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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내 인생의 X값을 찾아줄 감동의 수학 강의 ㅣ 서가명강 시리즈 3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얼마 전 동생이 고2 올라간 내 아이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동생은 아이의 계열 선택을 묻고 공부 방법 조언을 하던 중, 아이가 수학을 잘한다는 말에 엄마, 그러니까 제가 수학을 잘했었다는 - 저도 모르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에게 중학생 때는,이라는 단서를 붙였기에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동생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와 동문인 저는, 아이의 고등학교 입학 수속을 하러 갔을 때 제 성적표,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 아이에게 공개했었다는 사실인데요. 보이시한 흑백 사진이 붙어있는 미양미양한 성적표는 아이를 웃겼고, 180점 만점에 175점으로 학교에 입학했던 녀석은 첫 번째 수학 시험을 본 후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래, 우리 모교의 수학 수준이 그렇단다.
수학이 암기과목이라는 걸 주장하셨던 선생님 덕에 암기보다는 이해를 중시하던 나는 수학을 제대로 만나보기도 전에 좌절하고, 미적분을 만난 후 우리의 인생 역시 수많은 점이 모여 이루어진 선이며 이렇게 한순간을 회상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미분하여 점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지 못했기에 미적분을 미워하며 수학을 놓아버렸습니다. 안녕. 대학에서 만날 일 없을 너. 안녕. - 하지만 인생이 그러하듯, 대학 1학년 때 미적분학이라는 과목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드디어 저는 그와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심을 회복했더니 그와의 관계도 좋아지더군요.
만약 수학이 우리의 삶을 닮아있고, 삶에서 수학이라는 건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저의 인생 곡선은 달라졌을까요?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의 저자 최영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교수입니다. 수학의 기능적인 측면에 익숙한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수학이 추구하는 정신과 이로부터 느끼는 감동이야말로 수학의 가장 큰 가치임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강연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그 내용을 이 책에 담고자 노력했습니다.(책날개에서)
책을 읽으며, 수학에다가 이렇게 삶을 대입하고 세상을 대입하다니 '무리수'가 아닌가 했는데, 책을 덮고 보니 두껍지도 않은 책에 플래그가 빼곡합니다. 머리를 쥐어짜가며,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노트에 끄적여가며, 가끔씩 던져준 문제는 직접 풀어보기도 하며 읽었습니다. 머리로만은 읽을 수 없어서 숫자나 기호가 나오면 반드시 종이에 써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제가 늘 지레 겁먹는 탓이었습니다. 마음을 놓고 어깨와 목의 힘을 빼고 읽으면 좀 더 편안했을걸. 플래그 붙인 부분들을 다시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서가명강 시리즈를 출판 중인 이 책의 출판사 21세기북스의 유튜브 계정, 21도씨에 최영기 교수의 인터뷰 '빵을 사랑하는 수학자' 가 있습니다. 0은 자연수의 시작에 위치합니다. 태초를 의미하는 0을 사랑한 저자는 단골 빵집에서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0 즉, 빵을 사랑함을 넘어서 제빵사 자격증까지 취득합니다. 65세부턴 빵 아저씨가 될 예정이랍니다.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수학자가 빵집을 열면, 호빵맨의 잼 아저씨가 되는 건 아닐까 상상했습니다. 그가 만든 빵은 세상의 의미가 가득한 빵이 되겠죠.
저자는 수학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제 풀이에 치중한 교육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수학을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슬픈 일이죠. 나도 수학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이나, 과학에도 수학은 들어있고, 그림에도, 음악에도 들어있는데 나는 수학과 이별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너무 일렀던 이별, 그리고 잠깐의 만남 후 다시 이별함에 약간 마음이 슬펐습니다. 나는 수학과 이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수학은 늘 내 곁에 있었습니다.
아이는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그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끝없이 노력했습니다. 고2가 된 지금은 그와 다시 친하게 되었고, 제가 이 책을 읽던 중 이해가 잘 안되던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수학은 애매하지 않고 명확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하는 아이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나 봅니다. 나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수학의 본질은 아름다움이고, 수학의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