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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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직접민주주의의 반민주성과 환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얼 보아야 할까? 아마도 사회계약의 비극적 자기모순을 구경한 이들이라면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라는 표제에 속지 않고 루소의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에밀과 소피아의 웃기지도 않는 적대적 분리와 에밀 교육의 자연주의적 보수성에 난감해 하는 이들에게는 루소의 초기저작의 숨김없는 노골적 고백을 통해 그 모순을 이해하는 한 단서를 얻게 될지 모른다. '고독한 산책'의 세계평화에 대한 몽상, 뉴 엘로이즈의 연애단상 등을 볼 때 루소는 문제제기의 왕자였다. 문제는 문제제기는 누구보다 탁월하게 던져놓고서는 제대로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제기의 왕자 루소는 누구보다 혁명에 반대한 반혁명론자였지만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가 되었고, 누구보다도 반민주주의적 함의를 강력하게 표현했지만 민주주의 아버지로 상징화되었다. 이 책으로 사회주의와 강력한 친근성까지 획득한 그이지만 플라톤과 스파르타에 대한 동경을 볼 때 그리고 낭만적 수공업주의의 환상의 여진으로 볼 때 루소는 더 이상 희망의 단초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루소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소국과민의 공동체의 이상을 진심어리게 표현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루소의 허상에서 벗어나게 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논리적 타당성이 이어지지도, 현실적 적실성이 연계되지도 않는 루소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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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논리 한길그레이트북스 38
질 들뢰즈 지음, 이정우 옮김 / 한길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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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조주의의 형식성을 전면적으로 아니 근본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들뢰즈의 전면전이다. 상투화된 구조주의 이해의 도식성을 구조주의를 새롭게 정초하면서 방어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도무지 알듯 말듯한 구조주의를 이해하기에 가장 쉬운 개설서가 되고 말았다. 구조주의가 비판하는 현상학이나 구조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레비 스트로스에게서 좀처럼 뜨거운 열정과 관심을 느끼지 못한 이들에게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탄탄한 지적 교양이 바탕이 된 놈들이 원체 많은 나라여서인지, 아니면 주식하게 지내온 한반도의 촌부여서 인지 모든 예화들을 다 소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소문의 어려움과 달리 아주 간명한 논리도식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고 소화할 수 있다. 지적 허영의 위세에 속지 않고서도 구조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통로와 문들을 마련해 놓았다.

들뢰즈는 구조주의(구조주의를 세련화한 후기구조주의)를 만나기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등을 추전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이 있지만 캐롤의 글들을 꼼꼼히 읽는다면 들뢰즈가 먼 소리를 하는지 명쾌하게 다가올 것이다. 예를 들어 험프티 덤프티에 대한 관점과 해석 차이에서 들뢰즈와 하버마스는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들뢰즈가 덤프티를 탁월한 구조주의의 기계이자 매혹적인 탈주자로 바라보는 반면 하버마스는 그의 슬픔과 비애를 비판한다.

험프티 덤프티는 개그 콘서트의 우격다짐의 시초이자 전형이다. 과연 들뢰즈가 낸 '문제가 어려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들뢰즈가 던지는 유희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여서 일 것이다. 한없이 경쾌한 기분으로 그를 만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감염되어 친구가 되고 나면, 그의 가치와 한계를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그에게 따뜻하게 표현하게 될 것이다. 언표의 차이로 헛돌지않고 계열적 차이의 낯설음을 넘어서 화통한 대화를 나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와 친구가 되서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 좋은 개론서이다. 문자의 거짓말에 속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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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박천홍 지음 / 산처럼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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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생동하지 않는 교과서의 추상화를 질리도록 암기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도무지 이런 도식화된 추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시험이라는 권력의 위새 앞에서 묵묵히 머리속에 쑤셔넣던 기억이 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그림 조각들을 파편들로 가지고 있다보니 기억은 휘발되고 앙상한 시험의 슬픈 추억만이 남을 뿐이다.

