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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길들여지지 않은 - 무시하기엔 너무 친근하고 함께하기엔 너무 야생적인 동물들의 사생활
사이 몽고메리.엘리자베스 M. 토마스 지음, 김문주 옮김 / 홍익 / 2019년 7월
평점 :
세계 고양이 날인 오늘,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진 책을 읽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오늘 읽은 건 아니고... 며칠에 걸쳐서 읽었지만 오늘 완독을 하였으므로 오늘 읽었다고 치기로 했습니다. 날이 무덥다 보니 일일 일독이 힘듭니다. 가끔은 밭에 가서 가지나 오이, 고추 등을 따오기도 해야 하는데, 아무리 이른 아침에 가더라도 햇볕의 따가움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모기의 공습을 받기도 하고요. 가끔은 하얀 강아지가 콩밭에서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목줄이 없는 걸 보면 주인 없는 개인 거 같기도 한데, 혹시 작년에 밭을 지키던 어린 개, 순이의 짝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녀석이 경계할까 봐 아는 체 안 하고 그냥 스윽 지나갑니다. 만약에 저와 친구가 되길 원한다면 먼저 다가올 테지요. 제가 먼저 접근하면 겁을 먹을 겁니다. 저는 그 녀석보다 커다란 사람이니까요. 가끔은 꿩이 푸드덕 날아가기도 합니다. 척 보고 꿩인 걸 알았으니 그 녀석은 아마 장끼일겁니다. 전 까투리랑 멧비둘기를 구별 못하니까 제 눈에 꿩으로 보였으면 녀석은 분명 장끼입니다. 옛날 전래동화에서 꿩이 콩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습니다. 혹시 장끼전이라는 동화였던 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기억나지 않습니다. 콩을 좋아하는 꿩은 콩밭에서 푸드덕 날아올랐습니다. 무화과나무들 사이에서 족제비의 시체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이미 내장은 누가 파먹고 없더군요. 며칠 후 족제비의 시체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본 사람이 없대요. 저만 보았습니다. 그럼 그건 누가 치웠을까요? 밭에 살고 있는 수많은 - 제가 모르는 동물이 말끔히 치웠겠죠. 어쩌면 쥐가 가져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나절 동네 산책을 다니면 고양이들과 마주칩니다. 인사를 하면 도망가므로 모르는 체, 안 본 체하고 지나갑니다. 그들은 뭐라고 생각할까요? 제가 마주치는 고양이들은 길고양이가 아니라 마당 고양이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와서 다리에 머리를 비비고 가기도 합니다. 그건 아주 드문 일로, 집사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올 때 함께 나와주는 다정한 고양이가 저에게도 관심을 보였을 때였습니다.
<길들여진, 길들여지지 않은>이라는 책은 주변에 존재하는, 혹은 좀 멀리에 존재하는 여러 동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개나 고양이가 우리와 함께 하도록 길들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입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인간에게 다가왔다는 것이 정설인 반면, 개의 경우 늑대의 새끼를 가축화했다는 것이 보통의 의견이지만 실은 공생하기 위해 함께 했을지도 모릅니다. 25년 전쯤 읽었던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그런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어라, 책 제목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만, <세상의 모든 딸들>의 저자가 이 책, <길들여진, 길들여지지 않은>의 저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M. 토마스였군요. 뜻밖의 발견입니다. 심지어 올해 동 출판사인 홍익출판사에서 개정판을 출간했고요. 글 쓰다 말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척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뜻밖의 만남이라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여러 번 저를 즐겁게 하는군요.
오늘자 매경신문에 '달에 추락한 이스라엘 달 탐사선에 실려있던 수천 마리의 곰벌레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거든요. 곰벌레라니. 제가 만일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게 뭔지 몰랐을 겁니다. 물론, 기사에서도 그 녀석의 생명력이라거나 특이한 점을 설명해두었지만, <길들여진, 길들여지지 않은>을 통해 흥미를 갖지 않았더라면 이 기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참 신기한 벌레거든요. 이 책에서는 물곰이라고 했지만 영어로 된 이름이 같아서 알 수 있었습니다. 무척 반가웠어요.
이렇게 반가운 일들이 많았던 이 책은 내가 보는 동물들, 내가 마주치는 동물들이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동물과의 교감은 사람끼리의 교감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가 느끼는 기쁨, 공포, 불안, 안도를 감지해서 그로 인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위협이 되는 예보다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우리 같은 사람과는 다른 어떤 정신적 언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동물의 생태를 잘 알기에 행하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위험천만한 일들을 평화롭게 넘깁니다. 이를테면 곰과 마주쳤을 때의 행동 같은 거요. - 저 역시 곰을 만나면 죽은 체 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겠지만 그들처럼 대담하게, 평화롭게 자연스럽게 넘기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동물들은 희한하게 공포를 잘 읽습니다. 저 역시 그들의 공포를 읽기도 하죠. 서로 다른 종으로서 상대를 경계하는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책에서 말하듯 학습의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낯선 동물을 만나는 건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눈앞에서 꿩이 푸드덕 날아간다거나, 족제비가 뛰어간다거나 두더지가 뽈랑뽈랑 어딘가로 가고 있다거나 하는 걸 보면 경이롭기도 하지만 뱀이랑은 만나기 싫어요.
작가들의 평화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신기해하지만 사자나 퓨마와 맞닥뜨렸을 때의 이야기 같은 건 정말 무섭습니다. 눈을 바라보며 그가 떠날 때까지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정신적인 교감을 나눈다는 거... 함부로 따라 하면 죽을 겁니다. 저의 경우 100퍼센트 확률로 죽습니다. 왜냐하면 전 공포를 품을 거니까요. 사자한테 읽히고 말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