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스토리콜렉터 79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표지의 미소년의 이름이 유마일지 세이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가>의 주인공은 유마입니다.

친아버지 세토 마사오는 도세 다이마라는 필명으로 순문학 소설을 쓰는 작가였지만 세이토바 츠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세계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어린 유마에게는 충격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가정 경제를 꾸려가는 건가 보다 하며 아버지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별로 대화가 없었던 아버지라 크게 정이 있던 건 아니지만 작가인 아버지는 유마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엄마는 아이와 살아가기 위해 건전한(?) 술집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세토 도모히데라는 남자를 만나 재혼합니다.

간사이의 작은 연립주택에서 살다가 느닷없이 도쿄의 큰 집으로 이사 가게 된 유마는 그곳의 모든 것들이 불편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꾸만 하늘의 별을 보며 부자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새아버지 도모히데가 가장 불편했는데요. 그나마 도모노리 삼촌이 있어 좋았습니다. 말도 통하는 것 같고 장난감도 사주고 마치 큰형 같았습니다.

유마는 좀 특이체질입니다. 영매 체질 같은 게 있는 것처럼 이계로 빠지는 체질인 것 같은데 벌써 두 번이나 다른 길로 빠졌드랬습니다. 그때마다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런 경험이 낯선 곳이라거나 괴이한 가락에 대한 트라우마를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홍콩할매 귀신이 유행했던 것처럼 유마네 동네에서는 호박 남자가 유행했던 모양인지 혹시나 그에게 끌려가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유마였지만 또래에 비해 영리하기도 하고 책도 많이 읽는 성실한 소년이었기에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엄마가 새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새아버지는 외국으로 발령받아 엄마와 외국으로 나가게 되어 자칫하면 유마 혼자 일본에서 몇 년이나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요. 도모노리 삼촌이 여름방학 동안 유마를 맡아주기로 합니다. 그는 유마를 데리고 유흥가 근처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가 아닌 별장으로 데리고 가는데요. 삼촌의 애인 사토미가 유마를 돌봐주기로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인터넷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버티나 싶은데요. 배경이 살짝 과거인가 봅니다. 스마트폰도 없고 PC도 없는걸 보면요. 삼촌이 가져다준 책 대여섯 권과 좀 유치한 DVD로 숲속의 별장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다니. 또래 친구도 없고 참 심심하겠습니다만. 유마에게는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첫날부터 기이한 일을 겪거든요.

그러고 보면 좀 희한합니다. 이 별장 근처에는 가미카쿠시 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가가구시 마을도 있고 실제로 이 별장에서 살던 아이가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일도 있어서 아이가 이 별장에 묵는 것 자체가 불길한 일인데 삼촌은 개의치 않는 것인지. 이계에 빠진 적이 있었던 유마는 별장 근처에 이상한 곳이 있다는 걸 무시할 수 없었는데요. 삼촌에게 그런 체질임을 미리 말했더라면 삼촌은 유마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을까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어느 날, 그 집에 몰래 숨어있던 아이 세이를 만납니다. 어머니 몰래 3층에 숨어있다가 가끔씩 내려오는 거라고 하더군요. 세이는 유마에게 숲으로 놀러 가자고 합니다. 자기는 숲길을 잘 안다면서요. 유마는 세이를 따라 숲에 가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유마가 알고 있는, 이른바 자연의 숲이 아니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는 완전한 자연 상태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강렬한 원시성이 느껴졌다. 인간의 존재 따윈 애초에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로 가득했다. 유마가 아는 숲과는 명백히 다른 공간이었다.

이계, 다시 말해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세계'에 성급하게 발을 들이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p.200

<마가>는 미쓰다 신조 '집 시리즈' 마지막 권인데요. 앞서의 <화가>,<흉가>처럼 미스터리와 토속 신앙에서 오는 공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요. 성인에 비해 약한 존재인 어린이가 등장함으로써 공포는 더 극대화되는데 눈앞에 있다면 손 내밀어 구해주고 싶은 정도로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다행입니다. 세 권 모두에서 어린아이들은 저보다 더 강했습니다.

