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코스트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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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냉전시대에는 첩보물이 유행했었어요. 주말에 MBC나 KBS에서 007 시리즈를 해주기도 했는데요, 정말 재미있었죠. 새나라의 어린이였지만, 영화 마니아인 아빠는 TV에서 해주는 영화를 보다가 늦게 자는 건 허용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스파이는 멋진 거고 간첩은 나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이중적인 반공 교육 때문이었던 거 같네요.



얼마 전에 '아마존 선정 올해의 미스터리&스릴러'로 꼽힌 <스파이 코스트>를 읽었어요. 표지부터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디자인인데요, 그만큼 내용도 재미있을까 기대하며 페이지를 열었답니다. 메디컬 스릴러로 이미 유명한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스파이 소설이라니!


최근에 많이 바빠서 책을 한 번에 읽기 힘들었기에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 보았는데요, 어딜 가나 좋은 친구가 되어줄 만큼 재미있었어요. 지하철을 한 시간도 넘게 타야 한다거나 기차로 여행을 할 계획이라면 여행 메이트로 삼아도 좋을 거예요. 두께감이 있는 도서지만 생각보다 무게는 가벼워서 가방에 쏙 넣고 가면 되거든요. 저도 이 책을 데리고 수원으로 대전으로 여정을 떠났었어요.



성심당 슈톨렌보다 더 가벼웠고, 슈톨렌만큼 달콤하며 향긋한 데다가 슬프기까지 했던 스파이 소설이었기에 함께 여행하길 잘 한 거 같아요. 저자인 테스 게리첸은 메디컬 스릴러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저는 놀랍게도 아직까지 이 저자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명하다는 메디컬 스릴러가 아니라 스파이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답니다. 전문 분야가 아닌 쪽의 책이라 혹시 어색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스토리 흐름이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메디컬 스릴러를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어떤 분 블로그를 보니까 이미 테스 게리첸의 후속작이 나올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내년에 출간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떨지. 살짝 기대해 볼까요?


스파이 코스트의 주인공은 현장에서 뛰고 있는 요원은 아니에요. 오래전 불의의 사고를 겪고 은퇴한 후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이에요. 은퇴한 CIA 요원인 메기 버드는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관계를 맺고 닭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며 살아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과거의 '그'사건과 연관이 있는 다이애나라는 여성 요원이 암살자에게 쫓기는 사건이 발생해요. 그녀는 무사히 빠져나가긴 했지만 그 뒤로 은퇴한 요원들이 공격을 받는 등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죠. 그들은 모두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사람들이라 결국 메기 역시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없었어요.



메기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고 다이애나와 연락이 되는지 물어보았던 초면의 한 요원이 갑자기 시신이 되어 농장 앞에 버려진 사건 이후, 소설은 본격적으로 진행돼요. 독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과거로 돌아가 메기가 겪었던 일들을 보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어떻게 생존할지를 지켜보게 돼요.


​단 하나뿐이었던 아름다운 사랑을 잃고 삶을 이어가는 메기 버드였지만, 자신을 추격하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보스를 찾아낸답니다. 옛 CIA 동료들과 마티니 클럽을 결성하고 한자리에 모여서 작전을 의논하는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몰입감이 좋았어요.



테스 게리첸은 평범한 흐름 속에 독자를 잡아두는 힘이 있는 거 같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은퇴한 CIA가 활약하는 내용이라며!'라고 구시렁거린 적도 있었거든요. 메기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반 정도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백발의 중년 여성이 맹활약하는 걸 보고 싶었었나 봐요.



하지만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본 덕분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왜 메기는 아직도 슬퍼하는지를 가슴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흐름의 스파이 소설이었어요.


매력적인 메기 버드를 다시 한번 책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시리즈물로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스파이 코스트는 TV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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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장르 - 인스타툰 작가들의 일·삶
김그래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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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좋은 카툰을 데려다줄 때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한 번씩 눈 여겨본답니다. 그러다 보면 유독 눈에 확 들어오거나 마음에 꽂히는 툰이 있어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작은 행복들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스토리를 만나면 손을 멈추고 팔로우하게 되죠.

