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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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아, 어떻게 살아 있는 네가 이 어둠의 나라에 오게 되었느냐? 살아 있는 자가 이곳에 오기란 어려운 일인데.”

 

방대한 미지의 세계가 한껏 밀려오는 호메로스의 원대한 <오디세이아>의 한 구절로 여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심해처럼 깊고도 심오하다. 어릴 때부터 바닷속 세계에 매혹되었던 저자가 조금씩 보여주는 세상은 찬란하고 두렵고 매혹적이고 경이롭고 기괴하다. 그 모든 형용사를 합쳐도 우리가 달만큼도, 화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계의 경이를 표현할 수 없으리라.

 

각 장에서는 해양 탐사의 기원, 심해에 매혹된 탐험가들의 이야기, 심해 생명체들과 세균 이야기처럼 호기심 자극하는 이야기부터, 심해로 들어가는 잠수정과 난파선 발굴 이야기처럼 영화보다 생생한 모험 이야기를 거쳐, 심해 채굴과 해양 쓰레기 같은 환경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아우르며 심해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본다.

 

비슷하게 심해를 다룬 책으로 예전에 읽었던 <눈부신 심연>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심해 탐사와 그에 따른 문제라는 비슷한 지점을 논하고 있으면서도 심해에 대한 매혹이 도드라지고 사진과 소설을 읽는 듯한 스토리텔링이 압권이다. 심해 개발에 비판적이기보다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 목숨을 걸고도 저 깊은 곳에 뛰어들게 만드는 경외심, 공포를 압도하는 놀라움이 전면에 나서는 이 책에서는 심해를 직접 바라보는 듯 훨씬 생생하게 눈앞에 볼 수 있다.

 

심해에서는 방향을 잃는 대신,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p. 406)

 

하지만 출렁이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듯 책을 넘기다가도 그 심해의 깊고 고요하고 거대한 생명에서 바라보는 것은 거꾸로, 인간 자신이다. 가장 넓고 깊은 곳을 볼 때 우리는 가장 작고 나약하고 사소한 자신으로 되돌아와 (거대한 심해에서 본다면) 해변에 밀려온 해파리보다 결코 낫지 않은 인간을 되돌아본다. 바다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손을 잡는 일, 생명과 생명이 맞닿는 일을 새삼 깨닫는다.

 

바다가 요구하는 덕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겸손이기 때문이다.”(p. 207)


*좋은 책을 전해주신 까치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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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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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뇌과학이 발달하며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뇌’라는 생각은 이제는 상식으로 퍼졌다. 뇌 각 부위의 고유한 인지기능과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우리가 인간다워지고 다른 사람과 개인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신경과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자신이 만난 환자들을 살피며 뇌가 어떻게 작동하며 정체성을 구성하는지를 살핀다. 신경계 질환으로 과거의 자아를 버리고 익숙치 않은 새로운 자아를 (아마도 타의로) 얻게 된 일곱 명의 신경다양인의 이야기다. 단어를 기억해 내지 못하고, 전과 전혀 다른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환각을 보는 사람의 뇌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지, 그 부분을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지(또는 그렇지 못한지) 생생한 에피소드를 그린다. 저자 자신도 파키스탄 이민자로 이방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아 정체성을 글로 녹여내며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따스한 마음으로 살핀다.

(신경다양인의 사례를 여럿 들어 이들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올리버 색스의 글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신경다양성의 뇌 해부학적인 원인을 파헤치고 그것을 약리학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어 그저 일화를 소개하거나 뇌의 미스터리에 경외감을 느끼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뇌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점은 무엇보다 독특했다. 마음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의 일부에 문제가 생기면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쳐 개인의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상호성을 강조한 점이 무척 좋았다. 인간도 사회의 일부로 사회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것처럼, 뇌와 마음을 하나의 역동적이고 상호적인 사회로 바라본다는 독특한 시각은 신경다양인을 바라보는 또다른 관점을 주었다.

단어를 잃은 남편을 걱정하는 환자 아내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아내는 “내가 결혼한 남자가 사라졌어요”라고 한탄하지만, 자기 어깨를 감싸안으며 다정하게 차를 권하는 남편을 보고는 “지금도 내 남편이네요”라고 수긍한다. 뇌의 변화로 자아의 일부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나머지는 그대로의 자아다. 뇌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듯, 신경다양인도 사회의 한 부분이다. 이들을 인정하고 보듬어 안을 때 그 사회도 달라진다.

📚좋은 책을 전해주신 까치글방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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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해방 - 세계적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담대한 제언 아포리아 6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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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자산의 99퍼센트인 280조를 앞당겨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부유하게 죽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세계 최빈국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긴급함을 전했다. 실천윤리학의 거장인 피터 싱어의 이 책 <빈곤 해방>에서 강력히 전하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주장이다.

10년 전 펴낸 책을 개정한 이 책에서는 책의 원제와 같은, 피터 싱어가 공동으로 만든 재단 더라이프유캔세이브(www.thelifeyoucansave.org)’ 통해 그간 세계 극빈층이 크게 줄고, 5세 이전에 죽는 아이도 절반 이상 줄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부에 관해서는 불신의 시선이 있다. 특히 복지보다 성장을 우선시해 온(지금도 그런) 우리나라에서는 해외 원조라도 하면 국내에도 굶는 아이들 있다라며 비판하고, (그간 몇몇 실제 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내는 돈이 제대로 아이들에게 쓰일까?’하는 의문도 든다. ‘일단 경제 개발로 성장해서 (파이를 키운 다음) 빈곤을 해결하는 게 더 급선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싱어는 이 책에서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하나하나 반박한다.