특히 <마가>의 유마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마가>는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의 탄생 - 신의 선물인가 뇌의 습관인가
칼라 스타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마다 타고난 운이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게 진짜 있는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누구는 금수저로 태어나서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니까 좋겠네, 나는 이상한 수저 물고 태어나서 지금 이렇게 사는데.라고 한탄했었다면 마음을 활짝 열고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리 금수저로 태어나도 올바른 수저 사용법과 식사 매너를 모르면 몰락하기도 하고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잘 다듬어서 고온에 구워내고 유약을 발라 다시 구우면 값진 도자기 수저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책은 어떻게 태어났느냐 - 그러니까 신으로부터 운을 선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법에 대해 쓰여있습니다.

표지에 쓰인 원제를 보면 더 확실하게 이 책의 취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운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직접 만들어서 쓰는 것도 좋겠죠. 나는 운이 없다며 주저앉아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원래부터 타고난 것들이 끝내주게 좋았다면 이 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겁니다. 그러나 저자는 친구에게 빌린 차를 타고 데굴데굴 구르는 바람에 심한 부상을 당합니다. 두개골 골절에 팔목에는 철심까지 박았죠.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가 엄청나게 쌓입니다. 결국 파산. 잠깐 극복했나 싶었더니만 세계 금융위기로 결국 백수 생활을 하게 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찾아온 우울증... 이쯤 되면 재수가 참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짧은 새에 불운이 겹치고 겹쳐서 괴로웠을 텐데요.

그런 괴로움 속에서 어떻게든 일어나 힘내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저자는 전자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속된 불운의 원인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심리학과 뇌과학을 연구하며 근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 연구 결과가 지금의 잘나가는 저자, 칼라 스타를 만들었죠. 저자는 이제 행운 전도사입니다.

이 책에서는 스스로 운을 만들어나가는 행동, 습관에 관해 조언합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운은 따른다...라는 건데요. 과학 근거를 들어 설명하니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거나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 부분도 다소 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서양에서나 먹히는 방법일 거 같아, 균형을 잘 못 잡으면 상당히 오버스럽겠는걸? 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책이든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형해서 맞추는 게 좋습니다. 그런 생각이나 노력 같은 것도 운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일 테니까요.

자신감이 없고 매사에 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읽다 보면 자신에게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깨달을지도 모르니까요.


** 나에게 필요했던 말**

자신을 최대한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어라. 그리고 당당하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최선을 끌어내라. 당신은 누군가에게는 만점의 존재다. 그러니 세상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정복하라

-p.113

우리가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정하면, 유혹과 장애를 물리치면서 목표 달성에 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게 되면 우리 뇌는 계획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우리가 자신의 행동과 결과 사이의 인과 관계를 볼 수 있을 때, 결과에 관심이 있을 때,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해 무엇을 고치면 될지 알 때 그 신호는 증폭된다.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서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고 그 방법까지 안다면, 개선된 방법을 배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p.162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의 미래에 이로운 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마치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차와 같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기꺼이 투자하려 한다.

-p.251

우리가 관심을 두는 일과 그 일을 이해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작은 것을 대하는 방식은 큰 것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에서 긍정적 측면에 집중하고, 중립적인 대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부정적인 것은 무시하거나 빨리 고쳐서 털고 일어나야 한다. 자신의 환경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회복력의 핵심 요소다.

-p.2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부터 행복했으면 좋겠어 - 행복을 찾아가는 펭귄 요요의 포근한 응원
똥그리 지음 / 부크럼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스타그램에서는 만삼천명이 넘는 사람이 똥그리님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사랑하고 있는데요. 저는 사실 작가의 그림 중 펭귄 쪽보다는 인간 쪽의 그림을 더 좋아한답니다. 하지만 펭귄이라고 하면 자꾸만 펭수가 생각나서...

펭수의 화끈한 직설화법도 좋아하지만 <오늘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의 펭귄 요요처럼 동글동글한 말투도 참 좋아해요.

제가 동그랗게 말을 못 해서 그런가... (얼굴이랑 몸은 동그라면서.)

