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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ㅣ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아침 다섯시 오십분에 기상합니다. 알람을 끄고 제일 먼저 유튜브를 열어 제시 제이의 곡을 터치하면 연이어서 아리아나 그란데나 비욘세, 니키 미나즈. 테일러 스위프트, 그리고 느닷없이 모던 토킹이 등장합니다. 여섯시 삼십오분에 아이를 보내고 빨래며 청소를 하다 보면 한 시간 반은 후딱 지나갑니다. 음악 없이 조용히 일을 하면 어쩐지 우울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허리며 이상근이 제발 좀 그만하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음악을 마련한 순간 미세스 다웃파이어처럼, 라푼젤처럼, 마법에 걸린 사랑의 지젤처럼 신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뿐인가요. 한국의 몰디브라 불리는 서우봉 해변에 앉아 책을 읽으면 풍경은 아름답고 공기는 좋지만, 산만하기 그지없는데요. 적당한 음악을 세팅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그곳은 제주의 바다, 카리브해, 몰디브가 됩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이 책은 참 나쁩니다. 왜냐고요? 이 책 때문에 유튜브 레드를 결재했습니다. 물론 1개월 무료 체험 기간으로 시작하니까 아직 돈이 들어간 건 아니지만 다음 달부터 꼬박꼬박 돈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써보니 좋더라고요. 온라인 상태에서 다운로드해 두면 오프라인에서 들을 수도 있고, 성가신 광고도 없습니다. 추천해주는 음악이 다 제 취향입니다. 유튜브 빅브라더. 제법이니 오빠라고 부를까 생각 중입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 유튜브 레드에 가입하라고 시키지는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제멋대로 가입해놓고 왜 책 핑계를 대느냐...
이 책은 박상이라는 사람이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러니까 뮤직 에세이입니다. 음악에 대해 심오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정말 심각하게 읽어야 하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음악도 있고, 여행도 있고, 시사도 있습니다. 잘 버무려져 있지요.
제가 책의 목차를 훑어보니 소제목에 음악 한 곡씩이 더불어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기특한 생각을 했죠.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으며 읽자고. 어차피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데, 이 책에선 딱 맞는 음악을 소개해주기까지 하니 좋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클럽에서 나옴직한 다프트 핑크의 겟 럭키를 시작으로 유튜브를 딱 열어놓고 음악을 플레이하며 읽었는데, 아아아아!!!! 광고!!!! 게시자도 유튜브도 먹고살아야 하니 5~20초 광고는 봐 줄 수 있는데, 문제는 책 읽다가 그 시간 동안 멈춰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뭔가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킵 버튼을 누르기 위해 검지를 꼿꼿이 세운 채로 말이에요.
이것이 제가 유튜브 레드에 가입하게 된 동기입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라는 제목이지만 이 책은 달달하지도 끈적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웃긴다더니 웃기지도 않아요. 재미있습니다. 웃긴 거랑 재미있는 거랑 조금 다르잖아요?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책의 글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소제목과 함께 붙어 있는 음악과 함께 했습니다. 책 읽는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리긴 했지만 말이에요. 그러나 덕분에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었어요. 책에서 가사의 일부를 소개할 때 플레이 되던 곡과 약 70%의 확률로 딱 들어맞아서 소오름이 돋았습니다. 그때의 기분이란!! 책과 갑자기 일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작가가 의도한 것인가요? 모두가 저 같은 짓을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저 같은 속도로 읽는 건 아닐 텐데.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소개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너무 길어서 어쩌나 잠시 걱정을 했지만 보너스 트랙의 여행기를 읽으며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이칼 호수나 파리나 비슷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읽으실 거라면 저처럼 음악도 함께 하셔요. 그러면 작가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체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유튜브 음악을 랜덤으로 해 두었는데, 이 책의 첫 곡 겟 럭키가 나오고 있네요. 수미쌍관법인가.
** 참. 작가와 저의 음악 취향은 너무나도 달라서 유튜브에서 좋아요를 누른 건 몇 곡 안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때요.
*** 김나훔의 일러스트는 뽀~나스. 글과의 궁합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