이번에 만난 <일상이 장르>는 인스타툰 작가들의 소중한 날들을 담은 에세이집이에요. 저는 이 책을 만나기 전에 이미 펀자이씨의 툰을 구독하고 있었기에 더욱 반가웠어요. 시간을 달리는 할머니를 보며 소소한 감동을 받고 있었거든요.


<일상이 장르>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담은 책으로 네 명의 인스타툰 작가가 함께 했어요. 카툰 속에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읽어 내려가는 동안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자신의 삶을 카툰에 녹인다는 건 이런 의미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어요.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기에 풀어내는 이야기도 달랐어요.

생활툰을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보이는 삶과 실제는 다르다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좋아하는 분야가 업이 된다는 거, 그거 정말 쉽지 않은 거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든 꿋꿋이 버티고 이겨나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게 참 감동이었어요.

일상의 장르는 네 명의 작가가 함께 하고 있어요. 김그래 작가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도, 커다란 천을 뒤집어쓴 듯한 모습의 쑥 작가도,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1도,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는 펀자이씨가 참여하고 있어요. 각각 다른 스타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일상이 장르로 스며드는 과정을 잘 알려주고 있어요. 날마다 경험하는 소소한 순간들이 어떻게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좋은 카툰을 어느 날 선물처럼 가져다줄 때가 있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귀엽거나 독특한 메시지를 보면 손을 멈추고 유심이 들여다보곤 해요.

사람의 눈길을 끌어들이고 순간을 사로잡는다는 건 보통의 일이 아니에요.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반가운 거라고 생각해요.


인스타에서 만난 작가들은 툰 안에 담겨있는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 겪어왔던 우여곡절들이 들어 있어요. 좋아하는 일이 싫어지지 않도록, 잘 해내도록 노력해온 세월이 들어있죠. 넘어졌다가 일어나서 다시 걷고 달리기까지의 감정과 생각들을 진솔하게 풀어낸답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하며 먹고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니 꿈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내가 갉아먹히는 게 아닌가 하며 괴로워하곤 했어요. 그러다가 작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보고 나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작가 역시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고민이나 행복을 찾는 여정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다는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거든요. 일과 생존, 삶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작가들은 일상에서 만난 깨알 같은 행복을 가슴에 심어서 싹을 틔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오늘부터 바로 그렇게 해보려고요.


<일상이 장르>는 인스타툰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읽는다면 그들의 삶을 더욱 진하게 느낄 거예요. 하지만 팬이 아니더라도 일과 삶의 경계에서 힘겨워하는 사람에게도 도움 되는 책이에요. 네 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점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어요. 물론 힘도 난답니다!

저도 제 일상을 장르로 만들어보려 해요.

아마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거처럼 블랙 코미디가 될 테지만, 아무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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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 기후변화, 금융위기, 인간을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
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 디플롯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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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각보다 읽는 게 오래 걸렸던 도서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입니다. 양장본으로 두께감이 조금 있다고 생각했지만, 거의 2주가 걸릴 정도로 내용이 상당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설명한다고 하면 조금 과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확실한 일들을 설명하는데, 이만한 책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자인 팀 팔머는 불확실성을 통계와 도식을 이용하여 세계의 본질을 풀어냈습니다. 이론 물리학자로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대신, 기상학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비 올 확률을 %로 볼 수 있게 된 데에는 팀 팔머의 역할이 컸다고 보면 됩니다.

팀 팔머의 저서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수학으로 탐구하며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다루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혼돈의 세계는 딱 떨어지는 정답을 찾기는 힘들지만, 답을 찾아가는 길을 꾸준히 따라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기후변화, 금융위기, 전쟁과 같은 일들뿐만 아니라 팬데믹의 확산 경로 추적 등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을 불확실성의 관점에서 새로이 조명하여 찾아냅니다. 초기 조건의 앙상블 모델을 활용하여 불확실성을 수용하면 확률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고전 역학에서의 불확실성은 관찰자의 측정 오차나 실험 환경의 한계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관찰하고 측정하며 데이터를 취급하면 불확실성은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불확정성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양자 입자는 -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알 수 있듯 - 그 자체로 불확정성을 포함합니다.

양자역학에서 불확실하다는 건 입자의 위치, 운동량 모두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면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운동량을 정확히 알면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 우리가 고등학생 때 마찰계수는 0이다는 조건을 걸었듯 -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조건을 두고서 계산하고 이해해왔습니다.

