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박천홍 지음 / 산처럼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이 생동하지 않는 교과서의 추상화를 질리도록 암기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도무지 이런 도식화된 추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시험이라는 권력의 위새 앞에서 묵묵히 머리속에 쑤셔넣던 기억이 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그림 조각들을 파편들로 가지고 있다보니 기억은 휘발되고 앙상한 시험의 슬픈 추억만이 남을 뿐이다.

지난 시기를 살다간 우리의 이웃들의 고통과 슬픔, 기쁨과 행복의 사람살이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신비로 치부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근대와 이와 겹쳐졌던 식민과 제국의 역사가 꼼꼼한 사실화로 드러낸 책이 나왔다.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지금, 하나의 징검다리로 쓰일만한 좋은 책이다. 단순명쾌히지만 실상 위압적인 도덕의 명령만을 보여줄 뿐인 지고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으로 힘들어했고, 난감해했는지를 다양한 기법과 재료들을 이용해 당시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물론 미시사와 문화사에 흐르게 마련인 지배와 자유의 물줄기가 제대로 뼈대를 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간의 앙상한 미이라 찬탄에 비하면 살이 잘 오른 책이다. 철도라는 풍경이 담아내기 마련인 제국과 식민 그리고 자본과 국가의 시선이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신체적 습속에 뿌리내렸는지 관심이 있다면 멋진 유람이 될 만하다. 이 통통하게 오른 살을 징검다리로 삼아 근대와 식민의 뼈대와 사람들의 생동하는 피(땀)냄새를 맞을 수 있게 되기는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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