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새들이 아니지만… 새로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사람이 아니라, 해림은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아파트 화단 깊숙이에서 죽은 지 오래되어뼈만 남은 새를 보았다. 뼈까지 깨끗했다. 역시 새가좋았다. 사람보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잠결에 창문 밖에서 새들이계속 울었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전생에 새였나보다. 너"
엄마는 태몽 대신 새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 P345

직접 보지 못한 새들이 너무나 많은데, 셀 수 없이 많은데 세상이 끝나가…….… - P350

무용해 보이는 과열 경쟁의 경로에서 벗어나 새를 많이 보고 새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택하는 게, 가능할까?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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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도 스쳐가는 직업일지도 몰라. 여러 일을 거쳤거든. 나 좀 꾸준한 데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지 마. 네가 열려 있는 사람이라 변화에도 적극적인 거겠지. 나, 너 처음 봤을 때부터 확 느꼈는데, 열려 있는 사람이란 거, 튼튼하게 활짝 열리는 창문이나 공기가 잘 통하는 집처럼."
- P317

"나는 독일인, 페라나칸인, 한국인 들이 눈이 맞은결과야!"
"우린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지구인이네."
"서로서로 더 눈이 많이 맞으면 오십 년쯤 후에 다우리처럼 생길 거라고 하던데."
그런 세상이 금세 올 것 같기도 영영 오지 않을 것같기도 했다.
- P322

사람들이 물어보곤 했어요. 내 글에서 죽음 냄새가난다고, 누가 죽었느냐고, 흥미롭게, 문학적인 대답을기다리며 한 사람이 죽었을 거라고 추측했죠. 나는 차마 학살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죽은 연인이 있다고대답하곤 했어요. 어린 나이에 비극적으로 아름답게죽어버렸다고 말이에요. 그게 사람들이 원하는 적당한 대답인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말해요. 지난세기에 일어난 일이니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참혹함을 떠올리면 심장이 난폭해지고 갈비뼈가 터져버릴것 같지만, 말해요. T에서 내 가족이 죽었어요. 모두 죽었어요. 나만 두고. 경찰과 군인들이 죽였어요. - P328

큰딸의 심상한 말에 명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성격이 둥근 사람과도 잘 지내고 예민한 사람과도 잘 지냈다. 외국 학생하고도 같이 다니고 장애 학생이랑도 같이 다녔다. 잣대는 없고 젓대는 있어서 사람 사이를 휘휘 저어버린달까?  - P336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절박한 안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 아아, 이 사람 큰일났다. 싶을 땐 늦었고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디다. 큰회사에 다니고, 가업을 잇고, 대단한 돈을 거머쥐고,
다정한 반려인이나 귀여운 아이들을 얻고 나서도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 기생충이 먹을게 없으면 내장을 파고들듯이요. 수집가나 애호가가되어 욕구를 해소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그렇게 운이 좋지 않습니다. 결국 일에도 뜻이 없어지고 주변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저보다 훨씬 가난한예술가들 곁에서 머물며 소비만 하다가 자기 자신도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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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사과하려는 아버지…… 친절한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시선이 요제프에게서 무얼 봤는지 알았다.
젊은 시절의 그를 그려볼 수 있었다. 그때 요제프는 두번째 결혼도 실패한 후였다. 그렇게 외로울 거면 우리랑 계속 살지 그랬어, 하고 타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명은은 가끔, 그렇게 반복해서 결혼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것이 신기했다.
- P303

"언제까지 땅 파고 살 거니? 두더지 이모가 될 셈이니?"
명혜는 이십 년이 넘게 잔소리를 하다가 최근에 포기한 듯하던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두더지 이모라는 말이 명은은 마음에 들었다. 지수가 가출을 했을 때 굴처럼 천장이 낮은 집의 소파를 기가이 내즌적도 있으니 정말 두더지 이모가 된 것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명혜의 오해와는 달리 명은은 그림자 자주을 파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훼손을 최대한 지양하며지표 조사를 하고, 특수한 경우 시굴을 거쳐 발굴에들어갔다. 젊은 시절 격자 도랑을 파느라 허리가 상했고 노년에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할 만했다.  - P304

제발 어딘가 퓨전 아시아 음식점에 머리만 놓인 불상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 아니길 바라며 명은이 미소지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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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때문도 아니야. 각도 때문도 아니야. 할머니한테 던지기 전에 갈아뒀던 거야."
"설마..
"할머니는 그 정도의 악의는 상상하지 못했던 거야.
그런데 우리는 할 수 있지. 21세기 사람들이니까. 그런 악의가 존재한다는 걸 알지."
우윤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화수의 말이 맞으리란 것을 뒤따라 깨달았다. 전공은 조소였지만 유화 나이프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건 팔에 박히는 물건이아니었다.
- P220

"그렇지만 오늘도 제대로 탄 적이 없잖아."
"원래 모든 운동은 계단식으로 느는 거야. 계단을올라서는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포기하면 안돼."
왜 자신의 계단만 유난히 폭이 넓고 험난한 형태인지. 우윤은 투덜거렸다. 
- P237

 화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방전된 배터리와 나쁜 타이밍 이전에 멍청하고 명하게 방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한빛과의 관계 회복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 P269

언젠가 먼 여행지에서 한빛을 만나 그렇게 반가워할 수 있으면 했다. 불가능할 거란 걸 알면서도 아직 포기하지 못한 마음이 그렇게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 P274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
- P277

시선은 사랑과 자신의 언어 중에서 언어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터져나오는 말들을 거꾸로 잠글 수는 없었던 사람...... - P282

아는 사람은 다 궁금해하는 사생활에 대해서, 한 번에 털어놓지 않고 파편화시켜 조금씩 썼다. 사람들이 저열하게 알고 싶어하는내용은 힌트 정도로만 흘리고 자신이 세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로 책을 채웠다. 영리한 전략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 P283

"그 모든 걸 꿰뚫어보던 사람이 왜 자기한테 일어난일을 소화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렸지?"
"그야 그렇잖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들을 할머니는 몰랐을 거니까."
"이름들?"
"가스라이팅, 그루밍 뭐 그런 것들,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지 않게 딱 정의된 개념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시작선이 다르잖아."
- P283

나도 어른이지,
언제까지고 딸, 손녀, 보호의 대상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어른으로 살 수 있지? 이미 어른이지만제대로 된 어른으로? 하루종일 잠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어려울 것이다. 퇴행의 증상이었다. 몸이 마음을지키려고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겠지만 깨고 나가야 한다. 이해할 만한 상황이라고들 말하는데, 화수는 이해받는 것에도 질려 있었다.
좆같은 일이 화수에게 일어났다. 좆같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될 줄 몰랐지만 유해한 남성성을 그보다 잘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 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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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살았남았나 싶을정도로 공격성이 없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웠다. 첫번째 남편도 두번째 남편도 친구들도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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