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것도 스쳐가는 직업일지도 몰라. 여러 일을 거쳤거든. 나 좀 꾸준한 데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지 마. 네가 열려 있는 사람이라 변화에도 적극적인 거겠지. 나, 너 처음 봤을 때부터 확 느꼈는데, 열려 있는 사람이란 거, 튼튼하게 활짝 열리는 창문이나 공기가 잘 통하는 집처럼."
- P317

"나는 독일인, 페라나칸인, 한국인 들이 눈이 맞은결과야!"
"우린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지구인이네."
"서로서로 더 눈이 많이 맞으면 오십 년쯤 후에 다우리처럼 생길 거라고 하던데."
그런 세상이 금세 올 것 같기도 영영 오지 않을 것같기도 했다.
- P322

사람들이 물어보곤 했어요. 내 글에서 죽음 냄새가난다고, 누가 죽었느냐고, 흥미롭게, 문학적인 대답을기다리며 한 사람이 죽었을 거라고 추측했죠. 나는 차마 학살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죽은 연인이 있다고대답하곤 했어요. 어린 나이에 비극적으로 아름답게죽어버렸다고 말이에요. 그게 사람들이 원하는 적당한 대답인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말해요. 지난세기에 일어난 일이니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참혹함을 떠올리면 심장이 난폭해지고 갈비뼈가 터져버릴것 같지만, 말해요. T에서 내 가족이 죽었어요. 모두 죽었어요. 나만 두고. 경찰과 군인들이 죽였어요. - P328

큰딸의 심상한 말에 명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성격이 둥근 사람과도 잘 지내고 예민한 사람과도 잘 지냈다. 외국 학생하고도 같이 다니고 장애 학생이랑도 같이 다녔다. 잣대는 없고 젓대는 있어서 사람 사이를 휘휘 저어버린달까?  - P336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절박한 안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 아아, 이 사람 큰일났다. 싶을 땐 늦었고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디다. 큰회사에 다니고, 가업을 잇고, 대단한 돈을 거머쥐고,
다정한 반려인이나 귀여운 아이들을 얻고 나서도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 기생충이 먹을게 없으면 내장을 파고들듯이요. 수집가나 애호가가되어 욕구를 해소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그렇게 운이 좋지 않습니다. 결국 일에도 뜻이 없어지고 주변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저보다 훨씬 가난한예술가들 곁에서 머물며 소비만 하다가 자기 자신도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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