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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월
평점 :
인스턴트 카레를 처음 보았던 어린 시절, 참 신기했어요. 레시피가 적혀있는 요리 가루는 처음이었거든요. 다른 음식은 어른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요리책을 찾아봐야 했는데. 카레 봉지에는 재료랑 분량이 다 나와 있었으니, 라면도 아닌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좀 커가면서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요.
카레는 양파, 감자, 고기, 당근의 조합으로 만드는데 하이라이스도, 고기 감자조림 덮밥도 거의 같은 재료였어요. 뭐지. 재료가 흔해서 그런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카레 스파이스가 일본에서 고기 감자조림의 재료에 응용이 되어 우리나라로 전해져서 재료가 비슷한 거였습니다.
한편, 후나츠 카즈키의 <화려한 식탁>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카레는 일본에서 변형된 카레로 진짜 카레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정통 카레는 만들지 못해도 이 만화에서 본 것처럼 기본 카레에 이것저것 조금씩 넣어서 변화를 줘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맛의 카레를 시도했는데요. 덕분에 인스턴트 카레는 우리 집에서 향신료로도 사용되고 양념으로도 사용되고 때로는 제 용도인 덮밥 소스가 되기도 합니다. 1Kg 짜리는 너무 커서 500g 짜리로 사다 두고 쓰고 있어요. 너무 많이 먹으면 위가 쓰린데요. 그래서 인도 카레집에서는 라씨 같은 발효 음료를 곁들이나 봅니다.
일전에 모리에다 다카시의 <카레라이스의 모험>을 읽었습니다. 일본에 들어온 카레가 어떻게 변천하여 현재에 이르렀나 하는 흥미로운 책이었는데요. 모리에다 다카시는 <화려한 식탁>의 감수자여서 반가운 마음에 즐겁게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는 가라시마 노보루의 책으로, 저자는 카리야 테츠의 유명한 미식 만화 <맛의 달인> 24권에 출연한 바 있는 카레 박사입니다. <맛의 달인>을 본지 오래되어서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24권의 부제가 '카레 승부'였던 만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작가의 글에 따르면 '카레 관련 서적을 쓴 인도 역사 전문가 가라시마 선생님'으로 등장하였다고 하는군요.
저자는 인도 유학시절부터 인도 여행에 이르기까지 직접 맛보았던 인도 음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카레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인도의 역사, 문화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인도 요리를 테마로 하여 풀어낸 인도 문화에 관한 '문화론'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카레의 어원은 여러 가지 짐작이 있습니다만, 결국엔 인도 요리에 사용하는 스파이스의 총칭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보았던 카레는 강황 때문에 노란색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요즘에 많아져 방문하기 쉬워진 - 그러나 가격은 편안하지 않은 - 카레 전문점에서 보는 카레 요리는 초록색, 주황색, 갈색 등등 여러 가지입니다. 주재료의 색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스파이스의 배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향신료의 배합에 따라 달라지므로 집집마다 특유의 향과 맛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문화권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서도 상당히 달라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와 문화권이 다르기 때문인데 특히 어떤 종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집니다. 힌두교 신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소고기를 넣지 않는 것처럼요. 닭을 많이 사용하는 지역도 있고 양고기를 사용하는 지역도 있는가 하면 절대적으로 엄격하게 불살생을 원칙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채소만 들어간 카레 음식을 먹습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음식을 '인도 요리'라고 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면 인도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통일성을 가진 인도 음식, 인도 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는 다양성을 지닌 문화권이며 동시에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지역이다. 중요한 것은 통일성이 다양성을 배제하고 무언가 단일한 것으로 통일하지 않고 다양성을 허용하는 형태로 통일했다는 점이다.
-p.219
카레라고 말하면서 사실 치킨 코르마라거나 탄두리 치킨이라거나 하는 것도 커리 음식이라는 걸 알면서 자꾸만 걸쭉한 카레, 밥에 얹어 먹는 카레가 상상됩니다. 한 번 잡힌 고정관념은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봅니다.
<화려한 식탁>을 볼 때만 하더라도 구하기 어려웠던 향신료들을 지금은 우리도 마트에서 흔히 살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터머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는 중형급 이상의 마트라면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인도 가정처럼 스무 가지쯤 되는 향신료를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약간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인도 가정의 주방에는 반드시 빌트인 돌절구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혼합 스파이스나 혼합 재료가 나와있어 그걸 사용하는 집도 많아졌고, 레토르트 파우치 제품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고전적인 방법을 선호하기도 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에는 친절하게도 몇 개의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향신료 이름만 봐도 어질어질하여 이것저것 해 볼 수는 없겠지만 탄두리 치킨은 시도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대로 하려면 탄두리가 있어야 하겠지만 레시피대로 따라 하면서 오븐에 구워도 된다니 정확하게 같은 맛은 아니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났더니 이제 난과 차파티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난이 너무 먹고 싶어서 아이랑 반죽해서 뭔가를 구워 카레를 찍어 먹었었는데, 그게 바로 차파티였지 뭡니까. 레시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 나는 차파티를 구울 줄 아는 사람이었어.
책 뒤에는 카레 관련 용어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카레 전문점에 적혀있는 메뉴를 보며 이건 뭘까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부록도 즐거웠던 책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였습니다. 상당히 쉽고 즐겁게 쓰여있어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