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인문학 - 김성도 세계 지성과의 대화
김성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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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보급 및 확장에서 비롯되는 하이퍼미디어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대담의 글이 담겨있는 책이다. 하이퍼미디어 시대에 인문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이들의 앞서가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의도가 엿보인다. 대담이나 이메일로 질문을 주고 받은 것이라 그리 글들이 길지는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대부분이지만(그레고리 울머 교수와 관련된 글은 상당히 난해한 편) 하나하나 관심을 갖고 파고들면 결코 쉽게 읽어넘길 성질의 것들만도 아니다. 앞으로 전개될 세상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담 같은 경우 맛보기 수준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짧다는 게 참으로 아쉽다. 아마도 그 이상의 사유와 성찰 그리고 비전을 얻기 위해서는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저자들의 원작을 직접 읽어야 할 듯.
인터넷 강국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에서는 과연 이 정도로 하이퍼 미디어의 시대를 인문학적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러웠던 부분. 있는 것을 단지 쓰는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앞서 생각을 하면 그만큼 더 많은 것을 개척하고 얻어서 발전시킬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부족한 것은 이러한 부분이 아닐런지? 잘 만들어서 쓰는 기술과 숙련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면 인간을 위해서 잘 쓸 수 있는가를 인문학적으로 고민하는 것도 병행되어야 할진데 과연 한국의 현실은 어느 정도에나 와 있을런지 잘 모르겠다.

책 전체를 읽으면서 부족하다 싶었던 부분이 하나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하이퍼 미디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지라 그에 대해서 앞날을 예측하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정보에 대한 빈부 격차가 전세계적으로 더 커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을 책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는 없었던 거 같다. 앞서 나가면서 포스트휴먼과 같은 영역으로 넘어가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많은 이들과 편중되지 않게 공유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 아니던가? 이 책에 담긴 고민의 한계를 보면서 정보 사회에 있어서도 또 하나의 서구 중심적인 생각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닌가(중심부에서 주변부의 위치와 입장을 제대로 생각하는 건 그리 쉬운 일만은 결코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를 생각하는 건 좀 무리였을까? 놓치기 쉬운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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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 대아시아주의 - 우익 낭인들의 활동과 사상을 중심으로 역비 동아시아연구 1
강창일 지음 / 역사비평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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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 대아시아주의>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1890년대부터 1910년대 사이에 주된 활동을 전개한 일본의 우익 집단 대륙낭인과 관련되어 있다. 대륙낭인을 지나낭인과 조선낭인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과 관련되어 있는 조선낭인의 구성과 활동상이 어떠한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 강창일 씨는 이 당시 활동한 낭인을 단순히 할 일이 없는 백수나 한량의 개념이 아니고 실제 활동한 인물들의 경력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이들이 근대 일본 사회에서 나름대로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 집단임을 밝히고 있다. 지식인 집단이기는 하지만 근대 일본의 정치계에서 주류-사쓰마와 조슈번 출신-를 이루지 못했던 낭인들은 결국 그들의 활동공간을 일본 국내에 한정시키지 않고 조선과 중국 그리고 만주, 시베리아로 넓혔던 것이다. 일본 국내 환경의 협소함과 서세동점의 제국주의적 시대 환경이 결합하여 낭인들의 활동여건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일본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연대의 논리가 발전해 나간 것이기도 하고. 물론 이 아시아주의는 동아시아 3국 중에서 일본이 먼저 근대화의 기수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자부심의 발로일 수도 있는데, 이는 이후 일본이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의 독주-이와 관련해서는 신동준 씨의 <근대 일본론>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와 결합하여 주변국을 침략, 병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동아시아 3국의 연대를 토대로 백인종의 침략에 대항하자는 아시아주의가 일본 중심의 독단적 군국주의로 흘러가면서 주변국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빠뜨렸다는 점은 굳이 새로 지적할 것도 없는 역사적 경험일 것이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항한다는 기치 아래 동일 문화권에 속해 있는 동아시아 3국이 연대하여 대항을 한다는 발상 자체에 이미 군국주의가 대두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두 세력 간의 이항대립은 그 대립의 명분만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성격이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서구 열강의 경우 그 대상을 아프리카, 아시아로 넓게 설정했던 것이고, 일본의 경우에는 그것이 동아시아라는 지리적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을 듯.

