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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코스트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평점 :
아시다시피 냉전시대에는 첩보물이 유행했었어요. 주말에 MBC나 KBS에서 007 시리즈를 해주기도 했는데요, 정말 재미있었죠. 새나라의 어린이였지만, 영화 마니아인 아빠는 TV에서 해주는 영화를 보다가 늦게 자는 건 허용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스파이는 멋진 거고 간첩은 나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이중적인 반공 교육 때문이었던 거 같네요.
얼마 전에 '아마존 선정 올해의 미스터리&스릴러'로 꼽힌 <스파이 코스트>를 읽었어요. 표지부터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디자인인데요, 그만큼 내용도 재미있을까 기대하며 페이지를 열었답니다. 메디컬 스릴러로 이미 유명한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스파이 소설이라니!
최근에 많이 바빠서 책을 한 번에 읽기 힘들었기에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 보았는데요, 어딜 가나 좋은 친구가 되어줄 만큼 재미있었어요. 지하철을 한 시간도 넘게 타야 한다거나 기차로 여행을 할 계획이라면 여행 메이트로 삼아도 좋을 거예요. 두께감이 있는 도서지만 생각보다 무게는 가벼워서 가방에 쏙 넣고 가면 되거든요. 저도 이 책을 데리고 수원으로 대전으로 여정을 떠났었어요.
성심당 슈톨렌보다 더 가벼웠고, 슈톨렌만큼 달콤하며 향긋한 데다가 슬프기까지 했던 스파이 소설이었기에 함께 여행하길 잘 한 거 같아요. 저자인 테스 게리첸은 메디컬 스릴러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저는 놀랍게도 아직까지 이 저자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명하다는 메디컬 스릴러가 아니라 스파이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답니다. 전문 분야가 아닌 쪽의 책이라 혹시 어색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스토리 흐름이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메디컬 스릴러를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어떤 분 블로그를 보니까 이미 테스 게리첸의 후속작이 나올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내년에 출간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떨지. 살짝 기대해 볼까요?
스파이 코스트의 주인공은 현장에서 뛰고 있는 요원은 아니에요. 오래전 불의의 사고를 겪고 은퇴한 후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이에요. 은퇴한 CIA 요원인 메기 버드는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관계를 맺고 닭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며 살아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과거의 '그'사건과 연관이 있는 다이애나라는 여성 요원이 암살자에게 쫓기는 사건이 발생해요. 그녀는 무사히 빠져나가긴 했지만 그 뒤로 은퇴한 요원들이 공격을 받는 등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죠. 그들은 모두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사람들이라 결국 메기 역시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없었어요.
메기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고 다이애나와 연락이 되는지 물어보았던 초면의 한 요원이 갑자기 시신이 되어 농장 앞에 버려진 사건 이후, 소설은 본격적으로 진행돼요. 독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과거로 돌아가 메기가 겪었던 일들을 보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어떻게 생존할지를 지켜보게 돼요.
단 하나뿐이었던 아름다운 사랑을 잃고 삶을 이어가는 메기 버드였지만, 자신을 추격하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보스를 찾아낸답니다. 옛 CIA 동료들과 마티니 클럽을 결성하고 한자리에 모여서 작전을 의논하는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몰입감이 좋았어요.
테스 게리첸은 평범한 흐름 속에 독자를 잡아두는 힘이 있는 거 같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은퇴한 CIA가 활약하는 내용이라며!'라고 구시렁거린 적도 있었거든요. 메기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반 정도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백발의 중년 여성이 맹활약하는 걸 보고 싶었었나 봐요.
하지만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본 덕분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왜 메기는 아직도 슬퍼하는지를 가슴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흐름의 스파이 소설이었어요.
매력적인 메기 버드를 다시 한번 책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시리즈물로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스파이 코스트는 TV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