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한없이 맑고 밝은 여주의 거침없는 활약을 보다보니 생각나는 작품이 있었는데 같은 작가님이셨네요. 작가님 전작 <극한직업 용 관리인으로 살아남기>를 본 지가 얼마 안 돼서 자꾸 두 작품을 비교해보게 되는데요.앞에서도 말했듯이, 우선 여주의 분위기가 비슷해요. 씩씩하게 앞만 보면서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길로 달려나가는 올곧음 같은 것 말이죠. 두 여주 모두 엉뚱하고 웃기는데 왕자를 주워버린 우리의 여주가 자뻑이 좀 더, 아니 아주 많이 심하네요. 하지만 항상 자신만의 맥락과 이유가 있는 자뻑이라 애먼 사람들만 괴로워지는 거죠. 물론 여주 자신과 독자는 완전 즐겁습니다요. 네.이에 반해 남주는 전작과 전혀 다른 캐릭이네요. 버려진 왕자라는 처지, 권리 수복이라는 목적 등은 같지만 우리의 남주는 더 다크하고 무겁습니다. 게다가 좀 더 꼬여있고 계략짜기를 좋아하네요. 이런 식으로 남주의 캐릭터가 완전 달라지는 까닭에 이야기의 플롯 또한 전작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죠. 우리의 음험한 남주가 복잡한 해외 정세, 정치적 음모 그리고 여주의 속터지게 하는 해맑음에 과연 어떻게 대처할 지 전작과 완전히 다른 재미를 기대하게 됩니다.이 작품에는 회빙환이나 타임슬립 같은 로판 클리셰가 없습니다. 반면 <극한직업…>의 여주는 현대에서 유사 중세로 타임슬립을 했죠. 이 여주가 현대인의 시각으로 암담한 중세 사회의 부조리를 비꼬면서 던지는 풍자 드립은 너무나 익숙하게 웃겼죠. 그런데 타국 왕자를 주워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우리의 여주에게 현대인의 풍자적인 시각 따위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가끔씩? 아니 자주? 던지는 드립은 너무나도 웃기네요. 굳이 현대적인 말 표현이나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하지 않아도 즉 요즘 우리 주변, 웹상에서 유행하는 밈이나 드립을 어울리지 않게 로판 세계에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그 작품의 세계관 자체 안에서만으로도 얼마든지 웃긴 드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자면 당연히 그만큼 세계관이 치밀하고 탄탄하게 세워져야 하겠구요. 이 점에서 작가님의 뛰어난 필력에 완전 놀라고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eBook으로 보면서 계속 생각했네요. 종이책으로 봤으면 좋았을걸 하구요. 진짜 오랜만에 종이에 인쇄된 펜선을 찬찬히 감상해보고 싶은 작품을 만났으니까요. 그림이 진짜 끝내줍니다. 펜선 하나하나가 다 정성스럽고 섬세해요. 덕분에 호러틱한 분위기가 너무나 잘 살아난 것 같아요.그래도 eBook인 덕분에 공포 분위기 연출이 몇 배나 효과적이기도 했는데요. 이전 페이지의 훈훈한 분위기가 클릭 한 번으로 단번에 공포 분위기로 반전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만약 종이책이었다면 책장을 넘기며 혹은 시야를 옆으로 옮기며 발생하는 시간 차 때문에 반전 연출의 효과가 다소 줄어들었을 것 같아요.하지만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공포 연출이나 묘사, 펜선 등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 전반을 꿰뚫는 공포의 미스터리는 참혹한 비극을 예견하는 것 같아 계속 집중하게 만드네요. 앞으로 밝혀질 미스터리의 정체가 허탈할 정도로 단편적이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또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납니다. 외진 시골 마을에서 고립되다시피 살아가는 두 소년. 나이도 생활반경도 같은 이들에겐 당연히 서로의 존재가 그들 세계의 전부나 마찬가지였을텐데요. 하지만 내게 전부였던 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내 전부였던 친구가 사라져버려서 너무나 슬프지만 대신 이 낯선 존재가 친구의 자리를 채워주는데? 하지만 그 낯선 존재가 내 주변을 해치는 현실. 이 존재를 어찌해야 할까? 그 존재 안에는 나의 전부였던 내 친구가 기억으로, 흔적으로 여전히 남아있는데? 그냥 모른 척 하면 안 될까? 이렇듯 불합리한 상황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집요하게 묘사되고 있네요. 마치 사랑의 집착처럼요. 동시에 아주 오랜 동안의 고독-태고부터의 고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에서 드디어 벗어나 함께 할 존재를 찾아낸 인외존재의 집착이 무시무시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오랜만에 진짜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만화책을 발견해서 기분 짱입니다 >.<
그 귀하다는 소꿉친구물인데요 #선파혼후연애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의 악우들이 설레는 연애에 점차적으로 빠져드는 감정의 변화가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네요. 템포 빠른 액션 추리에 재미 비중을 더 두는 독자라면 약간 지루할 정도로요.여주에게 부여된 수수께끼 풀이 미션 덕분에 사실 지루할 틈이 없긴 했네요. 이야기 전반에 걸쳐 미션 해결과 연관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거든요. 등장인물들의 캐릭은 매우 입체적이라서 스토리에 생동감을 더해줬네요. 작가님 전작의 등장인물들의 후일담도 엿볼 수 있었구요. 모험 여행, 정쟁, 사회 부조리 척결 등 온갖 재미 요소들이 모인 이야기 종합선물세트 같아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여주의 성장 내러티브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권리가 제한된 사회에서 공작의 지위를 얻기 위해 소정의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 우리의 여주는 사실 완성형 캐릭터가 아닌데요. 똑똑하다는 평이지만 나이나 처한 환경 탓에 처음엔 우물 안 개구리의 미숙함을 보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완벽하지 않은 여주가 좋았어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발전해나가는 여주 캐릭터의 면모를 그때마다 볼 수 있었거든요. 동시에 남주에 대해 점차 깊어지는 여주의 감정도 차근차근 드러나고 있으니 그야말로 여주 성장 스토리라고 하겠네요.여주 성장 스토리라고 해서 남주가 묻히는 느낌은 개인적으로 못 받았는데요. 츤데레 초딩같은 남주의 심술 ㅡ> 입덕부정기 ㅡ> 자각과 후회 ㅡ> 안달, 초조 과정이 무척 귀여웠어요. 개인적으로 남주가 좀 더 오래 초조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요.잼있는 것(소꿉친구!!!)에 잼있는 것(미스터리 액션!!!)에 잼있는 것(성장! 발전!)이 더해져 진짜 잼있는 이야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