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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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세상엔 참 많은 프레임이 존재합니다. 자신 스스로 들어앉은 프레임도 있고, 남이 씌워 놓은 프레임도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데다가 그런 프레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요즘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라는 문화 심리학 책을 읽고 있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를 가두던 프레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재미로 생각했던 일들이 당사자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나의 상처는 남들을 의식한 프레임이었다는 사실 같은걸, 유럽인의 시선으로 본 동양인에 대한 글을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마루야마 마사키의 <용의 귀를 너에게>에도 많은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듣지 못하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 관한 오해와 고정관념이 제일 크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작인 <데프 보이스>를 읽으면서도 잔잔한 아픔과 마음의 울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들리는 자들 가운데 살아가는 듣지 못하는 자의 괴로움만큼이나, 듣지 못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이 들을 수 있었던 아라이는 외로웠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이 혹시 유전이 될까 봐 아이를 갖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안고 있는 그는, <데프 보이스>에서 경찰서 사무직을 그만두고 구직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수화 통역사로 일합니다. 그리고 법정 통역도 하게 됩니다. <용의 귀를 너에게>를 읽기 위해 <데프 보이스>를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래야 전작에 등장했던 주요 등장인물들과 주인공 아라이와의 관계, 그리고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읽지 않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용의 귀를 너에게>에서도 아라이는 수화 통역사로서, 그리고 법적 문제가 생긴 농인의 수화 통역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강도 용의를 쓰고 법정에 선 농인의 통역을 하기도 하고, 같은 처지의 청각 장애인에게 사기를 친 범인의 취조 통역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분노했습니다. 검사나 형사의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과연 비장애인에게도 저렇게 대했을까 싶은데요. 특히 형사의 태도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순한 아라이까지 발끈했을 정도였습니다.

또 하나 화가 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정육학(正育學)이라는 건데요. "누구나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바르게 길러 냈을 때 비로소 부모가 됩니다."(p.138)라는 말로, 언뜻 보면 무개념 부모가 많은 요즘 세상에 참 괜찮은 말이구나 싶은데,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저 말을 주장하는 가지 히데히코의 뜻은, '발달장애도 부모의 애정에 따라 예방, 개선할 수 있다.'(p.139)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다시 말하자면 발달장애나 행동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가 애정을 주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올바른 자식 교육을 표방하는 것 같지만, 실은 양쪽 부모 모두가 충분한 애정을 줄 수 있는 가정의, 이른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만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 개념은 소설에서 굵직한 토대가 되어 자주 등장합니다. 유력 정치인이 추진하는 법안에도 나타나는데요. 진짜 정말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게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상상하는 '정상적인' 가족에서 태어나기란 금수저로 태어나기보다 더 어려운 일 아닐까요? 이런 정육학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저 역시 그중 하나고요.

주인공인 아라이는 청각장애인인 부모님과 형과 함께 살던 들리는 아이, CODA로 자라왔지만, 제대로 마음이 따뜻한 어른이 되었고 연인 미유키와 동거하며 그녀의 딸 미와에게도 좋은 아빠(아직은 아란찌로 불리지만)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육학이라는 말은 그에게 상처가 됩니다. 또 한 명, 미와의 동급생 에이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미혼모의 아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마음의 병으로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함묵증에 걸려있습니다. 아라이에게 수화를 배우고 소리를 내지 않아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음을 조금씩 배우던 에이치는 얼마 전 자신이 목격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연 에이치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있을까요.

용이 사용하지 않는 귀가 퇴화하여 바다에 떨어져 해마가 되었고, 용의 귀는 농(聾)이 되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는 아이 에이치는 용의 귀를 받아 세상과 만났습니다. 손으로 하는 대화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길 뻔한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지켜냅니다.

책에서는 청각 장애인에 대한 편견뿐만 아니라 미혼모, 발달장애, 행동장애 같은 -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프레임을 다룹니다. 슬프다가 화가 났다가, 그리고 다시 잔잔해집니다. 전작 <데프 보이스>는 장애인에게 그리고 비장애인에게 추천하고 싶었는데요. 이번의 소설 <용의 귀를 너에게>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모두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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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의 주문제작 만화
키크니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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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인스타그램에서 헤엄치다 우연히 재미있는 코너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키크니님의 페이지였는데요. 몇 번 읽고 나니 너무 좋아서 팔로우를 했어요.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댓글에서 요청한 것을 그려주는데요.

그 반전감이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키크니의 만화는 한 컷으로 모두를 말합니다.

