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이소다 가즈이치 그림,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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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링을 제거하는 순간 마치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단단히 잠가둔 밀실의 문을 여는 것 같아서 설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괜찮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페이지를 여는 순간 지레짐작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밀실이 아니라 그가 이 책을 쓰기 전 그러니까 20세기 혹은 그보다 조금 전에 발표된 미스터리에 장치된 클로즈드 서클을 이야기하는 책이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긴 아리스가와 아리스 그 역시 존경받는 작가입니다. 1989년 월광게임으로 데뷔한 이후 후속작마다 사랑을 받았고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엄선한 41편의 밀실이라니 당시의 팬이라면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 역시 무척 궁금했으니까요.

이 책은 서양 미스터리와 일본 미스터리.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이곳에서 소설을 소개하며 나름대로의 견해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문학작품 해제라거나 가이드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정도의 텐션을 유지하면서 글을 씁니다. 조금만 더 파고들어가면 <밀실 대도감>이라기 보다는 고전 추리소설에 대한 친절한 리뷰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는데, 읽었던 것이나 그렇지 못했던 것 모두 기억이 잘 나지 않았으므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에 대해 잘 아는 분이 이 책은 무척 재미있으니까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 읽어보라고 하며 권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부각되어 있어서 그렇지 실은 그림을 담당한 이소다 가즈이치가 더 고생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이야기하는 아리스가와와는 달리 이소다는 그가 지정해 준 책을 읽고 활자로 된 장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삽화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도감'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상 이 책은 이소다 가즈이치의 <밀실 대도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소다역시 아리스가와가 추천해 준 책을 대부분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걸 보면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하는 작가도 대단하지만 유에서 또 하나의 유를 창조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역시 상당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41편의 소설을 모두 읽어가면서 다양한 기법을 이용,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 이소다 가즈이치 덕분에 더욱 재미있게 <밀실 대도감>을 완독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합니다.

미스터리 마니아인 관계로 초등학생 때 모르그 가의 살인이라거나 셜록 홈스 시리즈,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독파하고 다른 추리물에도 손을 대었던 저인지라 여기에 나오는 고전들은 다 읽었을 것 같겠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읽었다고 하더라도 기억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수십 년 전의 일들이라 그렇게 사르르 흘러가 버렸습니다.

<밀실 대도감>은 이렇게 희미해진 기억 속에 남아있는 소설 속의 밀실이 어땠더라 하고 짚어보는 저 같은 이에게도, 상당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에 제목만 보더라도 아 그거! 하고 외치는 분에게도, 그리고 이제 막 입문한 사람에게도 즐거움이 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의 세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저는 아마 내년 이맘때쯤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기억을 되살리면서 또 어떤 것이 있었더라 하면서 말이죠. 그러고는 기억나지 않거나 읽지 않았던 소설을 찾는 여정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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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복리처럼 쌓이는 사람들의 습관 - ‘왜 저 사람은 뭐든 술술 잘 풀릴까?’
사쿠라이 쇼이치.후지타 스스무 지음, 김현화 옮김 / 빌리버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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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관련해서 큰 식당을 하면서 상당한 돈을 만지는 분이 계십니다. 지금과 같은 시국임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는 맛집이죠. 제주 동문시장 근처에 위치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입지적으로 유리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분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어느 날 갑자기 운이 트였다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말이죠.



변변한 밑천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서 관광객 안내를 하면서 돈을 벌어 자식 교육을 시키던 분이 타고난 수완과 특유의 센스 그리고 배포를 발휘하면서 알게 된 인맥, 그리고 어느 날 사업을 하겠다고 결단을 내린 그 순간에 운은 바로 그분의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과연 그분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운을 차곡차곡 적립했었던 걸까요?



제가 바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한 다리 건너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 이유는 여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어떠한 습관 같은 게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습관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신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생은 도박과 같다고 하지만 저는 그 도박판에서 광조차 못 팔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대운이 트이지 못하는 것인가 봅니다. 이 나이가 먹도록 스스로 터득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남의 경험을 읽고 듣고 새기면서 슬슬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럴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운이 복리처럼 쌓이는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도서인데요, 마작 세계에서 유명해 작귀라는 별명을 얻은 사쿠라이 쇼이치와 그의 제자이자 사업가인 후지타 스스무가 공저하였습니다.



이 책은 운이 트이는 때를 만나기 위한 39가지 습관을 이야기하는데, 한 가지 습관에 대해서 사쿠라이 쇼이치가 먼저 도박사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지니고 있는바를 이야기하고 뒤를 이어 후지타 스스무가 비즈니스맨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꾸려져 있습니다.