 책에는 천우협이 동학농민운동의 세력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고, 천우협으로 활동했던 조선낭인들이 이후 러일전쟁과 관련해서 결성된 흑룡회에서도 활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더불이 이 낭인 세력들이 친일 세력으로 악명이 높은 일진회-이용구, 송병준 등-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들의 배후에는 일본의 정계 거물들-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다 타로 등-이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의 활동이 일본 정치계와 일정 부분에 있어서 그 노선상 차이-결과적으로는 같은 성격의 것이기는 하지만 합병과 병합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도 이후 정치적으로 버림을 받았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여기엔 아마도 토사구팽이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책에서는 그 과정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그 정황을 이해하기에 꽤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용구나 송병준 그리고 일진회 같은 경우 친일을 한 인물/단체라는 규정 이외에 실체적 활동이나 성격을 분석한 글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참고할 부분이 많단 생각이 들었다. 이용구와 관련해서는 송건호 선생이 <한국현대인물사론>(한길사)에서 한국학계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빈약함을 지적하며 시론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기는 하다. 조항래 선생이 쓴 일진회와 관련된 연구글이 있기는 하나 아직 읽지는 않아서 논외로 할 수밖에 없을 듯.

 아무튼 조선침략과 관련되어 있는 일본 낭인들에 대한 분석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돋보이는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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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광장에 서다 -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김정남 지음 / 창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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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서점가 돌아다니면서 이 책을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저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여지껏 보아온 한국 현대사 관련된 책 속에서는 이 사람의 이름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단지 민주화 운동 30년의 역정(부제)을 다루었다고 하는데 그 책의 부피가 상당히 묵직했기에, 그리고 책의 발간사를 김수환 추기경이 써줄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중요한 비중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읽게 되었는데, 확실히 책을 덮을 때에는 저자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저자는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가 성립된 이후부터 전개된 각종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거기에 가담한 인물들은 누구였으며, 상황의 추이가 어떻게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 차분하게 잘 정리를 하고 있다. 개설서에서라면 사건의 이름 하나만 짧게 언급되고 지나갔을 것들이 이 책 속에서는 하나하나 펼쳐져 있었고, 많은 인물들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운동들의 정황과 전개를 어찌 이렇게도 세밀한 필치로 정리할 수 있었는지 그 자체가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저자가 민주화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는 반증이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현대사 관련된 책을 찾아서 본 것 중에서는 이번에 김정남 씨가 써서 낸 이 <진실, 광장에 서다>가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정리로서는 가장 풍부한 내용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하고 있다(그렇게 많이 찾아서 본 축에도 끼지도 못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 분량에 있어서도 650여 쪽을 상회하고 있고... 확실히 이 책은 한 가지 주제를 잡고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정리를 한 것이기에 예전에 읽었던 강준만 씨의 <한국현대사산책> 1970, 80년대편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그 느낌은 글을 정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강준만 씨가 여러 책이나 신문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발췌해서 신문기사 형식으로 즐겨쓰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기는 하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경향신문에서 예전에 기획했던 민주화운동실록에 정리되어 있던 내용(이 내용들은 <우리 강물이 되어 1, 2>로 정리되어서 작년에 출판되었다)과도 어느 정도 연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상호 간에 미비한 부분들을 보완해 준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한국 현대사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한 번 이상은 정독을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위에서 언급한 강준만 씨 책이나 경향신문사의 책과 병행해서 읽는다면 좀더 충실하게 그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 씨가 쓴 <한국현대사산책>은 각 시대에 대한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에 대해서 간략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우리 강물이 되어>란 두 권의 책의 경우에는 기획 기사의 형식이다보니 그 당시의 정황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 간략하게 확인해 보기에 좋고, 이후 거기에 가담했던 인물들이 현재는 어떻게 변모하여 생활하고 있는가도 확인해 볼 수 있는 잇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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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 국제분쟁전문가 김재명의 전선 리포트
