랜만이다. 이런 먹먹 함." 잠시 책을 덮었다]라는 구절은 출판사의 흔한 낚시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잠시 책 덮기를 여러 번 해야 했습니다.
슬픔의 눈물, 고통의 눈물, 공감의 눈물, 감동의 눈물, 사랑받는 자의 눈물, 외로움의 눈물, 회복의 눈물, 감격의 눈물..... 이렇게 여러 종류의 눈물을 찔끔찔끔 흘려댔으니 숨이라도 온전히 쉬어졌을까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꽉 들어찬 소설이었습니다.
교회라는 건물과 공동체에 절망하여 그곳에 다니지 않게 된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인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것들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교회라는 공간에 들어가 슬퍼하고 절망하고픈 마음까지는 생기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 소설이 전도를 목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므로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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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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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잘 나가는 대중문화 평론가 현수빈이 유년 시절에 살았던 다가구 주택을 추억합니다. 일곱 살이었던 그녀의 기억은 어렴풋하고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남자친구인 박우돌이 기억을 보충해주고 블로그에 당시 함께 살았던 사람을 찾는다는 팝업도 띄워주는 등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하는데요. 라일락 하우스라고 부르기로 한 그 집에서 함께 살았던 우돌이 처음부터 그녀의 유년 시절 추억하기 칼럼을 반대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모든 과거가 다 들춰지는 게 싫었다면 말이죠. 가난했지만 알콩달콩 살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만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은 함께 살던 대학생 조영달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칼럼을 쓴 그날부터 과거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일곱 살 여자아이가 알았던 과거와 어른들이 알고 있던 과거, 그리고 진실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6학년 때였나... 저도 연탄가스를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 서너시쯤 연탄을 갈고 방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는데요. 아침 여섯 시쯤 알람을 끄고 일어나려니 도저히 일어나지지 않더군요. 어지럽고, 메스꺼운 것이 도저히 아침을 준비할 수 없었어요. 저쪽 옆에서 자던 동생을 깨워서 세수부터 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누나가 아파서 아침을 못 줄 거 같으니까 일단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요. 그런데 세수하러 나가던 동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 피아노와 라면 박스에 몸을 와당탕하고 부딪혔다더군요. - 쓰러졌고, 그 소리에 아빠가 안방에서 뛰어나오셨어요. 이러저러하다 말씀드리니 큰일 났다며 연탄가스를 마신 거 같다고 하시고선 덧문과 창문을 모두 열고 바깥 방으로 나와 누우라고 하시고 연탄보일러를 살피시더군요. 살피신다고 해도 워낙에 기계치에 몸쓰는 일은 하나도 못하는 분이라 그냥 불문을 살피고 뚜껑을 잘 닫는 정도였지만요. 이유는 모르지만, 어디선가 가스가 샜고, 가스가 들어오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제가 제일 많이 들이마셨나 봅니다. 아휴. 그때 가스만 안 마셨어도 엄청 똑똑할 뻔했는데. 

당시엔 주요 난방재가 연탄이었던 만큼 사고도 참 많았습니다. 그놈의 일산화탄소는 동치미로 해결이 안 되는데, 희한하게 김치 국물이나 동치미를 마시고 나면 좀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플라세보효과를 누릴 새도 없이 조영달은 그렇게 죽어버렸고, 그의 죽음은 자살이니 사고니 말이 많았었지만, 당시엔 자살로 수사가 종결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모종의 살인 음모 같은 건 없었지만, 조금씩 어긋난 무언가가 살의를 부추기기도 했고, 의혹도 낳았으며 오해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라일락 하우스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미심쩍은 부분 하나씩을 안았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모두 잊혀가려던 중, 천진난만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캐릭터 현수빈이 나타나 과거를 열어젖히려 합니다. 다시 불안해지는 사람들. 과거와 마주한다는 건. 몰랐던 일을 알게 된다는 건. 새로운 비극을 낳을 수 있다는 걸 현수빈은 몰랐습니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에선 1980년대 서민의 생활이 제대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들이 끄집어내졌는데요. 특히 골목길에 있던 콘크리트 쓰레기통이 그러했습니다. 제주로 이사 왔을 때, 신시가지였던 탓에 그런 쓰레기통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의 클린하우스와는 다르지만 뭔가 산뜻한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학교에는 그런 게 있었어요. 좀 커다란. 소각장도 있었고... 콘크리트 쓰레기통에 관한 묘사를 읽는 순간, 미화원이 철제 삽으로 쓰레기통 안을 긁는 소리와 함께 그 냄새까지 화악하고 떠오르는 겁니다. 서울 시범아파트에서의 더스트 슈트와 함께요. 소설을 읽으며 80년대에 정말 그 정도로 못 살았던 건가 하는 생각에 기억을 마구 더듬어 보는데, 기억이 안 나요.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 대부분을 갖다 버렸거든요. 딸아이는 다섯 살 때 살던 집의 구조도 기억해 내는데, 저는 기억나지 않아요.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라일락 하우스의 사람들도 그랬겠지요.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었고, 버렸던 기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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