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그래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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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데는 수많은 역경과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슬기롭게 그것들을 넘기거나 지독한 노력 끝에 이겨나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저주하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수레바퀴에 올라앉아 한탄합니다. 때로는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마냥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올 수도 있거든요.
누구나 겪는 역경이나 부조리가 나에게만 있는 것처럼 한탄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 내가 뭐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 모양 이 꼴인 줄 알아? 내 부모가 이러지만 않았어도, 사회 제도가 이러니까, 사람들의 눈이라는 게 있잖아? 등등 갖은 핑계를 대면서 세상을 저주합니다. 함께 있으면 너무나 피곤해요. 물론 말도 안 되는 무한 긍정주의자는 짜증 나서 함께 있으면 더 피곤하지만요. 불평불만이 가득 차고 자기변호만 해대는 사람에게 - 죽겠다 죽겠다 하는 사람에게 "그럼 죽지그래?"라고 시크하게 말을 던진다면 어떨까요? 갖가지 반응이 예상되는군요. 이 자식이 말이면 단 줄 아느냐, 그래 이 더러운 세상 확 죽어버리자,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위로는 못해줄망정 나 힘들었다고요 등등. 매를 버는 수도 있겠어요.
아 힘들어 죽겠어, 행복해 죽겠어, 짜증 나 죽겠어, 배고파 죽겠어, 기뻐 죽겠어. 


"너, 너 같은 사람이 내 고생을 알아? 싫어도 그만둘 수 없어. 괴로워도 헤어질 수 없다고. 괴롭고 또 괴로워서 살 수가 없지만, 이제 한계지만 그래도 멈추지 못한다고 빌어먹을!"
"어째서?"
"그러니까 너 같은 놈은 모른다고 했잖아!"
"그럼 죽지그래."
겐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 죽으라고?"
"그래. 이봐, 그렇게 모든 것이 슬프고 힘들어서 미치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 말이야, 정말로 어떻게도 할 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 따위도 없는 거 아냐?"
-p.55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이라고 하면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가는 미스터리 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요괴 연구가 이기도 한 그는 요괴가 등장하지 않는 미스터리 속에서도 인간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이한 존재를 느끼게 합니다. <죽지그래>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다만 이것은 요괴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자기애, 자기 보호, 이기심같이 나에게도 있고 누구에게나 있는 심리였습니다. 남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외치는 변명 같은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서는 괴로워서 살 수 없는 삶이니까요. 그렇다고 정말 죽어버리나요. 우리는 어떻게든 버텨나갑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겐지는 '죽지그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다면 그냥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변호를 하는 이들에게 호통칩니다.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게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해합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이 있으니까요. 그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나쁜 건, 살해당한 여자 아사미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아사미가 살해당한 후 겐야는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가 그녀에 대해 묻습니다. 네 번 밖에 만난 적 없지만 그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헌신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제대로 안돼 괴로워하는 데다 회사에서도 묘한 눈총을 받고 있는 중년 가장은 아사미와 불륜 관계였고, 능력도 있고 외모도 괜찮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해 불만이 가득한 이웃집 여자는 자신의 남자를 빼앗았다며 익명 문자 테러를 했고, 아사미의 기둥서방이랄까 주인님이랄까... 야쿠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야쿠자 졸때기는 흔히 하는 말로 그녀에게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고 있었고, 미혼모로 낳은 아사미를 사랑해 준 적 없는 데다 결국 20만 엔 빚에 딸을 팔아먹은 엄마는 여전히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겐야는 그들 모두에게 "죽지그래."라고 말합니다. 
아사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자신의 이야기만을 한다며 화를 냈습니다. 결국 형사를 찾아갑니다. 형사 역시 냉정한 태도로 법을 수호하고 있을 뿐인데 비난을 받고 있다는 괴로움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사미의 이야기는 역시 여기서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데다가 형사의 태도에 화가 난 겐야는 이곳에서도 호통을 칩니다. 

