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에 부엉이가 산다
미소짓는 부엉이 지음 / T.W.I.G(티더블유아이지)(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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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집 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삶에 도움 되는 말이긴 한데, 억지로 떠먹여주는 기분이 들어서 싫습니다. 명언들을 외워서 써먹으면 유식해 보이긴 하겠지만 내 속에 새기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곱씹어대야 하는데, 무릇 몸으로 체험하지 않고선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법. 게다가 위인이 했으니 명언이지 옆집 사는 중학생이 했다면 흑염룡 봉인 해제된 중2병의 대사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사람은 크게 되고 볼 일이다.....라는 엉뚱한 이야기로 흘러가버릴뻔했습니다. 
명언이나 격언, 속담에도 삶의 교훈이 확실히 들어 있긴 하지만 교훈이란 의외로 삶에서 쉬이 얻어집니다. 이번의 일은 언젠간 다시 돌아온다는 자세로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특징이 있긴 하지만요. 사소한 경험에서 얻을 수도 있는 그런 교훈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내 주변의 사람이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각기 다른 교훈을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 모두가 그런 사람이지만 - 타인의 인생을 대리 체험하면서 자신의 마음에도 박혀들기 마련입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엔 현자가 많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말입니다.

<이웃집에 부엉이가 산다>는 그런 현명한 이웃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억지로 떠안기는 교훈이나 삶의 지혜가 아닌, 짧은 글을 통해 다가오는 지혜로움입니다. 글쓴이 미소 짓는 부엉이는 여럿의 필명입니다. 가끔은 찡하게, 가끔은 눈을 감고 생각하게 하는 그들의 글은 다정합니다. <샘터>의 글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빨간 자전거>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미소 짓는 부엉이에는 남녀가 섞여 있어 그런지 문장이 중성적입니다. 내 안의 여자인 부분이 나서지 않아도 현재를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가 책을 담뿍 느끼기 충분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이런 부분은 이렇게 느끼고, 저런 부분은 저렇게 느낍니다. 내가 겪었던 일이 떠오르면 더 그렇습니다. 그들과 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이후의 방향은 다르게 잡습니다. 만일 내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평행 우주의 나는 그 길을 가고 있겠지요. 인생에 있어서 정답은 없습니다. 가장 현명한 방향으로 나가는 방법을 연구할 뿐입니다. 때로는 그런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패러독스에 빠지기도 하지만요.


완벽하려고 하면 오히려 완벽과는 멀어져요. 때로는 '덜' 완벽해지려고 노력해야 완벽에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p.66

이 책은 한 번에 읽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너무 바빠 책 읽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에겐 더욱 좋겠습니다. 명절에 가볍게 선물하고 큰 기쁨과 편안한 마음을 주고 싶다면 이 책이 좋겠습니다. 
이 책은 다정하며 파스텔 톤입니다. 