김재명 지음 / 지형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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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이어서 관심을 갖고 읽게 된 책이다. 저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경력이 있는지 책날개를 살펴보다가 <한국현대사의 비극 : 중간파의 이상과 좌절>(선인, 2003)이란 책이 적혀 있는 곳에서 이 책을 쓴 저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이란 책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저자가 식민지 시기에서 해방 정국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활동한 다양한 중도파 인물들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었는데-이 책을 읽으면서 중도파로 여운형, 조만식, 김규식 외에도 조완구, 김창숙, 유림 등의 더 많은 인물들이 활약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새 책에서는 그와는 조금 비켜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쓴 서문을 읽어보면서 그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나 문제의식 그리고 시야가 한반도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좀더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주제가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고착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한국전쟁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전쟁의 발발에 영향을 미친 각종 내외적 요소들-지정학적 요소 및 각종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전쟁 기간동안 벌어진 수많은 민간인 학살, 전쟁이 한반도에 남긴 상처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진 결정체로서의 분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한반도 분단문제에만 국한되지 말고 좀더 시야를 넓혀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분쟁 및 무력충돌 지역까지 아울러 생각하고 고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단지 책을 통해서 이론적인 사유를 전개하는데 국한되지 않고, 이슈가 된 지역을 여전히 위험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둘러보고, 거기서 살고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자가 둘러 본 곳은 신문지상으로 가끔 기사가 실리고, 유혈충돌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는 곳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부터 시작해서 후세인이 미군에 잡힌 후에도 여전히 파견되어 있는 미군의 사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이라크,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고 유고 연방이 해체된 이후에도 학살이 그치지 않고 있는 보스니아, 발칸반도에서 악명이 높은 코소보, 회교도로 대표되는 파키스탄과 힌두교로 대표되는 인도 사이에서 갈등이 첨예한 카슈미르,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활약한 지역이자 2001년 미국에 의해서 알 카에다의 근거지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킬링필드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 반군이 활동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다가 인도네시아 군 및 민병대에 의해서 학살이 자행된 동티모르, 포데이 산코를 지도자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RUF에 의해서 학살 및 민간인들에 대한 손목절단이 횡행한 시에라리온, 체 게바라가 활약하다 잡혀 즉결처분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 볼리비아, 알 카에다 관련 인물들을 감금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 그리고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의 미국에 이르고 있는데 정말 활동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둘러본 세계 곳곳의 유혈사태가 발생한 지역에서 대규모 학살이나 무력충돌이 발생한 이유를 한 가지로 추려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든지 보스니아와 같이 민족 간의 갈등이 첨예화된 곳도 있고, 카슈미르 같이 한 지역 안에서 각자 신봉하는 종교가 다름에서 비롯되어 갈등이 누적된 곳도 있고, 시에라리온 같이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정치 세력 간의 충돌이 발생한 곳도 있으며, 이라크와 같이 석유 자원의 주도권을 두고 명분조차 될 수 없는 근거를 바탕으로, 유엔의 결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침공을 받아서 초토화된 곳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은 아무래도 제국주의를 주도했던 선진국들이 남겨놓은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고, 그러한 것들이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 형성된 냉전의 분위기 아래에서도 존속되었다는 점이다. 식민통치를 실시하거나 주된 영향력을 발휘한 지역 내에서 통치의 효율을 위해서 분열시키고 이간시키면서 남겨놓은 분쟁의 씨앗들이 냉전이라는 거대 구조가 사라지고 나서 본격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개입/방관하거나  무기 및 각종 자원을 지원하는 선진국들의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행동까지 가세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받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 분쟁 지역에서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수많은 민간인들이다. 시에라리온 지역에서 아무런 죄도 없이 손목 절단을 당한 사람들이라든지, 얼마나 깔려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되는 지뢰밭에서 목숨을 잃거나 신체의 일정 부분 이상을 잃어버린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 일부의 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여파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파고들어 있음을 책의 곳곳에서 확인하면서 정말로 끔찍함에 몸서리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저자는 어떠했으랴만... 각종 폭력의 종합 백화점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전쟁의 참상이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진행중임을 감안하고 한반도 내에서도 여전히 군사적 대치 국면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1953년 7월 27일의 협정은 전쟁을 임시적으로 쉰다는 휴전협정이었지, 전쟁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는 정전협정이 아니었다-한다면 이러한 문제가 한반도 내에서 다시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고, 과거에 한국전쟁과 같은 참화를 겪은 경험이 있는 이상 다른 지역에서는 어떠한 식으로 유혈충돌이 발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어 나가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다. 저자는 아무래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세계의 각 분쟁지역을 답사하고 그 생생한 자료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전쟁이라는 각종 폭력의 종합체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고, 발생한다 하더라도 최소의 피해가 발생하도록 그 규모를 축소시키는 게 차선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이 현실의 정치 영역에서 발휘될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여지가 넓어져야 세계에서 전쟁의 참상이 발현되지 않는 하루가 더 늘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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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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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이름은 그래도 익숙한 편이다. 장하준 씨의 경우에는 저번에 읽었던 <사다리 걷어차기>의 저자이고, 이종태 씨의 경우에는 <말>지의 기사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으니까.

