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 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
한상일.한정선 엮음 / 일조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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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정보를 얻는데 있어서는 매일같이 발간되는 신문이라는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러 종류의 신문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세상사의 수많은 정보들. 정보를 취득하고, 그 흐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정보가 활자로 표현되어 있는 글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보라는 것은 단순히 나열되는 활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신문의 예를 들자면 다른 기사들에 비해 보자면 차지하는 영역은 작지만 한 번 스치듯이 보더라도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만평이라든지 시사만화가 시사의 흐름에 대해서 촌철살인의 미학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는 화백의 이념적 지향과 그에 따른 시사 소재의 선택 및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르게 그려지기는 하지만 현재 사람들의 주된 관심을 끌고 있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는 근대 초기 조선이 개항을 하던 시기부터 시작하여 임오군란, 갑신정변, 김옥균의 망명 및 암살, 청일전쟁과 삼국간섭, 러일전쟁 그리고 을사조약을 거쳐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암살을 당하던 시기까지 조선과 청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서구 세력들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가졌던 인식을 그 당시 신문에 연재되었던 시사만화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네들이 그 당시에 지니고 있었던 대외인식을 분석하고 있다. 동아시아 3국 중에서 먼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이 먼저 근대화를 달성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인접국가였던 조선과 청에 대해서는 퇴폐적이고 비루한 이미지를, 그네들 자신은 서구의 이미지를 여과없이 투영했던 것이 시사만화의 곳곳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대국으로 인식되었던 청과 러시아를 차례차례 격파해 가면서 좀더 자신감을 갖고 확고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는 결국 일본이 추구했던 근대화라는 것이 서구의 추종과 답습을 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 귀착점은 제국주의였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향이 동아시아라는 지역 안에서 팽창해나가는데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1차적 목표는 조선의 병합을 통해서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당시의 시사만화 속에는 그 당위성을 일본서기의 기록에 전하는 진구황후의 한반도 정벌로까지 여지없이 소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본의 침략주의적 속성이 그 근원이 오래되었음을 반증해주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근대에 들어와서 만들어낸 식민사관의 해악을 좀더 대중적으로 손쉽게 유포시키고 각인시켜나갔다는 점에서 더 무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똑같이 다루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어렵게 쓴 한 편의 논문보다는 그것을 누구든지 손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만화와 같은 매체가 대중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주로 100여년 전 이전 시기 근대 일본의 언론매체에 연재되었던 시사만화들을 다루고 있지만 만화가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면면과 일본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우경화 경향을 바탕으로 현재 일본에서 출판되고 있는 만화 가운데도 그네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가운데 혐한의 기색을 비추고 있는 조짐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100여년 전에 일본이 시사만화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대외관이 단지 과거의 것으로 현재와 단절된 것이 아니고 여전히, 그리고 좀더 세련된 형태로 광범위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 경청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일본의 만화가 별다른 여과없이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자학사관 탈피 및 헌법9조 개정을 토대로 한 보통국가화의 추진이 우경화 분위기를 토대로 탄력을 받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만화라는 매체를 단순하게만 아이들이 재미로만 보는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닐까? 만화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어느 정도는 반영을 할 수밖에 없으며, 현실 속에서 축적된 기반들로부터 수많은 컨텐츠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검토해볼 여지가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만화가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그것들을 많이 접하는 가운데 그네들의 왜곡된 역사의식이나 시선이 침투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데, 이는 어떻게 보면 문화에 기반을 둔 신판 제국주의에 노출되는 것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띤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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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들 - 대한제국 후예들의 삶으로 읽는 한반도 백년사
정범준 지음 / 황소자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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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준 씨가 쓴 <제국의 후예들>은 고종의 직계 후손들(영친왕 이은, 의친왕 이강, 덕혜옹주, 이건, 이구 등)이 대한제국이 몰락해 버린 이후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인물별로 통시대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족들이 실상은 어떠한 삶을 살아갔는가에 대해서 저자는 다른 나라의 왕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우리나라에 있었던 왕실이나 왕족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지도 못한 채 잠깐의 화제거리로만 등장하고 마는 현실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삼아 그가 나름대로 조사한 내용과 인터뷰 내용 등을 기반으로 그네들의 삶에 대해서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후예들이 과연 왕조가 몰락한 이후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인물사적으로 접근해서 참고해서 보기에는 나름대로 괜찮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의 이행 그리고 그 이후에 근대화가 착실하게 진행되어 실패하지 않고, 고종의 구상대로 입헌군주제의 틀이 뿌리를 내렸다면 왕족으로서 그네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방식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네들은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무거운 짐을 얹고 일생을 살아야 했음을 저자는 조사한 바를 토대로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몰락한 왕조의 왕족들의 일생은 분명 우리네 근대의 슬픈 자화상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읽는 내내 씁쓰름한 감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덧붙여 왕실이나 왕족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데에는 한국의 근대 역사에 있어서 입헌군주정의 논의가 영향력을 상실하고 아예 자취를 감추게 것과 동시에 민주주의나 공화정 혹은 사회주의 등으로 정체(政體)에 대한 관심을 돌리게 된 것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한 국가의 몰락에 대해서 어찌 되었든 간에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군주 및 그의 측근들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반영된 것으로도, 왕족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한 명의 시민 혹은 국민으로 인식하게 되는 가운데 근대 사회의 사회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바뀌어 버린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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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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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준 씨가 쓴 <우남 이승만 연구>(역사비평사, 2005)를 읽고 난 이후 한동안 뜸했다가 다시금 흥미를 불러일으킨 책이다. 서중석 씨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여기저기에 발표했던 논문들을 모아서수록한 책인데, 책의 표제와 맞아떨어지는 논문들은 이승만과 그가 표방했던 '일민주의'에 대해서 천착한 앞의 세 개이다. 아무래도 이곳 저곳에 분산되어 1년 단위로 발표된 것들이기 때문에 따로따로 찾아서 본다면 조금 어수선해질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책은 발표된 학회지를 찾는 수고와 복사의 번잡스러움을 덜어주었다.