따라서 양자 역학은 고전 물리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여 자연을 완벽히 계산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불확실성은 예측의 불가능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자연 현상에 대한 우리의 예측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왜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는가, 기상청은 뭐 하는 곳인가 하며 화를 내기도 하고 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를 읽고 나니 정확히 맞춘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기상 시스템은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소용돌이와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공간의 차원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고 복잡합니다. 흔히 사람은 3차원에 있다고 여기지만 XYZ 좌표에 정확히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경우에만 해당합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차원이 달라지는 데다가 다른 사람이 근처에 있다면 상호작용이 발생하면서 18차원 이상의 계가 생깁니다.

하물며 대기 중에서 벌어지는 일은 슈퍼컴퓨터로도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합니다. 현재 사용하는 일기예보 모형의 상태 공간 차원은 10억 차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간 차원은 이보다 더 방대하다는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방정식이 비선형적이기에 초기 조건의 아주 작은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큰 변화를 초래합니다.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한다고 허리케인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 증폭되기에 결국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상 예측에는 앙상블 예측 시스템과 같은 확률적 접근법으로 초기 조건과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고려합니다. 날씨는 지난 데이터를 활용해서 저번에는 이랬으니까 비가 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올 것이라는 식으로 예측될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통계적으로 접근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혼돈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팀 팔머는 불확실성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을 합니다. 불확실성을 수용하면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금융, 전쟁, 팬데믹, 두뇌와 같이 복잡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불확실성의 과학이 거의 모든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포인트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있습니다. 정확히 파악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혼돈의 과학을 활용하면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과학적 관점에 혼돈을 어떻게 도입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과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존 과학은 확실성과 정확한 예측을 지향했지만, 오히려 불확실성을 인정함으로써 현실의 위기에서 현명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집니다.


이 책은 이론물리학과 기상학, 수학과 통계 등 복잡한 개념이 주를 이룹니다. 초반 도입부에서는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론을 넘어서서 들으면서부터는 차근차근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읽을수록 더 많은 걸 알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도서였습니다. 인덱스 플래그를 잔뜩 붙여서 고슴도치처럼 되어버렸는데, 그만큼 좋은 도서라는 의미이므로 두고두고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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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 강의 - 10개의 강의로 프랑스사 쉽게 이해하기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바타 미치오 지음, 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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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이모들이 보던 잡지에서 페르젠을 처음 만난 후, 오스칼을 알게 되었어요. 어리니까 혁명이나 봉기 이런 건 전혀 이해 못하고 반짝반짝 아름다운 성에서 공주님과 왕비님 그리고 오스칼처럼 멋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만 생각했었죠. 하지만 조금 더 커서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았더니 제가 생각하던 그런 게 아니었어요.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1980년대에 출간한 프랑스 혁명사 (혹은 프랑스 대혁명사)를 읽었어요.

하지만 역시 제대로 이해 한 건 아니었기에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훑었다고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2015년에는 나카노 교코의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을 읽었는데요, 그때도 역시 프랑스 혁명사 - 그중에서도 일부에만 머물러 있었어요. 프랑스 역사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한국사와 세계사 흐름에도 약한 제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었죠.

 

시바타 미치오의 프랑스사 강의

 

하지만 시바타 미치오의 '프랑스사 강의'를 읽고 나서는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 책은 2천여 년에 걸친 프랑스의 역사적 사건들을 10개의 테마로 나누어서 마치 강의를 하듯 설명해요. 시바타 미치오 교수는 서양사학과 중에서도 프랑스 근대사를 전공했어요. 프랑스사에 대해 많은 저서를 내었기에 어쩌면 과거에 제가 읽었던 책도 이 교수님의 책일지도 모르겠어요. - 번역이 되었었다면 말이죠.

<프랑스사 강의>AK커뮤니케이션즈의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의 신간으로, 기존 시리즈와 같은 흐름과 분량으로 제작되었어요. 두껍지 않은 분량에 방대한 내용을 담아, 현대인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지식 소양을 전하는 취지에 맞는 도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 만큼 이 책을 읽으면서 유럽의 역사의 흐름 중 하나로서의 프랑스사의 의의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어요.

