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조각가들 -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까지 신약을 만드는 현대의 화학자들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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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조각가들>, 백승만 지음, 해나무

뱀독에서 뽑아낸 고혈압 치료제, 주목 나무에서 추출한 항암제, 뱀에서 추출한 당뇨병 치료제... 인류를 구원한 의약품은 의외로 단순하고 간결한 화학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구조를 발견한 이들의 역사와 노력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운으로 찾아내고 자연을 모방하고 사람을 연구해 물질을 창조한 의약품 개발의 역사를 거쳐 새로운 mRNA 백신을 개발하게 된 지금까지, 의약품 개발의 현재와 미래를 훙미로운 역사책처럼 풀어 놓는 이 책은 인간의 호기심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로도 볼 수 있다.

플라스크와 시약을 도구 삼아 화학분자를 조합하는 화학자이자 의약품 합성 교수인 저자는 자신을 ‘분자 조각가’로 칭한다.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처럼 화학분자라는 재료를 빚어 인류를 구원하는 물질을 창조하는 화학자라면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남긴 ‘조각가’들에 빗대어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유기화학이라면 간신히 재수강을 면할 정도의 학점이라는 어두운 기억만을 가진 내가 탄소 10개, 수소 9개, 질소 3개로 이루어진 항암제 글리벡의 화학분자구조를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한 적은 결코 없지만, 이란 단순하고도 강력한 분자를 만들어 사람들을 살려낸 역사는 분명 감탄스럽다. 원인이 되는 출발물질과 결과가 되는 약물 사이를 연결하는 과학자들의 기발하고 재치있고 때로는 어이없기도 한 실수와 실패들은 결국은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진다.

충실한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으로 정부와 제약사가 협업해 빠르게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하루 빨리 사람을 살려낸 에이즈 치료제 지도부딘의 개발 사례, 탈리도마이드나 바르비탈계 수면제처럼 이성질체나 분자 구조를 조금만 바꿔 새로운 효능을 내거나 부작용을 줄인 개선된 약물을 만든 사례들을 화학 구조를 곁들여 섬세하게 풀어낸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여기에 여성으로 온갖 고난을 겪으며 대사 항암제를 개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거트루드 엘리언의 이야기에서 현대의 분자 조각가들이 mRNA 단백질로 만들어 내는 코로나 백신까지, 저자의 말대로 ‘세렌디피티’와 지식, 호기심과 여러 사람의 협업이 이뤄 온 빛나는 역사가 곳곳에 반짝인다.

이렇게 약 만들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이 유용한 약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만든 약이 안전할까 라는 두 가지 질문을 두고 분자 조각가들은 지금도 안전하고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이 흥미로운 고민의 역사를 함께 살피며 미래의 의약학을 예상해 보는 여정은 의약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과학에 흥미있는 독자들은 물론 화학이라는 단순하고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지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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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4-2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호기심이 학문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