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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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외롭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책, ALONE을 읽는데 잠시 주저주저했었습니다. 혹시 내가 몰랐던 외로운 감정, 이미 알고 있던 감정을 끌어내는 건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책은 외로움이 아니라 ALONE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ALONE과 LONELY를 동일시하며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책에서의 ALONE은 ひとり, 혼자, 홀로서기, 그리고 외로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겨져서 슬프다는 감정을 서술하기도 하고 홀로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은 느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22인의 작가가 느끼는 '혼자'의 감정과 순간에 대한 기록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외롭다'라는 감정을 잘 못 느끼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음에 따라 때때로 외로움 혹은 공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우울감이 밀고 들어온 파도와 같아서 또 금세 빠져나갈 것을 압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걸 이내 깨닫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책이 나를 다시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열었으나 오히려 잊고 있던 좋은 감정을 끌어내었습니다. 왜 나는 스스로 고독하길 원했던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기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실은,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게 좋은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라면 어떻게 서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간관계에 부대끼며 마음고생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ALONE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세상을 잘 못 살았기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끔 상처를 받습니다.



<얼론>을 읽으면서 마음이 부드럽고 따스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독, 혼자 있음, 홀로됨, 외로움... 이런 감정은 유명한 작가들도 느끼는 거로구나. 누구에게나 있는 거구나 하는 동질감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각자가 마주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로 인해 겪는 일들, 풀어나가는 방법까지 서로 달랐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고, 혼자 있다고 해서 슬픈 건 아니라는 걸 첫 번째 글 '홀로 걷는 여자/ 에이미 션'에서부터 깨달았습니다. 작가가 느끼던 감정을 온전히 뒤집어쓴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렇구나, 이 고독은 내가 원하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 아니 이쪽은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일회성 만남으로 감정 소모하지 않는 걸 택한 거지만 - 매일을 그렇게 흘려보내다가 결국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던 가족들을 떠나서 혼자가 된 이야기, 뱃속에 품고 있던 아기를 잃은 경험... 작가의 솔직한 스토리가 들어있었습니다.



ALONE을 느끼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 대한 감상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소중한 순간,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건 아마도 공통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외롭거나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해 고통은 겪는 사람, 고독을 온전히 자신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분들. 누구에게나 권하고픈 한 권의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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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 - 성인 ADHD 종합안내서
황희성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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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엄마의 산만함은 혹시 ADHD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을 만나보기로 결정했었어요. 예전에 성인 ADHD를 다룬 짧은 영상을 보니 저희 엄마 생각이 딱 났었거든요. 행동 패턴이 비슷하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읽기로 했죠.​


<ADHD 하면 떠오르는 증상>

부산스럽다

수다스럽다

집중을 못 한다

충동적이다.



그래서 다소 산만하거나 한자리에 앉아서 진득하니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보는 사람 그런 쪽을 연상했었어요. 하지만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저희 딸이 혹시?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요즘 심각할 정도로 보이는 증상들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어서 당황했어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책에 수록되어 있는 DSM-5진단과 성인용 ADHD 자가 보고 척도 증상 체크리스트 v 1.1까지 해보라고 했어요. 그리고서는 20여 년 만에 이 아이가 ADHD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 거예요.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해서 검사 진행 후 판단해야겠지만 상당한 내용이 일치해서 놀랐어요. 이른바 조용한 ADHD 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죄송하게도 책을 읽기 전에는 재미있겠다! 그러니 읽어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ADHD였던 사람이 정신과 의사가 된 데다가 이 책을 쓰기까지 했다니 흥미로운 건 당연하잖아요. 흔히 보이는 건강 서적처럼 그럴싸한 글로 서술하고 홍보 목적으로 구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했었어요. 하지만 읽다 보니까 제가 큰 오해를 했더군요.​



물론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된 건 맞아요. 리틀포니가 겪고 있는 증상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고요. 그런데 의학적인 내용,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었어요. 비의료인인 제가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절히 설명되어 있었어요. 뜬구름이나 근거 없는 이야기를 풀어 놓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정신의학계에서도 ADHD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어떤 분은 아예 ADHD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었어요. 세상에는 명확한 선이 없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신체에 기질적인 문제는 없지만 우리는 장운동의 이상을 겪기도 하고 통증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이런 걸 스트레스성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처럼 ADHD에 대한 정의가 정립되지 않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필자도 말하고 있듯이 사람마다 증상은 다르게 나타나는 거고요.


