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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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머리와 가슴이 말하는 답이 내겐 다르다. 노골적이고 비상식적인 혐오 표현이 팽배한 이 시대에서 살기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거짓, 가짜, 짜깁기 정보가 팩트체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속보, 이슈가 되는 '반지성주의'는 이미 도처에 깔려 있어서 상식을 말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신사답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HATE 혐오>를 읽기가 처음엔 버거웠다. 

과연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그들이 혐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사랑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까?

정말로? 뤼얼리?


 <혐오>는 '혐오표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와 평등 원칙을 위반한다고 말한다. 혐오표현금지법은 효과가 없으며 심지어 역효과를 유발한다며 저자는 차별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해법인 '대항표현'을 제시한다. 

침묵을 깨고 더 많은 표현하기, 소회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서 힘 실어 주기, 혐오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혐오 발언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기 등을 몇 가지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나 이런 해법이 유용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식하기에 용감한 혐오'들을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하지만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엔 동의한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이 땅 위에 제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공정감각>에서 저자인 나임윤경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 한가운데에 공을 가만히 두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굴러가듯이, 중립이라는 명목하의 침묵 또한 기존의 구조대로 흘러가도록 놔두겠다는 엄청난 정치적 선언이다.'라고 말한다. 요즘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 이슈가 되면 사람들은 '일단 중립기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땅이 평평할 때나 중립기어가 (혹은 침묵이) 효과가 있지 경사진 길에서 중립기어를 놓는다는 건 나도 다치고 상대도 다치게 할 수 있는 엄청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다.


 목소리 내기, 표현하기, 힘 실어주기, 혐오에 관심 갖기.

우리는 언제나 젊지 않기에, 누구나 소수가 될 수 있기에 성숙한 시민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자세를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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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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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적이고 확고한 느낌의 책 제목에 이끌려 펼친 이 책은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에서 빈곤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를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이라고 이름을 바꿔 읽어도 큰 맥락에서는 다를 게 하나 없음을 느꼈다.

 <미국이 만든 가난>에 의하면 미국인 아홉 명 가은데 약 한 명이 가난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3800만 명 이상이 기본적인 생필품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고, 1억 800만 명 이상이 1년 에 5만 5000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콘서트로 10억 달러(1조30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거나, 1초에 150불을 버는 빌게이츠는 길가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게 손해라는 등 미국의 부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다. 

하지만 정말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기회의 땅 미국에서 가난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마약과 질병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저자는 어떤 이들의 삶을 살찌우기 위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삶을 위축시키는지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질 높은 서비스, 엄청난 특가, 새벽 배송, 로켓 배송, 빠른 배달에 열광하는  '우리'가 가난의 원인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빈곤이 유지되어야 이득을 보는 수많은 '우리'와 '권력'이 존재하는 한 빈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빈곤은 자본주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빈곤은 종식될 수 있고, 빈곤을 없애려면 아주 똑똑해야 할 필요도 없다. 빈곤을 충분히 싫어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지만 과연 빈곤은 종식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함께 했던 시간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의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밀도 높은 독서였다. 

새로 구입한 인덱스의 1/3을 여기에 다 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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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 Philos 시리즈 24
데니스 덩컨 지음, 배동근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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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원래부터 정해져 있었던 듯 그 자리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부모님의 보살핌,

핸드폰 속 카메라 기능,

숫자

책의 인덱스


나에겐 이런 것들이 그렇다.


 그 자리에서의 역할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질 수록

부재를 맞딱뜨렸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어색할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덱스>를 읽으면서 아 맞네, 책의 인덱스(색인) 또한 누군가가 발명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것의 된 거겠지! 생각하니 책에 대한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고 그만큼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


 색인은 '본문 중의 중요한 것을 뽑아 한 곳에 모아 이들의 본문 소재의 페이지를 기재한 것'이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이렇게 정리하고 기재할 생각을 했을까.

고대 이집트에서 중세의 수도원, 현재의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읽기 문화의 혁명을 가져온 이 발명품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게 이렇게 된다고?'하는 놀라움과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원하는 지식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것

그리고 기꺼이 그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것

"찾고자 하는 지식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자는

그것의 쵝득에 근접해 있다"는 문장을 명료하게 이해시켜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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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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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프로필을 보면 작가 임야비는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대학로 극단 연출부에서 비평가로 일하고, 총체극과 클래식 연주회를 기획 및 연출하고 있다. 소설도 출간했고, <그 의사의 코로나>라는 증언 문학은 영화화 계약을 완료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팔방미인. 

이성적인 의학 전공자가 소설도 쓸 줄 안다고라고라고라? 세상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악의 유전학>을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불공평하다.. 글이 그냥 술술 넘어가서 엄청난 몰입도로 한 번에 읽었다. 

소설은 '인간의 유전자 중 우수한 것만 선별, 개량하는 '우생학'을 통해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무책임한 실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9-20세기 과학적 논쟁과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악의 유전학>이라는 SF소설이 탄생됐는데,

작가가 한국인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한국이라면 '아 정말 소설같다, 재밌네'하고 말텐데 배경, 주인공 모두 러시아와 변방의 이야기다. 

진짜... 작가 똑똑해.. 천재세요?

소련의 탄생과 레닌과 스탈린을 이렇게 엮어 버리다니.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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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장아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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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숙함과 새로움. 

장아미의 소설은 옛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해 있는, 익숙함 속에 낯섦이 스며들어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천 개의 그림자에는 만 개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다. 

 삼십 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었지만 종종 성장 소설을 읽곤 한다.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소설이라 허용되는 과장과 허구가 좋다. 약간은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은 소설 읽기가 질리지 않게 해준다.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도 명확한 것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그야말로 해피엔딩인 것이 마음에 든다. 

거기에 판타지까지 가미된다면, 세상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성장 소설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속의 갈등과 위기의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마, 이게 30대의 성장 소설 읽기다!'


 대체로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모든 등장 인물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니다. 덩그러니 남겨진 인물들을 생각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지어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하게 되는 밤엔 이만한 소설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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