지난 시기를 살다간 우리의 이웃들의 고통과 슬픔, 기쁨과 행복의 사람살이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신비로 치부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근대와 이와 겹쳐졌던 식민과 제국의 역사가 꼼꼼한 사실화로 드러낸 책이 나왔다.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지금, 하나의 징검다리로 쓰일만한 좋은 책이다. 단순명쾌히지만 실상 위압적인 도덕의 명령만을 보여줄 뿐인 지고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으로 힘들어했고, 난감해했는지를 다양한 기법과 재료들을 이용해 당시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물론 미시사와 문화사에 흐르게 마련인 지배와 자유의 물줄기가 제대로 뼈대를 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간의 앙상한 미이라 찬탄에 비하면 살이 잘 오른 책이다. 철도라는 풍경이 담아내기 마련인 제국과 식민 그리고 자본과 국가의 시선이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신체적 습속에 뿌리내렸는지 관심이 있다면 멋진 유람이 될 만하다. 이 통통하게 오른 살을 징검다리로 삼아 근대와 식민의 뼈대와 사람들의 생동하는 피(땀)냄새를 맞을 수 있게 되기는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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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
마사 너스봄 외 지음, 오인영 옮김 / 삼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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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애국주의의 이름으로 세계경찰의 무도한 패권을 과시한다. 자국의 안전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자국의 안전이 세계의 평화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침략전쟁과 국가적 테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미국적' 폭력이 세계는 부화뇌동하고 불가피하고 정당하다고 체념한다. 국가라는 이성의 주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전쟁은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신봉건기획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절대주의의 주권관은 탈근대가 운위되는 시대에 새로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극의 세계질서에 과연 평화와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주류 학계의 세계시민주의와 애국주의 논쟁은 물론이고, 비판학계의 국제주의와 신국제주의의 논쟁은 국가주의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암중모색 중이다,

물론 이런 논쟁은 루소나 칸트, 헤겔, 뒤르켐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너스봄은 스토아와 로마의 평화기획에 까지 세계시민의 꿈을 이어주고 있다. 바버는 '강한 민주주의'의 구체적 근거로서 좋은 애국주의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들을 비롯 매우 다양한 이들이 좋은/나쁜 애국주의와 좋은/나쁜 세계주의를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격렬하게 다투고 있다. 데카당스와 니힐리즘의 시대에 재미있는 논쟁이다. 과연 세계시민주의와 공화국 기획의 모순적 상호성을 가능케하는 이론기획과 현실전략은 무엇일지. 이 무지하게 첨예한 모순에 대한 한가한 이론들에 대해 근본적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좋은 여행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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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강봉균·박여성·이진우 외 53명 지음 / 한길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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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학자 사전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개념어 서술도 있고, 이것저것 소개하고 있으므로 과학사전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전으로 보기에는 일관성도 체계성도 없다. 여러명의 쟁쟁한(?) 필진들이 참여해서 서술전략도, 관점도,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사전을 소장하고, 써먹는 이들의 권력의지란 뭘까? 여하튼 현대판 잡학다식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먹거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월경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적절치 않은 책이다. 분과화된 학문을 넘어서는 이들에게도, 자신이 파고들고 싶은 전문적 영역에 대한 섬세한 접근에도, 다양한 보편적 성찰에 대한 탐색에도 적절치 않은 책이다. 이 책으로 최신 유행하는 선두주자들에 대해 귀동냥은 할 수 있을지언정, 월경의 가능성을 얻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제목에 과도한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면(월경하는 이들에 대한 광고일 뿐 월경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럴저럭 쓸만하다.

월경을 하는 탁월한 능력을 구비한 자들에게는 분명 좋은 여행 안내서일 것이다. 3-4개 정도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기초가 튼튼한 이들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이런 백화점의 파노라마를 좋아할까? 관심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접할 책이 아니라 탁월한 귀족(적 장인)이 이런 책에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책이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 서 있는 쇼핑몰을 보는 듯하다. 하긴 라스베가스마냥 번성한 도시가 될지도 모를 일이나 그건 이 책 때문에 아니라 다른 구조적 유인책과 열정들 때문일 것이다. 사막위의 쇼핑몰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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