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위기의 지구를 위한 인류세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9
박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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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길었던 여름, 11월에 반팔을 입는 것이 5년 후, 10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일이 된 일상, 며칠씩 이어지는 폭설...올해는 전세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체감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인간들이 아무리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도 지구는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티핑포인트를 넘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몇 가지 티핑포인트는 넘었을지도 모른다. ‘인류세라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기후위기는 일상이 되어 더 이상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 이 때, 지질학적 연대를 인류로 정의하는 인류세라는 말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가. 인류가 이 위기를 몰고 왔다고 선언하는 이 당돌한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후위기를 다룬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국내에서 홀로세 전문가인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가 말하는 인류세를 살아가는 방법은 단순하다. 지구의 역사를 개괄하며 인류세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생태계가 진화를 통해 살아남았듯) 인류가 지구를 발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다.

 

수많은 책에서 기후위기를 헤쳐 나가는 다양한 방법을 저마다 설파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대중 강연에서 인류세를 이야기해 온 저자답게 차근차근 지구의 역사부터 살핀다.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세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인류세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먼저 살핀다. 여기에서 깋위기, 생태계위기, 환경오염, 기후난민을 인류세를 상징하는 네 가지 중요한 속성으로 정의하고 이를 발판으로 인류세를 살아나가는 방법을 논한다.

 

기후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논하는 부분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하다. 육식울 줄이고 전기와 물을 아끼는 개인인적인 행동도 중요하지만, 세계화로 일어난 문제를 세계화로 해결하는 논의도 그 세부 사항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문제다. 기후위기가 전지구적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 나라 안에서도 세대간, 계층간에 촘촘히 분열되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인류가 법이나 제도, 혹은 자본이 아닌 윤리에 의존해 합의를 이루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인류세가 진행되고 여러 티핑포인트를 넘는다 해도 지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는 이 세상에 어떻게든 적응해 살아간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식물이나 인류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각자의 행위자로 기능한다는 신유물론적 접근법을 적용해 생태계의 모든 요소가 역동적으로 함께 작용한다는 관점을 지녀야만 우리가 이 시기를 걸어나갈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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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근육의 해부학에서 피트니스까지, 삶을 지탱하는 근육의 모든 것
로이 밀스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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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열풍으로 건강하게 먹는 법 이야기는 자주 들리지만 정작 그렇게 먹은 것이 우리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잘 모른다.

이 책은 마치 해부학 도감처럼 상세하면서도 몸 속에서 전하는 비밀 이야기를 엿듣듯 흥미진진하다. 골격근과 민무늬근, 액틴과 미오글로빈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전할 수 있다니 저자의 글솜씨에 놀라게 된다.

가장 기본 단위인 분자에서 시작한 근육 이야기는 우리 몸의 근육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몸 전체로 이어진다. 책의 전반부인 근육 이야기는 해부학 설명에 가깝다가도 근육과 관련된 문화, 근육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질병, 힘을 만드는 여러 요소를 보면 인문사회학적으로까지 폭넓게 펼쳐지는 근육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살찌지 않으면서 근육을 유지하고 싶은’ 실용적인 독자라면 컨디셔닝을 디룬 6장에 특히 관심을 가질 것 같다. 근육 성장에 도움아 되는 운동은 무엇인지, 저항운동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보조도구를 사용하면 좋은지, 식단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등의 정보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저 실용적인 정보만 뚝 잘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맥락에 귀기울이게 한다는 점이다. 왜 그런 운동이 필요한지, 그 영양소는 어떤 근육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근육에서 일어나는 질병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을 납득할 만하게 설명한다. 먹어야 하는 단백질량이나 보충제를 다룬 부분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저자의 의견을 포함해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근육량은 30세 이전 정점에 도달한 다음 10년마다 더 빠르게 감소한다고 한다... 근육은 분자생물학과 나노과학의 연구대상이자 삶의 근본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아름다우면서 복잡하며 생명의 움직임울 가능하게 하는 근육’을 최대한 활용해 건강하게 저속노화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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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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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생각을 모두 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뇌과학 열풍으로 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착시나 착각부터, 무의식적인 말과 행동은 사실 모두 뇌의 장난 아닌가?

