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이틀째 날, 빅토르는 보건실에서 여자 아기의 탄생을 목격했다. 너무나도 끔찍한 부상과 갖가지 모습을 띤 죽음을 목도했지만, 삶의 출발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 빅토르는 눈물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 P181

"빅토르, 삶과 죽음은 늘 손잡고 다니네요." 로세르가 울컥해서 말했다. - P182

"로세르, 전쟁이 임박해 있어. 이념과 원칙의 전쟁이 될 거야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두 방식 사이의 전쟁이고, 나치와파시스트와 맞선 민주주의의 전쟁이고, 자유와 권위주의가맞선 전쟁이지." - P185

"달콤한 조국, 너의 성단에서 칠레가 맹세한 소명을 맞이한다. 너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무덤이 되리라. 아니면 억압에 맞선 피난처가 되리라" - P192

 이제는 예전의소녀가 아니라 꽤 흥미로운 젊은 여자였다. 친동생만 아니라면 오펠리아가 꽤 미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 P201

펠리페가 말해 준 바에 의하면 로세르는 그녀보다 두 살 많았을 뿐이지만, 세 가지 삶을 살았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태어나 패배한 전쟁에서 살아남아 망명의 비참함을 겪었다.
그녀는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바다를 건너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용감하게 남의 나라에 도착했다. 오펠리아는 품위 있고, 강하고, 용감해지고 싶었다. 로세르처럼 되고 싶었다.  - P208

로세르는 사랑이란 단 한 번 오는 것인데, 자기 몫은 이미끝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P218

빅토르와 로세르는 성격이 정반대라 오히려 서로 잘 통했다. 로세르는 이민자들의 감상주의에 빠지는 법이 없었고, 뒤 돌아보는 법도 없었으며,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이상화하지도 않았다.  - P219

하지만대안은 더욱 두려웠다. 노처녀로 남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아버지와 펠리페 오빠에게 의존하고, 사회적으로 최하층이된다는 의미였다.  - P223

"비냐델마르로 돌아가야 해요. 기사가 기다리고 있어요."
오펠리아가 별 확신 없이 말했다.
"기다리라고 하세요. 우리는 얘기를 해야 해요."
"빅토르, 나는 결혼할 거예요."
"언제요!"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은 이미 결혼했는데."
"바로 그 점에 대해 우리가 얘기해야 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당신에게 설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P225

그 남자는 너무나도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었다. 그수수께끼들을 모두 풀려면 기나긴 작업이 될 것 같았다. 망명, 군사 쿠데타, 공동묘지, 난민 수용소가 뭔지, 배가 터져서 죽은 나귀나 신생용 빵이 뭔지 알고 싶었다. 빅토르 탈마우는 마티아스 에이사기레와 거의 비슷한 또래였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해 보였다. 겉은 시멘트처럼 강하고, 안은 끌로 조각한 듯 속을 알 수 없었다.  -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토르! 내가 그 여자는 잊으라고 했잖아요!" 그날 밤 단둘만 있게 되자 로세르가 빅토르를 나무랐다.
"로세르, 어쩔 수가 없었어. 당신이 기옘을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기억 안 나? 그리고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것도‘ 나도 오펠리아랑 마찬가지야."
"그럼 그녀는요?"
"서로 좋아하는 거야. 우리가 드러내 놓고 절대 같이 있을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받아들였어."
"그 아이가 당신의 첩 노릇을 얼마다 참아 낼 수 있을 것같아요? 그녀는 특별한 삶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요. 당신 때문에 그 삶을 포기한다면 미친 게 분명해요. 빅토르,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발길질당하며 이나라에서 쫓겨날 거예요. 그 사람들은 큰 힘이 있어요.
"아무도 모를 거야."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될 거예요." - P2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칠레? 그 나라는 어디 있어요?" 로세르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세상의 발끝에." 빅토르가 대답했다.
다음 날 엘리자베트는 어제 말했던 기사를 찾아서 빅토르에게 전했다. 정부의 위임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망명자들을 자기네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위니펙호라는 배를 정비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파리행 기차를 탈 돈을빅토르에게 건네며, 그 시인과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랐다. - P165

