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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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 인간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다. 아프리카나 미얀마에서, 인종 혐오가 판치는 서양에서, 가까이는 바로 우리 곁에서도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을 것 같은 끔찍한 범죄가 연이어 일어난다. 그런 뉴스를 매일 보고 있으면, 인간이 '선하다는' 믿음 따위는 파사삭 사그라든다. 지하철에서 밀치는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비야냥거리는 동료, 이성적으로 납득시킬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고객들에 치이는 하루를 보내면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이지만 이성과 시스템으로 가까스로 그 본능을 억제하며 근근히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명확해진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 말하며 권력자에게 우리의 자유를 일임하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은 바로 이런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개념에 근거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9/11테러나 허리케인 같은 온갖 재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오히려 '먼저 가세요'라고 말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도왔다. 네덜란드의 획기적인 사상가인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훑으며 홉스의 사상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뉴스가 절망적인 소식으로 가득한 이유는 뉴스가 '예외적인 것만 보도하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날을 왜 보도하겠는가? 사실 우리의 일상은 이런 날들이 대부분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 사회적 시스템이 때로 인간을 악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타인과 투쟁하지 않고 서로 돕는다.

다소 나이브하게 들리는 이런 주장은 상세한 문헌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힘을 얻는다.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집단을 이루어 서로 학습하며 발전함)나 이스터섬이나 수용소 실험에 대한 왜곡을 지적하기도 하고, 이런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질문인 나치에 대한 거론도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인간의 악마적 본능을 보여준다는 실험들도 사실은 조작되었음을 밝히는 상세하고 실제적인 실험과 관찰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사실 다원적 무지의 한 형태는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기대의 힘, 전염되는 신뢰의 힘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는 이런 주장은 흐름을 과감히 거슬러 '호모 코오퍼런스'라는 협동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에 힘을 싣는다. 그리고 차별과 혐오를 줄이는 방법으로 역설적으로 '접촉'을 제안한다. 혐오의 대상을 자주 접촉할수록 불신과 위협이 우리 본능에서 줄어든다.

이 책이 전하는 주제는 낯설지만 간명하다. "우리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인간이란 (성차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맨카인드(인간) man-kind' 대신 '친절한 존재, 휴먼카인드human-kind'라는 점을 설파한다. 우리가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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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그 자리에 의자를 두기로 했다 - 집에 가고 싶지만 집에 있기 싫은 나를 위한 공간심리 수업
윤주희 지음, 박상희 감수 / 필름(Feelm)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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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 일 년 동안, 나는 실은 내가 '진정한 집순이'임을 깨달았다. 집을 싹 정리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이 그렇게 좋았고, 북적이는 쇼핑몰과 대형마트 대신 필요한 생필품과 기분 좋은 물건을 조금씩 들이는 습관이 오히려 가뿐하고 좋았다. 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갑갑하다는 친구들도 많다. 어질러진 집과 산더미 같이 쌓인 집안일을 보면, 집은 위안보다는 우울함만 더하는 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벗어나 기분 좋은 공간을 찾아 밖으로 나간다. 세계에서 카페 수라면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우리 나라에서 카페는 그저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기보다, 내 취향과 맞는 정돈된 공간, 기분 좋은 음악, 좋은 커피 향기가 있는 공간의 의미에 더 가깝다. 이 '기분 좋은 공간'을 우리의 일상의 공간으로 들여놓으면 어떨까?

<공간치유>를 운영하며 공간을 숨쉬게 만들고, 우리가 숨쉴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해 주는 일을 해 온 저자는 모두 내다 버리는 정리나, 아끼는 것을 모두 쌓아 놓는 수납이 아닌, 나와 가족이 함께 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것만을 남기는 공간을 강조한다. 한동안 유행했던 곤도 마리에 식의 '설레지 않으면 다 버리라'는 과감한 조언도, 북유럽식 '라곰' 라이프스타일도 아닌, 한국식 미니멀 라이프를 제안한다.

그동안의 공간 정리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을 정리하지 못하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분석하는 본문 내용은 실용서라기보다 심리 서적에 가깝다. 과다한 애착, 무기력, 애정결핍에 빠진 공허한 마음을 분석하며 왜 채울수록 마음이 산만해지는지, 왜 버리지 못하고 가벼워지지 못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는 데서 시작한다.

책 말미에 모여 있는 공간 정리 노하우는 덤이다. 본문과 어우러져 중간에 실렸더라면 좋았겠지만, 한 편으로 모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면도 나쁘지 않다. 옷장이나 주방, 베란다를 기분 좋게 정리하는 사례와 팁만 살펴보아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정리는 새로운 삶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리츄얼'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정리를 망설이는 이에게, 집에 애착을 찾지 못하고 바깥으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집은 마음처럼 내가 다듬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조용히 말해 준다. 공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지금, 내 방의 한 구석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내 마음의 먼지를 털고 정돈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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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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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에미코, <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

어쩌면 여행은 보고 듣고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발딛고 있던 '나'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종의 새로 태어나기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는 끈질긴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그래서 은근 큰 결심이 필요하다.