'아 이거 뭐야 ㅋㅋㅋㅋㅋ' 싶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웃으면서 보다 보면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거나 눈물이 핑 도는 기습을 당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진짜 뭐야. 너무해. 방심했어.'

싶거든요.

답답했던 상황을 사이다로 대변해주기도 하고, 무지개다리 너머의 누군가와의 재회를 꿈꾸게 해주기도 합니다. 평범한 일상도 비범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27만 팔로워가 남기는 댓글을 일일이 읽어본다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꾸준히 소통하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습니다.

댓글을 달았다가 그림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댓글을 달아 본 적은 없는데요.

다른 분들이 올린 글이 그림이 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팔로워들끼리 남기는 훈훈한 응원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 책이 나왔을 때 참 기뻤습니다.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이라는 책이죠.

이 책에는 키크니의 그림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27만 팔로워의 마음도 같이 들어있거든요.

키크니님과 팔로워 모두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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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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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속았습니다.

책을 처음 만났을 때엔 로맨틱 코미디물인 줄 알았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서른셋까지 혼자였던 한 여자가 나중엔 둘이 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 발랄한 이야기. 하지만 아니에요. 비슷하긴 한데 아니에요.

오영오. 난 너라는 문제집을 서른세 해째 풀고 있어. 넌 정말 개떡 같은 책이야.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어. 삶의 길목마다, 일상의 고비마다, 지뢰처럼 포진한 질문이 당장 답하라며 날 다그쳐.

-p.40

주인공인 오영오는 외롭습니다. 학생용 교재를 출판하는 출판사에 다니며 휴가도 휴일도 제대로 챙겨 본 적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이 전쟁인데, 집으로 돌아가면 보일러마저 고장 난 차가운 바닥이 그녀를 반길 뿐입니다. 추석을 이틀 앞둔 날, 떨어져 살면서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던 중, 더 오래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엄마가 사용하던 압력 밥솥과 그 안에 들어있는 수첩을 발견합니다. 수첩에는 자신의 이름과 세 명의 모르는 이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과연 이 이름의 의미는 뭘까요?

한편,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하는 통에 엄마로부터 쫓겨난 미지는 아빠와 함께 엄마가 재개발을 기대하며 남겨두었던 아파트에 들어가 살게 되고, 옆집에서 넘어온 고양이 덕분에 옆집 할아버지와 인연을 트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며 인연이 점점 커져만 갑니다. 이사 오기 전엔 오직 오쌤, 오영오만이 대화 상대였는데요.

엄마가 폐암으로 돌아가시자 실금이 가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장나버렸던 영오는 내내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아버지의 흡연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며 비난했습니다. 넉넉지도 않았던 살림,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외로움으로 내던졌습니다. 죽을 때까지 외로웠던 아버지가 내내 염려하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아버지의 수첩에 적힌 사람들이 누굴까 궁금했지만, 굳이 찾아봐야 하나 생각하던 차, 명단의 맨 위에 있는 남자, 홍강주가 연락을 해옵니다. 아버지가 경비로 일했던 중학교의 기간제 교사인 강주를 만나고 그의 부추김으로 다음 사람인 문옥봉을 찾습니다.

상처 없는 사람 없어. 여기 다치고, 저기 파이고, 죽을 때까지 죄다 흉터야. 같은 데 다쳤다고 한 곡절에 한마음이냐, 그건 또 아닌지만서도 같은 자리 아파본 사람끼리는 아 하면 아 하지 어 하진 않아. -p.171

영오는 명단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껏 몰랐던 그 무언가를 발견하고 채워갑니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그 대신 사람들이 있다. 나의 0.5, 내 절반의 사람들이. -p.273

물론 미지도 자신의 영역을 찾습니다. 옆집 할아버지와의 인연도 그렇고요. 부모 자식 간의 일에 오지랖을 피우며 연결해주려 애쓰는 모습이 저는 좀 짜증 나기도 했습니다만 - 그런 영역을 남이 함부로 터치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르고 하는 소리. 라는 게 이럴 때 쓰는 겁니다. - 서로가 화해하고픈 마음은 있었지만 용기가 없던 차였기에 이럴 땐 오지랖도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표지처럼 산뜻하고 발랄하기만 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에 대해서도, 내 주변인이 죽은 후의 일도, 나의 외로움도, 남겨질 이의 외로움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1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라지면 빈자리를 채워주던 사람은 어쩌면 좋나요. 그래도 어떻게든 빈자리를 채울 겁니다. 분명히.

