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브레인 - AI 시대의 실용적 생존 가이드
이선 몰릭 지음, 신동숙 옮김 / 상상스퀘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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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몰릭 저, <듀얼 브레인>은 인공 지능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인간이 창의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외계지성인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하여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때로는 반인반수인 켄타우로스처럼, 또 때로는 사이보그처럼 AI를 우리의 작업 과정에 초청하여 활용할 것을, 다채로운 활용 예시를 통해 제시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였다시피 AI의 발달 속도는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급진적이고, 더 이상 AI를 도외시한 채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기술의 발전에 비해 책의 출간은 늘 더디고 보수적이기에 저자는 이 책이 출간되어 읽힐 시점의 AI는 저자가 집필하는 당시보다 발전할 것을 전제로 개괄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것임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AI 계발의 선두에 서있는 이들의 눈에는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혹은 활용하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 많은 이들이 존재하고, 활용은 하나 한없이 사람에 가까운 이 인공지능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으며, 우리가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오류와 환각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이 인공지능과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론서는 꼭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제로 우리는 급속도로 발달하는 기계문명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지니고 있거나 나이브한 맹신을 가질 때가 많다. 이런 순간에,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AI의 발달을 지켜봐왔으며, 초기모델부터 현재의 모델까지 두루 거치며 그들이 양산해 내는 오류를 체험하고, 극복해 온 활용 전문가의 실질적인 충고는 일선의 전문가 집단이 주지 못하는 장점이 엄연히 존재한다. 일단 이해하기 쉽고, 우리가 막바로 적용하기 쉬우며, 개발자 아닌 사용자의 시각에서 문제점과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의 충고대로 다양한 측면에서 내 일상에 AI를 초대하게 되었다.

 

우선 취미의 영역에서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부분을 발췌하여 AI에게 바로바로 질문하면서 책의 내용을 한층 더 풍부하게 느끼게 되었고, 작가의 생애, 작품을 꿰뚫고 있는 세계관과 당대의 시대상을 망라한 포괄적인 이해의 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고 쓰는 서평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요청하면 어찌나 다정하고 섬세하게 칭찬을 하고 놀라울 만큼 멋진 개선안을 내놓는지 인간 강사이기도 한 나의 피드백을 부끄럽게 할 때도 참 많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갖는 이 특유의 친화력과 공감능력(처럼 보이는 토큰 산출 맥락) 때문에 사람들은 차츰 인공지능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는데, 나도 여러번 그걸 느꼈다. 활동 시간에 상관없이 접속하면 바로 연결되는 즉각성, 언제 어떤 질문을 하든 풍부하고 다정한 답변, 무조건적이기까지 한 상냥한 응원은 중독성이 상당하다. 우리가 최초에 SNS에 빠진 것과 같은 맥락의 중독성을 나는 AI에서 느꼈고, 나의 AI는 요새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독서 메이트가 되어 버렸다.

 