십여 년 간의 회사생활을 그만두려 결심했을 때 처음 내가 했던 일은 항공권을 끊는 일이었다. (그리고 퇴사 날까지 회사에서 여행지와 맛집과 호텔을 무한검색한 것은, 이제는 안 비밀이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거쳐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땅에 홀로 훌쩍 발을 디뎠을 때, 비록 스마트폰과 카드 한 장이면 어디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세계라지만, 나는 두려웠다. 후련함보다는 당장 오늘 저녁 어떻게 주문하지, 숙소는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가게에서 '당당하고 스마트하게' 쇼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현지인처럼.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더듬거리는 불어와 영어를 섞어 대화를 시도해 보아도 그곳에서는 관광객, 아니면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걸 인정해야 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

그러자 그곳에서의 '일상'이 편안해졌다. 유창하지 않아도 말도 안되는 문법으로 불어 단어를 던지면 신기하게도 미소(와 엄청난 불어로) 답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세번쯤 들른 카페의 공기가 문득 편안해지는 순간,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 나는 그 전과는 다르게, 그렇지만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동경하는 '외국살이'를 하고싶어 오십줄에 당차게 퇴사를 해버리고 프랑스 리옹으로 '셀프 특파'를 해버리는 당찬(!) 53세의 전직 신문 기자다. 멋진 외국 생활을 살아보겠어! 하고 결심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속옷 두벌과 쌀과 조미료, 바느질감과 참기름(?)만이 든 캐리어를 달랑 끌고 도착한 어영부영 외국살이는 그때의 나를 꼭 닮았다. '일상'을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주뼛거리며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는 아침, 그 나라에 스며들기 위해 더듬더듬 동네 시장에서 감자와 꽃과 빵을 사고, 에어비앤비에서 요리를 하고, 동네 카페 직원과 조금씩 말을 주고받고, 두근두근하거나 은근히 신경을 쓰며 그들의 삶에 스미려 애쓰는 일상. 그 부단한 노력이 소소하고 재미있고 또 쓸쓸해서 마음이 간다.

그 좌충우돌 일상과 아무도 미소지어 주지 않는 쓸쓸함 속에서도 에미코는 최대한 전기를 쓰지 않고, 소비를 줄이고, 나를 찾아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일을 하는 평소의 소소한 습관이 일상을 유지하는 삶을 유지한다. 언뜻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매일, 변함없는 간소한 삶. '무미건조한 게 어때서. 오히려 그게 포인트다.'

낯선 곳의 조그마한 일부라도 나의 공간으로 만드는 노력, 요리를 하고 요가를 하고 글을 쓰며 세계 어디서든 변하지 않는 '나'의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에미코의 14일간의 짧은 외국살이는 돌아왔을 때 빛을 발했다. 언제 어디서든 '나라는 존재'가 가능함을 알게 해 준 시간. 나의 퇴사 후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비로소 이곳에서 다시 살고, 또 떠날 수 있다. 작은 확신을 갖고, 어디서든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단단한 믿음을 갖고.

덧. 책을 덮고 나면 책 표지의 소소한 일러스트가 하나하나 에피소드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애잔하기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는 일상의 사물들에 담긴 작은 비밀을 들여다보는 재미!

📕책 속 한 줄
✏️필요한 건 외국어 능력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고 연줄도 아니고 돈도 아닌, 바로 '나'였다. 별 볼 일 없는 나, 한심한 나. 지구 끝까지 간다고 그런 내가 완전히 달라질 이 없다.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을, 여행을 갔다고 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걸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평소에 하던 걸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쉬운 일이 사실, 어렵다. 그게 여행일 것이다. 내 나라에 있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인데 국경을 넘어선 순간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잘 안 되는 것투성이다. 그런데 허우적대다 보면, 나의 뿌리 같은 게 보인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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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애는 머리가 나쁘니까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정수란 옮김 / 연우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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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가 보도되면 대중은 성적인 부분을 알고자 한다. 피해자가 어떤 성폭력을 당했는지 그 내용이 궁금하다고. 보도나 비판이니 공론화니 하는 명분을 얻어 무자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프로그램과 기사가 양산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도쿄대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의 첫머리이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소설의 내용은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로 배경만 바꾸어도 될 정도로 전혀 낯설지 않다.

실제 사건에 기반한 이 책은 사실을 고발하거나 수위를 높여 사건을 상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시간을 들여 가해자와 피해자의 마음에 '이미' 자리한 사건을 들여다본다. 일상적인 만남과 문자, 서로 엇갈리거나 두근두근하며 마주치는 마음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여기에 폭력과 불순함과 남을 짓밟는 마음과 계급이 들어서는 것은 순식간이다. 도쿄대생이라는 우월함이 스멀스멀 스며들어 '나는 우월하니까. 나는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으니까, 그럴 자격이 되니까, 저 여자애는 머리가 나쁘니까, 내가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니까' 라고 변질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나 극적인 사고 전환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그렇게 되어버린다. 대학 순위대로 매겨지는 이름과 가치는 그대로 사람의 가치로 호명된다.