 이 책은 한국경제에 대해서 대담 형식으로 의견을 개진한 장하준 씨와 정승일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읽어보기에 그리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다. 모르는 용어의 경우에는 이종태 씨가 편집을 하면서 주석을 친절하게 달아놓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내는데는 솔직히 두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그리 분량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어느 정도 생각을 하면서 음미해야 할 부분이 많고, 한국 경제에 대해서 해석과 처방을 내리는 방식이 기존에 접하던 것과는 어느 정도 다르기 때문에 처음 접할 경우 논의에 적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하준 씨나 정승일 씨의 경우에는 사학전공자나 정치학자들과는 달리 한국 경제의 성장 및 발전에 있어서 상당 부분 기여(?)를 한 박정희에 대해서 혹독하리만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박정희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정희를 찬양하고 시장경제를 숭배하는 조선일보 조갑제나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 식의 주장과 같은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한국이 그래도 이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재벌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한 박정희식 경제개발정책 및 구상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이며,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그 당시로서는 그래도 가장 나은 방식이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다. 후진국으로서 선진국의 개발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술협력을 하면서도 R&D부분에 대해서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인데, 후진국이 이 난관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불가피하게 자본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재벌 중심의 경제가 요구되었던 것으로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재벌을 통제할 수 있었던 박정희의 통치 스타일을 "비자유주의적인-이들은 자유주의적인 것과 민주주의적인 것에 대해서 엄밀히 구분을 하면서 한 국가의 경제운용에 있어서 과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운용모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는 하다-" 경제운영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의 논지는 언뜻 읽어보면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네들이 대담 전체를 통해서 하고픈 이야기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면 한 국가의 경제운용에 있어서 시장만이 모든 것을 알아서 자율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시장만능주의 사고를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네들은 이 시장만능주의적 사고방식이 우파 진영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각종 좌파 진영에도 널리 그리고 안일하게 퍼져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공기업 민영화라든지, 은행자본 매각 등을 단행해 나갈 경우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외국계 투기자본일 뿐 한국 경제의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만능주의적 사고는 단기적인 차익을 남기는 데 있어서는 아주 기가 막힌 처방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는 더 큰 수렁으로 빠질 수 있음을 영국의 예를 통해서 경고하고 있다.

 이네들은 재벌들의 역할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긍정적 기능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우호 일변도로만 나가지는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근래 광풍과 같이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대표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노동유연화가 단지 고용인력의 감원을 통해서만 이윤의 향상을 꾀하는 수량적 유연화에만 머물고 있는데, 이는 결국 경제의 저성장을 초래할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과 같이 기능적 유연성을 향상시켜서 정리할 인원을 재교육시켜 다른 부서로 보내 재활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훨씬 장점이 많고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가능케 할 수 있음을 영국의 사례와 대조시키고 있다. 단지 대규모의 인원감축을 실행하는 것만이 기업이 창출할 수 있는 이윤을 조금이라도 증대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편견을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책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자면 장하준 씨나 정승일 씨의 경우에는 한국 경제의 성격 및 과제에 대해서 기존에 이분법적으로 전개되던 논쟁들을 넘어선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을 과연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박정희에 대한 경제개발의 성과를 놓고 그것을 반대하는 입장은 주로 정치적으로 반민주적인 독재를 행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경제개발은 충분히 가능했다고 보며, 찬성하는 입장의 경우에는 박정희의 경제개발에 상당 부분 수혜를 받은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으면서 그와 같은 개발방식에 대해서 진한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논자들은 이미 이루어진 경제개발에 대해서 그 가능성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양을 하고, 그러한 현실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 세계 각 국의 경제발전 양상과 비교를 하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경제발전을 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상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그것이 미화나 숭배의 대상이 될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면 박정희에 대해서 가졌던 경제개발에 대한 동경은 시대가 달라지면서 시장경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시장만능주의로 그 대상만을 바꾼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두 대담자는 이를 경계하면서 시장에 대해서 정부가 적절하게 견제를 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네들이 마지막 부분에서 스웨덴 같은 사민주의형 국가 형태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이들 국가를 그래도 미국이나 영국식 경제모델에 비해서 낫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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