연휴 때 부엉이를 그려볼까요.
저도 이웃집에 사는 부엉이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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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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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은 SF 로맨스 소설로, 신데렐라,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 공주를 모티브로 한 네 명의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요. 세계관이 확실한데다가 동화에서 빌려온 설정뿐만 아니라 SF의 느낌도 제대로 들어맞아 로맨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동화에서 남자에게 의존만 하던 여주인공의 느낌을 벗어나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진취적으로 나가며 때로는 리드합니다. - 윈터는 좀 그런 면이 부족하긴 했지만요. 소설은 4차 대전 이후 황폐화한 지구를 배경으로, 그리고 뛰어난 기술력과 마법을 사용하는 달(루나)을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이 루나 크로니클에는 공공의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셀린이라는 이름의 공주인 사이보그 신더의 이모인 레바나가 바로 그 적이며, 악역인데요. 그녀의 마법력은 너무나도 강해서 사람을 세뇌하고, 행동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양도 자유로이 바꿀 수 있습니다. 정통 루나인들이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마법력에다가 왕실 혈통이 더해졌으니 대단한 건 당연하겠지요. 루나 크로니클 마지막 권인 윈터에서 그녀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요. 그녀는 어째서 조카인 신더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지구와의 합병을 위해 저지르는 일들, 그렇게까지 지구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읽은 <레바나>에서 그녀의 모든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레바나는 언니인 채너리의 악독함에 늘 피해를 보는 소심한 공주였습니다. 채너리는 요새 지구 말로 하자면 사이코패스에요.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되어도 좋다는 주의였죠. 그런 채너리가 여왕이 되었습니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던 그녀 대신 레바나가 여왕이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녀들의 부모 역시 좋은 통치자는 아니었기에 본보기가 되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레바나는 어린 시절 언니에게 당했던 상처 때문에 언제나 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살았습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사랑을 합니다. 에브렛이라는 근위병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남자였습니다. 에브렛의 아내는 무척 아름다운 사람으로 솜씨 좋은 재봉사였습니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마음씨 착한 여자였죠. 그러나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맙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란 레바나는 에브렛의 상심보다는 이제는 당당하게 그를 만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마법의 힘을 빌려 에브렛의 마음을 조종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여 결국 그와 결혼합니다. 그의 아기 윈터를 의붓딸로 삼고요. 왕실 혈통이 아닌 윈터는 이제 공주가 되었습니다. 채너리는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딸을 낳습니다. 어차피 엄마가 여왕이니 아빠가 누군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 아이의 이름을 셀린으로 짓고 키운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맙니다. 새로운 여왕이 된 레바나는 지금까지의 어떤 왕보다 국력을 키울 수 있는 정치를 합니다. 그녀는 여왕으로서의 자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껏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살아온 날들 중에 누군가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았던 건 단 한 번 뿐이었는데, 그것이 에브렛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더욱 사랑했고,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브렛은 결코 레바나의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그의 아내 솔스티스의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 없는 레바나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요. 자신이 아무리 사랑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신앙'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극복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어서 언제나 긴장을 해야만 하는 그런 것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녀를 그런 꼴로 만든 채너리는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전혀 없이 그녀의 흉물스러운 외모에 대해 늘 비난하고, 멸시했습니다. 진실된 모습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설 수 없었던 레바나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어보기는커녕 세상의 모든 거울을 없애야만 했습니다. 상처받고, 미움받고, 온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레바나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중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어떤 것이 나쁜 일인지 그 어느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루나 크로니클을 읽으며 이렇게 슬픈 적은 없었는데. 레바나가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운명이라는 것이 조금만 그녀를 향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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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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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다섯시 오십분에 기상합니다. 알람을 끄고 제일 먼저 유튜브를 열어 제시 제이의 곡을 터치하면 연이어서 아리아나 그란데나 비욘세, 니키 미나즈. 테일러 스위프트, 그리고 느닷없이 모던 토킹이 등장합니다. 여섯시 삼십오분에 아이를 보내고 빨래며 청소를 하다 보면 한 시간 반은 후딱 지나갑니다. 음악 없이 조용히 일을 하면 어쩐지 우울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허리며 이상근이 제발 좀 그만하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음악을 마련한 순간 미세스 다웃파이어처럼, 라푼젤처럼, 마법에 걸린 사랑의 지젤처럼 신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뿐인가요. 한국의 몰디브라 불리는 서우봉 해변에 앉아 책을 읽으면 풍경은 아름답고 공기는 좋지만, 산만하기 그지없는데요. 적당한 음악을 세팅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그곳은 제주의 바다, 카리브해, 몰디브가 됩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이 책은 참 나쁩니다. 왜냐고요? 이 책 때문에 유튜브 레드를 결재했습니다. 물론 1개월 무료 체험 기간으로 시작하니까 아직 돈이 들어간 건 아니지만 다음 달부터 꼬박꼬박 돈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써보니 좋더라고요. 온라인 상태에서 다운로드해 두면 오프라인에서 들을 수도 있고, 성가신 광고도 없습니다. 추천해주는 음악이 다 제 취향입니다. 유튜브 빅브라더. 제법이니 오빠라고 부를까 생각 중입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 유튜브 레드에 가입하라고 시키지는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제멋대로 가입해놓고 왜 책 핑계를 대느냐... 

이 책은 박상이라는 사람이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러니까 뮤직 에세이입니다. 음악에 대해 심오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정말 심각하게 읽어야 하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음악도 있고, 여행도 있고, 시사도 있습니다. 잘 버무려져 있지요. 