저에게 지식이 풍부했더라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점으로 보는 프랑스사와 시바타 미치오의 독특한 시각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은 좀 남네요.

 

프랑스사 강의

 

유럽은 다양한 민족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침략을 거듭하며 영토의 경계가 달라졌다는 특징이 있어요. 물론 아시아권도 마찬가지지만, 길지 않은 기간에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기에 유럽 다른 국가들과의 연계성을 생각하며 읽으면 더 좋아요. 하지만 이 책에 모든 히스토리를 담을 수는 없으니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파악한다는 개념으로 읽으면 될 거 같아요.

 

프랑크 왕국의 탄생

솔직히 처음에 프랑스의 시작, 갈로로만시대에 대해 배울 때는 지루했어요. 우리처럼 단군 할아버지가 나오는 게 아니어서 그랬나 봐요. 어쨌든 이 책은 갈로로만시대를 거쳐서 프랑크왕국의 건설로 문을 열어요. 그런데 이 왕국의 탄생은 서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어요.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를 통해 프랑크 왕국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데요, 샤를마뉴 대제는 당시 분산되어 있던 유럽 대륙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답니다.

하지만 샤를마뉴 대제의 사후에 손자 대에 이르러서 분할 상속 분쟁과 내란이 일어났고, 베르됭 조약으로 삼분할 되었어요. 그 후에도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결국 지리적으로 따지자면 현재의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삼국의 원형이 되었어요.

 

백년전쟁의 영향

백년전쟁은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전투로 1339년부터 1453년까지 지속된 전투에요. 프랑스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한 전쟁이죠. 오를레앙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잔다르크를 아시죠? 그런데 프랑스사 강의에서는 이 소녀의 스토리가 내내 방치되었다가 19세기에 애국의 성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해요. 역사 사관 혹은 정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조금 씁쓸하네요.

 

절대왕정의 시대

절대왕정 하면 루이 14! 태양왕으로 불리는 왕이죠. 왕권을 강화하면서 프랑스가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어요. 베르사유 궁을 짓기도 하고 여러 가지 왕권 강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요, 사실 그만한 재정이 확보되었던 건 아니에요. 그래서 이때부터 새어나가던 재정이 이후에는 줄줄 새게 되었고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어요.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시작해서 프랑스 사회를 뒤바꿔 놓았어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성난 군중이 바스티유로 쳐들어갔고 이후에는 루이 16세와 앙트와네트를 처형하기에 이르죠. 절대왕정을 거부하고 계급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길 원했던 군중들은 혁명을 일으켰어요. 자유, 평등, 박애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어요.

 

그 후

나폴레옹 제국이 서기도 하고 혁명이 일어나기도 하며 복잡하고도 어려운 상황에 여러 번 놓여요. 정치적으로 안정화되지 못한 시기였기에 서민들은 정말 힘들었어요. 1846년에는 흉작으로 인한 식량부족에 공업 생산의 부진으로 실업자와 굶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그해 2월 민중이 시청과 왕궁을 점거해요. 민주주의와 사회적 권리의 필요성을 알린 중요한 사건이에요. 그리고 19685월 혁명도 있었어요.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사회와 문화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어요.

 

프랑스사의 재해석

 

시바타 미치오의 '프랑스사 강의'는 복잡한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어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프랑스사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 뼈대가 되어 줄 수 있어요.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알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손색없는 도서에요. 또한 역사 속의 사건들이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며, 현재의 우리가 미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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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세계 - 어느 알려지지 않은 차원과 그곳에서 온 기이한 생명체들에 대한 기록
유린 지음, 도밍 그림 / 고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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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 세계 곳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 기현상과

 

그에 연루된

 

괴이한 존재들에 대한

 

취재의 기록이다.

 

intro

 

 

 

안내문을 꼼꼼히 읽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각종 전자 제품 사용 설명서는 물론 상비약이고 처방약이고 모든 설명서를 죄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지만, 저 역시도 항상 모든 걸 읽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아주 가끔 떠난 여행에서 정말 심심할 때 주의 사항 같은 걸 읽고, 비상 탈출구를 알아두는 정도죠.

