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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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세의 나이에 첫 책을 출간하려면 아이 한 명을 키울 때 한 마을이 필요하듯 수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삶의 희노애락을,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자연의 숭고함을 아는 사람이 쓴 책은 생명의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늦은 나이에 첫 책이 나왔지만 이 책은 인고의 시간과 수많은 기다림 끝에 비로소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태어나는 삶도, 저물어가는 삶도 모두 각각의 기적적인 순간들을 갖고 있다. 먹고 먹히면서도 꿋꿋이 번성을 꾀하는 자연의 흥망성쇠 속 탄생과 죽음은 공평하게 존중받는다. 

집굴뚝새가 작은 박새들을 죽이고, 어치가 다른 새끼를 잡아 먹는다. 인간의 기준에서 잡아 먹는 나쁜 동물, 간사한 동물, 잡아먹히는 가엾은 착한 동물은 있을 지언정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에는 그저 자연의 흐름만이 있다. 저자가 자연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도 그랬듯 옛날엔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과 대가족을 이루며 자랐다. 저자 역시 미국 남부 지방의 대가족 출신이다. 기쁨과 추억이 몇 배로 쌓이듯, 그로부터 오는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오는 상실도 배가 된다. 저자와 가족은 그런 상실에서 오는 슬픔과 우울을 자연덕에 극복하게 된다. 순간과 지금에 충실한 동물들. 자연 속에서 사는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삶의 지혜는 얼마나 잔잔하고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나로 온전히 살기 위해, 충만하고 감사한 삶을 살기 위해선 나로 하여금 내가 보잘것없고 하찮다고, 하지만 생명력으로 빛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자연뿐이 없다고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때로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평소에도 절망적인 세계 뉴스가 더 절망적이 될 때, 이곳에 속해 있다는 무게는 떨쳐 내기 힘든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 나는 어느 봄날 아침의 반짝임을 생각한다. 햇살 속에 서서 나비 정원에 물 주는 것을 생각한다. 정원 대부분에는 심지도 않은 잡초가 군데군데 자라나 있다. 그 잡초들은 손으로 잡아당겨 뽑아도 다시 자라난다. 나는 물을 부려도 동요하지 않는 아스쿨레피아스 위의 애벌레들과 정원에 사는 흉내지빠귀 한 마리, 화가 난 까마귀 세 마리에 쫒겨 머리 위를 활공하는 붉은 꼬리말똥가리, 둥지 상자 꼭대기에 서서 자기의 짝인 암컷 파랑새를 보호하는 수컷 파랑새를 생각한다. 암컷 파랑새는 그 안에서 알을 낳고 있다. 나는 그날 아침을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알이 되어라. 흉내지빠귀가 되어라. 잡초가 되어라.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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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지? 신기하고 재미있는 식물도감 - 술술 읽다 보면 오늘부터 식물 박사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가니 멤마 그림, 심수정 옮김 / 카시오페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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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방학 때 아이와 엄청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고 식물원에도 가고 숲도 놀러가고 관련 동영상도 시청했는데

아이가 아는 식물이 나오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특히 제일 좋아했던 식물은 파리지옥과 네펜데스 :-)

아이 뿐만 아니라 저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귤의 열매가 사실은 털이라는 것, 번식을 위해 다양하게 진화한 식물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자연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 자연보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겨울방학 놀이 책으로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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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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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머리와 가슴이 말하는 답이 내겐 다르다. 노골적이고 비상식적인 혐오 표현이 팽배한 이 시대에서 살기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거짓, 가짜, 짜깁기 정보가 팩트체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속보, 이슈가 되는 '반지성주의'는 이미 도처에 깔려 있어서 상식을 말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신사답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HATE 혐오>를 읽기가 처음엔 버거웠다. 

과연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그들이 혐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사랑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까?

정말로? 뤼얼리?


 <혐오>는 '혐오표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와 평등 원칙을 위반한다고 말한다. 혐오표현금지법은 효과가 없으며 심지어 역효과를 유발한다며 저자는 차별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해법인 '대항표현'을 제시한다. 

침묵을 깨고 더 많은 표현하기, 소회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서 힘 실어 주기, 혐오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혐오 발언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기 등을 몇 가지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나 이런 해법이 유용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식하기에 용감한 혐오'들을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하지만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엔 동의한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이 땅 위에 제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공정감각>에서 저자인 나임윤경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 한가운데에 공을 가만히 두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굴러가듯이, 중립이라는 명목하의 침묵 또한 기존의 구조대로 흘러가도록 놔두겠다는 엄청난 정치적 선언이다.'라고 말한다. 요즘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 이슈가 되면 사람들은 '일단 중립기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땅이 평평할 때나 중립기어가 (혹은 침묵이) 효과가 있지 경사진 길에서 중립기어를 놓는다는 건 나도 다치고 상대도 다치게 할 수 있는 엄청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다.


 목소리 내기, 표현하기, 힘 실어주기, 혐오에 관심 갖기.

우리는 언제나 젊지 않기에, 누구나 소수가 될 수 있기에 성숙한 시민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자세를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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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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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적이고 확고한 느낌의 책 제목에 이끌려 펼친 이 책은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에서 빈곤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를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이라고 이름을 바꿔 읽어도 큰 맥락에서는 다를 게 하나 없음을 느꼈다.

 <미국이 만든 가난>에 의하면 미국인 아홉 명 가은데 약 한 명이 가난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3800만 명 이상이 기본적인 생필품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고, 1억 800만 명 이상이 1년 에 5만 5000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콘서트로 10억 달러(1조30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거나, 1초에 150불을 버는 빌게이츠는 길가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게 손해라는 등 미국의 부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다. 

하지만 정말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기회의 땅 미국에서 가난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마약과 질병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저자는 어떤 이들의 삶을 살찌우기 위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삶을 위축시키는지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질 높은 서비스, 엄청난 특가, 새벽 배송, 로켓 배송, 빠른 배달에 열광하는  '우리'가 가난의 원인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빈곤이 유지되어야 이득을 보는 수많은 '우리'와 '권력'이 존재하는 한 빈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빈곤은 자본주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빈곤은 종식될 수 있고, 빈곤을 없애려면 아주 똑똑해야 할 필요도 없다. 빈곤을 충분히 싫어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지만 과연 빈곤은 종식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함께 했던 시간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의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밀도 높은 독서였다. 

새로 구입한 인덱스의 1/3을 여기에 다 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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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 Philos 시리즈 24
데니스 덩컨 지음, 배동근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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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원래부터 정해져 있었던 듯 그 자리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부모님의 보살핌,

핸드폰 속 카메라 기능,

숫자

책의 인덱스


나에겐 이런 것들이 그렇다.


 그 자리에서의 역할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질 수록

부재를 맞딱뜨렸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어색할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덱스>를 읽으면서 아 맞네, 책의 인덱스(색인) 또한 누군가가 발명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것의 된 거겠지! 생각하니 책에 대한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고 그만큼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


 색인은 '본문 중의 중요한 것을 뽑아 한 곳에 모아 이들의 본문 소재의 페이지를 기재한 것'이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이렇게 정리하고 기재할 생각을 했을까.

고대 이집트에서 중세의 수도원, 현재의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읽기 문화의 혁명을 가져온 이 발명품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게 이렇게 된다고?'하는 놀라움과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원하는 지식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것

그리고 기꺼이 그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것

"찾고자 하는 지식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자는

그것의 쵝득에 근접해 있다"는 문장을 명료하게 이해시켜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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