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 국제분쟁전문가 김재명의 전선 리포트
김재명 지음 / 지형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이어서 관심을 갖고 읽게 된 책이다. 저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경력이 있는지 책날개를 살펴보다가 <한국현대사의 비극 : 중간파의 이상과 좌절>(선인, 2003)이란 책이 적혀 있는 곳에서 이 책을 쓴 저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이란 책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저자가 식민지 시기에서 해방 정국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활동한 다양한 중도파 인물들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었는데-이 책을 읽으면서 중도파로 여운형, 조만식, 김규식 외에도 조완구, 김창숙, 유림 등의 더 많은 인물들이 활약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새 책에서는 그와는 조금 비켜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쓴 서문을 읽어보면서 그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나 문제의식 그리고 시야가 한반도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좀더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주제가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고착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한국전쟁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전쟁의 발발에 영향을 미친 각종 내외적 요소들-지정학적 요소 및 각종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전쟁 기간동안 벌어진 수많은 민간인 학살, 전쟁이 한반도에 남긴 상처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진 결정체로서의 분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한반도 분단문제에만 국한되지 말고 좀더 시야를 넓혀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분쟁 및 무력충돌 지역까지 아울러 생각하고 고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단지 책을 통해서 이론적인 사유를 전개하는데 국한되지 않고, 이슈가 된 지역을 여전히 위험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둘러보고, 거기서 살고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자가 둘러 본 곳은 신문지상으로 가끔 기사가 실리고, 유혈충돌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는 곳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부터 시작해서 후세인이 미군에 잡힌 후에도 여전히 파견되어 있는 미군의 사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이라크,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고 유고 연방이 해체된 이후에도 학살이 그치지 않고 있는 보스니아, 발칸반도에서 악명이 높은 코소보, 회교도로 대표되는 파키스탄과 힌두교로 대표되는 인도 사이에서 갈등이 첨예한 카슈미르,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활약한 지역이자 2001년 미국에 의해서 알 카에다의 근거지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킬링필드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 반군이 활동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다가 인도네시아 군 및 민병대에 의해서 학살이 자행된 동티모르, 포데이 산코를 지도자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RUF에 의해서 학살 및 민간인들에 대한 손목절단이 횡행한 시에라리온, 체 게바라가 활약하다 잡혀 즉결처분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 볼리비아, 알 카에다 관련 인물들을 감금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 그리고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의 미국에 이르고 있는데 정말 활동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둘러본 세계 곳곳의 유혈사태가 발생한 지역에서 대규모 학살이나 무력충돌이 발생한 이유를 한 가지로 추려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든지 보스니아와 같이 민족 간의 갈등이 첨예화된 곳도 있고, 카슈미르 같이 한 지역 안에서 각자 신봉하는 종교가 다름에서 비롯되어 갈등이 누적된 곳도 있고, 시에라리온 같이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정치 세력 간의 충돌이 발생한 곳도 있으며, 이라크와 같이 석유 자원의 주도권을 두고 명분조차 될 수 없는 근거를 바탕으로, 유엔의 결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침공을 받아서 초토화된 곳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은 아무래도 제국주의를 주도했던 선진국들이 남겨놓은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고, 그러한 것들이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 형성된 냉전의 분위기 아래에서도 존속되었다는 점이다. 식민통치를 실시하거나 주된 영향력을 발휘한 지역 내에서 통치의 효율을 위해서 분열시키고 이간시키면서 남겨놓은 분쟁의 씨앗들이 냉전이라는 거대 구조가 사라지고 나서 본격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개입/방관하거나  무기 및 각종 자원을 지원하는 선진국들의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행동까지 가세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받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 분쟁 지역에서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수많은 민간인들이다. 시에라리온 지역에서 아무런 죄도 없이 손목 절단을 당한 사람들이라든지, 얼마나 깔려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되는 지뢰밭에서 목숨을 잃거나 신체의 일정 부분 이상을 잃어버린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 일부의 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여파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파고들어 있음을 책의 곳곳에서 확인하면서 정말로 끔찍함에 몸서리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저자는 어떠했으랴만... 각종 폭력의 종합 백화점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전쟁의 참상이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진행중임을 감안하고 한반도 내에서도 여전히 군사적 대치 국면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1953년 7월 27일의 협정은 전쟁을 임시적으로 쉰다는 휴전협정이었지, 전쟁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는 정전협정이 아니었다-한다면 이러한 문제가 한반도 내에서 다시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고, 과거에 한국전쟁과 같은 참화를 겪은 경험이 있는 이상 다른 지역에서는 어떠한 식으로 유혈충돌이 발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어 나가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다. 저자는 아무래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세계의 각 분쟁지역을 답사하고 그 생생한 자료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전쟁이라는 각종 폭력의 종합체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고, 발생한다 하더라도 최소의 피해가 발생하도록 그 규모를 축소시키는 게 차선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이 현실의 정치 영역에서 발휘될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여지가 넓어져야 세계에서 전쟁의 참상이 발현되지 않는 하루가 더 늘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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