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녀와 함께다. 우리는 그녀와 한몸이다. 우리는 술에 취했다. 엘리자베스 아주머니는 아기를 받기 위해 수건을 넓게 펼치고무릎을 꿇는다. 이제 최고의 순간이 온다. 영광이 온다. 요구르트 범벅이 된 듯한 자줏빛 머리가 나온다. 한 번 더 힘을 주니체액과로 피로 미끈거리는 태아가 기다리는 우리들 손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나온다. 오, 찬미 있으라.
- P219

아마 몇 달 동안, 재난은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임지가 변경되어, 다음 차례의 사람을 위해 또 한번 이일을 할 수 있는지 검사받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식민지로 유배당하거나, 비여성으로 분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그녀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 P221

그녀는 해방되었다. 스스로를 해방했다.
이제 그녀는 자유 여성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이 공포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이라는 마치 양쪽이 툭 터진 엘리베이터 같았다. 우리는 현기증이 났다. 우리는 이미 자유에 대한 미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 벽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기권 상층부로 올라가면 사람은 산산조각으로 분해되고 휘발해 버리지 않는가. 형체를한데 묶어 붙들어줄 기압이 전혀 없으니까.
- P232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법이다. 우리는 사령관과 단 둘이 만나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첩이나, 게이샤나 창녀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를 그 범주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우리들에게서 쾌락의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고, 은밀한 욕망이 꽃필여지도 전혀 없다. 특별한 총애 따위는 그쪽이나 우리 쪽에서 미리알아서 정리할 테니 사랑이 싹틀 발판조차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聖)다.
- P238

하지만 내 눈에는 바깥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거기엔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기관단총을 들고 서 있었다.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연극적이었지만, 틀림없이 그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불쑥 나
타난 망령들처럼, 화성인처럼 서 있었다. 그 모습에는 어쩐지 몽환적인 구석이 있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명해서, 이상하게 배경과 어울리지가 않았다.
- P306

 단호하고 의도가 분명한 진술, 내 삶이 견딜 만하다면, 그럼그들이 저지르는 짓거리들이 다 정당화된다.
- P327

이제 용서를 말할 차례가 되었군요. 지금 당장 저를 용서해 주실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더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다른 이들이 지금 무사하다면,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지니치게 고생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들이 죽어야만 한다면, 빨리 죽여주세요. 그들에게 천국을 주실 수도 있으시죠. 그래서 우린 당신이필요하단 말이에요. 지옥은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으니까.
- P338

 그렇지만 세레나도 내가임신하기를 바랄 터이다. 빨리 끝내고 해치우고 제껴 버리고, 더 이상 굴욕적이고 땀내 나게 엉겨붙을 필요도 없고, 은빛 꽃이 수놓인별들의 덮개 아래 육신의 삼각 관계를 연출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 P352

"그분은 안 되는지도 몰라."
그녀가 말한다.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사령관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하느님? 하느님이라면, ‘안 하실지도‘라고 말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불경한 말이다. 안 되고, 못하는 건 오직 고집스럽게 몸을 열지 않고,
훼손되고 결함 있는 여자 쪽이기 때문이다.
- P353

나는 낯선 얼굴을 예상했지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조명 스위치를 켜는 사람은 닉이다. 닉도 그들과 한 패가 아니라면, 이걸 어떻게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긴, 그럴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거니까..
닉, 잠복 근무중인 ‘눈‘ 더러운 인간들이 더러운 짓을 하는 법이니까.
나쁜 새끼. 나는 생각한다. 입을 열어 그 말을 내뱉으려고 하는데,
닉이 내게 다가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오늘은 메이데이‘ 니까. 그들과 함께 가요." 내 진짜 이름을 부른다. 어째서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거지?
"저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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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는 효모 냄새가 났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냄새, 이런 냄새를 맡으면 디른 부엌들이 생각난다. 나의 부엌이었던부엌들이. 이건 엄마들의 냄새다. 우리 엄마는 빵을 굽지 않았지만,
이건 나의 냄새다. 옛날, 내가 엄마이던 시절 나의 냄새다.
- P85