 분명한 것은 "국가이데올로기의 등장과 일민주의정당 모색",  "일민주의와 파시즘", "자유당 창당과 일민주의의 운명" 이 세 개의 논문은 문제의식과 주제가 일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읽어버리는 편이 낫다는 점이다. "일민주의와 파시즘"과 관련해서는 확실히 1950년대에 일민주의가 어떻게 표방되었는가에 대해서 천착은 이루어졌지만 파시즘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은 조금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저자도 결론 부분에서 한계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분과학문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지라 앞으로 학제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이상은 상당히 어려운 주제가 아닐까 싶다. 박정희 시대와 관련해서는 나찌즘이라든지, 파시즘과의 비교 연구과 비교적 진척되어 있는 것과는 조금 대조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앞서 이미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앞으로 좀더 심화시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박정희는 분명 이승만이 통치하던 시기에 이미 군으로 복귀하여 생활하고 있었고, 그러한 와중에 이승만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서 영향을 받은 바도 없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의 통치 스타일 간의 차이는 그네들이 태어나서 성장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보고 있기는 하다. 이승만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조선 왕조 말기에 왕족으로 태어났던 만큼 전제군주의 의식을 1948년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내내 표출했던 것이고, 박정희는 일본의 만주군 장교 경력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일본 군국주의의 정수를 체화하여 그것을 집권 후 발현했던 것(이는 10월 유신을 단행함으로써  절정을 이루게 된다)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둘의 지향점은 근대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를 확립해 나가는 것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는 소리이다. 한 명은 전근대 시기의 전제왕권(솔직히 이게 강력하게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연산군 시대에나 가능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승만의 통치 스타일을 두고 한국형 마키아벨리라고 평가하는 것은 괜히 나온 소리는 분명  아니다.)을, 다른 한 명은 전 사회의 병영화를 통한 일사분란한 통제를 지향했으니 말이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도 대외적으로 천명(?)하기도 했지만 이는 그 내용의 빈약함과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던 만큼 그네들이 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를 얼마나 천박하게 여겼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일 따름일 것이다. 그네들의 언술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네들이 지닌 권력을 임의대로 행사할 수 있었던 "한국의 정치 풍토"를 드러내주는 "한국적"에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야당의 두 얼굴 - 민주당(1955~1961)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분량이 꽤나 방대하고, 책의 제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승만 시기 야당으로서의 민주당이 어떠한 성격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이 담겨있기 때문에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이 하야한 이후 허정 과도정권을 거쳐 성립하게 된 장면 정권은 민주당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4.19 혁명 이후 성립된 제2공화국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한국민족운동사학회에서 펴낸 <장면과 제2공화국>(국학자료원, 2003)이란 연구성과물을 참고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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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문명사 문명탐험 1
김명섭 지음 / 한길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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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와 참고문헌을 실어놓은 쪽수를 빼고도 700여 쪽에 다다르고 있는 두툼한 분량이 외관 자체만으로도 읽기를 망설이게 만들기 충분한 책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서양과 인접해 있고 그러한 지리적 환경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을 전개해 나갔던 서부 유럽 국가들의 1000여년에 걸친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게 방대한 분량의 저서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는 지리적 여건상 대서양과 인접해 있는 서부 유럽의 국가들, 즉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이 어떠한 계기와 경로를 거쳐 대서양이라는 넓디 넓은 해양 공간 내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를 역사적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으로 시선을 돌려 신항로를 개척해 나가는 가운데 획득하게 된 지리적 인식지평의 확장과 그에 필수적으로 따른 새로운 영토의 획득(주로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화)이 지중해 중심의 세계관에서 보자면 분명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서양으로 새로이 진출하여 그네들의 세계관에 확장을 꾀할 수 있었고, 이는 그네들의 인식을 중심으로 한 지리상의 발견과 명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모국의 경제를 위한 자원수탈과 이주민의 정착을 병행해 나가는 가운데 먼저 그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흔적과 기억을 지우고 그네들에 의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서부 유럽인들의 대서양 진출이 단지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낸 선에서 끝나지 않고 그네들이 경제적으로 행한 수탈이 근대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발전에 있어서 물론 내재적 요인과 외재적 요인이 다양하게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서구 자본주의 발달의 역사에 있어서 그네들이 식민지로부터 수탈한 경제적 자원들이 모국에 유입되어 경제의 순환과 발전에 꽤나 기여했다는 외재적 요인을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장하준 씨가 세계 각 국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선진국들이 "사다리 걷어차기"의 행태를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아마 이러한 외재적 요인들이 자본주의 발달의 원시축적 단계를 지나고 나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 구조가 선진국-개발도상국-후진국 등으로 위계서열화된 다음의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서부 유럽인들이 대서양으로 활동반경을 넓힌 것이 현재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 미국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대서양 진출의 역사와 그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곧 미국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의도 혹은 문제의식도 분명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놓쳐서 아니될 점 중의 하나는 서부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서양문명의 팽창과 확장이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패권이 미국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인데, 미국의 경우에는 대서양의 세력권 안에서 그 패권이 귀결되지 않고 태평양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지리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 양안에 모두 인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태평양에서 패권을 확장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래도 1898년부터 시작된 에스파냐와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승리하여 필리핀을 획득한 것이 시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대동아 공영권을 표방했던 일본의 제국주의와 충돌하여 승리를 거둔 시점에서부터일 것 - 19세기 후반부터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영국이나 다른 제국주의 세력에 비해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미국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벌인 활동은 미미한 편 - 이다.