 나쓰히코 소설의 가장 피곤한 점이라고 여겨왔던 것 중 하나는 묘사 없이 따옴표로 이어지는 등장인물의 대화였습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읽다 보면 이 대사가 누구의 말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기에 무척 피로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죽지그래>에서는 엄청납니다. 계속 따옴표에요. 그런데 희한하게 절대 헷갈리지 않습니다. 각자의 성격이 명확한데다가 입장이 확실하기 때문에 구분이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분해야겠다는 것까지 잊고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배경도 단순해서 연극 무대라면 의자 두 개와 조명만으로도 공연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미스터리 부분에서는.... 제가 읽은 미스터리가 많아서 그런지 대략의 사정은 일찌감치 짐작해버렸지만, 그것보다 심연의 괴로움에 대해 읽어가며 생각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즐거움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의 변명에 화를 내고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저렇지 않다며 위안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기도 하는 걸 깨닫고 잠깐 부끄러웠습니다. 변명하는 저에게 겐야가 "죽지그래."라고 말하면 반드시 말문이 막히는 일 없이 끝까지 싸울 거예요. "이보게 젊은이,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네."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꼰대처럼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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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7
이형주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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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있는 제주,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람사 조약 습지로 등록된 물영아리 오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다양한 습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신비한 곳이지요. 그런데, 그곳을 국가 정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듣고선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습지인 물영아리 오름 일대에 300여 종의 대나무를 심고 중국의 팬더를 임대해서 사육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첫 번째 대안인데다가 아직 논의 중이므로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그나마 다행인데요. 제주에 자생하지도 않는 대나무를 일부러 옮겨 심고, 심지어 팬더라니요. 도대체 팬더가 제주에 와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요. 누구를 위한 팬더인가요?

1989년엔 까치가 없는 제주에 일부러 까치를 공수해와서 풀어놓았습니다. 관광지 제주에 텃새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라고요. 그렇지만 2017년인 현재 까치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호하던 노루와 더불어서요. 사냥의 재미를 위해 들여왔던 토끼와 배에서 쥐잡이로 태웠던 고양이가 호주에 상륙해서 벌어진 생태계의 어마어마한 파괴 같은 건 교훈이 되지 않았던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제주는 동물 학대가 심한 섬입니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에서는 '동물 학대 섬'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어요. 
제주 코끼리 쇼, 원숭이 쇼, 돌고래 쇼, 바다사자 쇼, 진돗개 쇼, 흑돼지 쇼, 기마 공연, 낙타 트래킹.... 아니 이렇게 좁은 섬에 무슨 동물 체험, 서커스, 공연이 이렇게 많답니까. 그 동물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훈련받으며, 어떻게 공연을 하는 걸까요?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해져 다음엔 더 잘해보겠노라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의 꿈을 펼치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하는 건가요? 


이런 관광은 '지역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관광객이 보는 앞에서 직접적인 학대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여행자들마저도 이것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인지 모르고 소비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호랑이 옆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좋아요'클릭 수는 늘겠지만 그 한 번의 사진을 찍기 위해 호랑이는 이빨과 손톱이 뽑히고, 매질을 당하고, 심지어 약물에 중독되는 끔찍한 삶을 살아야 한다. -p.108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라는 책은 관광지에서의 동물 학대 문제만을 다룬 책은 아닙니다. 제가 제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더 민감했던 것이지요. 페이스북 같은 곳에 강아지나 고양이를 학대하는 영상, 사진이 올라오면 사람들은 욕을 하며 저런 놈은 똑같은 꼴을 당해야 한다며 분노하지요. 어쩜 인간이 저럴 수 있느냐며. 그렇지만 그들은 동물원에서, 아쿠아리움에서 데이트를 하고 가족 나들이를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은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이 살기에 지나치게 온난한 우리나라의 동물원에 갇혀 녹색의 털을 갖게 되어 버린 북극곰에겐 무관심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저도 이렇게까지 동물 학대 문제가 심각한 줄은 몰랐거든요. 단언컨대,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는 제가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슬픈 책입니다. 각 챕터마다 마음 아프지 않은 사연이 없어요.  <레드마켓: 인체를 팝니다>라는 책을 읽고선 두려워하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은 더 그렇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죽어가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보는 동물의 끔찍한 고통이, 자신이 알비노라는 이유로 70여 마리의 동료가 죽어가는 걸 보며 인간에게 납치당한 새끼 돌고래의 고통이, 지느러미가 잘린 채 바다에 버려져 숨을 쉴 수 없어 익사하고 마는 슬픈 물고기 상어의 고통이, 서커스에서 오랫동안 쇼를 하다 눈부신 조명에 시력을 잃고 난 후엔 번식장으로 끌려가 사지를 묶인 상태에서 여러 마리의 수컷에게 강제로 교미를 당한 암컷 코끼리의 고통이, 배에 구멍이 뚫린 채 그 구멍으로 쓸개즙을 내어주는 삶을 살고 있는 곰의 고통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수요가 있는 한  오래도록 계속될 거라는 것을 알기에, 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슬프고 아팠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생 때 저에게  흑돼지 축제 같은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흑돼지가 뛰어놀고 있는 곳 바로 옆에서 어떻게 돼지를 구울 수 있느냐고요. 고기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저런 건 이해가 안 간다고 했습니다. 미안하지도 않느냐고. 아기 돼지들 뛰어노는 옆에서 엄마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겠다고. 그때 깨달았어요. 그렇구나, 미안한 일이구나.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예요. 이런 행위들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일인지 알지 못하기에 그럴 거예요. 그러니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지구에 살고 있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올바른 일인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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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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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마음이 딱 맞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친구가- 그러니까 말하자면 오히려 쿵짝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만담 콤비 같은 사이가 딱 좋습니다. 적당히 상대방에 대해 못마땅한 부분도 있어야죠. 구시렁거리면서도 큰일이 생기면 연락할 수 있는 친구. 투덜거리면서도 나를 도와주는 친구. 멀리서 보면 싸우는 것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위할 줄 아는 마음을 표현 못하는 그런 친구 사이가 좋습니다. 특히 탐정 콤비라면 더욱요. 아 참, 이들은 탐정이 아니죠. 우리나라에는 아직 탐정이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들은 탐정이에요. 딱 의뢰를 해오는 사람이 없더라도 말이죠. 뭐 소년 탐정 김전일은 반드시 의뢰를 받아야만 움직이던가요? 그가 있는 곳에 사건이 따라오니 마땅히 해결할 뿐. 자신에겐 걸 명예가 없는지 늘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지만 말입니다. 
이 둘에겐 명예를 맡겨둔 할아버지도 없는데 이상한 걸 보면 호기심을 주체 못하는지 자꾸만 사건을 따라갑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속담도 모르는지. 수상한 걸 보면 캐내는 습성의 전직 기자와 전직 형사의 콤비라서 그럴까요.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그러다가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고요.