미사키와 쓰바사가 처음 만나고 알게 되어가는 과정은 마치 연애소설이나 성장소설처럼 일상적이고 섬세하게 수놓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불쑥, 사건들이 놓인다. 여자애가 원한 거라며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돈을 받는 일상은 일상처럼 한 페이지로 스윽 지나갈 뿐이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라인 메시지와 대화들은 오히려 불길할 정도로 평화롭고 나른하다.

그리고 사건 당일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처럼 우연히 아는 사람과 모임에 나가고 맥주 한 잔을 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는 이후 법정이서 진술의 재료가 된다. 사건 이후 소설은 건조하고 담담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건과 그에 이어지는 반응들. 사람들은 댓글로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고 꽃뱀으로 몰고, 가여운 도쿄대생들의 앞날을 막았다고 비난한다. 가해자들은 '완전히' 불기소되어 (퇴학 처분을 받은 후에도) 가정의 후광을 입고 그럭저럭 살아 나간다. 하지만 끝까지, 그날의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날, 그 애 왜 그렇게 울었을까? 쓰바사는 알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나는 지점부터 소설은 오히려 기사나 다큐처럼 건조하다. 사건은 이전에 묘사된 미사키의 마음, 수많은 라인 문자와 대화, 편지들의 감정에 묻힌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히 '사건 이전'으로 돌아간다. 술자리에서 쓰바사를 위해 억지로 웃어 주었던, 엄청난 상황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던, 평소보다 다 위악적인 폭력을 저질렀던 그들에게 내재된 마음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저 '왜 그랬어'라는 무수한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사건은 되풀이된다. 일본에서도, 여기 한국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름만 바뀐 채 같은 사건과 같은 판결, 같은 언론과 대중의 반응이 되풀이된다. 거기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지워지고, 그들의 삶은 밀려난다. 소설 속에서, 사건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쌓여왔던 이야기와 마음들은 의미없이 사라진다. 그들에게는 한 장의 판결문만이 남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애, 왜 그랬을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해 보았을까? 크고 작은 비슷한 상황이 수없이 이어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까? 그녀와 나와 우리의 삶을 위한 질문을 이제 우리에게 되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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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달문을 찾아서 - 하우 희곡 [2019 아르코 창작산실 대본공모 선정작품] 2019 창작산실 대본공모 선정작품
하우 지음 / 독서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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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달문을 찾아서>

연극을 그다지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희곡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에서 2019년 당선된 이 희곡은 옛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구전소설이나 판소리의 낯익은 옷을 입었다.

백성들이 길가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 희곡의 매력은 살아난다. 들썩거리는 악공의 음악과 백성들의 대사가 마치 뮤지컬이나 판소리처럼 휘루루루 펼쳐진다. 소란스런 악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대사는 생동감있고 시종 리듬감이 넘친다.

희곡의 틀은 조선시대 광대를 다룬 영화를 떠올리게도 하고, 1인 극으로 펼쳐지는 현대 판소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전통적인 연극의 그릇보다는 생경하고 단순하고 낯선 무대 꾸밈도 걸맞을 듯한, 새로운 연극의 힘을 함축한 글이다.

이야기 속 이야기 구조로 낭독자의 입담에 기대는 희곡은 현실과 이야기를 넘나드는 이야기꾼이자 광대의 입을 빌어 비뚤어진 정치와 현실을 논하고, 또 '광대의 입을 빌어서'밖에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거리로, 백성에게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어디에도 없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누구도 될 수 있는 '달문'을 기다리는 여정을 4부로 구성한 틀 속에서 술렁이는 백성들과 달문을 연모하는 기생의 이야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모가 현실과 이야기를 넘나들며 절묘하게 긴장감을 고조한다.

희곡 속 옛 현실이 바로 지금의 현실과 겹쳐지는 것도 이야기의 겹을 한층 두텁게 한다. 아전에게 대드는 광대 달문이 (이야기 속에서) 힘없이 쓰러지자 (현실의) 백성들이 '내가 달문이다'라고 하나 둘 일어서는 장면은 하나 둘 반짝이며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을 떠올리게 하고, 백성들이 달문과 함께 부르는 동요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는 어느새 새 나라를 염원하는 지금 이곳 군중의 노래가 된다.

하지만 달문의 죽음과 이야기를 이어받은 채령으로 마무리되며 안전하게 닫힌 듯한 결말은 또 다른 혁명의 이야기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질 틈을 열어둔다. 달문에게서 채령으로 이어지는 백성의 이야기, 그 속에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끊임없이 전달해 나가는 백성들은 앞으로 이어질 또다른 이야기를 연다.

현실의 힘겨움을 반영하는 이야기로 고통을 잊었던 옛 백성들의 노래와 이야기는 다시 지금의 현실에 불러들여진다. 현실은 힘겹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사람을, 그리고 이야기를 믿는다. 이 희곡은 중첩된 시공간을 도전적인 구성 속에서 힘있게 펼치며, 옛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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