마지막 챕터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에잇. 괜히 마음이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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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도 웃던 날들 - 차가운 세상에서 뜨겁게 웃을 수 있었던
정창주 지음 / 부크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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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흑역사는 가지고 있는 법이죠. 저 역시 흑역사를 갱신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너무 부끄러워서 기억에서 삭제시켰다가 우연한 계기로 생각나는 바람에 발버둥 치기도 합니다. 이불 킥. 중고등학생 때의 기억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 때의 흑역사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째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건지. 20대 때의 모든 시간이 흑역사였을지도 몰라요. 부끄러우니까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정말 나는 파렴치했구나 싶을 때도 있고, 그 정도는 귀여운 거 아닌가 할 때도 있는데, 내가 만일 정신 차리고 열심히 잘 살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 기승전 우리 아이이므로,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현재 흑화 상태인 우리 딸을 못 만나면 안 되므로 과거가 어쨌건 간에 나는 과거의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요. 찌질하거나 허황된 꿈이 있었던 과거는 부끄럽습니다. 이걸 다 내놓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기에 정창주 에세이 <분노도 웃던 날들>을 읽으며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 사람 용감한 거야, 무모한 거야? 아니 이게 뭐지? 이제까지 이런 글은 없었다. 이것은 에세이인가, 흑역사인가.

난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기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굉장히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다.

-p.26

흐흐흐... 나돈데. 졸업하고 나면 평범한 삶이 아닌 뭔가 대단한 삶을 살 것 같았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굉장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뭔가 특이하긴 하지만 정상궤도에서 이탈해버린 나는 지금 이 지경이..... 아, 내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책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데.

저자 정창주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런 생각들을 했을 겁니다. 어떤 곳에 취직해서 어떻게 살고.... 그런데 현실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서 예상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곤하죠. 저자는 이다음에 어떻게 잘 나가려고 했었는지, 대학 때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지금 내 입장에서는 별로라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다 승리 꼴 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은 게 다행히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에세이는 현재의 직장인인 '내'가 과거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의 '나'를 회상하며 진행됩니다. 전북 익산에서 상경하여 대학에 진학, 망상에 가까운 대학 생활을 하면서 점점 현실을 깨달아가는데요. 우와. 누가 이 책 좀 읽어주세요. 남자들은 좀 그런가요? 특히 현재 30대 초반의 남자분이 읽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는데요. 대학교 1학년의 남학생의 머릿속은 저런 건지, 저자가 특이한 건지. 만약 대부분이 그렇다면, 전 너무 순진했던 거죠. 아니, 제 친구들도 저랑 비슷했던 거 같은데요. 세대가 달라 그런 건지, 성별이 달라 그런 건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 따라 다른 건지. 저분만, 아니면 나만 그랬던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대학생인 저자는 무척 삐딱했습니다. 뭐랄까... 대학 다니는 양아치 느낌? 허세로움과 상스러움이 콘셉트인가 봅니다. 왜 그런 게 멋져 보이는 시절이 있잖아요. 그랬던 거라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허세가 아직도 다 안 빠졌어요. 쓸데없는 비유와 글에서 느껴지는 허세,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만 알아들어라 하는 식의 거친 문체가 현재의 모습에도 실려 있습니다. 대체로 이런 비포장도로를 달려가는 펜대이므로, 금고아를 금강저라고 하는 실수도 하는 거죠. - 손오공의 머리에 있는 건 금고아, 수라왕 슈라토가 들고 있는 건 금강저입니다.

어쨌든 과거의 저자보다 지금의 저자는 철이 좀 들었습니다. 1학년 1학기 때는.. 아, 이렇게 말해도 되나 몰라요. 에이 몰라. 발정 난 멍멍이 같았어요. 책 읽다가 몇 번이나 돌아가 책날개의 저자 사진을 보았습니다. 음....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이젠 그냥 떠올릴 수도 있을 정도에요.

하지만 난 적어도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응큼하게 아닌 척하지 않는다. (그냥 대놓고 응큼하게 행동한다) 싫다는 여자에게 추근덕대지 않는다. 아들딸 아내 애인 두고 가라오케에 가거나 윤락행위를 하지 않는다. 없어 보이게 사랑과 섹스를 돈으로 삯 치려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마음껏 놀지 못한 것에 대한 때늦은 분풀이. 난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봐 온 늦바람 든 어른들은 솔직히 멋이 없었다. 생김새를 떠나서 그냥 멋이 없었다.

-p184

이 부분에서, 어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이었잖아? 했습니다. 1학기 초반만 해도 아 미안합니다. 이 X 끼 뭐야. 했거든요. 이 거친 문체와 속 울렁거리는 - 이거 뭐지 나도 막 비속어가 나오려고 해 - 내용에, 망했다. 이 책 어떻게 끝까지 읽지... 그래도 출판사와의 의리로 읽어내고 말겠어!!! 하며 멘탈을 붙잡고 읽었는데, 읽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구요. 희한하네....