헤어진 여자친구가 납치, 살해된 사건으로 기자를 그만둔 희윤은 피의자와의 성 추문으로 형사에서 잘린 친구 갈호태의 카페 '이기적인 갈사장'에 얹혀살며 이런저런 잡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자꾸만 꼬이는 사건에 카페를 지키기는커녕 늘 밖으로 나돕니다. 물론 사장이자 친구인 호태와 함께요. 희윤은 무척 진지한 남자입니다. 머리도 좋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좀 까칠하고 불의를 무척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백수. 죽은 전 여자친구의 일은 내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괴롭습니다.  그런가 하면 갈호태는 돈 좀 있는 집안의 아들로 그다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카페도 구양과 둘이서 꾸려나갈 수 있는 정도입니다. 카페 종업원 구양은 이름이 구양입니다. 진짜로요. 호태는 호색한인 것 같은데, 말로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호색한의 느낌은 있으나 소설 속에서 때려주고 싶은 정도의 일은 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많은 희윤에 비해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추진력 갑인 남자인데요. 진짜 이 정반대 성향인 두 사람 중 하나라도 없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합이 잘 맞습니다. 

서막인 <두 개의 목소리>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입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살릴 수 있을까, 범인은 누구일까. 그를 조롱하듯이 벌이는 피의 장난은 끔찍한 선물로 마무리되어 극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안겨줍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후 전개되는 각각의 단편은 유머 코드가 쏙쏙 숨겨져있어서 이불을 덮고 긴장하며 읽어내려가던 저를 실소하게 했습니다. 좀 어이없어 웃은 부분도 있지만, 정말 웃겼던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공부하다 물 마시러 나온 아이에게 냉큼 달려가 그 부분만 이야기해줄 정도로요. 
하드보일드가 되려다가 말지만 그것대로 즐거운 - 제가 하드보일드는 몇몇 작품 빼고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을 두 밤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참, 그리고 그 범인을 밝혀낸 거, 고마웠어요. 안 그럼 답답해서 못 잘 뻔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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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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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개미 알레르기로 고생을 했습니다. 혹시 내 몸에서 묘한 페로몬이 나오는 건가 의심해야 할 정도로 집 안에 침입한 개미는 굳이 나를 찾아와서 깨물었고, 물린 자리는 끔찍한 통증과 함께 부풀어 오르다가 수포 같은 것을 형성하는데 가려움이 말도 못합니다. 낮에는 불굴의 의지로 참아냈지만 자는 새 나도 몰래 긁어버렸는지, 자고 일어난 자리에 피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몇 번을 물린 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기에 자는 새에 혹시 개미가 와서 무는 건 아닌가 두려워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볕 좋은 해안가 그늘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저를 향해 접근하는 개미를 발견하고 놀랍니다. 그런데 얼마 전 붉은 불개미가 유입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저 녀석한테 물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간질간질 올라왔습니다. 일반 개미에서도 알레르기가 있는데 붉은 불개미라면 확실히 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말벌>에는 말벌에 공포를 느끼는 안자이 도모야라는 미스터리 작가가 등장합니다.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의 산장에서 아내와 와인을 마시고 잠이 든 후, 눈을 뜬 바로 그 순간부터 공포의 시작입니다. 3년 전 말벌에 쏘인 적이 있었던 그는, 말벌에게 한 번 더 쏘이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 뇌리에 콱 박혀있기에 말벌의 소리 만으로도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아내는 아무 데도 없고 집 안에서는 말벌의 날갯짓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말벌은 정말로 그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프니 듀 모리에 원작) '새'처럼 알 수 없는 원인이 벌들을 움직인 걸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따뜻한 제주도 아닌,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눈이 쌓이는 11월 하순에 해발 고도 1천 미터가 넘는 산에서 말벌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가요. 분명 누군가 인위적으로 산장 안에 말벌을 풀어 놓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급하게 욕실 가운을 벗어던지고 사라진 아내, 그러고 보니 일전에 곤충학자 동창과 친밀한 것 같았는데, 두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확신을 한 안자이는 배신감에 몸을 떨면서도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한 갖가지 센스 있는 작전을 펼칩니다. 