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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에 관해 혁명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을 쓰며 남성 중심의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겠지요. 딱히 페미니즘적인 것은 몰라도 여성 SF 작가들의 신비하고도 흥미로운 상상이 풍부히 들어간 단편 소설집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각양 각색의 작가들의 다채로운 소설들이 들어있는데, 어느 하나 무료하지 않고 독특하며 기이합니다. 가끔은 작가의 세계관이 뚜렷하여 미처 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매 단편 말에 주석처럼 붙어있는 작품 설명이 무척 도움이 되었습니다.
판타지적인 SF 소설이므로 호불호가 갈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고 꿈에서나 가능한, 무척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종류의 소설을 싫어하는 분은 무지 싫어하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저는 이런 류의 소설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정말 기뻤습니다. 한편 한편마다 느낌을 새기며 읽었습니다.
지금은 여성의 지위가 한 세대 전보다는 향상되었기에 과거의 소설들이 좀 과장된 것처럼 느낄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서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듯한 표현을 한다는 깨닫는 순간 페미니스트도 뭣도 아니면서 괜히 울컥하며 나라도 표현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자격지심에 오버해서는 안되겠지요.
맨 첫 번에 수록된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는 인도인 SF 작가이자 과학자인 반다나 싱의 작품으로 결혼생활에 의문을 가진 한 여자가 스스로를 행성이라 생각하고 결국엔 '사리'에 꽁꽁 묶인 몸을 해방시켜 정말 밤하늘의 행성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이웃들이, 지인들이 아내 간수를 잘 못한 자신에게 손가락질할까 걱정합니다.
수전 팰위크의 '늑대 여자'는 한 달 중 만월이 끼어있는 한 주간은 늑대로 살아야 하는 신비한 여인 스텔라가 인간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길들여져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남자에게 혹은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의 운명은 빠른 노화 탓에 어그러지고,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되돌리려는 순간 남편에게 배신당합니다. 수록된 단편들 중에 가장 화가 났던 이야기로, 사랑받기 위해 그에게 모든 것 맞추려는 스텔라의 행동은 알파 수컷에게 복종하려는 동물적인 감각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남편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으로, 스텔라가 늑대가 아니고 보통의 여자라고 생각해도 남편의 그런 식의 배신은 끔찍합니다. 늑대 여자로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들은 늘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났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의 주종 관계(같은) 이야기만 나온다면 SF 확장판 사랑과 전쟁 같은 것이겠지만, 남녀 성 평등에 관한 소설이나 여자들만의 의식 교류 같은 소재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히로미 고토의 '가슴 이야기'는 모유 수유를 했던 엄마라면, 대공감할만한 이야기입니다. 세세한 묘사는 그 당시의 고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했습니다. 모유 수유란 아름다운 일이면서도 고통의 연속이거든요. 남자들은 모를 겁니다. 모유 수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게다가 어떤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흥. 자기들이 한 번 해보라지. 전 괜찮습니다. 강요가 아닌 저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했으니까요. 고통스러우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렇지만 마조히스트는 아닙니다. 하핫.
모든 단편이 참으로 알찹니다. 페미니스트건 아니건 SF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합니다. 신비하고, 기이하고, 정치적으로 (거의) 올바른 소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