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노예가 되듯이 나는 의무의 노예도 된다." - P373
피아노쟁이와 피아니스트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달라. 피아노쟁이는 악보대로 건반을 치기만 할 뿐이지 반면 피아니스트는 작곡가의 정신을 이어받아 연주에 스스로 생명을 불어넣어야 해.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지. - P144
아직은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붕대투성이 몸. 하지만 인형은 음악이 있어야 비로소 춤을준다. 마치 살아 숨 쉬듯이 자유롭고 경쾌하게, 만약다시 그렇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가 마법사든 악마든 상관없다. 그 어떤 조건이든 그와 거래하고 싶다.설령 그 대가가 영혼일지라도. - P149
"허 참, 이 집안이 이렇게 망할 줄이야, 재물처럼 허망한 건 없네, 살림이 나가거든 곱게나 나갔음. 사람 잃고 돈 잃고, 어찌 병이 안 나며 환장 안 할 것인가." - P355
병적인 미소 실상 윤희는 TB 환자였지만 를 지닌 여자를 사랑하는 정윤이와 지식의 수준이 얕은, 그리고 과부인 순자를 사랑한 태윤이, 그 비정상적인 연애 속에서 그들은 일종의 자학을 맛보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기에는 너무나 그들 형제는 지성이 승勝했다. - P365
소청이의 뺨을 한 번 때려주고 나와버린 김약국이었다. 넘쳐나는 소청이의 정열은 김약국에게 공포심을 일으켰다. 소청의 젊음에 응해줄만큼 마음도 기름지지 못한 김약국이었다. 마음이 기름지지 못하여도 몸이 기름졌을 시기에는 김약국도 공허하였지만 고독하지는 않았다.여자가 없어도 좋았다. 못 견디게 갈증을 느낀 일은 없었다. 시간은 조용하고 눈빛은 가라앉았었다. 김약국에게 있어 소청이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았던 애매한 여자였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쇠퇴해가는 육신을 느낀다. 하루하루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육신을 느낀다. 어쩌면 그는 지난날의 그 고요했던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혼자서.소청이는 내리막길을 내딛고 있는 김약국을 알아본다. 적의에 찬 눈이다. 어떤 때는 조롱이 된다. - P301
"외모가 아름답다는 말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지성이 엿보인다는 뜻이다. 게다가 .…… 뭐랄까, 행동거지가 말이다. 고지식한 옛날 사내처럼 등허리에 심지가 팽팽하게 심어진 듯 아주 꼿꼿하더구나, 하루카,너는 모르겠지만 전시 중의 장교가 딱 그런 분위기였지. 말씨나 태도만큼은 부드러운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그 녀석은 보기보다 훨씬 강인한 정신을 숨기고 있어. - P44
"그런 건 나이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그렇지..무예는 다도악기든 뭐든 상관없이 뭔가를 달관하거나 수라장에서 헤어난 인간에게는 사리 분별을 할수 있는 힘이 생기지.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한 고난을겪어도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평소 행주좌와 속에서그 사람을 지지하는 버팀목이 된다." -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