"빅토르, 알겠어요. 내가 뭘 해야하나요?"
"미안한데, 로세르・・・・・・ 나랑 결혼해야 해."
그녀가 몹시 놀란 표정으로 한참이나 쳐다보는 바람에 빅토르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진지한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는 네루다에게 들은 대로, 가족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로세르, 너는 내 제수도 아니야."
"나는 서류도 없이, 신부의 축복도 없이 기옘과 결혼했어요"
"그런 건 이 경우에 고려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로세르, 너는 실제 과부도 아닌데 과부가 된거야. 가능하다면 오늘 당장 결혼하고, 아이를 우리 아들로호적에 올리자, 내가 아버지가 될 거야. 내가 친자식처럼 돌보고 지켜 줄게. 네게 약속할게. 그리고 그건 너한테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잖아요..."
- P170

그렇게 그들은 광장의 벤치에서 짧은 시간에 자기네 인생은 물론, 아이의 인생까지 뒤바꿔 놓을 중대 결정을 내렸다.
서둘러 피난을 떠나오다 보니 수많은 난민들이 신분증도 없이 프랑스에 왔고 신분증을 길이나 수용소에서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제대로 소지하고 있었다.
시청에서 치른 간단한 의식에 퀘이커교도 친구들이 참석해서 결혼식 증인이 되어 주었다. 빅토르는 새 구두에 광택을냈고, 빌린 넥타이로 빛이 났다. 로세르는 너무 많이 울어서두 눈이 퉁퉁 부었지만 이제 차분해져서, 가지고 있는 가장좋은 옷을 입고 봄 모자를 썼다.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 후 마르셀 달마우 브루게라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출생 신고를마쳤다.  - P171

네루다는 그나라를 하얗고 새까만 거품의 허리띠를 두르고, 바다와 포도주와 눈으로 이뤄진 기다란 꽃잎"이라고 정의했다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흘려보내자 가슴에서 뭔가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심장이 고장이 났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그는 그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유리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자기 존재의 본질이 빠져나가서, 과거의 기억도 현재의의식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구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처럼 자신도 피투성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끼리 싸우는 그 전쟁은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너무나도 추악했다. 계속 죽이고 죽어가느니 차라리 지는 편이 나았다. - P106

 여자들은 모든 것을 잃은 후 체면조차 남지 않은남자 포로들과 경비병들의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지키기위해 무리를 지어다녔다. 로세르는 모래가 섞인 매서운 북풍을 피해서 잠을 자기 위해 손으로 구덩이를 팠다. 따가운모래가 피부를 망가뜨리고 눈을 멀게 하고, 몸속 여기저기로 들어와 상처를 내고 감염을 일으켰다. 하루에 한 번 허여멀건한 렌틸콩 수프가 배급되었고, 가끔 차가운 커피가 나왔다. 트럭이 지나가면서 빵 덩어리를 던져 주기도 했다. 남자들은 빵을 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누군가 측은한 마음으로 나눠 주는 빵 부스러기나 받아먹었다.  - P108

다. 로세르 바로 옆 구덩이 안에서 잠들었던 여자가 오 개월된 딸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날이었다. 다른 피난민들이 아이 시신을데려가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 묻었다. 로세르는 수평선에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도 흘리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가만있는 여자 곁을 온종일 지켰다. 그날 밤 여자는 바닷가로 나가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여자 혼자만이 아니었다.  - P109

개방적이고 처세술이 좋은 이시드로는 죄와 퇴폐의 냄새를 풍기는 강요된 쾌락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아내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다른 손에는 술잔을 든 채 모든 것을 칭송했다. -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친구 아이토르는 어떻게 됐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대로예요. 늘 총탄 속에서 흠집 하나 없이."
"그는 무서운 게 전혀 없나 봐요. 그에게 안부 전해 주세
"전쟁이 끝나면 무슨 계획이 있어요?" 빅토르가 그녀에게물었다.
"다른 전쟁을 찾아가는 것. 늘 어딘가에는 전쟁이 있거든요. 당신은요?"
"당신이 괜찮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는데." 그가 수줍음으로 목이 잠긴 채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 P23

"나는 사랑할 시간이 없어요."
"어쩌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잖아요. 우리가 다시 만날수 있다고 봐요?"
"틀림없이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요. 빅토르, 나를찾아와요.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나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에게 키스해도 될까요?"
"아니요." - P24

부두에서 일하는 짐꾼의 딸인 카르메는 수녀들의 후원을 받으며 어릴 때부터 수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가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결합을 비웃는 무신론자에 무정부주의자요, 어쩌면 프리메이슨일 수도 있는 한량과 동거하겠다고 수녀원을 박차고 나간 것을 수녀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 P30

