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루션 익스프레스 - 생명의 진화를 탐사하는 기나긴 항해 익스프레스 시리즈 4
조진호 지음, 장대익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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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호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던 건 그래비티 익스프레스였습니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던 그 책을 꺼내면서 처음에는 외국 작가의 그래픽 노블 같은 것인가 하였지만 이내 책에 코를 박고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다시 <아톰 익스프레스>를 만났습니다.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래비티 익스프레스>,<게놈 익스프레스>와 더불어서 이북 책꽂이에 두었었는데 당시 아이의 화학 선생님께서 재미있다면서 추천해 주셔서 기억이 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 화학 선생님이시기도 하거든요. 저는 내친김에 책을 쭉 읽어 나갔고, '존재'의 철학과 더불어 화학의 역사, 지금까지 흘러왔던 변화 과정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지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조금 흘러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비글호에 싣고 떠나는 여행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 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시작하여 과학적 기원으로 향해 갑니다.

나는 왜 있는가를 누구로부터 나왔는 가로 질문을 바꾸어 나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하면 할수록 희미해지는 그것은 무척 중요하면서도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조진호는 '나의 기원' 그리고 모든 '생물의 기원'을 찾기 위해 익스프레스에 올라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물음부터 시작하며 생물의 최초 기원에 대해서는 현세대 인류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고민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발생설을 주장하던 존 니덤의 이론이 깨지던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은 자연히 발생하지 않고 무언가로부터 왔다는 걸 압니다.

그리하여 원시 대기에 이르러 무기물들이 '어떠한' 충격에 의해 유기물로 합성되기 시작하고 그것이 LUCA라고 합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다루고 스스로 복제하며 증식합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균부터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까지 모두 이를 기원으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최초의 것을 찾아내었다고 착각하고 말죠.

하지만 LUCA 역시 최초의 생명체는 아닐 거라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왜' LUCA가 생겨났는 건데요. 결국 우리는 여전히 최초의 기원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학자도, 철학자도 근원을 찾아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입니다.

조진호의 익스프레스는 기원을 찾기 위해 '다윈'을 만납니다. 그의 수명이 다해가던 순간 에른스트 마이어와 함께 방문한 조진호에게 자신을 갈라파고스에 데려다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약속을 얻어냅니다. 그가 원하는 갈라파고스는 젊은 시절 그가 수많은 시간을 바쳤던 그곳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의 익스프레스는 열차가 아니라 시공간을 항해하는 '비글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항해를 따라가며 다윈의 일생과 연구에 대해 봅니다. 고뇌와 열정도 지켜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공간을 초월한 그들의 여행 속에서 나의 기원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일뿐입니다.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우리는 종이니 속이니 하는 것으로 분화되어 있어도 결국은 하나, 커다란 생명수 나무 끝의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 서지 않습니다. 아직 그 최초의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분화되기 시작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는 것이 부족합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은 연구 장치나 발전된 과학 도구로 다윈의 시대와는 다른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주 속 생명체를 찾는 연구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구인이라는 - 우주의 시점에서 본다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관점에서 그들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걸 알게 된 것 같지만 동시에 여전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는 필연적으로 <게놈 익스프레스>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심층적인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윈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갈라파고스를 찾아냅니다. 그가 비글호를 떠나는 장면은 무척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완전한 휴식, 더 이상 그는 익스프레스에 탑승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감동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익스프레스 시리즈를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는 찰스 다윈과 에른스트 마이어가 메인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바버라 매클린톡, 그레고어 멘델,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같은 중요한 과학자들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에피쿠로스, 데이비드 흄 같은 철학자도 등장하지요.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라는 거대한 영화가 끝난 후 촬영장에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윌리엄 해밀턴이 찾아와 조진호와 나누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다윈과 공동 논문을 내었던 앨프리드 월리스의 이야기도 흥미롭고요.

익스프레스 시리즈들이 그렇듯이 이번 <에볼루션 익스프레스>역시 과학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며 철학적 고찰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가는 과학 여행이 아니라 영화를 보듯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에 도착해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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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지나가고 주말은 오니까
안대근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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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이 좋을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그걸 알고 있기에 주말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려주마라고 할 필요는 없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조언해 주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크기가 내 인생의 크기보다 작다고 결코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니 너희들이 알 게 무어냐하고 큰소리 떵떵 치는 이들이 있는데, 오히려 그런 이를 보면 작고 작은 세계에서 살았구나 하며 혀를 차게 된다. 이렇게 그들의 그릇의 크기를 재고 있는 나 역시 그런 인간들 중 하나겠지.

