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평점 :
들어가기 전에:
저는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에도 반대합니다. 남성이나 여성 혹은 그로 구분 지어지지 않는 '성별'자체로 차별받는 상황을 싫어합니다.
<평등하다는 착각>의 저자는 영국인입니다. 그래서 동서양의 차이(차별이 아니라)에 따라서 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 읽다 보니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쓰인 책'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소개하며 남성 경쟁자에게 밀리는 일은 흔하며 통찰력 있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건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진다면 대상을 남성으로 바꾸었을 때에도 과연 같은 반응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만일 성별의 차이가 아닌 능력의 차이로 그런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건 아닌지 체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편향은 무의식적일 때가 많고
강물의 흐름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존재를 부정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자기에게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p.71
저는 운 좋게(?)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을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남자들이 많은 회사에 들어간 적도 없고 대학 전공 역시 여성 쪽의 성비가 높은 학과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어서 남성이고 여성이고 실제로 접촉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두 번 메신저로 대화하는 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모릅니다. - 대부분은 대표님과 커뮤니케이션하니까요.
어쨌든 그래서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험하고 해괴한지 직접적으로는 모릅니다. 하지만 공대생인 딸이 앞으로 겪게 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척 신경 쓰였습니다. 실은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이런 문제로 걱정했었습니다. 대학 자체도 남성 대 여성이 2 대 1인 구조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봐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잘 이해하며 무리 없이 대학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딸이 성별의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 타입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진한 화장을 하고 있는데도 종종 남자로 - 도대체 왜? - 오해를 받을 정도의 중성적인 모습이기에 오히려 성별로 인한 문제를 (아직까지는) 겪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개인의 특성일 뿐 일부러 계획했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남성의 세계(라고 여겨지는)에 들어가려는 여성은 낮은 목소리를 사용하고 성별의 특성을 억제해야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능력을 펴는데 일부러 그렇게까지 꾸며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성별이 아닌 성품이나 능력 등으로 판단하는 세상이라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여성으로서 직장 생활 내에서의 고충을 잘 모른다고 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에 대해서도 그런 건 아닙니다. 일생이 차별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좌절과 반대를 겪어야 했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런 일들을 겪어왔습니다.
남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옳고, 나의 판단은 그르다며 현재와 미래를 부정하였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에 머물도록 하였으며 내 딸의 미래까지 좌우하려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맨스플레인을 싫어합니다. - 잠시 혐오인가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내리지 못했습니다.
성차별이 인종과 결부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과거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되었을 때에도 여성의 투표권은 존재하지 않았고, 흑인(이 표현을 싫어하지만) 여성의 권리는 더욱 낮았습니다. 여성 문제나 흑인 권리에 대한 이슈로 떠들썩할 때조차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성인데 흑인이다가 아니라 흑인인데 여성이라고 인식하였습니다. 이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그들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흑인인데 의사야? 와 여자 의사라고? 가 결합되면 흑인 여자 의사라니 말도 안 돼. 학위는 진짜 있는 거야?라는 의심을 받기 일쑤라는 겁니다. 만약 사실이라고 밝혀지면 그것참 대단한데!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판단을 하는 데에는 '무능하다는 가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흑인을 예시로 들었지만 모든 유색 인종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평등하다는 착각>을 읽는 독자가 만일 여성이라면 챕터 9를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남성이 만든 프레임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여성 스스로도 성차별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은 흔히 이를 여적여라는 말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면 남자의 적은 남자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 걸까요? 갑자기 급발진했지만, 아무튼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차별적인 관념이 머릿속에 틀어박혀서 내내 무의식중에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심리학과 사회학, 정치,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는 물론 구체적인 사례와 인터뷰 등을 들어서 팩트만을 전달합니다. 차별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며 똑같은 조건하에서 성별만 달리해본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이는 무의식중에 보이는 편향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차별'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주변에서 자신을 00혐오자로 볼까 봐 조심하는 경향은 높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바닥부터 새겨져있는 프레임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무의식중에 이런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성 평등 실천 법과 구조적인 인식 변화 등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남성이 아닌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자 함이 아니라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포스팅의 초반에서 '남성이나 여성 혹은 그로 구분 지어지지 않는 '성별'자체로 차별받는 상황을 싫어합니다.'라고 했던 제 의견과 일치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분노'보다는 앞으로 딸이 겪을 세상에 대해 '걱정'하였습니다. 조금씩 변화하여 모두가 성별이 아닌 능력과 노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오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굉장히 진보적인 사람으로
여기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을 할 수 있듯이,
나도 모르게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계급 차별,
장애인 차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동안
무의식적 편향이 뇌를 속이려고 할 때마다
편향을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