 

 

게시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읽어줬으면 하는 거지만, 꼭 읽어보라고 당부하지 않으면 그냥 스치듯이 지나가는 게 다반사라 짐작해요. 그런데 보통은 반드시 읽으라고 하는 수칙도, 쭉 훑어보면 상식적인 수준이기에 예의와 매너만 갖추고 있다면 그다지 별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토요코인에서는 욕실에서 수증기가 객실 내로 유입되면 화재 경보가 울릴 가능성이 있으니 꼭 문을 닫고 이용하라는 수칙이 있었어요. 욕조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혹시 누가 정말 그랬던 건 아닐까? 안내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욕조를 이용한 사람도 있었겠지... 싶더라고요.

 

 

일상이라면 이로 인한 혼란 야기를 사과하고 끝나거나 배상 책임을 진다거나 하는 현실적인 대처가 가능하겠죠. 하지만 주의 사항이 상상도 못 했던 거라면 어떨까요? 평범한 수칙들 사이에 끼어들어있는 이상한 내용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현실의 이물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이런 게 바로 나폴리탄 괴담이랍니다.

 

여러분, 객실을 이용하거나 산장에 묵을 때.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거나 갑자기 입원할 일이 생길 때, 식물원에 방문하거나 입산할 때 등등. 적혀있는 안내문은 꼼꼼히 읽으시길 바라요. 왜냐하면 사소한 행동 하나 때문에 괴이에 갇힐 수도 있으니까요.

 

 

만일, 이상하다. 궁금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인터넷에 검색하거나 질문하셔요. 그러면 어쩌면, 기묘한 혹은 쎄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너머의 세계>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안내문 혹은 경고문이 있어요.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인답니다. 하나도 대충 읽고 넘어가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소설의 초반에 작가가 한 가지 장치를 해두었거든요.

 

 

○○산장은 해당 안내문을 무시하여 발생한 사고와 사건 들에 대해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용객 여러분은 사전에 안내문을 충분히 숙지해 주십시오.

또한 만일 숫자 배열이 잘 못되었거나 삭제된 내용이 있다면 잘못된 안내문이니,

접수처로 돌아와 새로운 안내문을 발급받으시길 바랍니다.

 

- P.17 산장 이용 안내문

 

 

이용자가 입수한 안내문조차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다른 안내문을 받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오타가 생겼구나, 변경된 사실이 있는데 수정하는 대신 줄을 그었구나... 이렇게 여기겠죠. 그래서 이 안내문도 찜찜한 거예요.

 

 

<너머의 세계>에는 꽤 많은 안내문과 지침이 등장해요. 그런데 중간중간 숫자 배열이 이상한 거도 있고, 삭제 조항이라고 적혀있는 것도 있어요. 앞의 경고를 기억하지 못했거나 대충 읽으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산장 안내문에만 해당하는 거니까 여기는 상관없겠지 하며 지나칠 수도 있죠.

 

하지만 마치 레딧 괴담처럼 짧게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서로 접점을 갖고 있고 있어요. 그래서 스치듯 지나가는 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 전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요. 우리의 현실에 끌어다 놓는다면 전국적으로 괴이한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 소설은 기이한 사건에 대한 취재 기록이자 보고서이지만, 각각은 별개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관련된 접점이 있어요. 이를 느끼면서 읽으면 재미가 한 층 늘어날 거예요.

 

이세계 -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와 한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진 틈으로 발생하는 기현상. 그게 나폴리탄 괴담의 시작일 거예요. 평소 레딧 괴담 좋아하셨던 분은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으실걸요?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기묘한 분위기의 그림이 느낌을 한층 업그레이드하니까 푹 빠지실지도 몰라요.

 

처음에는 왜 <너머의 세계>가 하드커버인가 의아했는데, 읽고 나니까 알 것 같아요. 짤막한 스토리이지만 차분히 천천히 그 괴이함을 즐기면서 한 장 한 장 넘겨야 하거든요. 한 번 다 읽고 나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래서 표지를 단단하게 만들었나 봐요.

 

책 읽기에 약한 사람들도 만나기 좋은 도서였어요.

하지만 부디 신중히 차곡차곡 읽길 바라요.

 

놓쳐버린 틈새에 잡아먹히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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