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세계 - 어느 알려지지 않은 차원과 그곳에서 온 기이한 생명체들에 대한 기록
유린 지음, 도밍 그림 / 고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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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 세계 곳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 기현상과

 

그에 연루된

 

괴이한 존재들에 대한

 

취재의 기록이다.

 

intro

 

 

 

안내문을 꼼꼼히 읽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각종 전자 제품 사용 설명서는 물론 상비약이고 처방약이고 모든 설명서를 죄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지만, 저 역시도 항상 모든 걸 읽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아주 가끔 떠난 여행에서 정말 심심할 때 주의 사항 같은 걸 읽고, 비상 탈출구를 알아두는 정도죠.

 

 

게시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읽어줬으면 하는 거지만, 꼭 읽어보라고 당부하지 않으면 그냥 스치듯이 지나가는 게 다반사라 짐작해요. 그런데 보통은 반드시 읽으라고 하는 수칙도, 쭉 훑어보면 상식적인 수준이기에 예의와 매너만 갖추고 있다면 그다지 별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토요코인에서는 욕실에서 수증기가 객실 내로 유입되면 화재 경보가 울릴 가능성이 있으니 꼭 문을 닫고 이용하라는 수칙이 있었어요. 욕조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혹시 누가 정말 그랬던 건 아닐까? 안내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욕조를 이용한 사람도 있었겠지... 싶더라고요.

 

 

일상이라면 이로 인한 혼란 야기를 사과하고 끝나거나 배상 책임을 진다거나 하는 현실적인 대처가 가능하겠죠. 하지만 주의 사항이 상상도 못 했던 거라면 어떨까요? 평범한 수칙들 사이에 끼어들어있는 이상한 내용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현실의 이물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이런 게 바로 나폴리탄 괴담이랍니다.

 

여러분, 객실을 이용하거나 산장에 묵을 때.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거나 갑자기 입원할 일이 생길 때, 식물원에 방문하거나 입산할 때 등등. 적혀있는 안내문은 꼼꼼히 읽으시길 바라요. 왜냐하면 사소한 행동 하나 때문에 괴이에 갇힐 수도 있으니까요.

 

 

만일, 이상하다. 궁금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인터넷에 검색하거나 질문하셔요. 그러면 어쩌면, 기묘한 혹은 쎄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너머의 세계>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안내문 혹은 경고문이 있어요.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인답니다. 하나도 대충 읽고 넘어가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소설의 초반에 작가가 한 가지 장치를 해두었거든요.

 

 

○○산장은 해당 안내문을 무시하여 발생한 사고와 사건 들에 대해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용객 여러분은 사전에 안내문을 충분히 숙지해 주십시오.

또한 만일 숫자 배열이 잘 못되었거나 삭제된 내용이 있다면 잘못된 안내문이니,

접수처로 돌아와 새로운 안내문을 발급받으시길 바랍니다.

 

- P.17 산장 이용 안내문

 

 

이용자가 입수한 안내문조차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다른 안내문을 받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오타가 생겼구나, 변경된 사실이 있는데 수정하는 대신 줄을 그었구나... 이렇게 여기겠죠. 그래서 이 안내문도 찜찜한 거예요.

 

 

<너머의 세계>에는 꽤 많은 안내문과 지침이 등장해요. 그런데 중간중간 숫자 배열이 이상한 거도 있고, 삭제 조항이라고 적혀있는 것도 있어요. 앞의 경고를 기억하지 못했거나 대충 읽으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산장 안내문에만 해당하는 거니까 여기는 상관없겠지 하며 지나칠 수도 있죠.

 

하지만 마치 레딧 괴담처럼 짧게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서로 접점을 갖고 있고 있어요. 그래서 스치듯 지나가는 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 전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요. 우리의 현실에 끌어다 놓는다면 전국적으로 괴이한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 소설은 기이한 사건에 대한 취재 기록이자 보고서이지만, 각각은 별개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관련된 접점이 있어요. 이를 느끼면서 읽으면 재미가 한 층 늘어날 거예요.

 

이세계 -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와 한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진 틈으로 발생하는 기현상. 그게 나폴리탄 괴담의 시작일 거예요. 평소 레딧 괴담 좋아하셨던 분은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으실걸요?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기묘한 분위기의 그림이 느낌을 한층 업그레이드하니까 푹 빠지실지도 몰라요.

 

처음에는 왜 <너머의 세계>가 하드커버인가 의아했는데, 읽고 나니까 알 것 같아요. 짤막한 스토리이지만 차분히 천천히 그 괴이함을 즐기면서 한 장 한 장 넘겨야 하거든요. 한 번 다 읽고 나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래서 표지를 단단하게 만들었나 봐요.

 

책 읽기에 약한 사람들도 만나기 좋은 도서였어요.

하지만 부디 신중히 차곡차곡 읽길 바라요.

 

놓쳐버린 틈새에 잡아먹히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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