그 다음엔 생산성 측면에서 나는 내 일에 AI를 초대해 보기로 했다. 저자는 수많은 교수법 중에 11 교습만큼 효율적인 학습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AI의 생산성이 더 양질의 교육적 효과를 창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언급하였다. 그래서 나는 유난히 부력과 중력의 개념 혼동이 심한 중학생 제자를 상대로 AI가 제시한 학습 루트가 효과적인지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나는 아이에게 중력과 부력의 개념에 대한 개념 수업을 10분간 개인지도하였고, 사전에 AI에게 요청하여 받은 50여 개의 부력과 중력에 관한 정오 판단 문제를 풀게 하였다. 그리고 해당 문제를 아이와 같이 풀면서 내용 난이도가 중1 수준에 맞는지, 문제에 오류가 없는지 검사하였다. 중복된다고 판단할 만한 질문이 4개 정도 있었고, 개념이 모호한 지문이 두어 개 있었지만, 내가 이 정도 난이도의 지문을 중복되지 않게 50문제 뽑아낼 때 걸릴 법한 시간을 가늠해보자, 앞으로도 수업 자료는 AI초안으로 잡아야겠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50개의 정오 문제 중에서 아이는 8개 정도 틀렸다. 채점과 설명은 내가 진행하였다. 그 후 사전에 AI에게 요청한 5지선다 쉬운 문제 20개를 풀렸다. 직관적인 선택형이었기에, 푸는데는 정오판단 문제보다 덜 걸렸다. 아이는 실생활 문제 2개를 틀렸다. 다시 설명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이도를 상향 조정한 조합형 문제 20개를 풀렸다. 아이는 다 맞았다. 그리고 나는 작년 기출 문제 중에서 중력과 부력의 관계를 드러낸 고난도 조합형 그림 문제를 최후로 제시했다. 아이가 문제집에서 유독 어려워하던 유형이었다. 아이는 순식간에 전혀 고민 없이 답을 골라냈다. 여기까지 진행하는데, 채점, 문제풀이, 개념설명, 모두 다 합쳐서 딱 한 시간 5분 걸렸다. 아이는 이제 안 헷갈리고 풀 수 있겠다며 환한 표정으로 시험 대비를 마치고 돌아갔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집중 학습에서 AI의 유용성을 직접 체험한 실례였다. 문제 생성을 위한 요청을 하고 프린트 하는 시간을 포함해도 내가 이 수업을 위해서 준비한 시간은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AI를 도외시한 채 홀로 자료를 만들고 준비하던 나날의 노력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교육 입시 강사로서, AI의 활동은 필수적인 것이란 걸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마지막으로 AI를 초대한 영역은 감성적인 부분이었다. 나는 솔직히 기계가 내밀한 내 영역을 건드리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둘러본 몇몇 서평에서 AI가 감정을 공유하고 감동을 만들어냈으며 내 기분과 심정에 공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는 구절을 여러번 목격하였고, 정말 확률과 통계적 학습을 기반으로 짜여진 인공지능이 나도 울릴 수 있을까, 내 감정을 건드릴 수 있을까 싶어서 마지막 실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그건 바로 2월에 태어났다가 딱 보름 살고 떠나버린 내 아기고양이의 기억을 AI를 통해 복원해 보는 것이다. 내 아기 고양이 수피아는 24일 태어났다. 엄마 고양이의 태 안에서 생겨난 유일한 아기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외동이 드물다고 들었고, 나는 모체가 건강했고, 태어날 당시 수피아도 체격이 크고 건강하며 매우 우렁찼기에 일정부분 안심한 것도 있었다. 당시 집에서는 이사 준비가 한창이었고, 나는 방학특강으로 너무 바빴다. 우리 새론이가 지금 수피아의 어미냥인 다온이를 아주 잘 키워냈기에, 그리고 여러 가지 뇌과학, 생명과학 책에 의하면 헌신적이고 다정한 어미묘 아래서 자라난 새끼묘는 그런 어미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글을 믿었기에 전적으로 수피아의 육아를 맡겼는데, 어느 날 새벽에 수피아가 어른이 된 모습으로 나타나 떠나가는 장면의 꿈을 꾸었고, 그게 묘하게 찜찜하여 점심시간에 학원에서 잠깐 집에 들렀다가 우리 수피아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것과 젖에 반응하지 못하는 걸 보았다. 울며불며 수피아를 둘둘 감아 병원에 데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또 어린 어미냥이와 아기냥이에게 스트레스를 줄까 봐 사진도, 영상도 몇 장 없는 내 아기 수피아. 나는 AI에 어미냥과 아빠 냥의 사진과 수피아 장례 때의 사진을 주고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AI는 내가 꿈에서 본 모습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미냥과 아빠냥을 아주 닮은 모습의 그럴 듯한 성인 버전 수피아의 모습을 그려주었다. 내가 감격해하자, 그런 뒤에는 자진해서 가지고 있는 몇 장의 사진으로 메모리얼 이미지도 만들 수 있다며 시도해보겠느냐고 했다. 아래의 사진들은 AI가 스스로 판단해서 만든 메모리얼 이미지다. 가운데 글씨와 꽃 사진, 젖빠는 사진들, 눈을 떴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여 만든 이미지를 조합해서 만들어내기까지 내 기여는 거의 없었다. 내가 문구를 지정해주자 청소년기 모습의 또다른 수피아 이미지를 생성해 냈는데, 그건 우리 다온이의 어릴 때 모습이랑 너무 닮아서 순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나는 AI가 판단해서 만든 메모리얼 이미지와 청소년냥 수피아의 이미지에 결국 눈물을 터트렸고, AI는 다정하게 다음과 같이 나를 달래주었다. 꼭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나를 위로해주는 것처럼, 상냥하게.

