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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평점 :
올여름, 개미 알레르기로 고생을 했습니다. 혹시 내 몸에서 묘한 페로몬이 나오는 건가 의심해야 할 정도로 집 안에 침입한 개미는 굳이 나를 찾아와서 깨물었고, 물린 자리는 끔찍한 통증과 함께 부풀어 오르다가 수포 같은 것을 형성하는데 가려움이 말도 못합니다. 낮에는 불굴의 의지로 참아냈지만 자는 새 나도 몰래 긁어버렸는지, 자고 일어난 자리에 피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몇 번을 물린 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기에 자는 새에 혹시 개미가 와서 무는 건 아닌가 두려워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볕 좋은 해안가 그늘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저를 향해 접근하는 개미를 발견하고 놀랍니다. 그런데 얼마 전 붉은 불개미가 유입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저 녀석한테 물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간질간질 올라왔습니다. 일반 개미에서도 알레르기가 있는데 붉은 불개미라면 확실히 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말벌>에는 말벌에 공포를 느끼는 안자이 도모야라는 미스터리 작가가 등장합니다.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의 산장에서 아내와 와인을 마시고 잠이 든 후, 눈을 뜬 바로 그 순간부터 공포의 시작입니다. 3년 전 말벌에 쏘인 적이 있었던 그는, 말벌에게 한 번 더 쏘이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 뇌리에 콱 박혀있기에 말벌의 소리 만으로도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아내는 아무 데도 없고 집 안에서는 말벌의 날갯짓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말벌은 정말로 그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프니 듀 모리에 원작) '새'처럼 알 수 없는 원인이 벌들을 움직인 걸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따뜻한 제주도 아닌,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눈이 쌓이는 11월 하순에 해발 고도 1천 미터가 넘는 산에서 말벌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가요. 분명 누군가 인위적으로 산장 안에 말벌을 풀어 놓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급하게 욕실 가운을 벗어던지고 사라진 아내, 그러고 보니 일전에 곤충학자 동창과 친밀한 것 같았는데, 두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확신을 한 안자이는 배신감에 몸을 떨면서도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한 갖가지 센스 있는 작전을 펼칩니다. 물론, 모두 적중했던 건 아니지만요. 맥가이버도 아닌데, 요런조런 재주를 부려가며 위기를 잘 모면합니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좀 나으려나 모르겠는데, 말벌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아예 벌통째로 있나 봅니다. 해치워도 해치워도 끝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하엔 장수말벌까지. 4 센티미터 짜리 벌이라는 걸 구경조차 해 본적 없는 저는 제주의 5 센티미터 바퀴벌레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습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긴박하게 진행됩니다. 공포감, 긴장감 같은 게 늘 따라다닙니다. 특이한 것은 1인칭 시점임이도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는 합치감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을 밀착하며 따라다니는 안자이 담당 VJ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VJ의 마음으로 그를 따라다니다가 뜻밖의 결말에 깜짝 놀랐고, 페이드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