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후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독일 귀족, 역사적인 고성의 주인, 21세기 첨단 테크놀로지 군수산업의 리더, 컬트적 헛소문의 주인공 그리고 위협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등등. 어마어마한 묘사들로 설명되는 이 소설의 남주는 지독하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네요. 범죄에 가까운 일을 벌일 때조차 마냥 그 캐릭에 설득되고 맙니다. 이런 남주가 여주에게 들이댈 때는 또 어떻겠어요. 여주와 마주 앉아 거리낌 없이 햄버거를 먹을 때, 여주의 약혼자를 비웃을 때 그리고 여주를 울릴 때조차 너무너무 핫해서 심장이 뛸 정도였네여ㅠㅜㅜㅜ 그야말로 남주의 남주에 의한 남주를 위한 로설이라 하겠습니다. 네.좀 아쉬운 점이 남긴 하는데요. 남주의 위험한 매력에서 조성되는 긴장감이 이야기 후반에서는 느슨해지고 마네요. 사랑에 빠져버린 남주의 면모가 좀 평범하게 묘사되어서 그런 걸까요…?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권력, 재력, 능력, 미모 등등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좋은 성격만은 갖지 못한 남주가 올곧고 재능있는 귀여운 여주에게 점점 감겨들어가는 이야기에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연상되는 발랄한 연애담입니다. 그런데 가끔 심각한 페미니즘 계몽 같은 에피가 등장해 소설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이것이 심각한 단점으로까지 부각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일관되게 남주와 여주의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배경 성격 등 모든 점에서 너무나 다른 남녀가 어느날 우연히 만나 호기심을 갖고 알아나가면서 선입견과 편견을 깨트리며 호감을 갖게 되고 급기야 사랑에 빠져버리는 간질간질한 과정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네요. 그래서 불쑥 튀어나오는 계몽이나 너무나 현대인적인 대화 등등에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두 주인공의 로맨스에 푹 빠져버리게 되는 거지요. 오랜만에 로맨스 자체를 위한 로맨스 작품을 만난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재미있지는 않은데 재미있는…?이라고 하겠습니다.이 이야기에는 회빙환 마법 빌런황제 신들의 세계 등등 로판 클리셰의 화려한 재미는 전혀 없습니다. 대신 18세기? 19세기 초? 유럽의 작은 왕국을 연상시키는 현실적인 배경을 볼 수 있을뿐입니다. 이야기의 스케일도 광대하지 않습니다. 주변인물이나 사회배경 같은 곁가지보다 두 주인공에만 포커스를 맞춰 이들의 사랑이 싹트고 자라나고 깊어지는 과정을 집요하고 잔잔하게 묘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의 재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의 개연성을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구축해나가는 과정에서 말이죠. 흔히 접할 수 없는 재미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