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산하 -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한국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세 인물 즉, 김구, 여운형, 장준하를 한 자리에 등장시켜 이들이 대화를 취하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대화체의 형식이라서 읽기에 그리 부담이 되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대화의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 압축적으로 담겨있었기에 저자가 어떠한 의도를 담고 대화를 전개했는가를 이해함에 있어서 약간은 긴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세 인물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주어듣고, 읽은 게 있어서 그런지 그리 새롭거나 지적으로 충격을 주는 내용은 없었단 생각이 든다. 다만 그 내용 전개에 있어서 가상의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저자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화체로 각 인물들의 심정이라든지 처지 등까지 표현하기 위해서는 관련 인물들의 사상과 행적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하지 않고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위에서 밀도있는 대화 내용이라고 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쓴 것이다.


 저자가 김구, 여운형 그리고 장준하 선생을 등장시켜 대화를 전개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책의 후반부 장들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통일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결국 해방정국에서 친일파 및 이승만 그리고 그의 추종 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단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유엔의 승인 하에 세워진 남한 정부에 상당히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자체적인 역량을 통해서 주권국가를 세운 것이 아니라 유엔이라는 외세의 인정 하에서 정통성을 보장받았다는 점, 임정으로부터의 법통성 승인 희박성-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 바이기도 하다.

 세 인물을 통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언급은 세 인물이 추구했던 이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상 쉽게 평가절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의 국제 정세를 놓고 보았을 때 통일을 최우선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로 놓기는 어렵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집필의도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는 않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저자가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와 내 자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가 다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통일이라는 것은 지향해야 할 가치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 상에서 반드시 당위로서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조금은 회의와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내 자신이 해방 정국의 시기와 거리를 꽤나 두고 있고, 분단이 고착화된 지도 반세기가 넘은 시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예전, 즉 분단이 형성되어 가던 시점과는 마냥 같을 수 없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통일이라는 지난한 목표에 앞서서 먼저 어떻게 하면 한반도 내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부터 풀지 않으면 그 다음을 생각하기도, 풀어나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남한에서 주로 활동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다 보니 북한에서의 정세, 북한 지역 인물들의 활동 등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한 언급이 미흡한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 같다. 이는 앞으로의 한국현대사가 남북한의 역사를 아우르는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되고 서술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저자가 대담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남한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적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북한의 정권 수립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 남한 정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정통성을 획득할만한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짧게나마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분단 및 참화를 불러온 한국전쟁의 책임에 있어서 북한 정권도 만만치 않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 만큼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점은 저자가 인식한 북한에 대한 한계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기적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정책을 행한 것과 그것이 이후 정권을 합리화시켜 체제내화를 동반해가는 과정은 분명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책을 빠른 시간 내에 한 번 밖에 읽지 않아서 피상적으로 오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그렇게 평하고 싶다.

 아무튼 한국 현대사와 관련해서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 책을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가상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의 단면에 새로이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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