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 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
한상일.한정선 엮음 / 일조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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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정보를 얻는데 있어서는 매일같이 발간되는 신문이라는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러 종류의 신문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세상사의 수많은 정보들. 정보를 취득하고, 그 흐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정보가 활자로 표현되어 있는 글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보라는 것은 단순히 나열되는 활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신문의 예를 들자면 다른 기사들에 비해 보자면 차지하는 영역은 작지만 한 번 스치듯이 보더라도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만평이라든지 시사만화가 시사의 흐름에 대해서 촌철살인의 미학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는 화백의 이념적 지향과 그에 따른 시사 소재의 선택 및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르게 그려지기는 하지만 현재 사람들의 주된 관심을 끌고 있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는 근대 초기 조선이 개항을 하던 시기부터 시작하여 임오군란, 갑신정변, 김옥균의 망명 및 암살, 청일전쟁과 삼국간섭, 러일전쟁 그리고 을사조약을 거쳐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암살을 당하던 시기까지 조선과 청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서구 세력들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가졌던 인식을 그 당시 신문에 연재되었던 시사만화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네들이 그 당시에 지니고 있었던 대외인식을 분석하고 있다. 동아시아 3국 중에서 먼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이 먼저 근대화를 달성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인접국가였던 조선과 청에 대해서는 퇴폐적이고 비루한 이미지를, 그네들 자신은 서구의 이미지를 여과없이 투영했던 것이 시사만화의 곳곳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대국으로 인식되었던 청과 러시아를 차례차례 격파해 가면서 좀더 자신감을 갖고 확고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는 결국 일본이 추구했던 근대화라는 것이 서구의 추종과 답습을 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 귀착점은 제국주의였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향이 동아시아라는 지역 안에서 팽창해나가는데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1차적 목표는 조선의 병합을 통해서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당시의 시사만화 속에는 그 당위성을 일본서기의 기록에 전하는 진구황후의 한반도 정벌로까지 여지없이 소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본의 침략주의적 속성이 그 근원이 오래되었음을 반증해주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근대에 들어와서 만들어낸 식민사관의 해악을 좀더 대중적으로 손쉽게 유포시키고 각인시켜나갔다는 점에서 더 무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똑같이 다루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어렵게 쓴 한 편의 논문보다는 그것을 누구든지 손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만화와 같은 매체가 대중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주로 100여년 전 이전 시기 근대 일본의 언론매체에 연재되었던 시사만화들을 다루고 있지만 만화가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면면과 일본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우경화 경향을 바탕으로 현재 일본에서 출판되고 있는 만화 가운데도 그네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가운데 혐한의 기색을 비추고 있는 조짐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100여년 전에 일본이 시사만화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대외관이 단지 과거의 것으로 현재와 단절된 것이 아니고 여전히, 그리고 좀더 세련된 형태로 광범위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 경청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일본의 만화가 별다른 여과없이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자학사관 탈피 및 헌법9조 개정을 토대로 한 보통국가화의 추진이 우경화 분위기를 토대로 탄력을 받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만화라는 매체를 단순하게만 아이들이 재미로만 보는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닐까? 만화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어느 정도는 반영을 할 수밖에 없으며, 현실 속에서 축적된 기반들로부터 수많은 컨텐츠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검토해볼 여지가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만화가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그것들을 많이 접하는 가운데 그네들의 왜곡된 역사의식이나 시선이 침투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데, 이는 어떻게 보면 문화에 기반을 둔 신판 제국주의에 노출되는 것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띤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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