<오늘부터 행복했으면 좋겠어>의 요요는 행복은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음을 이야기해요.

사슴인 엄마랑 반달가슴곰인 아빠랑은 안 닮았지만 할머니랑 꼭 닮은 외모라 그런가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 더 편해 보여요.

동글동글 친구들도 모두 귀엽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다들 귀엽지만 사실 속으로는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해요. 현재의 위태로움 미래의 불안함. 그래도 모두 잘 이겨내고 행복을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똥그리의 단짝 친구는 쿠쿠인데요.

둘이 함께 있을 땐 언제나 행복해 보여요.

벌써 굿즈도 있던데요? 동글동글한 쿠쿠 요요 인형 안고 책을 보았더라면 행복이 두 배 되었을 텐데.

연말연시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딛는 친구에게 선물하면 좋은 책 같아요.

같은 눈 높이에서 이야기하니까요.

크리스마스에도 좋고요. 2019년 마지막 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오늘부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기우라 시호의 코믹스 <실버 다이아몬드>에는 커다란 뱀이 나옵니다. 마음을 주어도 좋을 작은 뱀도 있었지만 보통은 엄청나게 커다래서 사람들은 뱀을 두려워합니다. 뱀에게 제물을 바치기도 합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공포의 존재였던 <실버 다이아몬드>의 뱀은 무너져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뱀들은 공포의 존재였다가 신이 되기도 하고 결국 그들 속에 스며 계속 살아갑니다.

영물로서의 뱀은 제주섬에서 민간 신앙으로 모셔지기도 했습니다. 뱀은 고양이와 더불어 식량을 축내는 쥐를 잡아주는 동물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가끔 골목길의 아스팔트 위에 짓눌린 뱀 허물을 발견하곤 합니다. 돌 문화 공원에는 뱀 주의 표지판이 있습니다.

<소원을 말해줘>의 배경 D 시에도 뱀이 많았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뱀처럼 허물을 벗는 이들은 있었습니다. 그 허물이 긁어서 부스럼이라고 할 때의 부스럼 같은 건지, 아토피를 벅벅 긁고 나면 갈색의 딱지 아래 비치는 고름 같은 건지. 어쨌든 내가 보았던 뱀의 허물들과는 다른 것 같았지만 그들은 허물을 몸이 이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습니다.

인구 50만의 소도시에 어쩌면 그렇게 허물진 사람들이 많은지. 그 도시를 장악하며 상태가 심한 사람을 수용, 치료하며 연구하는 전담 제약 회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약 회사의 공 박사는 방역센터에서 그들의 허물을 치료하고 연구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나온 사람들 중 완치된 사람은 없어 언젠가는 다시 재발하고 맙니다.

마치 허물을 벗은 뱀이 성장하기 위해 언제고 다시 허물을 벗게 되는 것과 비슷하지만 사람들에게 성장이란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고통받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전설의 뱀. 롱롱.

소설의 주인공 '그녀'는 파충류 사육사입니다. 뱀과 친구가 되는 법을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말이죠. '그녀'는 오래전 폐쇄된 궁에서 거대한 뱀 한 마리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뱀에게 희망을 겁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은 뱀을 섬기며 자신들의 허물을 벗겨 내주길 기원합니다. 이미 롱롱이라고 불리게 된 그 뱀은 그들에게 신이 되었습니다. 롱롱이 허물을 벗는 날, 인간들의 허물도 벗겨질 거라 믿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들은 어째서 치유되지 않는 허물을 뒤집어쓴 인간들이 되었을까요. 그 원인을 롱롱이 제거해 줄 수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녀'는 선지자요. 무녀일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파충류 사육사일 뿐입니다.

공포가 이념이 되고, 이념이 공포를 강화시켰다. 그 불행한 순환 속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허물뿐이었다.