이 책에는 성인 ADHD에 대한 이해를 돕는 예시가 퍽 많이 나와요. 필자 자신이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상세하게 드러나죠.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ADHD 여부를 판단하는 간편 검사도 수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효율을 살려서 케어하고 치료하는 방법도 다루고 있죠. 개인적으로 행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의료적인 처치나 처방과 병행하면 도움 될 수 있어요.


한 가지 방법만으로 좋아지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신체 질환도 처방제를 먹더라도 운동과 식습관을 병행하라고 하잖아요. 그렇기에 ADHD 관리 처방을 받아도 명상이나 마음 챙김 등으로 함께 돌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주변에 산만한 사람이 있거나 본인이 그렇다면 분명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에 관심을 둘 거예요.


하지만 전혀 그런 점이 없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른 상태가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에는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고 불리는 증상이지만 실제로 부산스럽고 산만함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니라니까요. 저도 딸이 ADHD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의심 상태라 오히려 이해하는 데 도움 되었어요.


그러므로 ADHD에 대해서 궁금하거나 관심이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를 읽어보길 바라요. 성인 ADHD라고 해서 단점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두려워할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자신 혹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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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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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대부분이 조선에 할애되어 있을 정도로 밸런스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왕조에서는 '이 말은 절대로 쓰지 말아라!'라고 왕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적을 정도로 꼼꼼하게 문서로 기록했기에 역사 자료가 풍부한 편이니 당연한 일이죠. 학창 시절 국사의 반은 조선이요 나머지 반을 다른 시절에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역사 과목은 조선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표니 업적 같은 걸 달달 외우고 시험을 본 통에 그나마도 남아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물며 고려와 거란이 싸워온 이야기는 그냥 서희가 소손녕한테 멋지게 말을 해서 물러나게 했다! 나중에 또 쳐들어와서 몽진하다가 다시 수복했다! 그런 식으로 만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역사적 사건은 많았지만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탓에 소손녕이랑 소배압이랑 비슷한 시대인지 강감찬 장군은 언제쯤 활약을 했었던 건지. 아니, 강감찬이 있는데 서희는 왜 외교 담판을 지었던 건지 혼동을 일으키고 있었던 겁니다. 국사 몇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듯 배운 데다가 당시만 해도 입시 배점이 높지도 않았고 하니 반쯤 포기했던 탓에 뭐 아무것도 몰랐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름 어른이 되었다고 역사를 잘 모르는 건 즐겁게 떠들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딱딱한 서적을 읽으면서 파고들기에는 지적 수준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역사책이긴 한데 소설처럼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술술 읽힙니다.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쓰인 책입니다.


저자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루면서 서희와 소손녕이 등장하는 1차 침공(993년) 그리고 양규와 김숙홍이 등장하는 2차 침공(1010)을 나누어 풀어나갑니다. 대신들이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강감찬의 느리게 반격하는 항전을 수락한 현종의 이야기도 생생히 전합니다. 거란을 고려를 꾸준히 침략해왔지만 결코 이쪽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에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이 오랫동안 치러왔던 전쟁을 사실에 입각하여 풀어나가는데, 지금까지 몰랐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어 연결 지었습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느껴지니 책을 놓기 힘들었습니다. 2023년 11월에 KBS에서는 대하사극으로 고려거란전쟁을 제작하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 원작자로서 그리고 자문으로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서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깊이 다루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고려사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축소되어 전달되는데요, 저자는 이런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하여 <고려사>와 <요사>, <송사>와 같은 국내외의 사료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였습니다. 이를 집대성하여 책을 만들되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마치 역사 소설의 초반이나 중반에 등장하는 배경 설명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요한 장면은 소설의 서술 방식을 차용하며 따옴표 안에 대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에서는 삽화를 넣어서 무겁지 않도록 장치하였습니다. 어린이 서적에서나 볼법한 삽화를 통해 가볍고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형이나 전투 루트, 몽진 경로 등 필요한 부분에서는 지도를 넣어서 한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읽다 보면 지리에 약하거나 고려에서 사용하던 지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편안했습니다. 독자로서는 이런 장치들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작가는 이를 위해서 무려 14년을 바쳤다고 합니다.


