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풍각쟁이야 - 대중 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장유정 지음 / 민음인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애창되었던 여러 종류의 가요(신민요, 만요, 트로트, 재즈송 등)에 대해서 가사의 내용과 시대상을 중심으로 어떠한 맥락에서 불리워졌는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 시기의 노래들에 있어서 일본풍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영향을 피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여 "왜색"이 창연했던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당시 작곡이나 작사에 많은 한국인들이 참여를 하면서 예전에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민요라든지 판소리 등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밝혀내면서 그러한 것들을 새로운 형식 속에 녹여내면서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짚어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 시기의 대중가요가 단순하게 암울한 시대상만을 반영하고 있다거나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식의 관점을 지양하고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로는 대중가요도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부터 마냥 자유롭지만은 못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위축되었음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어용"으로 제작되어 홍보 수단으로 쓰인 노래가 대중들로부터 그렇게까지 환영받으면서 수용되었던 것은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대중가요가 전시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도 통제를 받으면서도 마냥 국가권력의 취향대로만 흘러간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인데, 분명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1930년대 말부터는 전쟁이 본격화되고 일본이 주창한 대동아공영권의 논리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일본에 의해서 수행되고 있던 전쟁에 대한 미화와 찬양이 본격화된 시기인 만큼 이 시기와 맞물려 있는 대중가요를 논의함에 있어서는 좀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유행하고 있던 대중가요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논평을 하고 있는 내용의 맥락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에 대한 논쟁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당시의 글을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시켜 생각해 보아도 문제의식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소리이다. 역시 사람이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는 어느 시대가 되던지 간에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리라.

  많은 이들이 즐겨부르는 대중가요 속에는 그 시대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기 마련이므로 함부로 그 가치를 낮추고 무시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이를 잘 활용하면 그 시대의 상을 조합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확실히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대중가요의 경우 너무나도 깊숙히 일상 속에 침투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홀히 하고 그것이 내포하는 가치 혹은 의의를 몰랐던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반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대중으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대중들의 요구나 시대의 정서에 맞게끔 변화를 거듭해 가는 대중가요는 분명 흥미로운 존재이자 주제인만큼 관심을 갖다보면 분명 그로부터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광시대 - 식민지시대 한반도를 뒤흔든 투기와 욕망의 인간사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1930년대 조선에 불어닥친 금에 대한 열광을, 그 당시의 여러 매체에 실린 글들을 통해서 잘 그려내고 있어서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금본위제와 관련된 각종 용어들은 그냥 읽어서는 바로 이해되는 성질의 것들이 아닌데, 보조자료를 집어넣음으로써 보완하고 있는 게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는 해도 경제 개념(태환화폐, 금본위제 경제 등)과 관련해서는 원체 이해의 기반이 약한지라 술술 읽히지 않음은 내 개인적인 지적 능력의 문제이리라.

