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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 멸종, 공존 그리고 자연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임정은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8월
평점 :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우리가 공존해야 할 생명의 숲
보전생물학자 임정은 박사님의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는 우리의 생태적 책임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하는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내 유일의 호랑이 연구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가 직면한 생물다양성 위기의 현실을 진단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감과 행동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단순히 과학적 데이터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축적한 경험과 따뜻한 시선을 담아 독자들이 생태적 가치를 다시금 성찰하도록 돕는다.
책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인 호랑이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호랑이는 한때 한국의 산과 숲에서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으나, 개발과 도시화, 대규모 사냥으로 인해 서서히 우리의 생태계에서 사라졌다. 호랑이는 단순한 멸종 위기 동물 중 하나가 아니다. 그는 인간 중심의 활동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과 생물다양성 위기의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단순히 한 종의 복원이 중요하다는 과학적 논리를 넘어, 인간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생물종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결국, 우리가 호랑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한 종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생태계 안에서 서로 연결된 삶을 지켜내기 위함이라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책 곳곳에 담긴 보존 생물학자이자 필드 과학자로서의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저자의 현장 경험은 이 책을 더욱 설득력 있고 생동감 있게 만든다. 암 연구자가 되기를 꿈꾸던 저자가 우연히 한 표범과 마주한 경험은 그의 인생 경로를 완전히 바꾸었다. 이후 보전생물학자로서의 길을 선택한 그는 영국과 미국 유학, 라오스, 인도네시아, 중국, 벨리즈 등의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며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과업과 마주했다.
책에서는 저자가 현장에서 겪은 좌절과 실패,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진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며, 과학적 업적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은 인문적 통찰까지 담아낸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보전생물학을 단순히 과학 연구로 국한시키지 않고, 지구의 생명체를 향한 연대의 노력으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 책은 생물다양성의 파괴가 단순히 특정 종의 멸종으로 끝나지 않음을 강조한다.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한 종의 소멸은 생태계 전체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태계를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노력보다, 경제적 가치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해 왔다.
책에서 저자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호하고 싶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언급한다. 이는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적용된다. 저자가 강조하는 공감의 감각은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하거나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단순히 생태계 보호를 넘어선 이야기다. 결국 이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하나의 구성원임을 인식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생태적 책임을 다하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점은 추상적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들이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좋은 것은 언젠가 멸종한다"는 체념적 태도를 경계하며, 느리고 작더라도 구체적인 노력이 이어질 때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국립공원과 DMZ 같은 야생동물 서식지를 보호하려는 노력이나, 차량 속도를 줄여 로드킬을 방지하는 작은 행동조차도 공존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야생동물뿐 아니라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에서의 공생 역시 생태적 감각을 키워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삶 속에서 동물들을 감정 있는 생명체로 대하고, 그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책임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 역시 생태계를 배우는 일종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저자는 독자들에게 생태계 전체를 거대한 나와 연결된 공동체로 바라보도록 독려한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위기는 기후 위기와 맞먹는 절박한 문제이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압도되거나 체념하기보다는, 이 책은 작고 느리더라도 구체적인 행동과 용기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보전생물학자의 전문적 활동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생태적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통찰력 있게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지구의 생태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임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일상에서 공존을 실천하는 방법을 일깨운다. 멸종 위기종을 지키는 일, 더 나아가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노력은 사실 저자와 같은 생물학자들만의 과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생태적 연대의 일부임을 상기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작은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단순한 사실이다. 우리는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는 곧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가 반드시 읽어야 할, 그리고 마음으로 새겨야 할 책이다.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일이 곧 인간을 지키는 일이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