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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소녀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6월
평점 :
옛날 옛날에, 투덜거리기 좋아하는 나무꾼이 살았습니다. 어떤 경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세 가지 소원을 획득하는데요. 이 남자는 바보같이 - 어쩌면 진정한 소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 소시지가 산더미처럼 많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정말로 잔뜩 쌓인 소시지. 아내는 화가 나서 뭐 이딴 소원을 빌어가지고 소원을 낭비했냐면서 빌어먹을 소시지 니 코에나 붙어라!!!라고 말합니다. 동화책에서는 순화되었겠지만 코에 붙으라고 한 것 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 소원으로 코에서 소시지가 떨어지기를 빕니다. 어리석은 자를 보며 웃었지만, 우리는 그들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김종일 장편소설 <마녀의 소녀> 프롤로그에 윌리엄 W. 제이콥스의 소설 원숭이 손이라는 소설이 언급됩니다. 어린 시절에 읽고 너무나 무서워했던 소설입니다.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많고, 간절히 바라는 것도 많았음에도 <원숭이 손>이라는 소설 덕분에 저는 함부로 소원을 빌지 않았고, 그렇다기보다는 소원 따위를 빌면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가졌었어요.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손을 얻은 남자가 200파운드를 소원하는 바람에 아들이 기계에 끼어 죽고 보상금으로 그 돈을 얻게 됩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아들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빕니다. 그런데 정말로 아들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문밖에 있는 그것은 자신이 알던 그가 아닐지도 모르는데요. 공포에 질린 아버지는 아들이 사라지기를 마지막 소원으로 빕니다. 어머니가 문을 열었을 때엔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한 줄로 요약한다고 해놓고 여러 줄이 되어버렸군요.
디즈니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쾌활한 지니를 꺼내주기 전까지는 소원이란 빌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지니와 함께한 알라딘에게 그저 프린스 알리로서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우리는 그 영화를, 애니메이션을 행복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저도 이제는 작은 소원 정도는 빌어봐도 좋은 게 아닐까 하며 은근히 기대해봅니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은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어떤 할아버지가 기다란 승용차를 타고 와서 나를 찾으며 "내가 실은 네 진짜 할아버지다."라거나 갑자기 잘 차려입은 변호사가 서류를 내밀면서 재산을 증여하는. 어쩌면 우리 때랑 변한 게 없을까요. 부모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갑자기 아무 고민 없는, 풍요로운 삶을 소원하는 것이겠죠.
소원은 여러 가지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 그냥 자고 일어나면 대학생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좋아하는 그 애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마녀의 소녀>에 등장하는 소녀들도 별다를 바 없었습니다.
진희는 나린이에게 묻습니다.
"소원이 뭐야?"

이토 준지의 토미에를 닮았을 것만 같은 진희는 지니도 아니면서 나린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한밤중의 이상한 의식.
그것을 치르고 나니 정말로 사흘 뒤.
마음에 두었던 동준이 공개 고백을 합니다.
사귀고 있던 혜정이는 어쩌고.
기쁘지만 꺼림직합니다.
둘이 잘 해보라던 말과는 달리 도서관 책에 저주의 글을 적은 혜정이는 며칠 후 SNS에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살합니다. 온라인으로 퍼져나간 유서와 악성 댓글들. 이제 나린은 공인 통수녀입니다.
같은 반 아이들의 욕설은 기본이고 집에 찾아와 라커 테러를 하고 심지어 학교까지 따라와 황산 테러를 하려던 놈도 있었습니다.
그저 작은 소망 하나였을 뿐인데, 그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소원이 없던 때로 돌아가는 소원 따위는 빌 수 없습니다.
나린이 빌었던 소원은 나린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혜정의 남자친구였던 동준도 다치고 나린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던 현민도 나린을 지키다 다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신자살했던 혜정의 영혼이 동준이 사준 마녀 인형 안에 갇혀있는 겁니다. 어쩐지.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음에도 집 안이 엉망이 되어 있더라니.
혜정의 억울한 영혼도 나린을 괴롭... 어, 어라.
어느새 둘은 떼려야 뗄 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됩니다.
전우애인가?
둘이서 이런 관계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염력을 가진 마녀 인형 혜정과 그냥 소녀 나린 그리고 힐링 펙터인지 플라나리아 능력인지 아무튼 이상하게 상처 치유력이 좋은, 게다가 오컬트나 호러 소설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초능력이라고 생각되는 재력까지 갖춘 현민. 그리고 소원 한 번 잘 못 빌었다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동준까지.
이들은 모두 한 편이 되어 마녀의 힘에 저항할 수 있을까요?
....저항할 수 있겠죠?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네......
기이한 힘을 가진 진희뿐만 아니라 주인공 4인방에 대해서도 제가 아직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걸 어쩌면 좋은가요? 나린 자신도 스스로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희의 정체와 나린의 관계. 과연 무엇일까요?
<마녀의 소녀>는 학원 미스터리 오컬트 로맨스 소설입니다.
20대 초반 여성을 타깃으로 썼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아닙니다!!
그 이상의 연령층에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