각각의 지내온 인생 - 흘려보내기도 하고 가열하게 살아오기도 했던 그 시간들이 모이면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와도 같다. 모든 생을 살아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소설을 읽기도 하고, 에세이를 읽으며 그들의 인생을 내 인생 한편에 꽂아 두어본다. 때로는 위로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건네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어느 쪽일까.

<목요일은 지나가고 주말은 오니까>의 작가 안대근은 인스타그램 속에서도 딱 이런 색이다. 너무 초록 초록하지도 않은 적당한 연둣빛의 그런 느낌. 화려하거나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 세상 속에서 부대끼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아니 인스타에서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그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 다들 가면으로 자신을 두르고 괜찮은 부분, 좋은 부분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서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겨우 그것에 머무르려 한다. 그래도 그들 역시 또 일주일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거겠지.

컨디션이 시원찮은 탓에 누워서 <목요일은 지나가고 주말은 오니까>를 펴 들었다. 초록빛이 눈에 좋다던데, 속았잖아. 마음에도 좋은가 보다. 그냥 남의 인생을 조금씩 들여다보고 있었을 뿐인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궁금해졌다. 이름은 남자 같지만 그래도 아닌 경우가 꽤 많으니까, 나를 포함해서. 그래서 그의 인스타를 들여다보았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 선이 가는 남자였다. 다행이었다. 책을 통해서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였으니까. 만일 우락부락한 남자가 튀어나오기라도 했으면 깜짝 놀랐을 테니까.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에 대한 묘사가 점점 더 진해진다. 선이 가는 것과 손에 땀이 많은 것까지 포함해서. 중간에 몰래 문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더 느낌을 선명하게 가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건 모자를 쓴, 마스크를 착용한 그의 모습뿐이지만 조금 알게 된 거 같은 느낌이다. 이 역시 그에 관한 일부일 뿐일 테지만.

그는 여전히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을 지내고 주말을 만날 두근거림을 안고 있겠지.

나 역시 그렇다.

주말이라고 달라지는 것도 전혀 없는데.

그래도 목요일의 나는 여전히 주말을 기다린다. 딱 하루만 더 버티면 돼, 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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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 직장인을 위한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
정재엽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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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인터넷 글을 보았습니다. 벤젠고리처럼 생긴 육각 구조의 건물에서 방을 찾아 헤매던 학생이 마침내 누군가를 만나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에 구원자로구나 하고 따라갔더니 그대로 대학원으로 끌려갔다는. 다른 드립 말고 이게 먼저 생각나는 이유는 지난주에 애가 학교에 갔다가 네모 구조의 건물에서 길을 헤맸었거든요. 대학원에 관한 각종 드립이 떠돌아다니는 요즘에도, 그러니까 마치 무언가를 잘못해서(잘해서) 교수님의 눈에 띄게 되면 대학원에 갈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식의 글이 많은 요즘에도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따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취업이 급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보다도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재직자 중에서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분들이 제법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들은 하나만 하기도 어려운 직장 생활과 대학원 공부인데 굳이 한 번에 두 길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첫 번째는 생계형 유형으로 자신이 처해 있는 조직에서 학위를 취득하면 승진이 되고 연봉도 오르는 경우입니다. 결국 주변의 동료들이 모두 학위를 취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만 취득하지 않으면 또 곤란하겠죠. 평가절하 된다고 느끼는 경우도 생깁니다.

두 번째는 커리어 체인지 형입니다.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자신의 커리어를 품에 안고 교수직이나 연구자로 가기 위한 유형입니다. 보통 공공기관에 계신 분들이 이 루트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만족형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자신의 브랜드 화를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서 도전하는 경우인데요. 이와 더불어서 커뮤니티 형성을 많이 하십니다. 자신이 하는 것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네 번째는 박사 수료 만족형입니다. 학위를 꼭 취득하겠다는 것보다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소속감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유형인데요, 코스워크 기간이 늘어져서 오래 머무는 분도 계시고 취업, 결혼, 출산 등의 신변 변화로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이상 프롤로그의 내용참고)

어찌 되었거나 대학원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부딪혀야 하는 일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공계와 문과 대학원은 서로 다른 점이 있겠습니다만, 결국 이들도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은 비슷하게 일어날 테니까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까요. 아니, 아예 미연에 방지할 수 없는 걸까요.

