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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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가 나쁜 일을 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가끔씩 떠올립니다. 특히 뉴스에서 험한 일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마주하고 나면 이런 일이 내 아이에게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갑자기 과잉보호를 하기도 하고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알려줍니다.

올해부터 성인이 된 아이를 두고 있음에도 여전히 어두운 길로 다니지 말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가지 않길 바라기도 하며 과모임 같은데 가서 만취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낯선 곳으로 이사 온 후에 혹시 잘 모르는 아이들과 어울려 뭉쳐 다니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이제는 같은 과 친구들 얼굴조차 모르는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부모란 그런가 봅니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아이를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믿지 못하는 탓에 내 시선을 떠나고 나면 걱정에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그렇다고 치마폭에 폭 싸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상처를 받으며 단단해질 테지요. 하지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피해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끔찍합니다. 내 앞에서는 항상 순해 보이고 투정은 부리지만 말썽은 부리지 않는 착한 아이가 학교 폭력을 저지른다거나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할 거라는 상상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부모는 어느 날 가해자인 아이, 피해자인 아이와 마주하게 되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케어하려 하지만 그게 어디 부모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요. 그러니 오늘도 무사하기만을 기원합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들

우리가 원했던 것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작은 어려움이나 조금 큰 어려움을 잘 이겨내며 원활한 학창 시절을 끝내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 친구들과 즐겁게 작은 일탈을 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이었을 겁니다.

대부분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의 교장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들 사이에 공유된 한 장의 사진이 동네를 시끄럽게 휘젓게 됩니다.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이 결정되어 있는 핀치라는 인기 있는 소년이 라일라라는 후배의 사진을 - 만취해서 옷차림이 심하게 흐트러져 거의 반라의 상태인 - 찍어서 친구들 사이에 공유했고 결국 자신의 부모와 라일라의 부모까지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더욱 나쁜 건 인종차별, 멸시하는 문구를 캡션으로 넣었던 겁니다.

별일 아니라는 라일라, 그대로 두면 며칠 시끄럽고 사라져 버릴 일을 아빠가 크게 만든다며 반발합니다. 게다가 자기가 동경하고 있는 핀치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아빠 몰래 파티에 가서 술을 많이 마신 탓이라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톰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건 아니지만,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건 옳지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목수라는 직업으로 다른 학부모들에 비해 수입이 적고, 집도 작은 곳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일을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핀치의 아빠 커크는 실제로 그의 화를, 라일라의 아픔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겨우 만 오천 달러에 말이죠. 그의 씀씀이에 비하면 만 오천 달러는 너무나도 적은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하지만 핀치의 엄마 니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학폭위에 아들이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핀치가 명백히 잘못한 일이니까요. 라일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학폭위에서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학 처분을 받는 것도 프린스턴대학 입학 취소가 된다 하더라고 모두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니나가 냉정하거나 아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녀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러나 핀치와 커크는 흔히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거들먹거리는 남자들이었습니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어서 잘못을 덮고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심지어 니나에게도 진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니나는 그들의 거짓말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톰은 핀치와 커크 부자에게는 화가 나 있지만, 니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가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고 올바르게 해결되는 걸 원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라일라가 지금 벌어진 사건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겁니다.

독자인 저는 이 사건을 따라가면서 분노합니다.

여기에는 인종 차별과 계층에 대한 특권 의식 같은 것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꾸역꾸역 고구마를 삼켜가며 책을 읽습니다. 사이다가 되어줄 니나를 보며 힘을 냅니다.

피해자인 라일라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점점 더 구렁텅이로 빠지려는 걸 손 내밀어 막고 싶습니다. 니나와 톰이 그 아이를 구해 낼 수 있을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씁쓸함을 입안에 담고 책을 덮습니다. 결말은 현실적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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