나는 이 남자를 마땅히 증오해야 한다. 그게 당연한 감정이란 건알고 있는데, 실제로 느끼는 건 그렇지가 않다. 실제 내 감정은 훨씬더 복잡하다. 뭐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사랑은 아닌데.
- P104

"당신네들이 겪는 고통을 그냥 보고만 있자니 끔찍해요."
그는 중얼거린다.
진심 어린, 진심 어린 동정의 목소리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동정이며 이 모든 일들을 두 눈은 동정으로촉촉하게 젖어 있지만, 한 손은 초조하고 성급하게 내 몸을 더듬고있다.
- P109

여덟 살, 지금 그 애는 여덟 살이 되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대충 메워넣은 계산이다.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는지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 말이 옳다. 그 애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편했다. 그렇게 믿어버리면 희망을 품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는헛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뭐하러 벽에다 머리를 박아? 리디아아주머니는 말했다. 가끔 그 여자의 표현은 정말이지 끔찍하게 실감난다.
- P115

 매달 나는 겁에 질려 핏자국을 찾아헤맨다. 피가 비치면 실패라는 뜻이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의 기대를 배반하고 말았고 또한 나 자신의 좌절이기도 하다.
- P131

지금 이 일은 절대 오락이 아니다. 사령관에게조차 오락은 아니다.
이 일은 진지한 과업이다. 사령관 역시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있다.
행여 가느다랗게 실눈이라도 뜨면, 그를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리불쾌하지는 않은 얼굴이 내 몸통 위에 걸쳐져 있고, 은발 몇 가닥을앞이마에 늘어뜨린 채, 그가 지금 서둘러 끝내고자 애쓰고 있는 내면의 여행에 몰두하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목적지는 그가 가까이갈수록 똑같은 속도로 멀어질 테지.  - P167

사령관의 정액이 다리 가랑이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돌아서기 전에 나는그녀가 파란 치마를 매만지고 두 다리를 꼭 모으는 모습을 본다. 그녀는 머리 위의 덮개를 바라보며, 저주할 때 쓰는 인형처럼 빳빳히고 반듯하게 침대 위에 그냥 누워 있다.
이 일이 누구한테 더 끔찍할까? 그녀일까, 나일까?
- P169

우리는 아기를 담는 그릇에 지나지않는다. 중요한것은 오로지 우리 육체의 안쪽일 뿐이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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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경찰이라고경아 핸드폰 맡으라고 한 사람접니다.
- P31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불운하다고 말하는 건웃기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계속 살아야 하고, 나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는 손해는 구덩이처럼 남아 있다.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 P51

다르게 만났더라면 친구가 되긴 힘든 유형이었겠지. 오히려 좀 싫었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자매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했다. 감상에 빠져서가 아니라, 실로 그러하다고 느꼈다. - P82

다. 독서실에서는 책장만 좀 요란하게 넘겨도, 볼펜 버튼을두 번 넘게 누르기만 해도 포스트잇 쪽지가 날아왔다. 고시텔 옆방 사람이 자판기 커피급으로 미친 사람이라고 치면 독서실 사람들은 핸드드립 커피만큼 미친 것 같았다. 받아본 쪽지 중 제일 황당했던 것은 되도록이면 볼펜, 열람실 밖에서 누르고 들어와주세요였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경아한테도 사진을 찍어서 보냈고, 경아는 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답장을 보낸 다음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 P115

캡처해서 리아야 사랑해 태그에 올렸다. 그러니까 다. 리고 하기는 어렵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알량한 자기 전시 요구에 경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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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간편해서 좋다.
잘 살던 사람도 죽어 버리면 물체일 뿐이다. 꼭 종교의 힘을빌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인의 덕을 기리고 추억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굳이 아오야마 장의장이나 사찰 같은 데서 요란하게장례식을 치를 필요가 없지 않을까. 부의금이 목적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 P239

그래서 그날 밤 별채에 묵게 되었지요.
‘왜 남자들은 이런 시시한 여체 따위에 열중하는 걸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녀는 마흔다섯 살인데, 죽은 남편의 외도로 일 년 내내 마음편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꿈의 책 한 권을 구할 때까지는 동정을 지키련다‘라고 쓴내 수필을 읽은 뒤 불쑥 장서를 처분할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더군요.
- P51

