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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평점 :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인생을 돌아보면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유아동기부터 지금까지 내내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과거를 돌아보면 파편처럼 하나씩 무언가가 존재하기에 지금까지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그 사람은 상당히 단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13년 전의 저는 지금보다도 형편이 안 좋았었기에 아이의 생일에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고기 뷔페에 데리고 가서 밥이나 실컷 먹이는 게 전부였었죠. 그런데 세상에나, 마침 근처에서 루미나리에 행사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무료입장이라니 가난한 엄마에게는 보석과 같은 일이었죠.
카메라도 없는 데다가 스마트폰도 없던 때라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아로새겨진 그 빛들은 여전히 남아서 반짝이고 있답니다. 아이에게 네 생일 파티를 이렇게 성대하게 하네, 온 경산 시민들이 다 축하해 주는 건가 봐하면서 웃었어요. 실은, 잠시 이런 추억을 잊고 있었어요.
강진이의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서 불꽃놀이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태중의 아기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면서 보았던 풍경들이지만 마치 제가 보았던 루미나리에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림은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끄집어내어 다시 한번 좋은 감정에 젖게 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작가의 추억을 따라갑니다. 예쁘고 아기자기 한 그림들이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컬러 감각과 사랑스러움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있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옮겼습니다.
그 사랑마저 잊어버린 치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순간은, 유난히 엄격했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호랑이 훈장님 같았던 분이셨지만 그래도 손주들 중에서는 저만 아꼈던 분이셨거든요. 11년 전, 외할머니는 저보고 "아기가 물래기 어떵 키우코..."하며 걱정하셨지만 물래기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고, 저도 아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참 희한합니다. 저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마다 분노와 회한, 억울함과 같은 게 치솟는 편인데, 이상하게 저조차 잊고 있었던 따뜻함을 끄집어 냅니다. 이렇게 마음이 촉촉해서 어떻게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갈까 싶은 생각에 화급히 책장을 닫아버립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도 좋은 추억이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다시 한번 펼쳐 듭니다.
힘든 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다음날이 되고, 이렇게 하루가 쌓여 한 달, 일 년이 됩니다. 그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저는 화가 잔뜩 난 듯한 표정의 중년이 되었고,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시름하는 사이에 흰머리가 또 하나 늘어납니다. 숱이 적어 외할머니처럼 뽑아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혹시 몇 년 잘 버티다가 염색하면 탈색 없이 옴브레가 되는 건 아닐까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던 거보다 과거와 현재가 어둡지만은 않았구나 하며 마음을 놓습니다. 지금 힘들다 하더라도 몇 년 후에는 또 즐거운 행복의 파편이 존재했었다는 걸 알 게 될 테니까요.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며 너무나 커다랗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가 봅니다.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잊고 삽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는 상당히 많은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쁜 자수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위의 두 그림이 꽤 마음에 듭니다. 똑같은 마을 풍경이지만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퍽 재미있습니다. 지금 제가 살아가는 장소도 그렇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라는 물음은 질문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강진이 작가는 에세이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사랑과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글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독자는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그러모아서 패치워크 작품을 감상하듯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지거나 사소하게 여겨질 작은 천 조각을 하나씩 모아서 만들어낸 커다란 작품이 바로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잊고 살고 있던 진리를 깨닫게 해준 강진이 작가님이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