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문명사 문명탐험 1
김명섭 지음 / 한길사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각주와 참고문헌을 실어놓은 쪽수를 빼고도 700여 쪽에 다다르고 있는 두툼한 분량이 외관 자체만으로도 읽기를 망설이게 만들기 충분한 책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서양과 인접해 있고 그러한 지리적 환경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을 전개해 나갔던 서부 유럽 국가들의 1000여년에 걸친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게 방대한 분량의 저서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는 지리적 여건상 대서양과 인접해 있는 서부 유럽의 국가들, 즉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이 어떠한 계기와 경로를 거쳐 대서양이라는 넓디 넓은 해양 공간 내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를 역사적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으로 시선을 돌려 신항로를 개척해 나가는 가운데 획득하게 된 지리적 인식지평의 확장과 그에 필수적으로 따른 새로운 영토의 획득(주로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화)이 지중해 중심의 세계관에서 보자면 분명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서양으로 새로이 진출하여 그네들의 세계관에 확장을 꾀할 수 있었고, 이는 그네들의 인식을 중심으로 한 지리상의 발견과 명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모국의 경제를 위한 자원수탈과 이주민의 정착을 병행해 나가는 가운데 먼저 그 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흔적과 기억을 지우고 그네들에 의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서부 유럽인들의 대서양 진출이 단지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낸 선에서 끝나지 않고 그네들이 경제적으로 행한 수탈이 근대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발전에 있어서 물론 내재적 요인과 외재적 요인이 다양하게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서구 자본주의 발달의 역사에 있어서 그네들이 식민지로부터 수탈한 경제적 자원들이 모국에 유입되어 경제의 순환과 발전에 꽤나 기여했다는 외재적 요인을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장하준 씨가 세계 각 국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선진국들이 "사다리 걷어차기"의 행태를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아마 이러한 외재적 요인들이 자본주의 발달의 원시축적 단계를 지나고 나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 구조가 선진국-개발도상국-후진국 등으로 위계서열화된 다음의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서부 유럽인들이 대서양으로 활동반경을 넓힌 것이 현재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 미국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대서양 진출의 역사와 그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곧 미국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의도 혹은 문제의식도 분명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놓쳐서 아니될 점 중의 하나는 서부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서양문명의 팽창과 확장이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패권이 미국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인데, 미국의 경우에는 대서양의 세력권 안에서 그 패권이 귀결되지 않고 태평양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지리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 양안에 모두 인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태평양에서 패권을 확장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래도 1898년부터 시작된 에스파냐와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승리하여 필리핀을 획득한 것이 시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대동아 공영권을 표방했던 일본의 제국주의와 충돌하여 승리를 거둔 시점에서부터일 것 - 19세기 후반부터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영국이나 다른 제국주의 세력에 비해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미국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벌인 활동은 미미한 편 - 이다.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그네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하위체제로 포섭시켜서 전초기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대서양과 태평양 양안에서 전세계적인 패권을 장악한 이후 미국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쓴 <거대한 체스판>이라든지, 이삼성 씨가 쓴 <세계와 미국>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으니 이 저서들을 참고해 보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양안에서 패권을 획득한 이후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벌인 행적은 정말이지 그 시야가 넓음과 개입의 정도가 다양하고도 적나라하기에 몸서리가 처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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