공부 좀 한다더니 사람이 변했다라거나 유세를 떤다라거나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밸런스를 잘 맞추면서 모든 걸 잘 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재엽은 직장인이 대학원 생활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 A to Z를 <내가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에 담았습니다. 일과 가정 그리고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해나가는 과정을 자기 계발서와 같은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받아들기 전에 에세이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책인가 했다가 딱딱 떨어지는 문장들이라 다소 당황했습니다. 그렇지만 읽다 보니 직장인 대학원생에게 어떤 가이드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여기서의 대학원은 박사학위 과정만을 다룹니다. 이미 직장에 가기 전에 석사를 취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인가, 아니면 석사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직장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학원을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당시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던 동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많게는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사이지만 동급생이라는 의식으로 함께 화목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두 끝까지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자퇴한 이후 줄줄이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흔들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황에 공부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는 주변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반드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책을 통해 가이드를 받고 주변과 부드럽게 화합해 나가면서 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진학 전이라면 미리 준비해서 읽고 들어가는 것도 추천합니다.

각 분야별 박사 15인의 생생한 인터뷰는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평탄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그 후에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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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볼트 -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
나다브 이얄 지음, 최이현 옮김 / 까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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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책을 만나곤 합니다.

읽는 동안에 활자를 눈으로 짚어나가면서 그 의미를 떠올리고 새기고 생각의 가지를 늘려나다가 그것도 부족해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옆에서 공부하는 아이에게 책에서 알게 된 내용을 블라블라 이야기하게 되는 그런 책 말이죠.

이 책 <리볼트>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챕터 하나하나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이야기들을 흡수시키느라 책을 읽고서 다시 앞으로 갑니다. 나는 과연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본래 책의 모든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읽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므로 이틀쯤 지나서 멈춰 서면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리볼트>에 붙은 소제목은 이렇습니다.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

읽다 보면 그래서 그 세력은 누구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 세력이 때로는 어떤 단체 일 수도 있고, 국가 일 수도 있으며 개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력'이라고 하기에 어색할 때도 있습니다. 저항은 하지만 '세력'은 없는 작은 반항일 때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 책에서는 세계화와 그것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이들이 세계는 하나다라는 이름으로 글로벌함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며 세계가 커다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 과장하자면 부스러지는 사람 혹은 동식물이 있는 겁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기자 나다브 이얄이 10여 년 동안 취재한 내용을 가지고 우리에게 자신 의견을 보태어 낸 르포르타주가 바로 <리볼트>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상당히 다양한 부분의 이야기를 합니다. 부분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전체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거대함이라는 것이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폭력의 방향은 나다브 이얄에게 직접적으로 향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 속에 있었습니다만 마치 종군기자처럼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기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종교적 이유를 대며 배척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세계화는 서계의 극빈곤층을 그곳에서 끌어내는 데엔 성공했지만 종종 약소국가의 붕괴라거나 절대 을로의 위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예 해방으로 신분제는 폐지되었지 모르지만 또 다른 계층의 차별을 낳았습니다.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는 세계를 흔듭니다. 한 나라의 문제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위태로움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싼 노동력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나라는 중국과 동남아 같은 곳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에 공장을 짓고 운영하여 다시 세계로 수출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 오염 문제는 중국과 동남아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돈 많은 나라가 오염물질 규제를 위한다며 그들을 압박합니다. 돈은 미국 같은 커다란 나라에서 벌어가면서 책임은 그들에게 전가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미국 내의 사정이 그로 인해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많은 공장이 아시아 쪽으로 이동함으로써 미국 내엔 많은 실업자가 생겼으며 재취업의 기회도 쉽게 얻을 수 없게 되고 만 겁니다. 한 쪽에서는 저렴하게 들여온 물건들을 신나게 소비하고, 또 한쪽에서는 점점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져갑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극빈국이 아닙니다. 세계화의 주범이 미국인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산업에 관한 일부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리볼트>에서는 산업에 관한 부분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척 다양한 부분을 다루는데, 이를테면 요즘 많은 생각이 들고 있는 저출산 문제도 다룹니다. 일본에서의 취재를 통해서 일본의 여성이 왜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포기하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들의 상황보다 조금 낫긴 하지만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비단 아시아권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큰 문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세계화의 문제와는 달리 범 지구적인 문제로 보면 또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포함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참 묘합니다. 무척 방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고, 세계화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그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동의하고 이 부분은 반대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메모하다 보면 앞의 내용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게 반드시 나쁜 것 만은 아니지 않은가 합니다.

