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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사내변호사 생존전략 - 대체 불가능한 법무팀을 만드는 실무 가이드
권희성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8월
평점 :
『AI 시대의 사내변호사 생존전략』 서평 ― 인간의 역할을 묻다
『AI 시대의 사내변호사 생존전략』은 제목만 보면 마치 법조계 내부를 대상으로 한 실무적 지침서처럼 보인다. 특히 사내변호사를 주요 독자로 삼은 듯한 표지와 제목은 이 책이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다룬 실용서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책은 법조계를 넘어 더 넓은 지평으로 독자를 이끈다. 기술 변화와 AI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점에서, 저자 권희성 변호사가 던지는 화두는 모든 직업인에게 유효하다.
법학 전공자이지만 다른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이 책을 법조계 인사이트를 기대하며 집어 들었으나, 책을 덮을 때쯤에는 완전히 다른 질문을 품고 있다. "AI 시대, 인간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리고 이 물음은 단지 법조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교육 강사로 살아가는 내 현실에서도 충분히 와닿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법학은 논리와 인과관계의 학문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한 뒤, 이를 근거로 케이스에 맞는 법률을 적용해 결론을 도출하는 체계적인 절차의 학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때로 인간적 판단보다 효율성에 치중하도록 만든다. 저자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며, 법률가가 기계적으로 판단할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한다.
AI가 이 문제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공지능은 법률가들이 소모하던 수많은 반복적 업무를 대신 수행하며, 시간과 노력을 획기적으로 절감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판례 검색, 계약서 초안 작성, 법률 리스크 예측 같은 작업은 이미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고 있다. 저자가 서술한 현실은 법조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사교육 강사로서의 내 일상도 그러하다. 기출문제 분석, 학교별 출제 경향 예측, 학부모 상담 문서 작성, 학생 숙제 달성률 체크 등 이미 많은 일이 AI와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데이터와 확보된 잉여 시간은 새로운 과제를 안긴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단순한 반복적 노동에서 벗어나, 전략가로서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AI 시대에 사내변호사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로 ‘전략적 사고’를 든다. 법 조문을 분석하고 계약서의 문구를 다듬는 스킬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사회에 미칠 함의를 고려하고,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고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윤리와 맥락, 관계의 조율을 통해 부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법조계의 경계를 넘어 모든 직업군에 유효하다.
내가 종사하는 교육업 역시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알고리즘 기반 추천 시스템과 자동화된 데이터 분석이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을 대체할 무기로 등장했지만, 이 새로운 기술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AI가 학생 개인별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천하는 학습 콘텐츠만으로는 학생의 창의성과 비인지적 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수 있다. 특정 데이터만을 바탕으로 한 학습 추천은 학생을 지나치게 획일화하거나, 잘못된 학습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위험도 있다.
저자는 법률가가 AI가 산출한 결론을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점검하는 차원을 넘어, 산출된 결과가 사회적 정의와 윤리적 책임을 충족하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교육 현장에서 AI가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제시한다 해도,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조율하는 것은 교사나 교육자의 역할이어야 한다. 기술이 할 수 없는 마지막 조율은 항상 인간의 몫이라는 점에서, 법조계와 교육계에서의 도전과 역할은 완전히 닮아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기술의 결과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특히 교육업계에서 윤리적 판단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는 간편하고 효율적이지만, 이는 학생에게 단순히 표준화된 길을 제시할 뿐, 인간 고유의 창의적 가능성을 열어주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교사와 교육 현장의 인간적 개입이 더욱 빛을 발할 순간이 온다. 때로는 AI가 분석한 데이터와는 다른 판단을 내릴 용기와 책임도 요구된다. 예를 들어, 성적 데이터에만 기반한 교육 전략보다는 학생 개인의 특성과 잠재력을 고려한 조율이 필요할 수 있다. 이는 법조계에서 판결문과 계약서의 해석을 넘어, 그 문장이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민해야 하는 법률가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윤리적 해석과 판단이 빠진 기술적 효율성은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AI 시대의 사내변호사 생존전략』이 법조계를 넘어 더 많은 직업인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AI가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을 대체할수록,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효율이 아니라 맥락과 윤리, 그리고 관계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법조계의 판결과 계약서가 인간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듯,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행하는 수많은 판단 역시 학생 개인과 사회 전체의 미래를 구축한다. 따라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제안한 결론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태도는 법률가에게도 교육자에게도 결코 적합하지 않다. 최종적으로 그 의미를 확정 짓고 책임지는 것은 언제까지나 인간이어야 한다.
반복적 업무는 기계에 맡기되, 전략과 판단은 인간이 짊어진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은 알고리즘의 일일지언정, 그 데이터로 무엇을 만들어낼지는 우리의 일이다. 이 책은 사내변호사라는 특정 직업군을 위한 실용서를 넘어,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시대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진다.
AI 시대의 인간은 윤리적 판단자이자, 맥락의 해석자, 관계의 설계자로 거듭나야 한다. 법학적 사고의 본질인 ‘판단의 책임성’은 더 이상 특정 직업군만의 가치가 아니다. 『AI 시대의 사내변호사 생존전략』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 직업과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