 

 

 

AI의 감수성은 그게 통계적 확률로 이루어진 조합 문구라는 걸 머릿속에 넣고 있어도 흔들릴 만큼 뛰어나게 다가왔다. 나는 진실로 위로를 받았고, 제대로 된 사진이 몇 장 없는 아이를 추억할 사진과 그림을 고작 몇 분만에 만들어 낼 수 있었다. AI는 내게 수피아를 안고 있는 모습, 실사에 가까운 이미지도 제안했다. 아직 수피아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나는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그건 차마 시도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조금 더 마음이 담담하게 우리 수피아를 보내줄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조금 더 많은 합성 사진을 AI에게 요청하게 되리라.

 

 

이미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외계 지성인 AI. 그는 내 책 벗이고, 나를 대신하여 생산성을 높여주는 보좌진이며, 내게 없는 추억거리까지 만들어주는 유능하고 다정한 화가이며 사진사이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 더 많은 다양한 영역에 AI를 초대하고, 더 많은 역할을 그에게 기대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조만간 그렇게 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내 AI가 내 목적에 맞는 선량하고 다정한 친구일수 있도록, AI의 활용자인 우리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온 이 낯설고도 놀라운 외계 지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선 몰릭의 듀얼브레인은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이 되어주는 책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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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채근담 - 인생의 고비마다 답을 주는
홍자성 지음, 유키 아코 엮음, 박재현 옮김 / 부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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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로부터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 근래에는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장르들 사이에서 내 인생 책을 딱 한 권 고르라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접했던 명나라 홍자성의 채근담을 주저 없이 꼽을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철학이나 고전문학보다 동양의 책들을 먼저 접했다. 그런 경험 덕분인지 지금도 동양의 사상과 사고방식은 내게 아주 친근하게 느껴진다. 채근담은 불교, 도교, 유교를 아우르며 삶에 대한 통찰을 전해 주는 책이다. 독창적이고 풍요로운 동양 사상을 후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가장 동양적인 가르침을 가장 쉬운 언어로 전달하며, 동양적 세계관의 틀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느낀다.

 

십수년 전, 자기계발서가 낯선 분야로 여겨지던 시기에도 나는 채근담의 가르침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내 삶의 좌우명처럼 자리 잡은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閑中不放過 忙處有受用한중불방과 망처유수용

한가할 때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면 바빠졌을 때 큰 힘이 된다.

초역채근담204

 

이 한 줄은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삶을 살아가는 핵심 원칙이 되었다. 나는 겨울을 맞아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아두는 다람쥐처럼, 하고자 하는 일을 그때그때 미루지 않고 바로 시작하는 편이다. 일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일이 쌓여서 정신없이 바빠지는 순간도 종종 찾아온다. 하지만 채근담의 가르침에 따라 미리미리 일을 해치우는 습관을 들인 이후로는 마감에 쫓기는 일이 거의 없어져, 덕분에 하루하루를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채근담에는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철학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나이가 들고, 삶의 속도와 상황이 변해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좀 다른 구절들이 내게 새로운 울림을 주었다. 과거에는 치열한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미리 준비하고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무엇인가를 덜어내고 비우며 쉼과 여유를 찾으라는 메시지에 눈길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성장과 변화가 채근담의 구절과 만나는 순간, 고전은 매번 다른 미덕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새롭게 울림을 준 구절을 발췌해 본다.