고려거란전쟁은 딱 전시만 다루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흐름이기에 전쟁 사이에 흘러가는 왕실의 상황이나 주변국의 이야기도 함께 짚어봅니다. 하지만 너무 그쪽으로 치중하여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였습니다. 짜임새 있는 진행 덕분에 보다 많은 걸 알고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쉽게 서술되어 있으니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일독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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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괴이 사전 : 현대편 세계 괴이 사전
아사자토 이츠키 지음, 현정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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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과학이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발생하죠.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음... 어디 보자, 엄마들이 날카로운 촉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세계 괴이 사전에는 그렇게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이 아닌 보기 드문 현상들을 담았어요. 언젠가 들어보았던 거 같은 이야기들보다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며 탄성을 자아내는 짤막한 스토리들이 들어있죠.


신비한 이야기들을 대륙별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 편은 따로 모아서 괴이 사전을 만들었나 봐요. 그래서 이 책 <세계 괴이 사전>에는 일본의 이야기는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혹은 나타났었던 스토리들만 담겨있어요. 무척 흥미로운 자료들을 모아서 집대성했다고 보아도 좋아요. 슬랜더맨이나 애나벨 인형의 원래 이야기 같은 게 있으니 호러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딱이예요.


정말 정리가 깔끔하게 된 책인데요, 저자의 약력만 보아도 세계의 괴이나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괴담 지식과 자료가 탁월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수집물을 정리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문학부 전공자로서의 단정한 느낌도 있는 거 같아요. 여기에 번역가의 스킬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어요. 일본 문학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분인데, 미쓰다 신조 시리즈를 옮겼다니 그런 점 만으로도 신뢰감이 가더군요. 잘 번역했으리라는 느낌.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면, 제 생각에는 바다와 인접해있거나 섬 지방에 전설과 같은 미스터리 스토리가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이 책에서도 아시아의 자료가 상당히 많아요. 괴이나 괴물, 신비한 현상과 생물에 대한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있죠. 그냥 카더라 하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기이함을 모았기에 뭐랄까... 약간 공식적인? 그런 내용이 담겨있다고 보면 좋겠어요.


세계 괴이 사전이라는 이름답게 내용은 백과사전처럼 정리되어 있어요. 가나다순을 따랐으며 - 여기에서 편집자가 무척 수고로움이 느껴졌어요. - 페이지 구성도 그렇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자간과 줄 간격, 여백 등을 적절히 배치해서 답답하지 않도록 잘 구성하였더군요. 조명이 약간 노란빛이기에 종이가 부드러운 크림색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밝은 톤 갱지 느낌이에요. 살짝 거친 느낌이라서 오히려 책 분위기가 더욱 잘 살아나는 거 같아요.



이 책은 세계 괴이 사전: 현대 편으로 20세기 이후에 등장한 괴상한 현상이나 생명을 다루었어요. 하지만 첫 번째 기록이 19세기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20세기 이후에 출몰한 적이 있다면 수록되었어요. 개인 창작이라고 해도 실제로 나타났던 일이거나 혹은 실재한다는 식으로 소개되었다면 또한 여기에 수록하였어요. 그래서인지 혹시 그 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이라고 되어있는 만큼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지나치게 묘사하거나 소설처럼 풀어나가지 않았어요. 팩트만을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자료로서 읽을 수 있어요. 여기에 살을 붙이거나 흥을 돋우는 표현을 쓴다면 무서운 이야기 잘 하는 사람으로 특기를 갖출 수도 있을 거 같아요.(살짝 농담이에요.)


사전의 후반부에는 특별기고 편이 있어요. 대학교수나 조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 괴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요. 괴이의 변천이나 인터넷 문화로 인해서 새로이 등장하고 퍼져나가는 데에 대한 이론을 나누죠. 이런 부분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어요. 어딘가에 존재하는 괴물과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쪽에 끌린 건 우연이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고요.