-p.277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p.2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공사에서 인스타그램에 뿌려둔 몇 장의 이미지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흥미가 돋았었는데, 김성희, 정명섭, 전건우, 조영주, 차무진 다섯 작가의 글이라니 더욱 끌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역사 덕후이면서 좀비 덕후인 정명섭 작가가 <달이 부서진 밤> 이후 또 하나의 좀비 괴이물을 썼다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반드시 읽어야 할 각인데, 자타 공인 공포 소설가 전건우의 좀비물에 얼마 전 읽다가 배꼽 잡았던 블랙 코미디 <옆집에 킬러가 산다(어위크 수록 단편)>의 김성희, 추리 소설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재치 있는 조영주,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아들을 데리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인 더 백>으로 주목받고 있는 차무진의 다섯 단편이 고전과 좀비의 만남을 적절히, 아주 적절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성희의 관동행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테마로 하고 있는데요. 작가의 말에 의하면 관동별곡과는 큰 상관이 없으며 다만 단점을 잘 발휘해 성공한 케이스라는 걸 포인트로 삼아 소설 속에서도 이러구러 잘 헤쳐나가는 양반으로 등장시킵니다. 광부의 카나리아 같은 정철과 김치 만병통치설에 젓가락을 꽂아도 좋을 소설이었습니다. 아주 재미있어요. 관동 별곡 원본은 어떠한지 살펴보고 싶구려.

정명섭의 만복사 좀비기는 '만복사 저포기'를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김시습의 소설집 <금오신화>에 실려있는 소설인데요. 여기에서는 시귀들이 창궐하는 만복사 주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좀비 썰록의 다섯 이야기 중 가장 원작과 가까운(?) 소설이었는데요. 양생이 주사위를 던져 여인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와 분위기가 거의 같습니다. 게다가 원작에서 여인들이 읊는 시가 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시의 내용들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달이 부서진 밤>과 시기는 비슷하지만 괴이는 다릅니다. 고려 말에 정말이지 많은 일이 있었군요.

전건우의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는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테마로 합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하면 옥희가 달걀을 좋아한다는 게 떠오르는데요. 옥희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의 아주 가느다란 애절한 마음이 느껴지지만, 전건우의 단편에서는 그 시대 핍박받던 여자, 즉 며느리이자 아내인 옥희의 어머니의 더 이상 못 참겠다. 아니 안 참겠다!!!를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사랑방 손님도 됐다고 그래. 저는 비극적인 결말을 상상했습니다만, 작가의 말에 의하면 희망을 꿈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쬐끔 열린 결말입니다. (그래서 좀 무서웠어요.)

조영주의 운수 좋은 날은 동명의 소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테마로 합니다. 처음엔 당황했어요. 고전 비틀기 아니었나? 배경이 현대입니다. 채식주의자였던 해환이 -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조영주 작가는 윤해환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윤해환은 자신을 등장시켜 더욱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 남편이 떠나간 후 집안에 틀어박혀 배달음식, 그것도 치킨만을 꾸역꾸역 먹은 끝에 과거와는 다른 외모를 갖게 되었고, 재혼하는 남편 결혼식장에 쳐들어 가는데.... 그럼 운수 좋은 날은 언제 등장하는 걸까요? 알고 나면 그럴싸 한데?라고 중얼거릴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유쾌한 좀비 이야기일세.라고 메모 한 걸 후회하게 만드는 이야기

차무진의 피, 소나기가 마지막에 놓여있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테마로 한 소설인데요. 소나기의 그 윤초시댁 손녀가 되살아나는 바람에 소년의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소년은 소녀를 놓아줄 수 없었습니다. 이 단편은 무섭고 슬픈 것이, 귀엽고 슬펐던 그 이야기를 닮았습니다.

소나기에서 처음 알게 된 단어 '잔망스럽다'가 이 소설에도 있습니다. 역시 이 소설은 '잔망스러운'게 포인트였나 봅니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나 처음 본 단어가 비교적 많이 등장하지만 어찌나 적절한 곳에 두었는지 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소제목에도 붙여두었지만 좀비물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합니다. 하지만 액션이 넘쳐나는 헐리우드식 좀비만을 사랑하신다면 제 추천을 탐탁지 않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시거나 전설의 고향 같은 고전 낭만을 사랑하시는 좀비 러버라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