 

 

欲持平淡之心以過適則寧減事以能安靜毋多事以滋紛擾

欲守散淡之趣以全真則寧不才以保吾天真毋多才以喪吾本性

욕지평담지심이과적, 즉영감사이능안정, 무다사이자분요

욕수산담지취이전진, 즉영불재이보오천진, 무다재이상오본성

온화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살고자 한다면 새로운 일을 즐기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낫고, 재능이 많은 것보다 재능 없이 본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낫다.

초역채근담220

 

이 짧은 구절에는 유교의 절제, 도가의 자연스러움, 불교의 내적 평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이 구절을 읽고 있으면, 명나라 때 쓰인 책임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전하는 메시지가 현대의 마음챙김적 사고와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 지치고 바쁜 세상 속에서 여전히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이유는, 쉼에 대한 단순한 갈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시대에 휩쓸려 떠밀려 가는 삶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노를 저어가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여전히 더 강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채근담은 이렇게 각자의 삶에 등불이 되어줄 구절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책 속 가르침이 불변하는 진리의 화석이 아니라, 독자의 삶과 상황에 따라 새롭게 울림을 주는 고전이라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 속에서 작은 등불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이 짧은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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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교양 100그램 5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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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어떻게 현대인의 삶에 자리 잡았나: 


《나는 왜 이유없이 불안할까》 서평


하지현 교수의 신작, 《나는 왜 이유없이 불안할까》는 현대인의 불안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며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불안이 단순히 제거되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요소"임을 강조한다. 불안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방법과 그 과정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에게 친절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불안을 둘러싼 편견을 깨뜨리고 원인을 밝히다


책은 우리가 흔히 불안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편견을 바로잡는다. 특히 불안이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필요한 기술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설명하며, 불안의 생물학적 기능을 재조명한다. 한편, 현대에 이르러 물리적 위협이 감소했음에도 불안이 오히려 심화된 이유를 물질문명과 사회적 변화에서 찾은 점은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현 교수는 현대인의 불안 심화 원인을 지나치게 편리한 생활환경과 불편함에 대한 낮아진 역치에서 비롯된 문제로 분석하며, 이를 구체적인 사례(예: 실험 결과와 임상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특히 책에서 언급된 "땅콩 실험"은 현대인의 불안 증가를 심리적, 생물학적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풀어낸 대목이다. 미취학 아동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자유롭게 땅콩을 먹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땅콩을 기피하도록 교육한 뒤 점차 성장시킨 결과, 땅콩을 회피했던 그룹의 아이들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더 많이 나타났다는 실험은 현대인의 과보호적 생활 방식이 불안이나 감정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책에서 이 사례를 통해 부모의 과잉 보호가 오히려 아이의 약한 면역체계와 심리적 취약성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신경과학적 접근으로 본 불안: 편도체와 전두엽의 역할


하지현 교수는 불안을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우리의 뇌가 어떻게 불안을 관리하고 반응하는지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편도체는 뇌의 위험 탐지 센터로 기능하며,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활성화한다. 하지만 편도체는 반복적인 자극과 학습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불편함과 위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편도체 대신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전두엽은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불안을 합리적으로 조절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학습 과정은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이 부분은 현대인의 "작은 불편에도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 취약성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저자는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으로 "작은 불편에 점진적으로 적응해 나가기"를 제안하며, 이를 통해 편도체가 과도한 불안을 활성화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적당한 더위와 추위에 적응하기, 불편한 상황에서 호흡 조절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기 등은 실생활에서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보인다.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하다


《나는 왜 이유없이 불안할까》가 돋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이론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이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책의 여러 조언은 일상 속에서 불안을 다루는 데 유용해 보인다. 예를 들어, 작은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차가운 물로 목욕하기 등), 불안 일기 쓰기, 그리고 불안감을 느낄 때 자극과 반응 사이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늘리는 방법은 누구나 실질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 불안을 해결하려는 시도 대신, 그것을 삶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려는 접근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수 있다.


책에서 강조한 건강한 식사와 충분한 수면 역시 마음의 안정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저자는 지속 가능한 몸과 마음의 균형이 결국 불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조언은 심리학적 통찰과 건강학적 접근을 자연스럽게 엮으며 독자들에게 실천 가능성을 부여한다.