  아무튼 이 책에서 복원해 낸 1930년대의 모습 속에서는 오늘날로 치자면 부동산이라든지, 각종 복권(특히 로또)을 통해서 인생의 대박을 기대하는 "한탕주의"가 "금광"의 발견과 채굴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언제 그렇듯이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다보면 패가망신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내실이라고 할 수 있는 실체조차 불분명하기에 거품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 당시 조선에서 채굴되어 조선은행을 통해서 거두어들인 금은 대부분이 일본으로 유출되고 정작 조선땅에 남아 있는 금이 없었다는 사실은 금에 대한 열풍이 얼마나 허망하고 내실이 없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1930년대라고 하더라도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설명하고 그려낼 수 있는 시대상과,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복원해낼 수 있는 상 사이에서 서술상의 차이점이 꽤 크다는 점을 개인적으로는 느꼈다. 근대와 관련해서 요근래 국문학 전공자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소리이다. 아무튼 대중적으로 평이하게 글을 풀어쓰고 있는 돋보이는 저자의 다음 저서가 어떠한 주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강준만.김환표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194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내에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람들을 규율하여 나갔고, 그 안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혀 개개인의 삶이라는 게 얼마나 산산히 부숴져버릴 수 있는가를 여러 인용문헌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여주기-강준만식 글쓰기가 책의 기본 골격이 되어 있다는 소리-를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본격적인 연구서는 아닌지라 무언가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최근의 연구 성과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단편을 맛보기로써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한 번 뇌리에 틀어박힌 반공에 대한 인식이라는 게 시대가 지난다고 해서 막연하게 흐릿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희미해져 가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틀 안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혀 국가폭력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선행되었는가, 그에 대해서 얼마만큼이나 반성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얼마 전 전교조 교사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이 대표적인 예이다)인지라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더불어 1894년을 기점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라졌어야 마땅했을 연좌율의 악습이 1980년을 넘어서까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암묵적으로 자행되고 있었음은 과연 우리 사회가 정말로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발전해 온 것이 맞는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헌법상 연좌죄의 적용이 금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이라고 과연 그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운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책의 제목이 <희생양과 죄의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아닌 이들, 즉 빨갱이로 낙인찍힌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들을 배제하고 각종 폭력을 강요(낙인찍히는 순간부터 이들은 이미 하나의 인격을 가진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하여 "빨갱이"임에 대해서 평생토록 "죄의식"을 갖고 살게끔 만든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상징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이는 또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네의 삶이 그만큼 "인권"에 대해서 취약하고 허술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 즉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서 배제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가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어두운 과거에 대해서 모두가 "죄의식"을 가지고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가에 대해서 "의식"조차 못할 정도로 불감증을 가지고 있다면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해를 한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 - 300년 동안 유럽이 본 한국
이지은 지음 / 책세상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문학자인 저자는 독일의 여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관련 각종 저서와 신문기사를 조사하고 섭렵한 것을 바탕으로 1655년부터 1910년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선"이라는 국가가 독일인들 더 나아가서는 유럽이라는 문화권에 어떻게 각인되고 기억되었는가를 살피고 있다. 동아시아의 각 국(주로 일본, 중국)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조선은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말 그대로 정보의 불모지였던만큼 간접적인 경로(주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선교사들. 마테오 리치, 아담 샬, 마르티노 마르티니 등이 대표적이다)를 통해서 전해진 정보를 토대로 상상되고 그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헨드릭 하멜 같이 조선에 표류해서 한동안 생활을 하다가 조선을 탈출하여 유럽으로 돌아가 그네의 경험을 정리한 경우라든지, 아담 샬이 소현세자와 교류를 나누었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교류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속성을 띠지 못했고, 일시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네들이 기본적으로 유럽이 아닌 국가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인식이나 관점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많은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유럽이 지중해 세계를 넘어서 신항로를 개척하고 팽창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제국주의가 판을 치고 있던 시기에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서구인들이 형성해 온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미셸 푸코의 주요 개념들을 차용해서 유럽인(특히 독일인)들이 그동안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누적시키고 확장해 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선행하여 작성된 각종 여행기나 기록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리고 인쇄술의 대량 보급 능력에 힘입어 많은 이들에게 보급되어 가는 가운데 "조선"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첨삭되고 확장되어 나갔는지는 조선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식인악어"라든지 그네들의 경제적 욕구를 자극하는 금을 비롯한 각종 광물의 과대포장된 소문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개항과 더불어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조선에 들어와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된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바를 토대로 그동안 기록을 통해서 전해온 조선에 대한 기록들에 허황된 점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 문명", "조선 = 야만, 미개"의 기본적인 