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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백낙청 선생님의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는 2016~2017년 촛불항쟁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정치적·역사적 맥락에서 제시하는 정치 비평서이다. 이 책은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불평등과 분열, 혐오의 정치로 인해 어떻게 망가져왔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한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변혁적 중도'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전통적인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뛰어넘는 변혁적 중도는 단순한 타협의 정치가 아닌, 근본적 변화를 열망하면서도 지속 가능하고 통합적인 사회 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비전이다.
저자는 촛불항쟁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거울삼아 이 개념을 뒷받침한다. 특히, 촛불항쟁을 변혁적 중도의 구체적 실천이라 규정하며, 이것이 민주주의 심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평가한다. 하여 나는 저자의 논지를 중심으로 변혁적 중도 개념이 촛불항쟁과 한국 민주주의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변혁적 중도란 단순한 절충이 아닌 통합적 비전이다
저자가 말하는 중도는 기계적 중립이나 온건한 타협과는 거리가 멀다. 진보와 보수라는 양 극단이 만들어 낸 소모적 대립을 초월하고, 근본적 사회 변화를 목표로 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방식의 연대와 공존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변혁적 중도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옥죄어 온 양극화와 혐오를 넘어, 분열된 사회를 아우르는 실천적 패러다임이다. 특히 이 개념은 민주주의가 단순히 제도의 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 내면화되고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통해 변혁적 중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1987년 항쟁 이후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는 정착되었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 속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가치인 평등과 연대는 약화되었다. 보수 정권은 효율성과 경쟁의 논리로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해 왔으며, 진보 진영은 급진적 구호와 분열적 투쟁으로 효과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저자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적 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이 도전의 핵심을 변혁적 중도에서 발견한다.
2. 촛불항쟁 ― 변혁적 중도의 대표적 구현
저자는 촛불항쟁을 변혁적 중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대표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2016년부터 약 4개월간 진행된 촛불 항쟁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수백만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평화적 저항운동이었다. 이는 단순한 정권 교체 요구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화시키고자 하는 시민적 열망의 표출이었다.
촛불항쟁은 급진성과 평화성이 공존했다. 시민들은 권위주의적 권력의 퇴진이라는 급진적 요구를 비폭력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관철하였다. 이는 저자가 강조한 변혁적 중도의 핵심적 특징인 급진적 변화와 지속 가능성의 조화를 잘 보여준다. 또한 촛불항쟁은 진보와 보수라는 기존의 이념적 틀을 초월한 범시민적 연대의 장이었다. 학생, 노동자, 중산층,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광장에서 함께한 것은 구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와 동시에 새로운 연대를 향한 열망을 상징한다.
3.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 촛불의 사회경제적 기반
촛불항쟁은 단순한 정치 부패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 사회적 양극화,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청년 세대는 고용 불안과 취업난에 시달렸고, 경제적 불안정성은 기존 권위주의 정권을 지지하던 계층마저 광장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촛불항쟁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단순히 부패한 정권의 교체를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였다. 이는 곧 변혁적 중도가 추구하는 정치적 상상력, 즉 기존 체제의 구조적 개혁과 모든 시민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향한 지향과 일치한다.
4. 촛불 이후의 우리의 과제는 분열과 혐오의 정치를 넘어선 연대이다
촛불항쟁은 권위주의적 정권을 탄핵하고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최종적 목표로 보지 않는다. 촛불항쟁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점이었을 뿐이다. 이후 한국 사회는 정치적 분열과 혐오의 확산, 신자유주의적 불평등의 고착화라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촛불항쟁이 제기한 근본적인 질문이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변혁적 중도의 실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이는 제도적 변화와 시민적 참여의 심화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혐오의 정치로 퇴행하지 않기 위해, 또다시 촛불이 불타오르지 않도록, 촛불의 연대 정신을 제도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대립을 넘어서는 포용적 정치 문화를 만드는 것,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 참여를 제도화하는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5. 글을 마치며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는 한국 민주주의의 변곡점에서 촛불항쟁을 새로운 방향의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안한다. 급진성과 평화성의 공존, 특정 이념을 초월한 연대, 그리고 시민적 각성은 1987년 체제 이후 공고화된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가 제시한 변혁적 중도는 단지 정치와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배제와 대립을 넘어 연대와 통합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이 책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전환점을 이해하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