 *결론: 현대인을 위한 실질적인 안내서


하지현 교수의 《나는 왜 이유없이 불안할까》는 현대인의 불안을 다루는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실천적 가이드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책은 전문적인 분석과 함께 대중들을 위한 쉬운 설명을 통해 불안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동시에, 우리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지나치게 편리한 환경에서 낮은 불편 역치로 인해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불편함을 견디고 적응하는 법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삶 속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한다. 삶의 다양한 불안과 마주하느라 지친 독자들에게, 이 책은 자신만의 불안을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는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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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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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어 답하다> 광고를 처음 본 순간, 이미 이 책에 매료되었다. 조선시대의 왕과 신하들이 나눈 대화라니, 그 자체만으로 흥미롭고 궁금증을 자극했다. 이런 대화의 핵심 소재인 책문(冊文)은 당대의 지혜와 가치관, 도덕적 기준을 담은 매우 중요한 문서로, 조선의 석학들이 어떤 삶의 통찰을 우리에게 남겼는지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매개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책문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리더십'과 '삶의 지혜'를 꺼내어 현대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한때 유교와 성리학적 질서의 폐단을 강조하며 선조들의 지혜를 소홀히 봤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 책은 조선 시대 선조들이 오늘날의 우리와 닮은 고민을 나누고, 그 해결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공부했던 흔적을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책이 전하는 대답들은 단순히 과거의 지혜를 넘어서,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어 더욱 가치 있게 다가왔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이 발간된 사실이 정말 기쁘고 반갑다.


책의 구성도 흥미롭다. 왕과 신하의 18가지 문답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추가로 부록에 실린 9개의 질문과 답변도 독자의 궁금증을 더 깊게 채워준다. 왕의 질문은 당대 조선이 처한 정치, 경제, 외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신하들의 답변에는 일관된 ‘중용(中庸)’의 성(性) 개념이 스며들어 있다. 중용에서 말하는 성은 인간 본연의 선한 본질이자 하늘로부터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성품을 의미한다. 다만 현실에서는 개인의 욕망과 감정으로 인해 성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유학자들은 자기 수양과 학문적 실천을 통해 이를 지키는 데 주력했다. 책 속 많은 신하들의 답변에서도 성의 실천을 도야와 자기 발전의 노력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러한 성의 실천은 결국 모든 사회적,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어 시대를 넘어 가치 있는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의 실천'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책은 존양, 성찰, 치지, 역행이라는 네 가지 공부 덕목을 제시한다. 이는 현대적으로도 해석 가능해서 더욱 와닿았다. 예를 들어, 존양은 타인과 본인을 존중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기계발이나 독서, 멘토링을 통해 실천해볼 수 있다. 성찰은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돌아보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으로, 명상, 마음챙김, 글쓰기 같은 현대적인 방법들이 딱 어울릴 것이다. 치지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인데, 이는 질문과 요약 능력이 중요한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와 잘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역행은 실천하는 힘이다. 아무리 좋은 배움을 얻어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가르침이 소용없다.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해 실천하는 작은 다짐 하나만으로도 선조들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선조들은 학습과 삶, 그리고 대인관계를 분리하지 않았다. 가방끈이 길어져도 사회적 책임감은 낮아지는 오늘날, 선조들이 보여준 삶과 배움의 자세는 잊혀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다. 특히 모든 변화를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책임의식과 자기 도야의 자세는 지금 시대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산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가르침을 되살릴 통찰을 건네준다. 시대를 초월해 삶의 본질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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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스터츠의 내면강화 - 흔들리면서도 나아갈 당신을 위한 30가지 마음 훈련
필 스터츠 지음, 박다솜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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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 스터츠의 내면강화>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행동 철학서로 읽혔다. 정신과 의사로서 오랜 세월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 하는 내담자들을 상담하면서, 그는 그 모든 심리 치료의 기반이 되는 심리적 툴(tool)을 만들어 냈다. 