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그네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하위체제로 포섭시켜서 전초기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대서양과 태평양 양안에서 전세계적인 패권을 장악한 이후 미국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쓴 <거대한 체스판>이라든지, 이삼성 씨가 쓴 <세계와 미국>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으니 이 저서들을 참고해 보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양안에서 패권을 획득한 이후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벌인 행적은 정말이지 그 시야가 넓음과 개입의 정도가 다양하고도 적나라하기에 몸서리가 처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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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산하 -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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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세 인물 즉, 김구, 여운형, 장준하를 한 자리에 등장시켜 이들이 대화를 취하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대화체의 형식이라서 읽기에 그리 부담이 되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대화의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 압축적으로 담겨있었기에 저자가 어떠한 의도를 담고 대화를 전개했는가를 이해함에 있어서 약간은 긴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세 인물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주어듣고, 읽은 게 있어서 그런지 그리 새롭거나 지적으로 충격을 주는 내용은 없었단 생각이 든다. 다만 그 내용 전개에 있어서 가상의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저자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화체로 각 인물들의 심정이라든지 처지 등까지 표현하기 위해서는 관련 인물들의 사상과 행적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하지 않고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위에서 밀도있는 대화 내용이라고 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쓴 것이다.


 저자가 김구, 여운형 그리고 장준하 선생을 등장시켜 대화를 전개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책의 후반부 장들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통일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결국 해방정국에서 친일파 및 이승만 그리고 그의 추종 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단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유엔의 승인 하에 세워진 남한 정부에 상당히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자체적인 역량을 통해서 주권국가를 세운 것이 아니라 유엔이라는 외세의 인정 하에서 정통성을 보장받았다는 점, 임정으로부터의 법통성 승인 희박성-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 바이기도 하다.

 세 인물을 통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언급은 세 인물이 추구했던 이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상 쉽게 평가절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의 국제 정세를 놓고 보았을 때 통일을 최우선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로 놓기는 어렵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집필의도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는 않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저자가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와 내 자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가 다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통일이라는 것은 지향해야 할 가치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 상에서 반드시 당위로서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조금은 회의와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내 자신이 해방 정국의 시기와 거리를 꽤나 두고 있고, 분단이 고착화된 지도 반세기가 넘은 시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예전, 즉 분단이 형성되어 가던 시점과는 마냥 같을 수 없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통일이라는 지난한 목표에 앞서서 먼저 어떻게 하면 한반도 내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부터 풀지 않으면 그 다음을 생각하기도, 풀어나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남한에서 주로 활동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다 보니 북한에서의 정세, 북한 지역 인물들의 활동 등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한 언급이 미흡한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 같다. 이는 앞으로의 한국현대사가 남북한의 역사를 아우르는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되고 서술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저자가 대담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남한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적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북한의 정권 수립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 남한 정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정통성을 획득할만한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짧게나마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분단 및 참화를 불러온 한국전쟁의 책임에 있어서 북한 정권도 만만치 않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 만큼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점은 저자가 인식한 북한에 대한 한계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기적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정책을 행한 것과 그것이 이후 정권을 합리화시켜 체제내화를 동반해가는 과정은 분명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책을 빠른 시간 내에 한 번 밖에 읽지 않아서 피상적으로 오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그렇게 평하고 싶다.

 아무튼 한국 현대사와 관련해서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 책을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가상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의 단면에 새로이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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