인식의 틀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동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멸시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그러한 것들은 그네들이 남긴 각종 기록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조선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기록과 사진을 남긴 서양인들을 통해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역사의 단면을 복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사료의 가치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료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과 동시에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기에 그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서구인들이 조선을 여행하면서 남긴 각종 기록에는 그 당시 그네들이 뿌리 깊게 가지고 있었던 조선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반영되어 있는 만큼 접근과 활용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관찰자로서 제3자가 동시대를 기록한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적 기록으로써의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편파성으로 인하여 후세에 이를 접하는 이들에 대하여 역사에 대한 기억을 왜곡하고 그릇된 인식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역사적 기억의 선점"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서구인 중심의 "역사적 기억의 선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확산되고, 그 층위가 두터워지고 단단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널리 유포되고 확산된 다음에서야 그것이 갖는 문제점을 의식하고 하나 하나 바로 잡아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에서는 유럽인들이 그동안 서구 우월의 세계관 아래서 조선을 얼마나 왜곡하고 호도했는가를 여러 자료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적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을 때 그동안 여러 서구인들이 조선에 대해서 인식상 폭력을 가해왔다는 점을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체계적으로 밝혀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편견과 오류가 가득한 기억과 인식의 역사적 층위를 치밀하게 밝혀내는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러한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은 성과가 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 혹은 한국에 대해서 왜곡되고 부정적으로 잡혀 있는 인식이나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외국의 언어를 통해서 널리 소개하고 보급하는 과정이 상호 교류를 통해서 부단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드였는가도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 왔는가에 대해서 남들에게 어떻게 표현하고 알리고자 노력했는가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서로에 대한 인식은 결코 일방성을 띠어서는 아니되고, 상호 간의 지속적인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만이 깊어질 수 있는 것이며, 오해나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외국인들의 여러 조선 견문기를 읽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때 그 일본인들 - 한국 현대사에 그들은 무엇이었나
다테노 아키라 편저, 이정환.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식민지 시기를 거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본 그리고 일본인들을 생각함에 있어서는 식민지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터져나온 일본 정치인들의 극우적 발언,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인하여 일본에 대하여 긍정적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일 것이다.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피해자의 입장과 과거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이나 사죄를 하지 않은 채 우경화에 가속을 하고 있는 가해자의 입장이 서로 중첩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인식이 선악과 흑백의 단순한 구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게 아직까지는 엄연히 현실을 규정짓고 그 기저를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그 일본인들>은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조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었던 일본인 72명에 대해서 각 인물별로 간략하게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그네들이 조선을 연관지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 갔는가에 대하여 그려내고 있다. 72명이나 되는 일본인 개개인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채롭지만 그 면면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나 지향점이 물론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한계를 가졌다는 점(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의 불일치가 대표적인 예)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시기를 살았다고 해서 모두 같은 가치관과 지향점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조선에 대하여 정한론을 주창하고 뿌리깊은 멸시관을 드러내면서 그네들의 식민지화를 합리화한 인물들(사이고 다카모리, 후쿠자와 유키치,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 후쿠다 도쿠죠 등)도 있었는가 하면,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과 조선인들에 대해서 그네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세(식민지 통치)와 동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일본인들(후세 다쓰지, 하타다 다카시, 다우치 지즈코, 마쓰이 요시코, 마쓰이 야요리 등)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 대해서 일본인 내부에서도 보는 관점과 접근법이 다양하고도 상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당시를 살던 일본인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편파적인 이미지를 덧씌워서 해석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직까지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길게 드리워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서로 간에 입장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감싸안으려 했던 이들(위에서 언급한 후자의 경우)도 적지는 않았으며, 그네들의 행적(이는 학자의 연구성과,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통한 형상화, 적극적인 현장활동 등)을 쉽게 망각한 채 일방적으로 비난 혹은 매도를 해서만은 아니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알아야 하는 법이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일도양단식으로 역사나 현상을 단순화시키고 편파적으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이 책의 집필자로 들어가 있는 다카사키 소지가 지은 <식민지조선의 일본인들>(역사비평사, 2006)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연구서의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같이 읽으면 서로 보완되는 부분(개항기부터 식민지 시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드나들었던 일본인들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많을거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