 

가장 서늘할 정도로 담대한 주장에 돌입하기 위해 윤리학자인 싱어는 세심하게 질문을 쌓아 나간다. ‘새로 산 옷이 더러워질 것을 감수하고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할 것인가?’, ‘노후를 위해 산 자동차가 부서질 것을 감수하고도 기찻길에 있는 아이를 구할 것인가?’, ‘대체 어디까지 희생해야 할까?’ 차근차근 파고드는 윤리적 질문을 거치면 추상적으로 그래, 기부는 좋은 일이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나는 어떤 방법으로 얼마큼 나를 희생해서 전 지구의 빈곤을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까에 닿게 된다. 이 해답은 얼마 전 읽었던 <부의 제한선>과도 맞닿았다. 세상의 상위 1%가 전체 부의 48%를 거머쥐고 있는 지금, 사람에게는 대체 얼마만큼의 부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부를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책은 몹시 극단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주장으로 느껴졌다. 싱어의 이 책에서는 법적인 제한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윤리적 질문의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나는 얼마나 가져야 하는가, 얼마만큼을 분배하고 나누고, 가장 존중받아야 할 기본적인 생명을 지키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아주 현실적이고 엄중하면서도 극단으로 치닫는 지금의 세계를 반대편으로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 같은 책이다.

 

*좋은 책을 전해 주신 21세기북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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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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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아니 알려 하지도 않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땅에 발을 딛고, 그들이 원주민의 땅에서 약탈과 착취와 전쟁을 이어가며 그들만의 역사를 이어갔다는 사실은 숱하게 들었지만, 정작 그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그 이후역사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순순히 땅을 내 주거나 노예가 되거나 죽어 사라졌을까?

그들에게도 목소리가, 역사가 있었다. 백인이자 영국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원주민인 인디저너스를 연구하고 자료를 꾸리며 그들을 대변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신중하고 상세하게, 가려져 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인디저너스의 삶에도 적극적으로 침략자들과 대항하고, 전략적으로 공생을 모색하고, 선구적인 부족의 입장에서 지식과 물자를 전수하고, 두 세계를 오가며 적극적인 중재자가 되었던 이 있었다. 그 사실을 무지했다 싶을 정도로 전혀 알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1490년대 초부터 유럽에 수천 명의 인디저너스들이 있었다라는 단순한 사실조차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물자 부족과 질병을 뚫고 유럽에 타의로, 때로는 자발적으로 도착한 인디저너스들은 노예이자 구경거리이기도 했지만 외교관이자 연구자, 의사, 법조인, 통역사이자 중재자이기도 했다.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살았던 그들은 침략자에 맞서 저항하다 스러져가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구적인 문화와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그들의 문화를 유럽으로 전파하기도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정복자와 피정복자라는 단순한 구분 사이에서 한쪽의 입장만을 강요당하며 침묵했던 인디저너스들은 이 책에서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저자 역시 이렇게 인디저너스와 그 후손들의 공동체가 지닌 시각을 존중하며 그들의 역사를 전한다. 아직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해와 유물처럼, 식민주의의 역사는 아직도 이어지지만 사고를 완전히 역전하는 이런 눈이 번쩍 뜨이는 책 덕분에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빛을 드러내는 인디저너스의 삶과 지워졌던 양방향의 교류를 다시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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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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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가, 방랑가, 여행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몸과 사유를 평생 이리저리 끌고 다녔던 벤야민의 유일한 픽션을 모은 책이다. 프로이트가 읽었다면 몹시 흥미롭게 보았으려나.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듯 말처럼 흐르는 이야기와 꿈과 상상들이 클레의 그림과 적절히 섞여 더 몽환적이다.

그의 비평처럼 단단하고 치밀하지 않은 흐트러진 문장들이 성글게 얽혀 있어 오히려 신선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방식도 엄격한 학자의 이면을 살짝 엿보며 그 생각의 실마리를 어디선가 붙들어 보려는 듯 듬성듬성 툭툭 끊어지다 이어졌다.

과거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처럼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갑자기 시작해 툭 끊어지는 상상의 단편, 이 어디쯤에선가 그의 사유가 시작되었으려나 생각하면 흥미롭다.

1부는 꿈과 몽상이 가득한 내밀한 일기에 가깝다. 낯선 것들이 뒤섞이고 시간 순서도 없으며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다. 이 내적인 세계에서 바깥 세계로 나아가 여행하는 2부에서는 유럽 남부에서 북부를 가로지르며 익숙하고도 낯선 곳들을 파사주를 거닐 듯여행한다. 놀이와 교육을 이야기하는 3부에서는 말장난과 놀이, 흉내내기를 통해 세계의 틈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의 해제에서처럼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일그러져 있는 세계, 현실의 진짜 얼굴인 초현실이 돌발 출현하는 세계라는, 그가 프루스트에 대해 한 말을 그대로 벤야민 자신에게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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