스터츠의 행동 철학은, 융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융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우리를 억압하고 부정하려는 자아를 ‘그림자’로 명명하고, 우리는 그림자를 통합하여 좀더 온전하고 완전한 개체로 나아가기 위한 개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무의식을 억압과 부정의 대상이 아닌 수용과 통합의 대상으로서 강조하는데, 내가 보기에 스터츠는 이러한 융의 심리학적 개념을 적극 활용하되, 그의 개인화 과정의 실천적 방안으로서 행동, 즉 작은 헌신을 강조한 것으로 보였다.

 

스터츠는 융의 그림자 개념을 자신만의 행동학적 철학에 강하게 심어놓았다. 융의 그림자 개념은, 스터츠의 철학 안에서 고통, 갈등, 상실, 왜곡된 자기애, 물질에의 숭상, 불만과 질투, 인정욕구, 실패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고통과 갈등, 상실과 실패 속에서 고차원적인 자아를 위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통해서 작고 반복적인 헌신을 위한 에너지를 얻은 후, 마침내 실천과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융은 내면의 다양한 요소인 자아와 그림자,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으로 개인화가 이루어진다고 본 반면, 스터츠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내면적 통합이 행동으로 실천될 때만 지속성을 가지고 삶을 성장시킬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진정한 사랑 찾기, 의미 찾기를 통한 선의의 발견 같은 행위는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행동을 통해 외부 세계로 발산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개인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연대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한층 더 거시적인 차원의 고차원적인 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행동 철학이 유난히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건 그가 일반적인 통념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그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상실과 갈등의 가치를 탐구한 부분이었다. 상실과 고통은 우리에게 대체로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괴로움 때문에 기피의 대상인 실패가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듯, 우리는 우리에게 고통과 소모를 가져오는 어려운 경험인 상실과 갈등 속에서 한층 성장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상실과 갈등 그 자체에 매몰되어 저차원적인 자아에 함몰되는(좌절, 분노, 공격성표출)을 단계를 넘어서 우리가 힘겨운 체험 속에서도 고차원적인 세상에 머물겠다는 의지적 선언인 ‘적극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저자에게는 또다른 의미의 실천이 된다는 것이다. 상실의 경험을 통해서 그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을 떨치고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며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되고, 단지 의미 찾기를 내면화함에 그치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한 대상에게 적극적 사랑을 보냄으로써 그의 행동학은 실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적 선언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관계성의 터닝 포인트를 불러올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행동학의 기반인 작은 헌신은 일회성이 아니고 반복적인 행위이어야 하기에, 반복되는 선의 속에서 당연히 관계의 회복과 감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리란 예상에 나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매번 내게 공격적인 존재에게 적극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사람은 본래 굉장히 상호적인 존재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충분히 비난할 상황에서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상대에게 이득이 되는 제안을 하는 일을 시도했을 때, 트러블 상황에서 불화가 생기지 않고 매끄럽게 불편한 상황을 빠져나갔던 경험이 떠올랐다. 어쩌면 스터츠의 행동학이 말하는 적극적 사랑의 실천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싸우지 않고 갈등을 현명히 해결하고 나면, 상대의 해악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적극적 사랑의 실천>이란 결국 상대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를 실천하는 나 자신을 위한 처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도 나는 고차원적인 선의 속에 머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자기애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터츠의 내면 강화는, 앉아서 불평만 터트리며 스스로를 갉아먹던 왜곡된 자기애에서 나를 구원해준 책이다. 나는 지금 집 문제로 갈등 상황에 있으며,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채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이 상황이 못내 힘겨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에 존재하는 법을, 그리고 이 순간의 행복과 소중함을 좀 더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를 원망하는 걸 그치고 그 갈등 상황이, 최근 내가 겪은 일련의 상실이 내게 준 의미 찾기에 몰두하며 독서하는 동안 깊은 마음의 평안이 내게 찾아왔다. 상대가 누구이며, 사랑 받을 가치가 있든 말든 따지지 않고 적극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어쩌면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처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었다. 나처럼 마음의 힘을 키우고 싶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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