도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저였지만 이상하게도 사쿠라이 쇼이치의 글 쪽이 좀 더 많이 다가왔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잘 짚어주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승패를 가르는 비즈니스는 아직까지 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러했나 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직장 내에서 처세하는 요령이라거나 거래처를 대하는 태도 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에는 후지타 스스무의 이야기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되는 것도 챙기고 대인관계나 목표를 삼는 것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도 좋겠습니다.



후지타 스스무라는 이름은 저에게 생소하지만 일본 최연소 상장 벤처기업 CEO이면서 카카오와 배달의민족의 투자자이기도 하기에 그 역량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운과 그 흐름을 읽는 법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삶에서 원활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렇지만 역시 뼛속부터 비즈니스맨이라는 느낌이라 직장인에게 더욱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어쨌든 사쿠라이 쇼이치나 후지타 스스무 양쪽 모두 마치 이기는 삶을 살아온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그런 운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습관, 그리고 정신 자세 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적기에 잘 낚아채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든 1년에 한 번쯤은 승부처가 찾아온다. 그러니 그때를 가려내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승부할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p.32




처음부터 만들어진 인간은 없다는 거, 무언가를 쟁취하고 싶다면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반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습관이기에 좋은 방법으로 자신에게 정착시키는 것이 대운을 기다리는 자의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운은 무한할지도 모르지만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타당한 선택을 추적해나가며, 그에 걸맞은 수고나 노력도 동반해야 하는 법이다.


-p.81



<운이 복리처럼 쌓이는 사람들의 습관>을 통해서 운이라는 것은 느닷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 대비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왔다는 것을 깨닫는 혜안도 있어야 하며 잡아채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죠.



그러니 그런 기술까지도 습관처럼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책으로만 배우는 습관과 기술이 과연 나에게 정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한 챕터씩 천천히 짚어 나가다 보면 한두 가지라도 콕 박혀서 나의 것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리를 쳐 부풀어 올라서 언젠가는 큰 적금이 되어서 돌아오겠죠.




절대적인 답, 진정한 답,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에 따라 만약 참된 답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수밖에 없다. 또한 그 답은 하나의 형태로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한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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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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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담겨있는 슬픔,


그렇지만 침몰하는 배와 같은 그런 감각은 아니고,


초승달이 그림자를 살며시 드리운 검은 호수 위에 떠 있는 조각배 같은 느낌입니다.



이 산문을 쓴 성동혁은 시인으로,


글 속에 시가 담겨있습니다.



어린 시절 다섯 번의 대수술을 통해


그의 인생과 감각은 또래의 다른 이들과는 달랐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지금도 여전히 투병 중이며,


산소통을 집에, 그리고 차 안에 두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들이마셔야 함을 압니다.



시는 그의 삶이고, 삶은 그의 시가 되었습니다.



병상을 지키는 엄마, 수술방에는 함께 할 수 없었던 모정.


산에 가보는 것이 소원인 그를 사랑한 친구들은


어느 날 의료인이 된 친구의 제안으로


그를 짊어지고 산을 오릅니다.


시인을 버티게 해준 것들은 이 세상에 많았으며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병실의 동지라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의미가 되었으며


그리고 자리했습니다.



이 산문집 <뉘앙스>는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함께 하고픈 그의 마음의 소리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산문이지만 시와 같아서


어쨌든 수분 함량 80%를 유지하며


그런 모이스처를 가지고


내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연결이 되지 않는 짤막한 이야기를


심상으로 그리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그림이 되어서


눈앞에 소박하게 펼쳐집니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은


안쓰러움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요, 감동인가 봅니다.



<뉘앙스>라니, 과연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혹시 내가 느끼는


바로 그 명치 바로 위,


갈비뼈의 복판 그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


그런 걸까요.



그렇다면 나는 그의 글을


어떤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요.



뉘앙스. 사랑할 때 커지는 말, 뉘앙스.


네모였다가 물처럼 스미는 말, 뉘앙스.


더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게 하는 말, 뉘앙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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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 -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경이롭고 매혹적인 동식물의 세계
송현수 지음 / Mid(엠아이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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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이라는 책을 손에 쥐었을 때에는 그 차이점이 어떤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이내 착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형태적인 문제가 아니라 유체역학으로 보자면 저는 전혀 모르는 구역의 이야기였던 겁니다.



학창 시절 화학과 생물을 공부한데다가 대학에 가서도 그 범위 내에 머물렀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유체역학은 베르누이의 원리. 그것도 이름뿐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축제에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 보니 얻어들은 정도였죠.



지금에 와서는 과학을 생물, 화학, 우주 혹은 지구과학 그리고 물리로 딱 나누어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십 대 시절부터 그렇게 세뇌되어온 탓에 내가 존재하는 이 모든 공간에는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잊고 살기 일쑤입니다.