그 몇 년 동안 돈 산티아고가 깊은 환멸과 분노를 느꼈던
여러 이유 중에는 피후견인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학내 폭도들, 특히 마르셀 류이스 달마우 교수라는 작자의 나쁜 영향을 받아 그의 로세르가 빨갱이가 된 것이다. 그 교수는 공산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 무정부주의자인가 하는, 결국에는 모두 매한가지인 악랄한 볼셰비키주의자였다 - P43

 그녀는마르셀 류이스가 가족을 스페인에서 멀리 떠나보내기 위해마련한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 중에서망명을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나 다른 어느 곳에서 그들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자기네 집과 동네와 언어와 친척과 친구를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자 그들은 단념하고, 협상된 평화와 파시스트의 탄압을 견뎌내야 할 가능성을 조용히 점쳐 보았다.  - P62

 그리고 로세르 앞에서는 동료들이 저지른 집단 처형에 대해서도 거의 인정하지않았다. 그들은 둘씩 묶은 적군 포로들을 트럭에 싣고 공터로 데려가 아무 절차도 없이 처형한 뒤 커다란 웅덩이에 한꺼번에 파묻었다. 마드리드에서만 그런 식으로 이천 명 넘게사망했다. - P62

티푸스를 앓던 최악의 순간, 고통과 두려움이라는 오물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죽을 것만 같았을 때, 그는 허우적대다가 죽지 않기 위해 절망에 가까운몸짓으로 로세르를 꽉 붙잡았다. 혼란에 빠진 그에게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유일한 나침판이고, 그녀의 강한 눈빛이 유일한 닻이었다. 그리고 그 강한 눈빛은 금세 생글거리는 순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 P65

"로세르, 뭐 하는 거야? 언제든지 어머니가 돌아올 수 있어."
"일요일이에요. 아주머니는 광장에서 사르디나 춤을 추고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빅토르와 얘기하기 위해 전화국에 가서 줄을 설 거예요."
"나한테 옮을 수도 있어..………."
"처음에 옮지 않았다면 이제 와서 그러기는 힘들어요. 핑계는 그만 대요. 기옘, 얼른" 로세르가 브래지어와 팬티를벗고, 침대로 그를 밀어 넣으며 재촉했다.
로세르는 남자 앞에서 벌거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 비상 상태에서 배급으로 살며 이웃과 친구를의심하고, 늘 죽음의 사신을 눈앞에 두고 살다 보니 소심함을 잃었다. 수녀들이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귀하디귀했던 처녀성이 스무 살이나 된 그녀에게는 결함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미래도 없었다. 전쟁이 앗아가기 전에 누릴 수 있는 바로 그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P66

동료들이 무서운 속도로 쓰러졌고, 제 차례는 언제가 될지 자문하기도 했다. 비행기의 기관총 세례를 피하기 위해 부상자들은 전조등도 켜지 않은 차에 실려 야간에 이송되었다. 상태가 꽤 심각한 몇몇 부상자는 총 한 방을 쏴 주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산 채로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게 죽는 것보다 수천 배 끔찍했기 때문이다. 잔인한 태양 아래에서 썩은
내가 진동하기 전에 수습할 수 없는 시신들은 말과 나귀처
럼 돌로 덮거나 태워 버렸다.  - P68

 그 바스크인은 두려움을 쫓고 행운의 여신을 유혹하기 위해 꿈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 P73

그들은 아버지 마르셀 류이스의 죽음으로 아직 상중이었다. 그는 몇번이고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말이 마음속에서 얼어붙어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르가 출산하거나 전쟁이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아들을잃은 카르메의 고통과 사랑을 잃은 로세르의 고통이 조금은견딜 만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P77

"카르메, 보복이 잔인합니다. 그들이 단 하나의 진정한 믿음과 조국의 가치를 교육한답시고, 어미에게서 자식을 빼앗아 수녀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위탁한다는 거 아십니까?"
"그러기에는 내 자식들은 이미 커버렸네."
"그건 한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내가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와 함께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어머님은 혁명가들에게 글을 가르치고미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총살당할 테니 말입니다."
"이봐, 젊은이, 나는 쉰네 살이나 먹었고, 폐병 환자처럼기침하네. 오래는 못 살 듯싶어, 망명 떠나서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나? 프랑코가 있든 없든 내 집에서 내도시에서 죽고 싶네." - P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