제가 책의 목차를 훑어보니 소제목에 음악 한 곡씩이 더불어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기특한 생각을 했죠.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으며 읽자고. 어차피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데, 이 책에선 딱 맞는 음악을 소개해주기까지 하니 좋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클럽에서 나옴직한 다프트 핑크의 겟 럭키를 시작으로 유튜브를 딱 열어놓고 음악을 플레이하며 읽었는데, 아아아아!!!! 광고!!!! 게시자도 유튜브도 먹고살아야 하니 5~20초 광고는 봐 줄 수 있는데, 문제는 책 읽다가 그 시간 동안 멈춰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뭔가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킵 버튼을 누르기 위해 검지를 꼿꼿이 세운 채로 말이에요.

이것이 제가 유튜브 레드에 가입하게 된 동기입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라는 제목이지만 이 책은 달달하지도 끈적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웃긴다더니 웃기지도 않아요. 재미있습니다. 웃긴 거랑 재미있는 거랑 조금 다르잖아요?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책의 글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소제목과 함께 붙어 있는 음악과 함께 했습니다. 책 읽는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리긴 했지만 말이에요. 그러나 덕분에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었어요. 책에서 가사의 일부를 소개할 때 플레이 되던 곡과 약 70%의 확률로 딱 들어맞아서 소오름이 돋았습니다. 그때의 기분이란!! 책과 갑자기 일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작가가 의도한 것인가요? 모두가 저 같은 짓을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저 같은 속도로 읽는 건 아닐 텐데.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소개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너무 길어서 어쩌나 잠시 걱정을 했지만 보너스 트랙의 여행기를 읽으며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이칼 호수나 파리나 비슷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읽으실 거라면 저처럼 음악도 함께 하셔요. 그러면 작가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체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유튜브 음악을 랜덤으로 해 두었는데, 이 책의 첫 곡 겟 럭키가 나오고 있네요. 수미쌍관법인가.


** 참. 작가와 저의 음악 취향은 너무나도 달라서 유튜브에서 좋아요를 누른 건 몇 곡 안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때요.

*** 김나훔의 일러스트는 뽀~나스. 글과의 궁합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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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 가족 해부서
시모주 아키코 지음, 강수연 옮김 / 경향BP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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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네이트 판을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기삿거리가 없을 때 드나들면서 글쓴이의 동의 없이 글을 퍼나르기에 도대체 어떤 글이 올라오나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요. 실제의 이야기도 있고 사람을 낚기 위해 뿌린 주작(자작) 글들도 있더군요. 주작이건 실제 건 간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가 있지만 가족이라는 테마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많았는데요. 가장 활성화된 게시판이 결시친(결혼/시집/친정) 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10대의 이야기까지 해서, 가족 때문에, 예비 가족 때문에, 시댁이나 처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고통을 주는 사람의 개념도 21세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야 지금은 세상과 조금 동떨어져있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런 일들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면, 아아 트라우마 투성이입니다. 그것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적응하여 살고 있습니다. 약간의 히키코모리스러운 생활 방식으로요. 사람들과 접촉을 꺼리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형태로 사는 것이 저에겐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니 남의 눈을 의식해서 일부러 불편하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시모주 아키코의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60만 부 판매고를 올린 <가족이라는 병>을 쓴 저자입니다. <가족이라는 병>은 제목은 익히 듣고 봐왔으나 읽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병일 수도 있다는 건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는 도서관에서, '혐오' 키워드의 책을 읽어보려고 찾던 중에 옆에 있길래 함께 빌려 온 책입니다. 삽화가 참 예쁜 책이더군요.
일본인과 한국인은 정서가 참 비슷한 것 같아요. 세계에서 '동반 자살'이라는 개념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건 이 두 나라뿐이라고 하잖아요. 여성의 내조를 강요하고,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존재하고, 아이를 낳아라 마라 참견하고, 비혼이나 미혼인 사람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이제 곧 명절이 되면 친척들이 이런저런 참견을 하겠죠. 공부는 하니?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애는 언제 낳니? 둘째는 아직이니? 하나 더 낳지 그러니?.... 이런 참견은 가족뿐만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도 받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처음 보는 할머니나 아주머니에게서 왜 둘째를 안 낳느냐는 참견을 받았습니다.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를 읽다 보면 개인을 하나로 뭉뚱그리려는 여러 가지 노력과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식으로 해석이 되어 뭔가 조금 기쁩니다만, 조금 극단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불륜에 관한 저자의 의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거든요. 진정한 사랑의 불륜도 있을 수 있지만, 육체의 즐거움만을 따르는 불륜도 있기 때문인데다가 이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불륜이라는 이름이 아닐 테지요.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라기보다는 가족을 구성하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상적'인, 혹은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가족의 모습을 전부 갖춘 가정은 오히려 드물 겁니다. 불편하고 불쾌한 점을 상호 보완해가며 서로 애쓰는 형태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걸 의식하고 있던지 그렇지 않던지 말이에요.
저희 집도 구조적으로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갖추지 못했으나 지금껏 겪어왔던 몇 가지 형태의 가정 중에선 가장 행복한 상태입니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미래의, 이를테면 독거노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우울을 지금부터 안을 필요는 없으니 지금의 행복을 누리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표지에 '가족 회복 프로젝트'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런 테마로 읽는다면 회복이 되기보다는 불만이 더 쌓일지도 모릅니다. 시모주 아키코라는 저자의 사상이 담긴 에세이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는 이런 생각엔 찬성이고 이런 생각엔 반대야.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여러 가지 형태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조금 더 관대한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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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망명자 -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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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할 때 남들이 듣도 보도 못한, 아니면 이름만 들어보았을 것 같은 그런 재료를 가지고 훌륭한 풍미의 요리를 만들어 내면, 맛있다는 극찬과 그런 재료만 있으면 나도 만들겠다는 식의 비아냥을 듣습니다. 그러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나 약간의 사전 준비를 하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누구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면 비법이 무엇이냐며 칭찬을 듣게 마련이죠. 이 소설 <시간 망명자>가 그렇습니다. 
일제 시대의 밀정 이야기, 시간 여행, 디스토피아, 연쇄 살인, 빙의 같은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가져다가 정말 맛있게 버무렸습니다. 

