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달문을 찾아서 - 하우 희곡 [2019 아르코 창작산실 대본공모 선정작품] 2019 창작산실 대본공모 선정작품
하우 지음 / 독서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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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달문을 찾아서>

연극을 그다지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희곡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에서 2019년 당선된 이 희곡은 옛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구전소설이나 판소리의 낯익은 옷을 입었다.

백성들이 길가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 희곡의 매력은 살아난다. 들썩거리는 악공의 음악과 백성들의 대사가 마치 뮤지컬이나 판소리처럼 휘루루루 펼쳐진다. 소란스런 악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대사는 생동감있고 시종 리듬감이 넘친다.

희곡의 틀은 조선시대 광대를 다룬 영화를 떠올리게도 하고, 1인 극으로 펼쳐지는 현대 판소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전통적인 연극의 그릇보다는 생경하고 단순하고 낯선 무대 꾸밈도 걸맞을 듯한, 새로운 연극의 힘을 함축한 글이다.

이야기 속 이야기 구조로 낭독자의 입담에 기대는 희곡은 현실과 이야기를 넘나드는 이야기꾼이자 광대의 입을 빌어 비뚤어진 정치와 현실을 논하고, 또 '광대의 입을 빌어서'밖에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거리로, 백성에게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어디에도 없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누구도 될 수 있는 '달문'을 기다리는 여정을 4부로 구성한 틀 속에서 술렁이는 백성들과 달문을 연모하는 기생의 이야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모가 현실과 이야기를 넘나들며 절묘하게 긴장감을 고조한다.

희곡 속 옛 현실이 바로 지금의 현실과 겹쳐지는 것도 이야기의 겹을 한층 두텁게 한다. 아전에게 대드는 광대 달문이 (이야기 속에서) 힘없이 쓰러지자 (현실의) 백성들이 '내가 달문이다'라고 하나 둘 일어서는 장면은 하나 둘 반짝이며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을 떠올리게 하고, 백성들이 달문과 함께 부르는 동요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는 어느새 새 나라를 염원하는 지금 이곳 군중의 노래가 된다.

하지만 달문의 죽음과 이야기를 이어받은 채령으로 마무리되며 안전하게 닫힌 듯한 결말은 또 다른 혁명의 이야기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질 틈을 열어둔다. 달문에게서 채령으로 이어지는 백성의 이야기, 그 속에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끊임없이 전달해 나가는 백성들은 앞으로 이어질 또다른 이야기를 연다.

현실의 힘겨움을 반영하는 이야기로 고통을 잊었던 옛 백성들의 노래와 이야기는 다시 지금의 현실에 불러들여진다. 현실은 힘겹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사람을, 그리고 이야기를 믿는다. 이 희곡은 중첩된 시공간을 도전적인 구성 속에서 힘있게 펼치며, 옛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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