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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서영과 인수는 사랑이었을까? 대체, 사랑이 뭐지?
서영과 인수는 생의 절망적인 순간에 처한다. 믿었던 배우자는 철저하게 나를 배신했다. 게다가 내 잘못도 아닌데 젊은 가장이 죽은 상가에 가서 머리숙여 사죄해야 하고 모욕과 욕설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가장 친한 후배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절망이다. 김형경의 표현대로, 심장이 터질듯한 분노와 뼈가 뒤틀리는 배신감과 살이 벌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다. 하지만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 혹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들어보니 맞은편 사람도 나와 똑같은 고통 속에 빠져있다. 일단,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법이다. 불지옥 속에서라도 동료가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그래서 감옥에서도 더 심한 형벌을 가할 때는 독방으로 보내는 법.
서영과 인수는 서로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것을 겪고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의지가 된다. 그래서 그 지옥같은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그리고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디카에서 보았던 동영상과 같은 행위를 직접 하면서, 배우자의 휴대폰에서 본 것과 같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은 배우자가 응징하고 처단해야 할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나와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진 남자고 여자라는 것을 깨달아 간다.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저, 나도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그때 진심어린 용서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서영과 인수는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고 위로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능력을 잃었을 때조차 타인의 상처는 어루만질 수 있기 때문에(함께 문상을 다녀온 뒤 헤어지면서 인수는 서영에게 힘내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고통의 터널을 함께 손잡고 빠져나온다.
함께 지옥의 터널을 지나온 두 사람은 이제 동지가 되고 한 편이 된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것은 오히려 우정, 혹은 인간적인 애정에 가깝다. 젊은 남녀인 두 사람은 그것을 바탕으로 함께 몸을 나눈다(두 사람은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 나에게는 두 사람이 몸을 나누는 장면이 애정의 표현이나 확인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배우자도 이랬겠구나, 나도 결국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나약한 인간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배우자를 진심으로 용서하게 되지 않았을까. 외출은, 그런 점에서 상처와 치유, 그리고 용서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영화도 나는 그렇게 보았다. 영화의 맛과 색은 김형경의 소설과 많은 부분 다르다. 하지만 아주 매혹적이었다. 특히 음악이. 소설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영화를 처음 볼 때에는 소설 속의 장면이 영화로 어떻게 나타났을까에 집중하느라 영화에 몰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을 보았는데 두번째에는 비로소 영화 자체를 음미할 수 있었다)
사람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가 -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그리고 어떻게 타인을 용서하는가 - 나도 저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 속에서.
그들은 사랑일까? - 이건 영화의 카피이기도 한데, 흠- 굳이 말하자면, 생지옥을 필사적으로 함께 빠져나온 동료에 대한 연민과 우정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것도 넒은 의미에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춘향과 이도령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첫눈에 반한다는 식의 사랑과는 다르다. 그보다 더 아프고 그보다 더 무겁고 그보다 더 삶 속을 파고든다. 그리고 사람은 사실은, 그런 아픔이 배인 사랑에 의지해서 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것 같다. - 적어도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