일제 시대의 밀정이었던 지한은 죽음을 맞이하던 날, 마중 나온 제에 의해 미래로 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보다 먼 미래인 그곳은 전염병에 의해, 안드로이드에 의해 싹쓸이 되다 남은 인류가 살아남아 세운 미래도시로 갖가지 의학이나 기계적인 부분은 발전했지만 자연적인 종족 번식이 되지 않았기에 세상을 유지시키려면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타임 트래블 기술이 발달한 이 나라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요. 그들을 시간 망명자라 부르고 자신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공적인 부분을 삽입, 그 세계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무척 적응을 잘 하는 자도 있고 절대로 적응할 수 없는 자들도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이를테면 주인공인 강지한의 경우 1937년 상해에서 끌려온 밀정이었기에 일반인에게는 적이고, 독립운동가에게는 친구이죠. 그러나 '고향의 봄' 작전의 실패로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적이 된 상태이니 이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곧, 적을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제까지 원수였는데 오늘부터는 새로운 세상에 왔으니 친하게 지내라는 건 금방 다투고 씩씩거리는 유치원생에게도 안 통할 이야기잖아요.

이 세상은 언뜻 유토피아처럼 보입니다. 통제적이긴 하지만 외모도 취향대로 바꿀 수 있고, 원하면 인공 신체로 바꿀 수도 있으니 관절통으로 고생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화의 옷을 입은 그들의 속은 시커매서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지요.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그렇습니다. 누가 지한의 편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를 이 세계로 데려오길 간절히 소망한 수향을 만나야 설명을 들을 텐데, 그녀를 만날 길도 없고. 그나마 치엔만이 좀 순수한 사람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사람도, 안드로이드도 쉽게 믿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이곳의 악당은 적의만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영혼마저 숨깁니다. 조던 필레 감독의 <겟 아웃>을 보셨다면 이해가 쉬울 텐데요. 영화 겟 아웃에서는 수술을 통해서 영혼을 새로운 육체에 담았다면, <시간 망명자>에서는 좀 더 간편한 방법으로 새로운 그릇에 영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VIP에게만 열려있는 비밀스러운 행위였지요. 인공 신체 건 진짜 인간 육신이건 원한다면 갈아탈 수 있는 세상이 정말로 행복한 세상일까요? 약간의 부러움과 의구심을 가지며 책을 읽습니다. 

솔직히 소설의 앞부분은 좀 지루합니다. 그러나 지한이 미래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흥미진진해지는데요. 지한은 그곳에서 가장 적응 못한 무망자 임과 동시에 가장 적응을 잘 한 사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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