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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 ㅣ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평점 :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은 SF 로맨스 소설로, 신데렐라,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 공주를 모티브로 한 네 명의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요. 세계관이 확실한데다가 동화에서 빌려온 설정뿐만 아니라 SF의 느낌도 제대로 들어맞아 로맨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동화에서 남자에게 의존만 하던 여주인공의 느낌을 벗어나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진취적으로 나가며 때로는 리드합니다. - 윈터는 좀 그런 면이 부족하긴 했지만요. 소설은 4차 대전 이후 황폐화한 지구를 배경으로, 그리고 뛰어난 기술력과 마법을 사용하는 달(루나)을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이 루나 크로니클에는 공공의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셀린이라는 이름의 공주인 사이보그 신더의 이모인 레바나가 바로 그 적이며, 악역인데요. 그녀의 마법력은 너무나도 강해서 사람을 세뇌하고, 행동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양도 자유로이 바꿀 수 있습니다. 정통 루나인들이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마법력에다가 왕실 혈통이 더해졌으니 대단한 건 당연하겠지요. 루나 크로니클 마지막 권인 윈터에서 그녀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요. 그녀는 어째서 조카인 신더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지구와의 합병을 위해 저지르는 일들, 그렇게까지 지구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읽은 <레바나>에서 그녀의 모든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레바나는 언니인 채너리의 악독함에 늘 피해를 보는 소심한 공주였습니다. 채너리는 요새 지구 말로 하자면 사이코패스에요.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되어도 좋다는 주의였죠. 그런 채너리가 여왕이 되었습니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던 그녀 대신 레바나가 여왕이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녀들의 부모 역시 좋은 통치자는 아니었기에 본보기가 되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레바나는 어린 시절 언니에게 당했던 상처 때문에 언제나 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살았습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사랑을 합니다. 에브렛이라는 근위병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남자였습니다. 에브렛의 아내는 무척 아름다운 사람으로 솜씨 좋은 재봉사였습니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마음씨 착한 여자였죠. 그러나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맙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란 레바나는 에브렛의 상심보다는 이제는 당당하게 그를 만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마법의 힘을 빌려 에브렛의 마음을 조종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여 결국 그와 결혼합니다. 그의 아기 윈터를 의붓딸로 삼고요. 왕실 혈통이 아닌 윈터는 이제 공주가 되었습니다. 채너리는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딸을 낳습니다. 어차피 엄마가 여왕이니 아빠가 누군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 아이의 이름을 셀린으로 짓고 키운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맙니다. 새로운 여왕이 된 레바나는 지금까지의 어떤 왕보다 국력을 키울 수 있는 정치를 합니다. 그녀는 여왕으로서의 자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껏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살아온 날들 중에 누군가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았던 건 단 한 번 뿐이었는데, 그것이 에브렛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더욱 사랑했고,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브렛은 결코 레바나의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그의 아내 솔스티스의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 없는 레바나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요. 자신이 아무리 사랑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신앙'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극복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어서 언제나 긴장을 해야만 하는 그런 것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녀를 그런 꼴로 만든 채너리는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전혀 없이 그녀의 흉물스러운 외모에 대해 늘 비난하고, 멸시했습니다. 진실된 모습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설 수 없었던 레바나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어보기는커녕 세상의 모든 거울을 없애야만 했습니다. 상처받고, 미움받고, 온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레바나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중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어떤 것이 나쁜 일인지 그 어느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루나 크로니클을 읽으며 이렇게 슬픈 적은 없었는데. 레바나가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운명이라는 것이 조금만 그녀를 향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