- 그렇다고 해서 생물이나 화학에 그렇게 자신 있는 편은 아니고, 관심을 두던 분야를 잊지 않기 위해서 때때로 책을 찾아서 만나곤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발전해가는 과학 수준 덕분에 그나마도 따라가기 힘들기에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서술하는 책은 읽다가 멈추고 또 멈추다 보니  철학서를 읽을 때와 비슷하게 난감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흥미로운 사실을 쉽게 서술해놓은 쉬운 과학도서를 찾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이었던 겁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유체역학은 고사하고 물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점점 쪼그라드는 탓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뽐낼 수는 없지만, 내가 몰랐던 곳에 이런 원리가 숨어있었구나 감탄을 하면서 독서 그 자체를 즐길 수는 있었습니다.



이 책은 유체역학을 공부하고 그리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것으로 저자는 지금까지 이런 위트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식을 전달해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지만 그의 다른 책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이나 <커피 얼룩의 비밀>을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개와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면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동작으로 물을 구강 내로 끌어들이는 장면을 목격하셨을 겁니다. 때로는 경망스러운 동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물을 마십니다. 날렵한 혀놀림으로 마치 국자로 물을 퍼나르듯이 움직이는데 여기에도 유체역학이 적용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개와 고양이가 물을 먹는 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혀의 면적과 속도와 모양 때문에 마시는 모습까지 달라진다고 합니다. 과연 그러한 원리가 있었구나 하면서 즐거워하다가도 다음 장의 흥미진진한 것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내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학습을 하기 위해서 혹은 시험을 보기 위해서 읽는 책은 아니니까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생물을 관찰하다 보면 알게 되는 유체역학을 흥미롭고 지혜롭게 풀어놓은 도서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즐기고 또한 어떤 느낌인지 음미하기만 하면 됩니다.



책을 펴들면 서두와 목차부터 시작해서 맺음말까지 죄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저이지만 <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은 굳이 그렇게 읽지 않아도 된다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파트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궁금한 곳만 펼쳐서 읽어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과학에 관심을 두게 했던 - 당시에 유행했던 과학백과사전의 기능이 그러했듯이 이 책 역시 자신이 원하는 부분부터 읽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씩 읽어나가는 중에 어느새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 겁니다.  그렇게 읽어나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이르게 되는 거죠.



성인은 물론이고 과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만한 과학도서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 번쯤 이 도서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느껴보시길 권하는 바입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재미있게 웃으며 읽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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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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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이 아팠다.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일을 감지했다.

어떤 올즈모빌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기도 전에 내 앞에 멈춰 설 것을 알았고, 차에 탄 가족의 다정한 목소리만 듣고도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당할 것을 알았다.


-p.20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데니스 존슨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초고속 카메라가 찍은 화면이 슬로우로 도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습니다. 이 단편 소설집의 맨 앞에 실려있는 데니스 존슨의 소설 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낯선 감각이지만 그것이 눈앞에 그려져 마치 손으로 잡으려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허상.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집의 스토리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단호하게 선을 긋고, 또한 어떤 것은 과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저에게만은 비밀로 하려는 듯. 손가락 하나를 입술 앞에서 세우고 미소를 짓습니다.



간질간질한 사랑을 마치 무성 영화처럼 보여주는 스토리도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나는 지금 동네를 날아서 산책하는 것이라는 상상을 했던 유년기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가슴을 찢으면서도 자식을 위해서 참아내는 - 제가 보기에는 어째서 그렇게까지라는 말이 나올만한 - 스토리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마음과 망막에 새겨지는 그런 단편들이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은 '문학 실험실'이라고 불리는 파리 리뷰가 주목한 단편들을 장르의 대가들이 엄선하에 뽑아낸 것으로 각각의 스토리는 어떤 테마로 엮여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특징과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읽을 수 있는 옴니버스라거나 가볍게 만날 수 있는 단편집들과는 다릅니다.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선택한 단편들로 꾸려져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때때로 난해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에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몰라 멈칫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각각의 스토리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해제가 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까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글을 읽으며 조금씩 깨달아갑니다. 때로는 그것을 읽고서도 어리둥절할 때가 있습니다. 잘 못 이해했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나갑니다.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몇 가지 밖에 모르는 데다가 '바벨의 도서관'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보르헤스의 소설, 그리고 읽고자 하지만 언제나 저를 고난에 빠지게 만들었던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까지 이 책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역시 저를 흔들어 놓았고, 괴롭히고 그리고 도로 제자리에 안착 시켜주었습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그런 책입니다.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어렵지만,

읽고 나면 가슴 복판에서 은파처럼 퍼져나가는 무언가를 느끼게 만드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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