 

책의 원제 인코그니토incognito’1.4킬로그램의 작은 뇌 속에 꼭꼭 숨어 나를 움직이는 거대한 무의식의 힘을 탐구한다. 프로이트에서 시작해 수많은 사례를 들어 세상은 나를 어떻게 인지하는가?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모든 것의 바탕에 있는 의식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같은 현대 뇌과학의 의문을 따라간다. 생각이 비물질적 기반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게 된 19세기의 일련의 실험을 거쳐, 뇌의 작동을 파헤치는 수많은 사례를 보면 모두 뇌의 작용으로 환원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처럼 뇌과학은 우리가 심리학이나 철학이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오히려 간단한 판결을 해주는 판사 같다. ‘모든 건 뇌 탓()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이글먼은 오히려 이런 생각을 경계한다. ’세상에 대한 우리 인식이 그 세상을 정확히 재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세세하게 온전히 보고 있다는 우리 믿음 또한 거짓이다.‘ 착시부터 망상을 설명하는 전반부보다, 오히려 뇌과학적 해석을 경계하는 조심스러운 후반부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다.

 

저자는 물질주의와 환원주의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경계한다. 뇌과학의 명백한 실험 결과들을 따라 자유의지란 없다는 결론으로 뛰어넘기보다, 이를 충분한 자동증 원칙으로 설명한다. 뜻밖에 뇌에 사고를 당하거나 종양으로 뇌 구조가 달라져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실존적인 문제를 대할 때, 모든 것을 뇌 탓으로 돌리며 뇌에 책임을 묻기보다, 이를 교정할 수 있는지를 바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문제를 반드시해결할 최선의방법이란 없으며, 그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수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히려 더 낫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라디오 이론이라 부르는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라디오 안의 회로를 파헤치는 데만 몰두할 뿐 사실 소리는 저 어딘가의 송신탑에서 온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 불리는 저자는 현대 뇌과학 전반을 통찰하면서도, 이 과학을 사회와 인간으로 끌어온다. 생각과 느낌과 믿음에 작용하는 뇌의 작용을 이해하는 것, 가 닿을 수 없는 그 세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우리는 뇌과학을 통해 결국 인간과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이 이글먼의 전작, 나아가 요즘의 뇌과학책들 중에서도 단연 주목할 만하며 되새겨볼 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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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소통 - 나를 위한 지혜로운 말하기 수업
박보영 지음 / 성안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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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소통이라니소통이란 두 사람이 함께 맞춰가는 것인데 이기적이라니?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이 이기적’ 소통은 나를 보듬는그래서 그 넉넉한 마음을 상대에게도 전하는 긍정적인 소통이었다.

 

사람들을 만나 어려운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대체!!이렇게 말하는 건데()!!!!’라고 내적으로 소리치는 적이 가끔(사실은 아주 자주있다나는 제대로 설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분을 만나기도 하고정말 막무가내로 소통 불가능한 분도 있고그래서 감정에 이끌려 아무말을 내뱉고 자기 전 이불킥하지 않도록 심호흡하는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이기적 소통’ 방법이 하나하나 소중했다.