괴이 세계사 대조 연표가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어요. 각 대륙에서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 - 실제로 그와는 무관한 일이긴 해도 - 등장한 괴이를 연표로 만들어 놓다니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걸까요? 연표를 보면서 혹시나 역사적인 사건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어지러운 심경이 괴현상을 낳은 걸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하지만,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 이론 발표와 비행소년 수용소에 나타난 악령은 무관할 테니 금세 상상을 털어버렸어요.


세계 괴이 사전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여겼는데요, 색인이 참 잘 되어 있어요. 사전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미덕이기도 하지만 유령, 요괴, 괴인, 미확인 생물 등 장르별로 나누어서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어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은 건 기타로 분류했어요. 그냥 이름을 보고 찾을 수 있도록 가나다순으로 색인 정리도 되어 있어요.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찾으면서 보면 돼요.


세계 괴이 사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는 재미도 있지만, 평소 관심 두고 있던 걸 하나씩 찾아서 보는 즐거움도 무시 못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어나갔지만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는 색인으로 찾아본 후 리틀포니에게 이야기해주면서 함께 신기해하고 있어요. 괴현상, 괴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좋을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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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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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인생을 돌아보면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유아동기부터 지금까지 내내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과거를 돌아보면 파편처럼 하나씩 무언가가 존재하기에 지금까지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그 사람은 상당히 단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13년 전의 저는 지금보다도 형편이 안 좋았었기에 아이의 생일에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고기 뷔페에 데리고 가서 밥이나 실컷 먹이는 게 전부였었죠. 그런데 세상에나, 마침 근처에서 루미나리에 행사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무료입장이라니 가난한 엄마에게는 보석과 같은 일이었죠.



카메라도 없는 데다가 스마트폰도 없던 때라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아로새겨진 그 빛들은 여전히 남아서 반짝이고 있답니다. 아이에게 네 생일 파티를 이렇게 성대하게 하네, 온 경산 시민들이 다 축하해 주는 건가 봐하면서 웃었어요. 실은, 잠시 이런 추억을 잊고 있었어요.



강진이의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서 불꽃놀이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태중의 아기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면서 보았던 풍경들이지만 마치 제가 보았던 루미나리에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림은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끄집어내어 다시 한번 좋은 감정에 젖게 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작가의 추억을 따라갑니다. 예쁘고 아기자기 한 그림들이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컬러 감각과 사랑스러움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있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옮겼습니다.



그 사랑마저 잊어버린 치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순간은, 유난히 엄격했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호랑이 훈장님 같았던 분이셨지만 그래도 손주들 중에서는 저만 아꼈던 분이셨거든요. 11년 전, 외할머니는 저보고 "아기가 물래기 어떵 키우코..."하며 걱정하셨지만 물래기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고, 저도 아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참 희한합니다. 저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마다 분노와 회한, 억울함과 같은 게 치솟는 편인데, 이상하게 저조차 잊고 있었던 따뜻함을 끄집어 냅니다. 이렇게 마음이 촉촉해서 어떻게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갈까 싶은 생각에 화급히 책장을 닫아버립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도 좋은 추억이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다시 한번 펼쳐 듭니다.



힘든 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다음날이 되고, 이렇게 하루가 쌓여 한 달, 일 년이 됩니다. 그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저는 화가 잔뜩 난 듯한 표정의 중년이 되었고,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시름하는 사이에 흰머리가 또 하나 늘어납니다. 숱이 적어 외할머니처럼 뽑아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혹시 몇 년 잘 버티다가 염색하면 탈색 없이 옴브레가 되는 건 아닐까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던 거보다 과거와 현재가 어둡지만은 않았구나 하며 마음을 놓습니다. 지금 힘들다 하더라도 몇 년 후에는 또 즐거운 행복의 파편이 존재했었다는 걸 알 게 될 테니까요.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며 너무나 커다랗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가 봅니다.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잊고 삽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는 상당히 많은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쁜 자수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위의 두 그림이 꽤 마음에 듭니다. 똑같은 마을 풍경이지만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퍽 재미있습니다. 지금 제가 살아가는 장소도 그렇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라는 물음은 질문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강진이 작가는 에세이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사랑과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글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독자는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그러모아서 패치워크 작품을 감상하듯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지거나 사소하게 여겨질 작은 천 조각을 하나씩 모아서 만들어낸 커다란 작품이 바로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잊고 살고 있던 진리를 깨닫게 해준 강진이 작가님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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