아무튼 저자가 대단합니다.

자신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며 이렇게 거칠게 써 내려갈 수 있다니.

덧) 이 에세이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즐겁게 - 과거를 회상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다고요.... 확실한 건 아닙니다. 제가 남자가 아니라서 막연히 그렇지 않을까 짐작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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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내 인생의 X값을 찾아줄 감동의 수학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3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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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생이 고2 올라간 내 아이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동생은 아이의 계열 선택을 묻고 공부 방법 조언을 하던 중, 아이가 수학을 잘한다는 말에 엄마, 그러니까 제가 수학을 잘했었다는 - 저도 모르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에게 중학생 때는,이라는 단서를 붙였기에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동생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와 동문인 저는, 아이의 고등학교 입학 수속을 하러 갔을 때 제 성적표,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 아이에게 공개했었다는 사실인데요. 보이시한 흑백 사진이 붙어있는 미양미양한 성적표는 아이를 웃겼고, 180점 만점에 175점으로 학교에 입학했던 녀석은 첫 번째 수학 시험을 본 후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래, 우리 모교의 수학 수준이 그렇단다.

수학이 암기과목이라는 걸 주장하셨던 선생님 덕에 암기보다는 이해를 중시하던 나는 수학을 제대로 만나보기도 전에 좌절하고, 미적분을 만난 후 우리의 인생 역시 수많은 점이 모여 이루어진 선이며 이렇게 한순간을 회상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미분하여 점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지 못했기에 미적분을 미워하며 수학을 놓아버렸습니다. 안녕. 대학에서 만날 일 없을 너. 안녕. - 하지만 인생이 그러하듯, 대학 1학년 때 미적분학이라는 과목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드디어 저는 그와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심을 회복했더니 그와의 관계도 좋아지더군요.

만약 수학이 우리의 삶을 닮아있고, 삶에서 수학이라는 건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저의 인생 곡선은 달라졌을까요?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의 저자 최영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교수입니다. 수학의 기능적인 측면에 익숙한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수학이 추구하는 정신과 이로부터 느끼는 감동이야말로 수학의 가장 큰 가치임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강연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그 내용을 이 책에 담고자 노력했습니다.(책날개에서)

책을 읽으며, 수학에다가 이렇게 삶을 대입하고 세상을 대입하다니 '무리수'가 아닌가 했는데, 책을 덮고 보니 두껍지도 않은 책에 플래그가 빼곡합니다. 머리를 쥐어짜가며,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노트에 끄적여가며, 가끔씩 던져준 문제는 직접 풀어보기도 하며 읽었습니다. 머리로만은 읽을 수 없어서 숫자나 기호가 나오면 반드시 종이에 써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제가 늘 지레 겁먹는 탓이었습니다. 마음을 놓고 어깨와 목의 힘을 빼고 읽으면 좀 더 편안했을걸. 플래그 붙인 부분들을 다시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서가명강 시리즈를 출판 중인 이 책의 출판사 21세기북스의 유튜브 계정, 21도씨에 최영기 교수의 인터뷰 '빵을 사랑하는 수학자' 가 있습니다. 0은 자연수의 시작에 위치합니다. 태초를 의미하는 0을 사랑한 저자는 단골 빵집에서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0 즉, 빵을 사랑함을 넘어서 제빵사 자격증까지 취득합니다. 65세부턴 빵 아저씨가 될 예정이랍니다.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수학자가 빵집을 열면, 호빵맨의 잼 아저씨가 되는 건 아닐까 상상했습니다. 그가 만든 빵은 세상의 의미가 가득한 빵이 되겠죠.

저자는 수학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제 풀이에 치중한 교육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수학을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슬픈 일이죠. 나도 수학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이나, 과학에도 수학은 들어있고, 그림에도, 음악에도 들어있는데 나는 수학과 이별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너무 일렀던 이별, 그리고 잠깐의 만남 후 다시 이별함에 약간 마음이 슬펐습니다. 나는 수학과 이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수학은 늘 내 곁에 있었습니다.

아이는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그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끝없이 노력했습니다. 고2가 된 지금은 그와 다시 친하게 되었고, 제가 이 책을 읽던 중 이해가 잘 안되던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수학은 애매하지 않고 명확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하는 아이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나 봅니다. 나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수학의 본질은 아름다움이고, 수학의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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