뉴스를 접한다고 기자의 이야기를 모두 수용하지는 않는 것처럼 이 르포르타주를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펴 나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리볼트>는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책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분께서는 책에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면서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필 수도 있으니까요.

가독력도 좋은 책입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가며 천천히 읽고 생각하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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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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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가 나쁜 일을 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가끔씩 떠올립니다. 특히 뉴스에서 험한 일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마주하고 나면 이런 일이 내 아이에게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갑자기 과잉보호를 하기도 하고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알려줍니다.

올해부터 성인이 된 아이를 두고 있음에도 여전히 어두운 길로 다니지 말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가지 않길 바라기도 하며 과모임 같은데 가서 만취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낯선 곳으로 이사 온 후에 혹시 잘 모르는 아이들과 어울려 뭉쳐 다니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이제는 같은 과 친구들 얼굴조차 모르는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부모란 그런가 봅니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아이를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믿지 못하는 탓에 내 시선을 떠나고 나면 걱정에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그렇다고 치마폭에 폭 싸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상처를 받으며 단단해질 테지요. 하지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피해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끔찍합니다. 내 앞에서는 항상 순해 보이고 투정은 부리지만 말썽은 부리지 않는 착한 아이가 학교 폭력을 저지른다거나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할 거라는 상상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부모는 어느 날 가해자인 아이, 피해자인 아이와 마주하게 되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케어하려 하지만 그게 어디 부모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요. 그러니 오늘도 무사하기만을 기원합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들

우리가 원했던 것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작은 어려움이나 조금 큰 어려움을 잘 이겨내며 원활한 학창 시절을 끝내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 친구들과 즐겁게 작은 일탈을 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이었을 겁니다.

대부분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의 교장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들 사이에 공유된 한 장의 사진이 동네를 시끄럽게 휘젓게 됩니다.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이 결정되어 있는 핀치라는 인기 있는 소년이 라일라라는 후배의 사진을 - 만취해서 옷차림이 심하게 흐트러져 거의 반라의 상태인 - 찍어서 친구들 사이에 공유했고 결국 자신의 부모와 라일라의 부모까지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더욱 나쁜 건 인종차별, 멸시하는 문구를 캡션으로 넣었던 겁니다.

별일 아니라는 라일라, 그대로 두면 며칠 시끄럽고 사라져 버릴 일을 아빠가 크게 만든다며 반발합니다. 게다가 자기가 동경하고 있는 핀치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아빠 몰래 파티에 가서 술을 많이 마신 탓이라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톰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건 아니지만,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건 옳지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목수라는 직업으로 다른 학부모들에 비해 수입이 적고, 집도 작은 곳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일을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핀치의 아빠 커크는 실제로 그의 화를, 라일라의 아픔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겨우 만 오천 달러에 말이죠. 그의 씀씀이에 비하면 만 오천 달러는 너무나도 적은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하지만 핀치의 엄마 니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학폭위에 아들이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핀치가 명백히 잘못한 일이니까요. 라일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학폭위에서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학 처분을 받는 것도 프린스턴대학 입학 취소가 된다 하더라고 모두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니나가 냉정하거나 아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녀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러나 핀치와 커크는 흔히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거들먹거리는 남자들이었습니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어서 잘못을 덮고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심지어 니나에게도 진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니나는 그들의 거짓말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톰은 핀치와 커크 부자에게는 화가 나 있지만, 니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가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고 올바르게 해결되는 걸 원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라일라가 지금 벌어진 사건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겁니다.

독자인 저는 이 사건을 따라가면서 분노합니다.

여기에는 인종 차별과 계층에 대한 특권 의식 같은 것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꾸역꾸역 고구마를 삼켜가며 책을 읽습니다. 사이다가 되어줄 니나를 보며 힘을 냅니다.

피해자인 라일라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점점 더 구렁텅이로 빠지려는 걸 손 내밀어 막고 싶습니다. 니나와 톰이 그 아이를 구해 낼 수 있을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씁쓸함을 입안에 담고 책을 덮습니다. 결말은 현실적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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