이번 여행은 친목을 도모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 출판계상황을 시찰하고 그 참에 일본에서는 구하기 힘든 사본 같은 것을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즈니스 목적도 있었다.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귀중한 고서를 많이 잃었다. 그러나 국토가 다 불타 버린 것은 아니다. 고서도 절반 이상 남아 사찰이나 명문가 창고에 잠들어 있으리라는 것이 가사이 기쿠야의 의견이었다.
- P115

하하하.
의심이 마귀를 낳는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어요.
그러나 진짜배기 책 도둑은 살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P229

아무리 안달하고 초조해도 안 되는 시기에는 안 된다.
하지만 당사자는 이를 알지 못하고 슬럼프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 때일수록,
슬럼프가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차분히 지켜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슬럼프에 빠진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편이 낫다.
실력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재기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 P268

자신의 보물과 껍질을 제공해서 책 한 권을 장정하고 싶다는겁니다.
이유요?
아마 십 년 동안 인피를 찾아 미친 듯이 돌아다닌 탓이 아닐까요?
세계적으로도 전대미문의 시도일 겁니다.
페니스와 고환의 가죽으로 장정한 책이라니…….
사도 씨는 자기 물건을 절단할 작정입니다.
- P275

나나 여기 사도 씨나 로젠바흐는 아니지만, 책벌레, 책의 악마가 골수까지 파고들었어요.
이제 이 사람이나 나나 방법이 없어요.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결혼할 수 없는 여자한테 빠진 거나 마찬가지죠, 하하…..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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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라 히데키
다하라 가나
다하라 치사

어디있지? - P83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대답이 없다. 어쩌면 의식을 집중해서알아내려고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실례지만..…." 그녀가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세쓰코 씨가 누구신가요?"
헉! 내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쓰코를 우리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바로 그녀가 아닌가.
- P141


"받지 마세요."
역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아내일지도 모릅니다. 마코토 씨일지도 모르고, 세쓰코 씨를 병원으로 데려간 노자키 씨가 걸었을지도 몰라요.
이 스마트폰은 통화 중 대기를 할 수 없습니다. 일단 표시를 확인하고…."
"그것이에요. 받지 마세요."
"하지만…."
"그것이에요. 받지 마세요."
그녀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무적으로, 무표정하게.
이상하다.
- P142

"다하라 씨, 제 말 듣고 있어요? 다하라 씨?"
"대답하지 마세요, 다하라 씨."
"지금 당장 움직이세요, 시간이 없어요."
"다하라 씨,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저 말 듣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번갈아 집 안을 날아다녔다. 지금 들은 목소리는 누구일까? 조금 전에 들은 목소리는? 어느 쪽이 진짜마코토의 언니일까?

"만약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할 거야?"
남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세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이어졌다.
K역이 보이는 순간.
"그때는 말이야." 남편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상큼한 표정을 지었다.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자기가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 P166

하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항상 집을 나오는 건 여자인가. 엄마인가. 아내인가.
이유는 명백하다. 집이라는 물건은 남편, 즉 남자의 소유물이라는 가치관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여자는, 그리고 아이는 그곳에 얹혀사는 것에 불과하다.
- P200

"네. 밝고 편하고 즐겁게 지내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요, 좋은 쪽으로 굴러가는 거죠."
- P204

"산으로 가요."
- P218

든지 할 수 있다든지, 불륜 상대인 여대생이 너무 집착이 심해서 헤어지고 싶은데 결국 그날도 했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적이 없었나? 괜히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나? 눈앞에서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듯이 술주정하는 천박한 놈들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나? 정말 지긋지긋해! 예전 친구마저 그런 천박한 놈이 되었다니! 나도 아이 하나, 여자 하나쯤은 저주할 권리가 있잖아!"
- P265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 그것이 필요했던 마을노인과 아이가 부담스러웠던 마을.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줄여야 했던 마을 사람들,
그런 사회가 예전 일본의 여기저기에 있었다.
- P324

사람이었던가, 어린아이였던가. 입을 줄이기 위해 마을에서데려간 아이들이 이렇게 변한 것인가.
치사가 이를 드러내더니 천천히 입을 벌렸다. 장난 같은 몸짓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나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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