물론, 모두 적중했던 건 아니지만요. 맥가이버도 아닌데, 요런조런 재주를 부려가며 위기를 잘 모면합니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좀 나으려나 모르겠는데, 말벌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아예 벌통째로 있나 봅니다. 해치워도 해치워도 끝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하엔 장수말벌까지. 4 센티미터 짜리 벌이라는 걸 구경조차 해 본적 없는 저는 제주의 5 센티미터 바퀴벌레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습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긴박하게 진행됩니다. 공포감, 긴장감 같은 게 늘 따라다닙니다. 특이한 것은 1인칭 시점임이도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는 합치감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을 밀착하며 따라다니는 안자이 담당 VJ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VJ의 마음으로 그를 따라다니다가 뜻밖의 결말에 깜짝 놀랐고, 페이드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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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집에 영국남자가 산다 - 유쾌한 영국인 글쟁이 팀 알퍼 씨의 한국 산책기
팀 알퍼 지음, 이철원 그림, 조은정.정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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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죠? 왜 이 사람을 영국 남자라고 하는 건가요? 대한민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요? 우리나라에 귀화한 사람을 언제까지고 외국인(미국 사람이라거나 영국 사람이라거나 하는)이라고 부르고, 이민을 간, 심지어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말을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교포라고 칭하며 우리나라 사람처럼 생각하는 게 늘 의아했거든요. 이 분의 경우엔 귀화인지 이중 국적인지 모르니 의아함은 뒤로 휙 던져두고 이야기를 시작해야겠어요.

저는 조쉬와 올리의 유튜브 채널 <영국 남자>를 무척 좋아합니다. 구독 중이에요. 영국인으로 한국을 사랑하며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보게 되었는데요. 이러저러한 재미도 있어서 참 좋아합니다. 우리 눈에는 헬조선으로 비치는지는 몰라도 그들 눈을 통해 본 우리나라는 감사해야 할 만큼 좋은 점도 무척 많았거든요. 언제나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사실을 종종 잊게 되는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되지요. - 그렇다고 언제나 평화롭고 사랑스럽다는 건 아니에요. 알잖아요. 심각한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 옆집에 영국 남자가 산다>는 조쉬의 책이 아니라 팀 알퍼라는 사람의 책이에요. 영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 산지 어언 10여 년인 남자의 눈으로 본 한국 이야기입니다. 영국과 한국은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우등하다 열등하다 할 수 없는 문화 차이가 있지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은 이념이나 사고의 차이를 만듭니다. 나라마다 매너도 다르고요. 그 문화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어느 정도의 열린 마음을 지녔느냐에 따라 같은 일들도 다르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일하며 돈을 벌면서도 우리나라를 얕잡아보고 뒤떨어졌다고 말한다면 결코 우리나라만의 장점 같은 건 볼 수 없겠죠. 팀 알퍼는 그런 시선이 아닌, 그렇다고 한국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그런 마음도 아닌, 개인적인 눈으로 보며 느낀 대로의 글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썼습니다라고 단언하려고 했습니다만, 혹시 아닐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고서 소심하게 생각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저자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부터 취미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문화를 즐기는 방법이나 여가 생활까지의 이야기를 영국과 비교하며 풀어놓는데요.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저자가 한국에 산다고 해서 이 글을 한글로 썼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어로 썼을 거예요. 왜냐하면 옮긴이가 두 명이나 되거든요. 본문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우리말과 한글을 익히긴 한 것 같은데요. 자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표현하기엔 부족했을 겁니다. 그래도 완성된 원고를 보면서 기분 좋아했을 것 같아요. 독자인 저는 잘 다듬어진 내용의 유머러스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기분이 좋았거든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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