관계를 들여다보고나를 들여다보고상처받지 않도록 말하며 상대에게 한발 다가서는 실용적인 방법을 전하는 이 책에는 당장 내일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한가득하다상황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방법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상대의 요구에 의문이 생길 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언어만큼 중요한 비언어적 요소를 사용하는 방법까지하나하나 버릴 것이 없는 조언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기계처럼 감정을 배제하고) ARS가 되라든가, ‘아이고에휴처럼 감탄사를 넣어 공감하라든가문장을 3단계로 나누어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고부드러운 느낌의 단어로 바꿔 말하는 등의 깨알 조언은 당장 내일 일하며 사람들을 만날 때 써보고 싶다특히 각 장을 시작할 때마다 실제 에피소드가 들어가는데이것 또한 직간접적으로 겪은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진짜배기 에피소드들이어서 더더욱 흥미롭게 소통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인간관계 속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첫걸음은 내 자존감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책 첫머리의 말은 소통은 상대가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잘할 수 있다는 마지막 말로 이어진다나를 보듬고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소통의 기본이 이기적’ 소통에서 시작한다면 아이러니일까책을 다 읽고 나면 바로 그게 소통의 진심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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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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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언어를 배우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저 발음이 좋아서,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림책 말고 글씨를 읽고 싶어서 등 여러 이유로 이런저런 언어를 깨작이듯 배우곤 했다. 그래서 낯선 언어를 배워 소설을 쓰는 이야기라니,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저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집 바깥으로 나가기를 힘들어하며 시내의 극장에 가는 일조차 에베레스트 등반처럼 느끼는 일본의 히키코모리. 하지만 이 히키코모리는 ‘히키코모리’라는 정의와는 전혀 맞지 않게 지구 정반대에 있는 나라로 자신을 한껏 확장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푹 빠진 영화로, 그다음에는 루마니아어라는 낯선 언어릉 통해서다. 극장이 아닌 집과 도서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영화평론을 게재하는 작가가 한국어판 서문에 쓴 한국영화와 문화에 대한 식견(나홍진과 김기영과 강화길을 넘나드는!)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루마니아 영화를 보고 루마니아어에 관심을 갖고(여기까지는 평범) 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모임들을 넘나들며 루마니아어를 한껏 넓히더니(여기까지도 그럴만 하지) 급기야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쓰고(오잉?) 루마니아 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인물로 평가받기까지(와우!)의 과정은 정말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혼자 다른 언어를 배워 그 나라에 소설을 개제하고 그 나라에서 유명해지는 이야기’가 너무 과장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사뭇 진지한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런 결과(그리고 지금도 나아가는 과정)도 결코 거져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영화라면 놓치지 않고 독립영화까지 꼼꼼히 찾아보고, 그것을 수십 권의 노트에 남기는 열정의 시네필에서, 그저 인생을 즐기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그것을 또 하나의 인생으로 만든 이야기는 헐렁한 히키코모리의 삶이 전혀 아닌, 치열한 배움과 성장의 이야기였다. 그저 시간이 남아서, 집에서 뭐라도 해야 해서, 그냥 멋있어 보여서같은 단순한 이유로 무언가를 해도 용납되는 시기가 있었던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여가’라는 이름으로밖에 허락되지 않는 그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이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잉여라 불리는 사람이 그 잉여의 시간을 제멋대로 사용해 결국 ‘제 멋’을 이루는 이야기라 해야 할까.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언어의 본질을 살피고, 자국어인 일본어에 스민 차별 문제를 발견하고, 가타코토 같은 ’비주류‘ 언어들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권력을 쥔 사전과 나 사이에서 긴장감을 느끼는 이야기에는 예상 밖으로 언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사뭇 배어 있다.

<지바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인 내가 한 번도 외국에 가보지 않고 루마니아어 소설가가 된 이야기>라는 기나긴 원제는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라는 상큼하고 어쩐지 근거없는 힘이 샘솟는 제목이 되었다. 표지 역시 다소 비장한 모습의 인물 이미지를 담은 원서에 비해 유령이 노트북에서 번뜩이는 뭔가를 발견하는 귀여운 표지로 내용과 더욱 잘 어울리게 바뀌었다. ‘희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다’라는 서문의 제목처럼, 방구석에서 지구 저편으로 세상을 확장한 사람의 범상치 않은 인생여정을 보면 왠지 ‘뭐가 되도 되겠지’라는 근본없는 희망을 잔뜩 품게 된다. 그래도 좋다. 저자가 ‘나만의 루마니아어를 만든다’라는 말도 안 되 보이지만 어쩐지 납득하고 응원하게 되는 평생의 과업을 목표로 삼았듯, ‘뭐든 하다 보면’ 정말 ‘뭐든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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